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칼럼 01
북한 제14기 1차
최고인민회의 분석과
북한 경제 및
남북교류협력에 대한 시사점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고인민회의의
위상과 기능
4월 11~12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 회의가 개최됐다.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대체로 해마다 4월에 개최되며, 때때로 하반기에도 개최된다. 혹자는 그 위상과 기능을 한국의 국회와 비교한다. 그러나 최고인민회의는 집권 정부에 대한 견제와 균형은 전혀 존재하지 않고, 김정은 위원장 또는 조선노동당이 결정한 의제에 대해 찬성하고 찬양하는 역할을 한다. 최고인민회의가 주목을 끄는 중요한 이유는 국무위원회 위원과 내각 각료의 인사, 국가 예산 결산에 관한 숫자, 그리고 때로는 주요 법령이 이 회의를 통해 알려지기 때문이었다. 최고인민회의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토론과 의결 권한을 법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실제상으로 전혀 의미가 없고, 사실상 김정은 위원장과 당 중앙위의 사전 결정을 발표하는 기구로 활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제14기 1차 최고인민회의가 열리기 전 9일에는 조선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가, 10일에는 당 중앙위 7기 4차 전원회의가 열렸고, 여기서 주요 의제가 사전 결정되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연설
이러한 점에서 금년 최고인민회의도 다른 해와 다름이 없었지만, 차이도 있었다.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면, 새로 국무위원장으로 추대된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했다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생존 시에 해마다 최고인민회의 개최 시에 시정연설을 했지만, 김정일 위원장은 전혀 하지 않았고,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8년차 최고인민회의인 올해에 처음으로 시정연설을 했다. 아래에서 살펴 볼 것이지만, 이 시정연설에는 여러 중요한 내용이 담겨져 있었고, 따라서 한국 내의 북한 전문가의 주요 분석 대상으로 등장했다. 사실 과거 최고인민회의와 관련해서는 정부 주요 직책의 변경 이외에는 달리 분석할 것이 없었고, 따라서 국가예산의 지난해 결산과 올해 예산이 가장 중요한 분석 대상으로 등장했었다. 그러나 올해에는 최고인민회의에서 발표된 지난해 결산과 올해 예산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금년도 최고인민회의와 관련해서 또 다른 차이를 두 가지 지적할 수 있다. 우선 과거와 같으면 최고지도자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입후보하여 당선되어, 대의원의 자격을 가졌다. 그러나 금년도 김정은은 대의원 선거에 입후보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에 대해 북한 분석가들 사이에서 억측이 분분했다. 또 다른 차이는 과거에는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에서 형식적으로라도 선출되었지만, 금년에는 김정은이 아예 추대를 통해 국무위원장이 되었다.
01 우리국가제일주의
이번 시정연설의 제목은 《현 단계에서의 사회주의건설과 공화국정부의 대내외정책에 대하여》였다. 그 내용은 3부분으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는 ‘김일성-김정일국가건설사상을 구현하여 사회주의강국건설위업을 완수’하는 것과 관련되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최근 북한 공식 담론에 ‘국가’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조선민족제일주의’ 대신에 대략 2018년부터 ‘우리국가제일주의’가 핵심 슬로건으로 제시되고 있다.
02 북한의 경제정책
둘째는 ‘자력갱생의 기치아래 모든 힘을 경제건설에 집중’할 것에 관한 것이다. 이를 ‘자력갱생’의 문제와 ‘모든 힘을 경제에 집중한다’로 나누어서 분석해 보자. 우선 ‘자력갱생’ 노선은 2016년 7차 당 대회에서 내걸렸고, 이번 시정연설에서 내용상으로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고 하면, 이번 최고인민회의를 계기로 ‘자력갱생’ 노선이 훨씬 강조되고 있고 또한 강력하게 이행하기 위한 기관 및 인물 체계가 정비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핵심 이유는 지난 2월 말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의 결렬 때문이다. 북한은 아마도 이 회담의 성공을 확신했었고 또한 대북 제재의 상당 부분이 해소될 것으로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북한의 기대와는 달리 회담이 결렬됐고 대북제재가 앞으로도 상당히 오랜 기간 고착될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더구나 제재 여파로 북한의 내부 경제 사정이 악화되고 있는 여러 징후가 2019년부터 보다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앞으로 장기간 동안 ‘자력갱생’해야만 할 것이 분명해진 것이다.
