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호 인턴은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한반도 문제에 대한 공론의 장을 만들어가는 비영리단체 ‘한반도정책컨센서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협회는 12살!
- 12년차 선배직원과 1년차 후배직원의 수다 -
2007년 5월 18일, 「남북 경공업 및 지하자원개발 협력사업」의 남측 이행기구로 설립·출범한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어느덧 설립 12주년을 맞게 됐다. 협회의 12살 생일을 즈음해 그 시작부터 현재까지 협회 역사의 산 증인(!)이 된 12년차 선배 직원 4인과, 올해 막 입사한 1년차(라고 쓰고 사실은 0년차라고 읽는다) 후배 신입 직원 4인 간 막간 수다 시간을 가졌다.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우는 이들의 웃음 속에서 협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보게 된다.
2006년 남북 간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새롭게 출범한 남북협회의 창립을 도맡은 OB 중의 OB. 정치학을 공부했다는 그는, 어릴 적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아 국회, 청와대, 통일부 등 주요 정책 결정의 장에서 일하며 큰 틀에서 대북·통일 정책을 볼 수 있었단다. 이후에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고 싶었던 마음이 들던 차에 협회의 출범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으로 합류했다고. 협회 설립의 근간인 ‘남북 경공업 및 지하자원개발 협력사업’에 대한 애정과 경험치가 남다른 그는 창립총회를 준비하는 것부터 협회와 연을 맺었다며 회상에 잠긴다.
입사계기를 물었더니 “일단 저는 속았습니다!”라는 파격적 고백(?)부터 한 양재석 팀장. 그러나 섬유 전문가로 특별히 스카우트된 화려한 이력의 그는, 이전 직장에서 대미(對美) 섬유쿼터 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고. 2007년 입사직전 당시의 남북 간 활발한 교류 사업들을 보며, 본인 커리어의 마지막 갈 길은 남북 교류협력이라는 생각을 가져 스카우트에 응했단다. 입사 초창기에는 그의 표현대로 ‘화끈’하게 일했는데, 이후 환경 변화로 달리고 싶어도 달리지 못하는 처지가 때로는 서글펐다는 양재석 팀장. 바람이 있다면 정년이 오기 전 남북관계가 잘 풀려 제대로 역할 한번 해보고 퇴직하고 싶다는 그의 웃음은 여전히 12년 전 열정 가득한 모습 그대로인 것 같다.
양재석 팀장의 입사계기를 들었기 때문일까. 고재길 팀장 또한 “아, 판단착오였습니다.” 하며 멋쩍게 웃어 보인다. 그 또한 섬유 관련 수출기관에서 9년여 간 근무한 섬유 분야 전문가라고. 본래 전공은 무역·국제경제 쪽이었는데, ‘07년 당시 남북관계가 본격 궤도에 오르며 새로운 경제성장의 블루오션이 바로 북한이라고 판단했던 그는 쟁쟁한 경쟁률을 뚫고 무려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공채 1기‘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고 한다. 협회의 잠재력과 비전에 대해 누구보다 확신에 찬 고재길 팀장을 보면 그의 판단은 착오라기 보단 선견지명이었던 것 같다.
20대로 입사해 어느덧 40대에 접어든 박지호 차장. 예전 사진 속 은갈치 양복을 입고 있는 그의 얼굴이 참 앳돼 보인다. 협회 입사 전 대학에서 행정업무로 다져진 그는 협회의 손과 발이 되어 정신없이 12년 간 달려왔다. 그때는 그저 당면한 일들을 해치운다는 심정이었다며,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이 기회에 지난 12년을 돌이켜봤다는 그. 표정이 복잡 미묘하다.
남들과는 달리 통일이 굉장히 가깝게 느껴진다는 이상민 사원. 그래서인지 이상하리만치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 준비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답답해서 자신도 모르게 통일 전도사가 되고 말았단다. 남북관계를 더 알아가고 통일에 대한 관심을 주변인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통해 행복을 느꼈다는 그는, 더 잘 알고 경험해서 업그레이드된 통일 전도사가 되고자 적합한 곳을 찾다가 남북협회를 알게 되었다고. 처음부터 남북협회 하나만 팠다(!)는 이상민 사원은 협회의 교육프로그램(북한개발협력아카데미, 남북경협실무아카데미 등)부터 단기 아르바이트까지 두루 섭렵하며, 당당히 작년 11월 공개채용을 통해 입사에 성공했다.
