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정부에 바란다!
저는 국제개발과 인도적지원 분야에서 활동하는 청년 실무자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 자연재해, 전염병 등 위기가 갈수록 빈번해지며, 수많은 피란민과 이재민들이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일상을 되찾고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긴급구호, 보건위생, 교육지원 등 인도적 지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하면서 늘 마음 한켠에는 무거움이 자리했습니다. 그 이유는 오랫동안 고통에 신음하고 있지만 이제는 도움의 손길조차 닿기 어려운 땅, 북한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특히, 작년 대규모 수해 소식을 접했을 때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현실은 언제나 제 상상을 넘어섰습니다. 겨울철 추위로 동사하는 사람들, 출산 시 낚시줄로 봉합하다 패혈증으로 숨지는 산모, 코로나 시기 진단 키트 부족으로 생명을 잃어야 했던 수많은 이들. 차마 다 나열할 수 없는 절망이 북한 땅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3단계 유화책을 통한 인도적 지원 의사 표명이라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남북관계에 중요한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 지금, 이 글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며 대북 인도협력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글 김이레
1. 인도주의 원칙에 입각한
대북 인도협력의 필요성
대북 인도협력은 인도주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는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대북 인도협력은 정치와 외교의 후순위로 밀려나거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흔들리며 방향을 잃곤 했습니다. 그러나 인도적지원은 정치, 군사, 경제적 목적으로부터 자율성을 보장받아야 하며, 이념적 논쟁에 개입되어서도 안됩니다. 특히 대북 인도협력은 지속성을 바탕으로 신뢰를 쌓아야 하며, 정치적 논쟁을 넘어 이재민의 고통을 경감하고 존엄을 지키는 본질적 가치를 국민에게 꾸준히 전달할 때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비차별의 원칙에 따라, 평양이나 특정 지역에 집중되기보다 가장 필요하고 가장 위급한 이들에게 지원이 먼저 닿아야 합니다. 이제는 1965년 국제사회가 채택한 인도주의 원칙에 부합하는 지원으로 전환해야 할 때입니다.
[그림1] 대한적십자사 7대 인도주의 원칙
(출처:https://blogs.icrc.org/cross-files/the-fundamental-principles-of-the-international-red-cross-and-red-crescent-movement)
2.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
개발 중심의 접근 방식
대북 인도협력은 단순한 물자 지원을 넘어, 지역사회의 성장 동력을 키우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물론 북한의 체재 특성상 지역사회가 자율적으로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구조적 어려움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작은 가능성이라도 모색하며 장기적 변화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북한 지역사회가 지닌 자원과 잠재력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그 과정을 촉진하는 것입니다.
[그림2] 폭우로 범람한 압록강 수해 현장 모습
(출처: SPN NEWS, 사진=내나라)
[그림3] 농약 살포 중인 북한의 한 농장의 모습
(출처: 데일리NK, 사진=노동신문·뉴스1)
예를 들어, 수해 복구 지원은 제방과 도로 복구에 필요한 기술과 설계를 제공하고, 돌이나 목재 같은 자재는 지역에서 조달하는 방식이 바람직한 접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농업 개발도 북한의 농지와 노동력을 기반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을 제공하고 이를 이끌 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방식이 효과적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지역사회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실현하려면 초기 계획 단계부터 지역사회 리더의 참여가 이뤄져야 하며, 신뢰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파트너십의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정부 지원의 경직성을 보완하고, 보다 유연하고 지속가능한 협력을 이루기 위해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와 민관 협력의 확대가 필요합니다.
3. 대북 인도협력의
주도적 역할 필요
대북 인도협력은 같은 민족이자 통일의 주인공인 우리가 주도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인도적 지원에서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존엄성 보존'입니다. 그러나 북한 주민의 존엄성에 대해 같은 민족인 우리보다 미국, 유럽 등의 인권단체들이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미국은 2004년 세계 최초로 북한인권법을 제정했고, 일본도 2006년에 같은 법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는 2016년에야 북한인권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가 북한 주민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길에 앞장서 책임을 다하는 주체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4. 통일 대비와 청년 세대의 준비
대북 인도협력은 도래할 통일을 선제적으로 준비하는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국민의 지지와 공감을 얻는 것이 필요하며, 특히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청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통일 준비가 매우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인도적 지원 분야의 'Surge Team'*처럼, 예기치 못한 시기에 도래할 수 있는 통일을 대비한 즉각 대응 인력을 사전에 준비하고, 이를 위한 교육과 훈련, 참여의 기회가 지속적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습니다. 저 또한 북한의 현실을 접하며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 남북협회의 '북한 인도협력 아카데미' 등 관련 강좌를 수강하고 현장 탐방을 하며 이해를 넓히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2030 청년 세대가 북한을 깊이 이해하고, 지식과 전문성을 쌓아 준비된 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배움과 실천의 장이 마련되기를 기대합니다.
* Surge Team : 위기 상황이나 긴급한 인도적 필요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투입되어 지원을 수행하는 전문가 집단
끝으로, 대북 인도협력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민족의 고통과 비극을 끊기 위한 우리의 책임이며, 한반도의 도약과 통일을 준비하는 출발점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인도주의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협력 방안을 마련하고, 같은 민족으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무를 실천할 때입니다. 앞으로의 대북 인도협력이 진정한 연대와 책임의 길로 이어져, 평화와 번영의 미래로 나아가는 한반도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