03 금년도 대미‧대남 관계
시정연설의 셋째 주제는 남북관계와 대미관계와 관련한다. 북한은 2019년 신년사에서 미북회담이 실패하는 경우 ‘새로운 노선’을 채택할 것이라 공언했다. 그런데 실제로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회담이 결렬되자, 북한이 과연 ‘새로운 노선’을 어떻게 정했는가에 관해서 외부 관찰자의 궁금증이 매우 높아져 있었다. 이번 시정연설은 그와 관련한 내용을 밝히고 있다. 요약한다면, 북한과 ‘미국과의 대결은 어차피 장기성을 띠고 있으며, 적대세력들의 제재 또한 계속된다’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에 기초하여 또한 ‘올바른 자세’에 기초하여 협상을 제기할 것을 요구하면서, 금년 연말까지를 시한으로 설정했다. 그렇지 않으면 ‘조선반도 정세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또한 김정은은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거칠게 비판하면서, 한국이 북한의 주장대로 대북정책을 바꿀 것을 요구하였다. 즉 “남조선당국은 추세를 보아가며 좌고우면하고 분주다사한 행각을 재촉하며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리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결산과 금년도 예산
최고인민회의에서 북한은 지난해 결산과 올해 예산을 발표했다. 예년과 다름없이 북한은 구체적 숫자가 아니라 퍼센티지를 통해 증감률만 발표했다. 그 숫자들도 예년과 비교할 때, 큰 차이가 없다. 결론적으로 말해 최고인민회의가 발표한 지난해 예‧결산과 올해 예산 예고에는 쓸모 있는 정보는 거의 들어있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북한 국가의 예산체계는 다른 국가들의 예산 체계와는 현격한 차이를 함축한 복잡성과 불투명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식 발표 숫자가 과연 얼마나 현실을 반영하는지는 아마 북한 내 당국자도 알지 못할 것이다.
최고인민회의에서 나온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연설, 그리고 주변 정세를 종합할 때 금년도의 남북관계와 남북교류는 낙관적으로 전개될 것 같지 않다.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한국과 미국에 대해 매우 비판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또한 미국과 북한의 의견 차이를 중재하기 위해 미국을 설득하고자 했던 한국의 시도는 아직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는 가운데 북한은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저강도 도발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앞으로 긴장을 고조할 개연성이 있고 미국과 북한 간에 의견 격차가 크기 때문에 그것이 북한이 시한으로 설정한 올해 연말까지 성공적으로 봉합될 개연성도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특집칼럼 02
대북제재하 남북교류협력
재개 가능성 모색
-부분적 해제와 스냅백 조항 중심으로-
김광길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대북제재 때문에 모든 남북교류가 막혀있다. 금강산 관광 재개도 관광 자체는 유엔안보리 결의나 미국의 독자제재에서 금지되지 않지만, 소위 벌크 캐시(Bulk cash) 조항 때문에 지금 당장 재개하기 힘들다는 주장이 그동안 제기돼 왔다. 과연 그러한가? 벌크 개시 조항, 즉 대량현금 이전을 금지하는 조항은 유엔안보리 결의 제2087호(’13.1월) 제12조, 제2094호(’13.3월) 제11조, 제2371호(’17.8월) 제13조에 규정되어 있다.