대학교 재학 때부터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는 김성준 인턴. 남북관계에 대한 강의도 찾아 듣고 자료도 찾아보는 등 또래보다 좀 더 북한 이슈에 흥미가 가더란다.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던 그는 냉혹한 취업 전선에서 몇 번의 고배를 마셨는데, 번뜩 스치는 생각 하나. ‘기왕의 광탈이라면 맞지도 않는 곳을 억지로 지원하기 보단, 평소 좋아하는 분야에서 승부를 보자!’ 김성준 인턴의 비장한 각오가 통했을까. 올해 3월 인턴으로 뽑혀 그의 말대로 ‘보람찬’ 매일을 보내며 경험치를 쌓고 있다며 웃어 보인다.
만일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 대북정책의 순위를 결정한다면 1순위로 남북교류를 꼽겠다며 원대한 포부부터 밝히는 이은호 인턴. 그만큼 남북교류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정작 남북교류협력 사업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부족해 더 많이 알고 싶어 남북협회에 지원하게 됐다고. 자신이 성장하는 만큼 협회에도 도움이 되겠다고 당차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자신감이 빛난다.
남북협회는 채용공고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는 솔직한 고해성사를 하는 박신재 사원. 그렇지만 채용공고상 직무기술서를 찬찬히 읽어가다 보니 ‘이건 내가 잘 할 수 있다. 거기다가 계속 해보고 싶은 일이다.’ 하는 확신을 얻었다고. 국제정치로 중국에서 석사를 받은 박신재 사원은 주로 한·중 간 무역·통상 분야 업무를 지원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단다. 실향민인 할아버지를 통해 이북에 대해 어릴 적부터 많이 들어왔었다는 그는 특히 중국 유학 당시 함께 수업을 듣던 북측 유학생들을 떠올리며, 합격하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세웠고 마침내 이뤄냈다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담당했던, 그리고 담당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려요.
박지호 교류총괄지원팀 차장
전 자원협력팀만 빼고 다 일해본거 같네요. 여기 계신 세 분 팀장님과 다 같은 팀에서, 경공업 원자재 제공사업을 시작으로 기획, 총무, 국회, 대북지원 사업 등 협회의 거의 대부분 업무를 겪었습니다.
고재길 인도개발협력팀장
저 또한 운영지원팀만 빼고 다 경험했습니다. 경공업 원자재 제공사업, 에너지 설비자재 제공사업, 기획 업무도 했었고, 심지어 자원협력팀에도 6개월 정도 근무했네요! (하하) 교역 관리업무, 또 현재 팀장으로 맡고 있는 대북지원 업무, 산림협력 사업 등등 다양하게는 업무 경험을 쌓았지만 제대로 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웃음)
양재석 경협정책지원팀장
저는 사업부서에서만 일해 왔고 그런 면에서 제일 오래 같은 일을 해왔네요. 2009년부터 교역경협관리 업무만 쭉 해왔습니다. 아마 정년 때까지 지금처럼 같은 업무를 하지 않을까요?
이병도 교류총괄지원팀장
12년 협회 생활 동안 9년은 기획팀에서 일했습니다. 물론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라 협회가 여러 곡절을 겪을 때 일손이 모자라보니 기획팀이지만 사업부서 일도 했었죠. 올해부터 사업부서로 와서 사업 기획과 교역 관리업무 등을 맡게 됐는데, 사업부서의 생동감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사실 기획 일이라는 것이 특성상 열심히 해도 성과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힘이 빠질 때도 있었거든요. 지금은 교역관리 업무 중 네트워크 강화·유지, 홍보 및 남북공동유해발굴 사업 등을 맡고 있습니다.
김성준 운영지원팀 인턴
현재 운영지원팀에서 업무보조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주로 공문 수발신, 공시 관련 업무 지원 등을 하는데, 큰일들을 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이상민 운영지원팀 사원
아니에요! 김성준 인턴은 운영지원팀의 만능키 역할을 하고 있어서 없어선 절대 안됩니다! (하하) 저는 현재 지출결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선배직원 분들 대부분이 결재권자이신데, 어쨌든 지출을 위해서는 저를 거치셔야만 하죠. (일동 웃음) 사실 신입직원으로서 결의를 반려시키는 경우 등 결코 마음은 편한 일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또 돈을 다루는 일이다 보니 정신적 스트레스도 있습니다. 하지만 협회의 살림살이를 하다 보니 사업 보고서부터 여러 증빙 서류까지 사업이 실제로 운영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협회 전반을 빠르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건 확실합니다!
