북극항로와
남북 교류협력 방향

김영윤 남북물류포럼 대표

북극항로가 단순한 해상 항로를 넘어, 세계 질서와 전략의 판도를 바꾸는 지정학적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15세기부터 유럽 탐험가들은 아시아로 가는 짧은 항로를 찾기 위해 북극을 탐험했지만, 혹한과 빙하로 북극항로 개척에 실패했다. 20세기 초 구소련이 북동항로(Northern Sea Route: NSR)를 개발한 이후, 북동항로는 북극항로 중 현재 세계 각국이 상업적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북극항로는 북동항로(NSR), 북서항로(NWP, 캐나다 연안), 북극중앙항로(Transpolar Route)가 있다.) 북동항로가 가장 많이 이용되는 이유는 해빙 속도가 가장 빠르고, 여름철 3~5개월 동안 운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북동항로는 러시아 북부 시베리아 해안선을 따라 바렌츠해 → 카라해 → 라프테프해 → 동시베리아해 → 베링해협를 지나 동북아시아까지 이어진다. 러시아는 본 항로를 자국의 자원(LNG, 석유 등) 수출로 이용하고 있으며, 중국은 유럽 수출입 물류 루트로 활용하고 있다. 한반도와는 부산항을 출발, 동해를 따라 북상해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또는 나홋카항의 기항, 베링해협을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 로테르담, 함부르크 등지로 연결될 수 있다. 부산~로테르담 기준 약 12,700km로 기존 수에즈 운하 경로(21,000km)보다 약 40%나 짧다. 운송 시간은 10~15일이나 단축된다. 한반도는 이 항로의 아시아 측 출발점으로서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다.

21세기 들어 북동항로는 기후 변화에 따른 현실적인 상업항로일 뿐만 아니라, 정치·군사적으로도 그 중요성을 높이고 있다. 러시아는 북극항로를 자국의 배타적 통제하에 두기 위해 통과 선박에 대한 허가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중국도 '근북극국(近北極國, Near-Arctic State)'을 자처하면서 빙상 실크로드 구상을 통해 북극 진출을 꾀하고 있다. 중국의 '근북극국'은 북극으로부터 1,500km나 떨어져 지리적으로 북극권에 속하지 않지만, 북극 문제에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임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근북극국'이 국제법상 공식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나 중국이 북극 자원 개발, 해양 과학 탐사 및 극지 해운 참여의 정당성 확보 등 북극 지역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정당화하려는 전략적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미국, 캐나다 및 북유럽 국가들은 중국의 '근북극국' 개념을 정치적 수사로 보고 경계하고 있는 편이다. 북극의 자유항행과 환경 보호를 강조하면서 러시아·중국의 독점 시도를 견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북극항로는 향후 미래의 국제질서 재편의 핵심축이 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2023년 북극항로(NSR) 총 화물 물동량은 3,625만 톤에 달했다. 2024년에는 LNG 4,100만 톤, 석탄 2,300만 톤, 석유 1,410만 톤 등 화물 운송량은 대폭 늘어난 것으로 알려진다. 이와 함께 북극 자원 매장량도 석유 900억 배럴, 천연가스 1,670조 입방 피트, 액화천연가스 440억 배럴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북극항로는 특히 에너지 자원 운송의 글로벌 물류 회랑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할 것이다. 북극 해빙으로 연중 6~7개월 운항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 인프라 확충과 함께 쇄빙선 및 극지 전용 선박의 개발, 디지털 항로 예측 시스템 등 극지 운항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상태다.

북극항로는 기후 변화가 만든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으로 한국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유럽행 물류비를 절감, 유럽 수출경쟁력을 향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석유, 천연가스 등 북극 자원의 수송 증가를 통해 에너지 안보 및 자원 외교를 강화할 수 있다. 그 밖에도 극지 전용 선박, 쇄빙LNG선 등 고부가가치 조선업 성장에도 큰 힘을 얻을 수 있으며, 극지 운항 전문가, 친환경 연료 기술자 등 전문 인력의 창출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은 부산, 울산, 광양 등 남부 항만을 북극항로 거점으로 육성 중이다. 쇄빙선 '아라온호'를 운영하고 있는 한편, 북극이사회의 옵서버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북극항로를 이용한 남북한 교류·협력은 한반도의 미래 전략과 동북아 질서를 동시에 꿰뚫는 핵심 이슈라고 할 것이다. 북극항로와 남북한 협력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동해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는 일을 주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북극항로는 육로가 단절된 상황에서 해양을 통한 남북한 교류·협력을 용이하게 한다. 부산과 동해를 경유, 유럽을 잇는 해양 실크로드로서 기능이 가능하다. 북한 동해의 청진 및 원산항 등을 중간 기착지로 활용하면, 남북 공동 해양 물류망 구축과 함께 해양 협력의 시너지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북한은 항만 현대화와 외화 수입을 도모할 수 있으며, 한국은 물류비 절감과 북방 진출이라는 상호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 동해는 북극항로의 출발점이자, 러시아·일본·북한과 접한 전략적 요충지다. 부산·동해·원산 등을 북극항로의 거점항으로 육성, 수출입 물류비 절감은 물론, 극지 조선 및 에너지 산업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동해는 중국의 일대일로, 러시아의 북극 전략,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남북한이 중재자 역할을 가능하게 하는 요충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청진·원산 등 동해항을 북극항로 중간 기착지로 활용함으로써 통과 수수료 및 항만 서비스 수익 창출이 가능하며, 북극항로를 통해 국제 물류 체계에 부분적으로 참여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북극항로의 공동참여는 남북 공동 해양 프로젝트의 추진을 담보, 남북경협의 새로운 장 열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과 같은 북극항로를 이용한 남북협력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북극항로를 기반하는 남북 공동 해양물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다. 북한 지역의 동해항과 포항·부산을 연결하는 북극항로 연계 해운 네트워크를 실질적으로 구축하고, 공동 항만 개발 및 운영, 극지 해운 교육·기술에 공동협력하는 것이다. 둘째, 남·북·러 3각 에너지·철도 협력을 추진하는 것이다. 러시아 원유의 해양 수송은 물론, 북한을 경유하는 시베리아 가스관 연결 사업을 가동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 종단철도(TKR)를 연결하여 유라시아 철도망을 완성하는 바탕을 마련할 수 있다. 셋째, 동해안 안보·환경 공동관리 체계 구축하여 북극항로 이용 증가에 따른 해양 사고·환경오염 공동 대응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동시에 해양 감시·기상 정보 공유, 구조 협력 체계도 구축할 수 있다.

북극항로는 남북한이 해양을 통해 협력할 수 있는 새로운 창구가 될 수 있다. 동해를 전략적 거점으로 삼아 한반도가 동북아 물류·에너지 허브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을 예비하고 있다. 북극항로는 한반도의 해양 전략의 대 설계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동해를 중심으로 남북한이 해양을 통한 협력 모델을 구축한다면, 단절된 육로를 넘어서는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길이 열 수 있을 것이다. 북한과 새로운 관계를 열어나갈 것을 선언한 새로운 정부의 큰 역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