벌크 캐시(Bulk cash)
금지 조항과
관련한 해석에 대해
대량살상무기 등에 대해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고 벌크캐시(대량의 현금) 이전을 금지하는 북한 경제적 제재 조항
유엔안보리 제2087호 제12조는 북한과의 수출입에 부과한 유엔안보리 제재를 회피하고자 하는 벌크 캐시의 사용에 대해 규정했다. 즉 2087호 이전의 유엔안보리 제재로 북한과의 무역이 금지된 대량살상무기 등에 대해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고 현금으로 지급하는 우회적 거래를 금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결의된 제2094호 제11조는 핵미사일 프로그램 등 유엔안보리 결의에 의해 금지된 행위 또는 결의에 의해 부과된 조치를 회피하는 데 기여하는 벌크 캐시 이전을 금지하고 있다. 제2094호 결의 이후 4년 동안 북한의 4, 5차 핵실험으로 인해 유엔안보리 결의 제2270호, 제2356호에 의해 대북제재가 대폭 강화되었다. 2017년에 결의된 제2371호 제13조는 제2094호 제11조를 재확인한 것이었다. 이 제2094호 제11조를 근거로 북한과의 모든 거래에 수반되는 벌크 캐시는 금지되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는 해석상 비합리적인 면이 있어 보인다.
만약 제2094호 제11조가 모든 거래에 수반되는 벌크 캐시를 금지하는 것이라면 이 조항 하나로 북한의 대외수출은 더 이상 불가능해 진 것이므로, 제2094호 이후에는 새로운 안보리 결의가 있더라도 북한의 대외 수출금지품목을 확대할 필요가 없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제2094호 이후에도 민생목적 외 석탄수출금지(제2270호), 수산물수출금지(제2371호), 섬유제품수출금지(제2375호), 농산품수출금지 등(제2397호)으로 북한의 대외 수출금지품목은 확대되어 왔다.
이러한 벌크 캐시 조항의 확대해석은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낳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유엔안보리 결의로 북한은 HS코드 7류와 8류인 농‧수산물을 외국에 수출할 수 없다(제2397호 제6조). HS코드 6류인 꽃은 수출금지품목이 아니므로 북한이 백두산 야생화를 말려서 외국으로 수출하더라도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이 아니다. 그런데 이 해석에 따르면 이 백두산 야생화 수출대금을 현금으로 받으면 벌크 캐시 금지 조항을 위반한 것이 된다. 유엔안보리 결의가 대외수출금지 품목을 확대하면서도 제한적으로 열거하고 있는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조항과 상관없이 북한의 모든 대외수출이 금지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모순을 합리화하기 위해 유엔안보리 결의의 취지는 북한에 현금제공을 막는 것에 있으므로 논리적인 해석을 떠나 그 취지를 존중하여 제2094호 제11조는 모든 거래에 수반되는 벌크 캐시를 금지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는 법률의 개별조항에 규정되어 있지 않더라도 법률의 취지에 따라 금지할 수 있다는 주장과 같은 말로, 법률적‧논리적 주장이 될 수 없다. 물론 대북제재가 법적 이슈라기보다는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의 영향력을 고려하여 유엔안보리 결의 해석 범위를 초과하면서까지 ‘모든 것이 금지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 아닌가 한다.
벌크 캐시(Bulk cash)에 대한
해석의 배경과 한계
제2094호 제11조를 무리하게 확대 해석하려는 견해는 비핵화 협상에서 대북제재가 북한의 양보를 끌어낼 것이라고 확신하는 주장이 배경일 것이다. 대북제재로 북한의 경제가 어려워졌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서 물러날 것이므로 북한의 비핵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대북제재가 절대 완화돼선 안 된다는 소위 ‘제재만능론’이다.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핵시설 폐기의 대가로 북한이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을 보면서 이 같은 주장은 더 힘을 받고 있다. 대북제재가 북한경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대북제재로 북한의 외환보유고가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으므로 적어도 내년쯤이면 북한 경제가 파탄날 것이라는 견해에서부터 접경지역의 밀무역 확대와 북한 내부의 시장경제적 개혁조치로 대북제재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견해까지 다양하다.