양재석 경협정책지원팀장
오, 맞아요. 이상민 사원이 오고 나서 왠지 정산이 빨라진 것 같은데. (웃음)
박신재 교류총괄지원팀 사원
저는 현재 교류총괄지원팀에서 교역경협 관리 네트워크 활성화 업무 중, 남북협회포럼 및 세미나 개최, 남북경협 유관기관 월례회 개최를 맡았습니다. 또 팀의 막내로서 서무 업무를 착실히 수행하며 업무를 배워가는 중입니다.
이은호 경협사업팀 인턴
시키면 다하는 돌쇠 인턴입니다! (웃음) 주된 업무는 대북제재 동향모니터링, 북한 경제 및 남북경협 언론 동향 모니터링 및 보고서 작성입니다. 현재는 남북경협 실무아카데미가 개강했기 때문에 목요일마다 아카데미 보조 업무도 함께 진행하고 있고요. 무엇이든 시키시면 달려갑니다!
어느덧 협회가 12살입니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여러 일들이 많았을 텐데,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을까요?
양재석 경협정책지원팀장
2008년 1월쯤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우리 측과 북측 경공업 관계자들이 함께 베트남과 중국 지역에 우리 기업이 투자하여 설립한 현지 공장들을 방문했었어요. 꽤 긴 시간 일정을 같이하며 함께 숙소도 쓰고 일과가 끝나면 식사도 하고 주변 구경도 다녔죠. 어느 날 저녁 주변을 함께 걷고 있는데 북측 관계자 한 분이 팝콘 가판대에 멈춰서더니 팝콘을 한 봉지 사서 불쑥 내밀더군요. 갑작스럽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 팝콘을 보고 있자니 ‘아, 사람 마음이란 것이 이렇구나.’ 싶더군요. 함께 있다 보면 정도 들고, 서로 또 주고 싶기도 한 것이 인지상정 아닐까요? 순박하게 웃던 그 분이 눈에 아직도 선하네요. 조만간 사업이 재개돼 얼굴이나 다시 봤으면 좋겠습니다.
고재길 인도개발협력팀장
입사 초창기에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하도 바쁘니까 삼시 세끼 중 세끼를 직장 동료들과 먹었죠. 그땐 가족이 바뀐 기분이었어요. (웃음)
양재석 경협정책지원팀장
맞아요. 설립 초기에 진짜 바빴습니다. 매일 야근하고 머리 맞대서 대책 세우고. 밤을 낮처럼 살았죠. 가끔은 그때 열정과 활발함이 그립기도 하네요.
박지호 교류총괄지원팀 차장
경공업 원자재 제공 사업 할 때가 생각나요. 개성에서 북측과 업무 협의를 하고 시간이 늦어 군사분계선을 넘어 서울로 다시 내려올 때면 조명도 없는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달빛과 별빛을 길잡이 삼아 지나오곤 했죠. 그땐 북측에 매주 경공업 원자재를 인도하는 스케줄이었는데, 한번 다녀오면 선박으로 1주일 가량 소요됐어요.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올 때 다음 항차 인도요원으로 온 협회 동료를 남포항에서 만나기도 했는데, 그땐 그렇게 매일 보던 얼굴도 반가워서 크게 손을 흔들기도 했습니다. 26항차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26주를 바쁘게 보냈었어요. 어쩌면 그때 기억으로 남북관계가 좋지 않은 시절도 버텼던 것 같아요. 여기 계신 선배 직원들은 다 방북 경험이 있지만, 협회 직원 대다수가 방북 경험이 없습니다. 직접 북에 가서 남북교류협력의 현장을 경험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이병도 교류총괄지원팀장
2007년 우리측이 북측에 제공한 8,000만 달러 상당 경공업 원자재 차관에 대해 북측이 남북 간 합의에 따라 차관의 3%분을 아연괴 현물로 보내왔을 때가 생각나네요. 그때 물품 가격을 둘러싼 남북 이행기구, 그러니까 우리 협회와 북측 명지총회사의 협상이 참 치열했거든요. 원자재나 광산물 시세에 변동이 있기 마련이고, 품질 수준에 따라 남북 가격이 달라질 수 있어 가격 협상에 적잖은 난항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북측에 조달(청)에 대해 소개하고 공개경쟁을 통한 물품 조달의 원리와 이점 등에 대해 수차례 설명을 했고, 북측은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수용했었어요. 그 결과, 북측이 예상했던 것보다 고품질의 원자재가 더 많이 제공됐고, 북측이 보내온 아연괴도 공개매각 결과 상환금액보다 더 큰 금액으로 낙찰이 되었습니다. 북측에서도 무척 만족해했죠. 북측이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엔 YB 직원께 여쭤볼게요.
