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양안교류의 발전과 
남북협력에 대한 함의

이남주(성공회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양안관계란 무엇인가?

양안관계는 중국 대륙과 타이완 사이의 관계를 지칭한다. 1945년 8월 일본제국주의가 패망한 이후 중국에서는 국민당(당시 중국의 합법정부인 중화민국의 집권당)과 공산당 사이에 내전이 발생했다. 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하고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될 때 국민당의 중화민국은 타이완으로 이전했다. 타이완 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 사이의 관계는 점차 양안관계로 지칭되었다. 냉전 시기에는 양자 모두 자신이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주장하면서 정치적 적대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1971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엔에서 중화민국을 대체해 중국을 대표하게 되면서 정치적 무게중심은 확연히 전자로 쏠리기 시작했다. 특히 1979년 1월 1일자로 미국이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양안 사이의 대표성 경쟁은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하나의 나라 두 개의 체제. 

1980년대 홍콩·마카오·대만에 대한 중국의 통일원칙으로 덩샤오핑이 공표.

중화인민공화국은 자신을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하는 것을 외교관계 수립의 전제조건으로 삼아 왔고 유엔 등 국가에 참가자격을 부여하는 국제조직에 중화민국이 참여하는 것을 막아왔다. 1980년대 들어선 이후에는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양안관계의 평화적 해결방안으로 제시하고 양안교류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 시기 양안관계에 나타난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타이완 내에서 중화민국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독립을 주장하는 정치세력이 등장한 것이다(이하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 또는 대륙으로, 중화민국은 타이완으로 지칭함). 현재 타이완의 집권당인 민진당은 1990년대 들어 “타이완민주공화국 건립”을 강령에 넣기도 했다. 그 이후 민진당은 이러한 강령이 양안 사이의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에 대한 유권자들의 우려를 고려해 독립 주장을 철회했지만, “하나의 중국” 원칙에 거부감을 표명하고 타이완의 독자적 생존공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정책을 계속 추구했다. 이에 대륙은 민진당이 독립을 추구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2000년 5월 타이완에서 오랜 국민당 통치가 종식되고 민진당이 집권한 이후 양안 사이의 정치관계가 크게 악화되었다.

반면 이 시기 국민당은 정치적으로는 현상을 유지하는 가운데 양안의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시키는 정책으로 추구했다. 국민당이 2008년 다시 집권한 이후 양안의 정치관계가 호전되고 2015년 11월에는 시진핑과 마잉지우가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양안 정상회담을 갖기도 했다. 그렇지만 2016년 5월 민진당이 다시 집권한 이후(현재 총통은 차이잉원) 양안 사이의 정치관계는 다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양안교류의 발전:

