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대 강영식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장에게 묻다

9월 24일(화),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제7대 강영식 신임 회장의 취임식이 진행됐다. 아직은 새로운 호칭이 어색한 듯 멋쩍게 웃어 보이는 강영식 회장. 회장 사무실 책상에 가지런히 놓인 액자 속에는 20년 넘게 우직하게 대북협력 한 분야를 걸어온 전문가 강영식의 모습이 담겨있다. 새롭게 남북협회의 수장이 된 그가 생각하는 남북교류협력과 남북협회를 이끌어갈 가치는 무엇인지 묻자, 강 회장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진다. 그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강영식 회장(이하 생략) 

이제는 남북교류협력을 다른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남북교류협력의 중요성은 남북 간 적대관계 속에서 이해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서로 반목하는 상황에서 상호 이해를 높이고 긴장을 완화시켜 비(非)적대화를 향해 가는 수단으로 교류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남북관계는 평화공존 시대로 상당 부분 이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해 9월 19일에 있었던 「9월 평양공동선언」과 이를 담보하는 ‘9.19 남북군사합의’는 적대관계를 해소한다는 중대한 선언이었고, 이에 따라 지난 1년 넘게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 남북관계가 소원해보이지만, 적대적 관계의 시대는 과거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북 평화공존의 미래를 떠올리면 우리는 흔히 옥류관에 가서 평양냉면 한 그릇을 자유롭게 사먹고 자기 차를 끌고 금강산으로 여행을 가는 등의 일이 가능한 상황을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제가 만나본 북한 주민들에게 평화는 ‘잘 먹고 잘 입고 자식 교육 잘 시키는 일’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왜 평화에 대한 상상이 다를까요? 이것은 바로 삶의 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남북 정상 간 합의한 ‘민족경제 균형 발전’은 궁극적으로 남북 구성원 간 삶의 질 격차를 해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1차적 책임은 당연히 북한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은 누굴까요. 바로 우리 정부와 국민들입니다. ‘북한 개발을 위한 협력’이 바로 이제 남북교류협력의 핵심입니다.

결국 남북교류협력은 한반도 구성원이 함께 같은 비전과 꿈을 갖기 위한 것입니다. 서로 생각하는 평화가 다른 상황에서 단순히 교류협력 사업만을 추진하는 것은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합니다. 이제는 당국 간 합의를 많이 이뤄내고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북 주민 간 삶의 질 격차 해소를 위해 여러 주체들의 교류협력이 자유롭게 추진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골 출신인데, 어린시절 여름방학이 되면 동네 어르신들의 손자 손녀인 또래들이 서울에 살다 종종 놀러오곤 했습니다. 이 친구들과 처음에는 서먹한 듯하고 또 ‘서울 깍쟁이’들이라고 놀려대기도 했습니다만, 곧 함께 개울에도 뒷동산에도 다니며 여름 햇볕에 까맣게 그을렸지요. 어느덧 친해진 친구들이 방학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갈 때면 그렇게 서운하고 괜히 그 친구들이 밉기까지 했습니다. 왕성한 교류협력 이후 갑자기 중단된 남북관계를 바라보며 북한 주민들의 감정도 제가 느낀 그것과 비슷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남북교류협력 사업이 어느 하나 귀중하지 않겠습니까만 한반도 평화번영 시대라는 새 비전에 맞는 교류협력을 잘 발굴해내고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것이 남북협회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우리 협회의 비전 중 하나가 바로 ‘남북교류협력의 플랫폼’인데, 저는 참 적합한 표현이라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좀 더 나아가고 싶습니다. ‘핵심 플랫폼’이 되는 것입니다. 현재 정부의 정책 마련과 실행을 지원하는 것과 민간영역에서 필요한 실무적·제도적 지원을 하는 것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만, 가이드의 역할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업이나 지자체, 민간단체 같은 민간영역이 지속가능한 교류협력사업을 할 수 있는 담보, 즉 제도가 필요합니다. 이는 곧 남북교류협력의 세 가지 요소, 바로 통관·통신·통행이라는 소위 ‘3통’이 보장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는데, 평화공존 시대라고 하면서 이 ‘3통’, 즉 제도는 그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봅니다. 우리 협회가 남북교류협력 종합상담센터를 통해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듯, 3통도 남북간 공동세관, 공동검역, 공동출입경 등 남북이 공동으로 단일 CIQ를 구축하여 원스톱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남북이 합의한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들”로서 합의된 사항을 현실화하려면 다방면에서 교류협력이 진행되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전제가 바로 제도화이며, 우리 협회는 이 제도화 부분에서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탁업무를 수행하는 것만이 아닌, 실질적인 교류협력 대책을 제시하고, 선도적으로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역할까지 수행해야 진짜 ‘남북교류협력의 핵심 플랫폼’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선 협회 내부 구성원들의 역량이 중요합니다. 우리 협회가 2007년 남북 간 합의한 ‘남북 경공업 원자재 및 지하자원개발 협력사업’의 이행기구로 출범하여 북과 직접 사업하고 또 대북사업자들을 지원하며 북한의 여러 기관과 만나왔습니다만, 새로운 북한에 대해 이해하고 학습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 자체 역량만으로 다 대응할 수도 없기 때문에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유관기관과의 협력관계는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것도 우리 협회의 중요한 임무입니다.

처음 북한은 좁은 문 같았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정부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에서부터 민간단체, 기업 등 여러 주체들이 있지만 북한은 사업 분야별로 정해진 기관에서 정해진 사람들이 협력사업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경제분야는 민경련(민족경제협력연합회), 그 외 사회문화교류나 인도지원 분야는 민화협(민족화해협의회)인 식입니다. 저는 대북민간지원 분야에서 활동해왔기 때문에 20여 년간 주 파트너는 민화협이었고, 그중 협력부와 가장 접촉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북한도 참 많이 변화되어 왔습니다. 초기엔 민화협 협력부만을 사업 파트너로 했지만 2000년대 초부터 대북인도지원의 성격이 단순물자지원에서 개발협력으로 변모하면서 사업 부문에 따라 대상지역 여러 기관과 함께 일하게 됐습니다. 예를 들면 산림조성사업에서는 산림총국, 보건의료협력에서는 지역 보건소와 각급 병원, 제약공장, 농업협력에서는 지역 협동농장 등과 같은 경우죠. 이 기관들은 보통 내각 소속이며, 일선 현장기관과 연결되면서 사업의 내용도 더 풍성해졌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남북교류협력 중단으로 일선 현장기관들의 사업 지속성에 타격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지난 해 몇 군데 현장은 방문하기도 했는데, 굉장히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관계가 개선되니 과거 중단했던 사업을 다시하자는 제안은 북 파트너에게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의 지속가능성에 큰 장애물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말씀드린 대로 남북교류협력의 제도화가 중요합니다. 남북관계의 부침은 불가피 할 수도 있지만, 민간 차원의 협력사업은 그 안정성과 지속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 임기 동안 남북교류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데 저의 소임을 다하고자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