사실 대북제재가 북한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는 누구도 증거를 가지고 정확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일각의 주장대로 대북제재가 북한 경제에 심대한 손상을 초래한다 하더라도, 북한이 핵 협상에서 일방적으로 양보할 것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대북제재로 경제가 어려워지면 그로 인한 북한 주민들의 불만은 핵무기를 개발한 당국보다는 ‘국가의 자주권을 누르는 미국’에 돌려질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북한은 분단 이후 수십 년 동안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된 채 ‘미국과의 군사적 대결’에 대해 반복적으로 교육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제재로 북한 경제가 파탄난다면 북한이 핵 협상에서 일방적으로 양보할 것이라는 가능성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개성공단의 모습
한반도 비핵화의 통로,
남북경협
핵 협상은 기본적으로 평화체제 및 관계 정상화와 함께 모색되어야 할 과제이다. 그러므로 북한에 대한 안보를 보장함과 동시에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그런데 서로 간의 신뢰가 부족한 상태에서 안보 대 안보 협상이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상태에서는 북한의 안보에 대한 요구는 우리에게 전혀 생뚱맞은 소리로 들릴 수 있는 요구가 포함될 수도 있다. 서로 간의 신뢰회복을 위한 교류와 협력 그리고 신뢰 구축을 통한 생각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성공하기 쉽지 않다. 비핵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시켜 주면서도 과도한 군사력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남북경협은 북한을 군사력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에서 벗어나 경제중시와 인권중심의 국가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과거의 경험을 보면 개성공단은 분단의 현실 속에서 남북의 평화와 공동번영의 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시장경제의 실험장 역할을 수행했다. 개성공단의 세금·회계 제도는 북한 기업소법 등의 국가납부수입금·회계검증으로 이어졌다. 개성공단의 지적·등기부·저당권제도는 북한의 부동산관리법 등의 부동산등록·가계유휴자금 활용으로 이어졌고, 북한의 손해배상제도와 농장법 등의 채무불이행에 따른 보상제도도 발전하고 있다. 북한의 시장경제로의 개혁은 북한의 핵에 대한 집착을 누그러뜨려 비핵화 협상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중국에 대한 개입정책이 중국의 민주화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주장도 틀린 것은 아니나, 중국과의 무역 확대를 통한 중국의 개혁개방조치가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도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
대북제재는 대화나 교류 등과 함께 탄력적으로 사용될 때에 핵 협상을 성공시킬 수 있다. 북한을 외부로부터 고립시키는 대북제재만으로는 핵 협상의 성공을 거둘 수 없다. 핵문제 협상과 대북경협을 포함한 남북관계는 선순환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남북경협은 핵협상의 카드(Bargaining chip)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북한의 변화를 촉진시켜 핵문제 해결을 도울 수 있는 수레의 한 바퀴이다.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경협은 핵문제 해결의 걸림돌이 아니라 촉진제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남북경협 사업에 대한
제재 면제 가능성은?
이와 같은 의의를 가진 남북경협 사업이더라도 대북제재가 강화된 현재 쉽게 개시할 수 없다. 대북제재를 규정한 유엔안보리 결의는 2016년 이전에 대량살상무기 차단에 중점이 있었다면 그 이후에는 북한경제 자체에 타격을 가해 핵개발을 저지하는 것에 목적이 맞춰져 있다. 미국의 단독제재는 더 강화되었다. 현재 북한과의 모든 무역과 투자가 금지되어 있다. 미국의 단독제재는 미국 국내법에 따른 것으로 원칙적으로는 미국 지역과 미국인을 대상으로 해야 하나 미국법을 따르지 않는 외국 금융기관은 미국 금융기관과의 거래 제한 등 소위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이 될 수 있어 외국인도 미국 단독제재에 따를 수밖에 없다.