‘소삼통(小三通)’에서

‘대삼통(大三通)’으로

냉전 시기 오랫동안 양안의 직접교류는 금지되었다. 1980년대 들어 중국 대륙은 개혁개방을 시작하고 타이완에서는 야당 합법화 등의 민주화 조치가 시작되면서 양안관계가 해빙될 수 있는 조건들이 성숙되어갔다. 대륙은 1979년부터 타이완에 직접교류의 실시를 제안했고 1981년 9월 통상(通商, 경제무역교류), 통우(通邮, 통신교류), 통항(通航, 교통교류)의 ‘삼통(三通)’ 방안을 제시했다. 1987년에는 타이완 거주자들의 친지방문 목적의 대륙방문을 허가했고 이로부터 양안 사이의 민간교류가 시작되었다. 1992년에는 타이완 당국도 타이완 기업의 대륙투자를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이 시기 양안교류는 대부분 홍콩 등의 제3지역을 통해 진행되었으나 중국 서남부의 푸젠성 연해지역과 이에 지리적으로 인접한 진먼도 등의 타이완 지역 사이에는 직접왕래가 진행되었다. 타이완 당국도 2000년 초 이러한 직접왕래를 사후적으로 승인하는 정책을 발표했고 이를 ‘소삼통’으로 지칭했다. 중국 대륙은 소삼통보다 더 전면적인 양안 교류를 주장해왔고 이를 ‘대삼통’이라고 지칭했다. 특히 타이완의 경제계가 대륙과의 교류 활성화를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2000년대 초반 민진당 정부는 대륙의 이러한 요구를 거부했으나 국민당이 집권한 이후 2008년 11월 양안 정부는 해운, 항공, 통신 등의 영역에서 직접 교류를 전면화하는 데 합의하고 소위 “대삼통” 시대를 열었다. 가장 눈에 보이는 변화는 양안 주요 도시들 사이에 직접 항로가 개설된 것이다. 그 이전에 홍콩 등을 경유하는 관계로 거의 하루가 소모되었던 양안의 상호방문에 소모되는 시간은 대부분 2~3시간 내에 가능해졌다. 이를 계기로 이후 양안교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인적 왕래를 예로 들면 2009년에는 540만 명, 2010년에는 620만 명, 2011년에는 710만 명을 각각 돌파하고, 2014년에는 941만 명에 달했다. 특히 대륙 거주자들의 타이완 방문이 급증했는데 2014년 타이완 거주자의 대륙 방문은 536만 6천 명, 대륙 거주자의 타이완 방문은 404만 6천 명이었다. 민진당이 다시 집권한 2016년 이후 양안관계가 악화되면서 인적 왕래 규모는 일시적으로 위축되어(주로 대륙 거주자들의 타이완 방문 감소) 2017년 878만 명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2018년에는 905만 명으로 다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양안 사이의 무역액은 2013년 1,920억 달러로 증가했다. 국제경제 상황 등의 영향으로 2016년 1,796억 달러로 줄어들었으나 2017년에는 1,994억 달러를, 2018년에는 2,262억 달러를 각각 기록하며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인적 왕래와는 달리 양안관계의 정치적 악화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그에 따라 타이완의 총수출 중 대륙을 향한 수출이 점유하는 비중은 2015년 25%에서 2018년 29%로 증가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양안 사이의 정치관계는 타이완에서 누가 집권하는가에 따라 변화가 적지 않았으나 양안교류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민진당도 타이완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지지계층을 고려해 정치적으로는 대륙의 ‘하나의 중국’ 주장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왔으나 실질적으로는 현상유지에 가까운 정책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타이완정책의 변화와 같은 외부 변수의 영향이 없으면 양안관계가 궤도에서 이탈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양안교류가 양안관계에 새로운 문제를 낳고 있다. 첫째, 중국과 교류하는 다른 국가들의 경우처럼 경제적으로 타이완의 대륙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높아진 것이다. 양안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타이완 내에서 대륙이 이를 이용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점이 민진당의 양안정책이 상당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원인이기도 하다. 둘째, 대륙이 희망하는 것처럼 경제교류의 증가가 양안 사이의 정치적 균열을 메우지는 못하고 있다. 타이완 국립정치대학 선거연구중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중국인이 아니고 타이완인”이라는 정체성을 선택한 사람의 비중이 20% 미만이었으나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14년에는 60%를 돌파했다. 이 비중은 2015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2018년에는 54.5%를 기록했다. 그렇다고 당장 독립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은 것은 아니고 양안관계에 대해서는 대체로 현상유지를 원하는 응답의 비중이 가장 높다. 어떻든 ‘하나의 중국’을 추구하는 대륙에게는 새로운 도전 요인이 아닐 수 없다.

1949년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진먼도의 통치권을 둘러싸고 발발한 구닝터우 전투의 흔적

진먼도에서 바라본 중국 샤먼시

양안교류의 한반도에 대한 시사점

교류의 증가가 새로운 문제를 초래할 수 있지만 이는 발전 중에 나타난 문제로 이념적 대립과 군사적 대치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상황에 비해서는 큰 진전이다. 타이완 섬에서는 비행기로 1시간 정도 걸리지만 대륙 푸젠성의 시아먼시에는 배로 30분이면 건너는 위치에 있는 진먼도의 변화가 이를 가장 잘 보여준다.

1978년까지 진먼도는 매 홀수 날마다 대륙에서 포탄이 날아들었다. 이 포격은 군사적 의미보다 정치적 의미가 더 컸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진먼도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건강하게 발전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최근 진먼도는 표면적으로는 이러한 과거를 거의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롭고 대륙과의 왕래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교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군사적 대립이 다시 출현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진먼도 거주자는 그런 변화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교류와 평화의 선순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더 주목할 사실은 진먼도와 같이 소위 접경 지역에서 진행된 냉전적, 이념적 경계를 넘는 아래로부터의 교류가 점차 대륙과 타이완 양안교류의 확대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한반도에서도 평화프로세스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남북교류도 여러 영역에서 빠르게 증가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는 남북교류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촉진할 수 있는 방안도 같이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서 우리도 분단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감당하고 있는 접경지역 주민 사이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만하다. 이들 사이의 교류는 분단 극복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남북협력과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아직은 미래의 일처럼 보이지만 남북교류가 남북의 불균형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이를 통한 정치적, 군사적 신뢰 증진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양안관계와 비교할 때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북한의 정상적 발전궤도에 진입할 경우 남북 사이의 불균형도 지금보다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기 때문에 남북의 불균형이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양안관계의 경우보다 더 클 것이다. 여기서 국내적으로 동의를 얻기 어려운 일방적 지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균형을 확대시키기 쉬운 효율 논리만을 앞세우는 것도 아닌 상생의 교류 및 협력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