남북교류협력 분야에서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어디인가요?
이은호 경협사업팀 인턴
교역·경협 분야에 제일 관심이 많습니다. 통일하면 100조의 기대효과가 있다고 흔히들 말하는데, 사실 100조가 대단한 금액이지만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체감하기 어려운 것 같거든요. 그렇다 하더라도 민간이 중심이 되는 교역·경협은 남북 주민들이 오고 가며 대화하고, 함께 일하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여 새로운 생태계 속의 민족공동체를 만들어 낼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성준 운영지원팀 인턴
사회문화교류에 기대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교류는 위로부터와 아래로부터 두 종류가 있다고 알고 있는데, 사회문화교류는 대표적인 ‘아래로부터의’ 교류·협력 사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랜 시간 남북은 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어쩌면 남보다도 못한 사이일 수 있겠죠. 그렇기 때문에 남북 주민이 사회문화 분야의 다양한 교류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신재 교류총괄지원팀 사원
교역‧경협 분야에 기대가 큽니다. 지금까지 남북교역·경협은 남북 당사자 간 양자적 성격이 강했지만, 앞으로는 새로운 모습으로 펼쳐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재 대북 교역‧경협이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해 막혀있음을 감안할 때, 국제적 차원에서 비핵화 및 제재 해제 논의가 진행될 거고, 또 그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북교역‧경협이 다자적인 방향성을 갖추게 될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우리만의 배타적 권리를 향유하기는 어려울 수 있겠지만, 북한이 국제사회에서의 시장경제 원리를 학습하고 스스로의 경쟁력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새로운 시대의 교역‧경협을 기대 중입니다.
이상민 운영지원팀 사원
전 대북인도지원 분야를 꼽고 싶어요. 사실 그동안 잘 몰랐던 부분인데, 입사한 뒤에 많이 알게 됐습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진행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인도지원사업이 추진되는 것을 보며,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 가진 가능성과 힘에 매력을 느꼈어요. 지금과 같은 제재 상황에서 가장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협회의 미래를 그려본다면 어떨까요?
미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각오가 있을까요?
고재길 인도개발협력팀장
12년 간 협회가 나름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그만큼 많은 잠재력이 쌓이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산을 갖고 협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조금 더 확장시키는 시도들이 필요하겠죠.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라는 이름에 맞게 북측과 직접 마주하는 사업은 물론이거니와, 남북문제와 관련 국내 여러 유관단체들과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또 공공기관으로서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조율하는 등 더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관심을 두고 노력하고자 합니다.
이병도 교류총괄지원팀장
앞으로 꿈꾸는 모습은, 남북교류협력 활성화 전문지원기관이라는 정체성에 걸맞은 위상을 확립하는 일입니다. 이 부분은 환경적 뒷받침이 필요한데요, 남북교류협력 분야에서 선도해갈 수 있는 기관으로서 한층 업그레이드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양재석 경협정책지원팀장
저도 두 분 팀장님 말씀에 완전히 동감해요. 경제협력, 인도, 사회문화 등 남북 간 교류협력의 모든 부분을 다 아우를 수 있는 협회가 됐으면 좋겠고, 또 이를 위해 저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박지호 교류총괄지원팀 차장
팀장님들의 말씀처럼 협회의 외연을 넓히는 일, 그리고 또 안정성을 확보하는 일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최근엔 북측과 직접 만나며 사업하던 과거를 부쩍 생각하게 됐는데, 시간이 참 많이 흘렀죠. 평양도, 여러 도시들도 많이 변화했다는데 궁금하기도 하네요. 또 금강산의 아름다움도 기억나요. 금강산 관광도 얼른 재개돼서 협회 워크숍을 금강산에서 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박신재 교류총괄지원팀 사원
입사 후 메일 계정을 받고 나서 인사 메일을 선배님들께 모두 드렸습니다. 답장 주신 분들도 있었는데요, 공통점은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씀이었어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명감을 원동력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에 덧붙여 즐겁게 일하고자 하면 너무 큰 욕심일까요? (웃음)
이은호 경협사업팀 인턴
인턴으로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길진 않아요. 하지만 마지막 출근하는 날, 남북협회 직원 분들이 많이 아쉬워할 만큼 필요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김성준 운영지원팀 인턴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팀뿐만 아니라 협회의 모든 이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인턴이 되고 싶습니다.
이상민 운영지원팀 사원
남북관계가 더 활발해져서 북한에 직접 가보고 싶어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업무적으로는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잘 적응하겠다는 각오가 1순위고, 그에 이어 협회에 도움이 되고 또 제몫을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