이처럼 강력한 대북제재도 규정상으로 일정한 변화를 예정하고 있다. 유엔안보리 결의 제2397호 제25조 등은 제재위원회가 인도주의 목적이나 결의안 목적―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핵문제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은 유엔안보리 결의가 규정한 중요한 목적이다―에 부합하는 경우 제재 예외를 인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유엔 안보리 결의는 준수 여부에 따라 결의를 강화, 수정, 중단, 폐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397호 제28조 등) 결국 유엔안보리 결의는 제재의 예외-완화-해제라는 3단계로 변화를 예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핵문제에 대한 일정한 진전이 있다면 제재의 수정 또는 중단사유가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남북경협이 개시될 수 있음 물론이고, 유엔안보리 결의 자체의 수정이 없더라도 제재의 예외 인정을 통해 남북경협이 개시될 여지가 있다. 남북교류협력은 핵문제 해결의 걸림돌이 아니라 북한을 군사중심 국가에서 경제중시와 인권존중 국가로 변모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고 북한의 이러한 변화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 대화를 통한 핵문제 해결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남북교류협력은 유엔안보리 결의의 목적에 부합하는 경우이므로 제재예외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미국의 대북제재강화법도 제재의 예외와 면제, 중단, 종료로 나누어 대북제재 변화를 규정하고 있다. 대북제재강화법 22 U.S. Code §9228 (b)는 북한으로부터 또는 북한으로의 정보 유통증진, 민주주의적 한반도 평화통일 기여 증진 등에 필요한 경우에는 대통령이 의회에 필요한 서면을 제출하고 30일부터 1년까지 제재를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동법 U.S. Code §9251에서는 유엔안보리 결의 준수의 증명으로 가는 길에 진전이 있을 때 등을 조건으로 대통령은 의회에 이러한 사실을 입증한 후 6개월 단위로 제재를 중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남북경협 사업은 민주주의적 한반도 평화적 통일에 기여하는 사업으로 미국 대북제재강화법의 제재면제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비핵화의 진전에 따라 제재중단 대상도 될 수 있다.
스냅백(Snap back) 조항의
의미와 사례
비핵화의 단계적 진전에 따른 대북제재의 완화에 대해 걱정하는 견해도 있다. 그런 경우 소위 ‘스냅백(Snap back) 조항’을 고려할 수 있다. 지난 하노이 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른바 스냅백 조항을 넣으면 합의가 가능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계약법에서 합의이행을 강제하기 위해서 통상 보증, 담보, 위약벌 약정, 계약해제 등의 여러 방안을 고려한다. 이를 국제법적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수정‧반영 가능한데, 스냅백 조항은 일종의 조건부 계약효력 상실 조항으로 여러 형태가 가능할 것이다. 한미FTA에도 스냅백 조항이 있으며 자동차와 관련된 사안의 분쟁해결관련 조항에 규정되어 있다. 한미FTA는 한‧미 양국의 관세를 인하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런데 한미FTA를 체결, 이행했지만 별 다른 혜택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에는 관세혜택을 없애고 제자리로 돌릴 수 있다. 이 조항이 스냅백 조항이다. 혜택이 있었는지 여부는 양국이 각각 추천한 1인과 제3국인 1인으로 구성된 분쟁해결 패널이 판정한다(「한미FTA 부속서」 나 제5조).
이란 핵협상 결과로 제재를 해제하는 유엔안보리 결의 제2321호 제11조에도 스냅백조항이 있다. 제재를 해제한 후에 다시 제재를 부과하려면 유엔안보리 결의에 의해야 하고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하나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제재가 다시 부과될 수 없을 위험이 있으므로, 유엔안보리 결의 제2321호 제11조는 유엔안보리가 제재해제를 연장하는 결의를 하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하나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유엔안보리가 제재해제를 연장하는 결의를 채택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즉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하나라도 재(再)제재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제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남북경협의 재개를 위해
필요한 것들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협상의 향방이 어지럽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2월 28일 하노이 회담에서는 비핵화 범위와 대북제재 완화 범위를 둘러싼 협상에서 합의를 만들지 못하였다. 지금은 하노이 회담 이후 서로 간에 공방이 오간 뒤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향후 전망은 온통 안개에 쌓여있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복잡한 대북제재를 완전히 이해하고 풀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북제재로 인한 남북경협 사업의 장애를 말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가 먼저 남북경협 사업이 필요한지에 대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먼저 협의하여 결정할 수 있어야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 예외나 완화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