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걸어본 평화의 길

-고성 「DMZ 평화의길」 답사기

박신재 교류총괄지원팀 사원

내가 소속된 국가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고, 이것은 ‘나’라는 개인의 삶에도 짙은 영향을 드리웠다. 휴전상태인 나라를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보낸 20대 초반의 군 생활이 그러했고, 남북의 교류와 협력을 지원함을 업으로 삼게 된 지금도 그렇다.

파티션 너머 대리님이 신청한 ‘고성 DMZ 평화의길’ 견학. 대리님 말로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것이라는데, 선뜻 내게 함께 가지 않겠냐고 하신다. 먼저 반가운 기분이 들었고, 찬찬히 생각하자 조금은 무거운 감정들이 다가왔다. 남북의 분단과 교류를 동시에 상징하는 현장을 취재한다는 다소 버거운 사명감 위에, 개인적인 경험이 한 층 더 겹쳐졌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찾은 고성은 매우 반가웠다. 고향도 아닌 강원도 어느 지역에 내가 이렇게 많은 지명을 알고 있는 곳이 또 어디 있을까. 고성 지역을 향해서는 소변도 보지 말자던(!) 제대 날 동기들과의 약속은 이미 멀리 잊혀졌다. 한때 생활했던 근무지를 멀찌감치 지나갈 때는 지난 사람들과 그곳에서 보낸 추억들이 먼저 떠오르고 이내 군복을 입은 어린 날의 나와도 마주칠 수 있었다.

지금과는 달리 잘생긴(!) 얼굴의 앳된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고성의 해안GOP 지역에서 경계근무를 수행했다. 국가에서 내게 부여한 임무는 동해 바다를 통해 침투하는 적을 발견하고 초기 조치를 취하는 일이었다. 나는 소총을 들고 철모를 쓰고 나라를 지켜야한다는 책임을 입고 있었다. 사람을 효과적으로 죽이기 위한 총검술을 배울 때는 혼란스럽고 거북스러웠지만,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시끄러운 속을 잠재울 수 있었다.

강산이 한 번 쯤 변하고 난 뒤 찾은 강원도 고성은 좀 달랐다. 전쟁의 상흔과 분단의 상징이었던 DMZ의 평화적 이용을 남북이 합의(9.19 남북군사합의)한 뒤, 그 구체적 실천으로 열린 DMZ 평화의길 취재 목적으로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남북 간 교류협력을 지원하는 기관에 입사하여 남북 화해와 공동 번영의 기초를 닦아가는 일을 수행하게 된 현재의 내 모습이 차창에 비친다. 소총을 들었던 손에는 펜과 노트를 쥐었다. 적이 침투하지 않을까 경계를 위해 바라보던 바다는 그때의 날카로운 눈빛이 무색하게도 평화롭게 위아래로 철썩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지금의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남북관계의 개선, 나아가 한반도 평화 정착에 필요한 과정이자 조건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현재 임무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진 2019년의 ‘나’이다.

고성 평화의길 도보 구간을 걷다 보면, 해안 철책 바로 옆에 남과 북을 잇는 철도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단절을 상징하는 철책과 연결을 의미하는 철도가 같은 곳에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던 그 순간, 그 둘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평행하게 뻗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성을 다시 찾은 나는 그때와는 사뭇 달라진 얼굴이다. 미간에 새겨진 주름이 혹시 더욱 깊어진 다짐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혼자 갸우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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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A코스 집결지인 통일전망대 성모마리아상에 도착하면 노란 조끼를 입으신 해설사님께서 반겨주신다. 이번 신청은 무려 40:1의 경쟁률을 기록하였다고!

집결지의 한쪽 벽 앞에는 ‘바람에게 바람’이라는 제목의 조형물이 세워져있다. 바람에는 국경도 제한도 없다. 평화를 향한 간절한 바람을 자유로운 바람에 실어 보내는 순간. 

DMZ 평화의 길 안보견학 서약서를 작성한다. 안전한 견학을 위한 준수사항과 안전수칙이 적혀있다.

평화의 길의 시작을 알리는 곳. 신원확인 후 이 문을 통과하여 헌병의 통제 하에 안보견학이 이루어진다.

도보구간이 시작되었다. 2~5m 폭의 도보구간은 지뢰매설지역을 내내 옆에 두고 이어진다. 전쟁의 아픔과 평화를 향한 바람이 공존하는 길이다.

비무장지대로 접근하고 있음을 알리는 팻말. DMZ는 DMZ로의 진입을 알리는 팻말이다. DMZ는 Demilitarized Zone의 약자로, 국제조약이나 협정에 의해 무장이 금지되는 군사적 완충지대를 말한다.

전신주 작업 중 지뢰를 밟아 부서진 굴삭기가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아 녹이 슨 채 남아있다. 전쟁은 멈췄지만, 그 피해는 이곳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방문객들의 바람이 한 데 모인 소망트리.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많은 이들의 소망이 바람을 타고 북에 전해지길….

도보구간에서 ‘남쪽으로 내려다 본 통일전망대’의 모습. 알파벳 대문자 ‘D’를 연상시킨다. DMZ를 조망할 수 있는 고성통일전망대의 위치와 의미를 반영하여 앞글자인 ‘D’를 따서 건축됐다고 한다. 담아내기 위핸 다소 화질이 떨어지더라도 줌을 당겨야 한다. 그만큼 꽤 멀리 걸어왔다. 약 1시간이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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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도보코스의 마지막인 금강통문에 도착했다. 금강산 육로관광이 한창일 때는 우리 측에서 북측으로 진입하기 위한 최종 관문이었다고 한다. 이 통문이 다시 활짝 열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날을 그려본다.

금강통문 옆에 위치한 휴전선의 최북단임을 알리는 비석이다. 그 왼쪽의 솟대에는 ‘평화로 가는 길 이제 시작입니다’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희망과 의지가 담긴 필체를 확인할 수 있다.

철책과 나란히 있는 철도이다. 금강산관광 사업이 운영될 때 실제 관광객들을 싣고 운행했다고 한다. 지금은 붉게 녹슨 철도를 보고 있노라니 오래된 표어 ‘철마는 달리고 싶다’가 떠오른다.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간다. 경사가 어찌나 높던지, 기어를 바꿀 때면 버스가 잠시 뒤로 주춤하기도 한다. 버거워보였지만 버스는 끝내 목적지에 닿았다.

금강산전망대에서는 태극기와 유엔기가 나란히 휘날리고 있다. 최북단에 위치한 군 소초의 최고층을 금강산전망대로 사용하고 있어 다시 한 번 군 장병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꺼내어 보게 된다.

금강산 전망대에서 보는 북녘 풍경. 왼쪽에는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인 구선봉과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을 가지고 있는 감호(鑑湖)가 보인다. 거울처럼 주변 풍경을 담아낸다 해서 ‘감호’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멀리서 보아도 감호에 비친 구선봉의 모습이 선명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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