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하면 으레 연상되는 교역, 위탁가공, 투자와 같은 지극히 ‘자본주의스러운’ 요소와는 달리 ‘사회적경제’라는 키워드로 북한경제를 바라보는, 새롭고도 다소 파격적(?)인 시도가 돋보이는 책이다. 저자 이찬우 일본 테이쿄(帝京)대학 교수는 동아시아경제연구소(ERINA)에서 한반도 담당으로 일하게 된 계기로 고향도, 일가친척도 없는 일본에서 남한 사람으로서 북한 경제를 연구하는, 그의 표현대로 “연고가 없는 곳에서 연고가 없는 곳을 쳐다보며” 30여 년간 천착해 온 이다. 어쩌면 그래서 사회적경제라는 틀로 북한경제를 바라보고 또 그러한 시도에서 찾아낸 고찰을 남북경협에 적용하는, 전에 없던 연구를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한반도 번영의 핵심인 남북경제협력은 현재 ‘우리식 경제관리’를 표방하며 사회주의경제이면서도 시장을 합법화한 북한 경제의 독특함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장마당으로 시작해 마침내 공식화된 시장의 존재, 신흥 부유층으로 사금융업자에 해당하는 돈주의 등장, 개인소유의 상업·제조업·무역업의 성행 등이 시장화의 증거로서 북한 체제전환의 전조라는 일부 주장에 대해 이찬우 교수는 조심스럽게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계획과 시장이 대립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상호 협력과 공존을 추구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는 체제전환으로 이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에선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남북경협의 사례들과 분야별 북한 경제의 현황, 북한의 대외경제(일본, 중국)를 여러 국가에서 발행된 통계, 사진, 도식 등과 같은 객관적 자료와 실제 방문한 저자의 경험 등을 토대로 면밀히 분석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향후 북한의 사회적경제 요소(협동경리, 협동적 소유 등)를 적극 살려 구성원의 삶의 질을 높이고, 각 산업 분야가 국제적 표준과 상통할 수 있도록 진행해가자는 남북경협의 추진 전략이 제시된다. 이 전략은 단지 관념적인 수준이 아닌 농업, 광업, 경공업, 중화학공업과 같은 전통적 산업분야에서 금융이나 ICT와 같은 4차산업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협력방안이 첨부되어 있어 사뭇 아주 멋진 집의 설계도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남북경협의 담론이 경제적 이익 창출에 주로 집중되어 있었던 기존의 시각에,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남북경협의 색다른 활용법이 더해진다. 남북 상호 경제발전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회와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위한 기회로서 남북경협이 새삼 소중하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