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남북교류 협력의 가교로서 
조선족 동포들의 위상과 역활

곽승지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 교수

남과 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남북한 관계의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자유롭게 만날 수 없다. 남북 교류협력의 필요성을 줄기차게 주창하는 것도 남과 북에 사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날 수 없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남북 교류협력을 위해서는 사람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념과 제도가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을 제한하고 있어 교류와 협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과 북 사이에 존재하며 비교적 자유롭게 양쪽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조선족 동포들이다. 조선족 동포들은 북중 접경지역에 살면서 그동안 남북한 간의 교류협력을 증진시키는 일들을 견인해 왔다.

조선족은 “중국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 동북지역에 정착한 조선인을 중국 공민으로 인정하면서 부른 정치적 용어”로 정의할 수 있다.1) 조선족은 한민족이지만 중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중국 공민을 지칭한다. 1860년대 중엽 이후 다양한 이유로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중국 동북지역에서 살아온 조선인들이 해방 후 한반도로 돌아가지 않고 그곳에 정착함으로써 중국 공민이 된 것이다. 조선족 동포들 중 다수는 두만강과 압록강 건너의 한반도와 가까운 연변지역과 길림성 및 요녕성 지역에 터 잡고 살아가고 있지만 흑룡강성 지역을 포함한 중국 동북지역 곳곳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1) 곽승지,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 인간사랑, 2013, 30-31쪽

지금은 고인이 된, 조선족 작가 유연산은 생전에 “중국 동북지역 곳곳에 조선족이 없는 곳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 “조선족은 두만강 1천리, 압록강 2천리, 송화강 5천리, 흑룡강 7천리 물길이 닿는 곳곳마다 터 잡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3년 6개월여에 걸쳐 동북지역 이곳저곳을 발품 팔아가며 쓴 『혈연의 강들』(유연산, 연변인민출판사)에는 두만강과 압록강 변의 조선족 마을은 물론 흑룡강성의 중국 최북단 막하(莫河) 및 최동단 무원(抚远)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뿌리내리고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 동포들의 존재를 생생하고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조선족 동포들이 숫자상으로 가장 많았던 때는 2000년 무렵이다. 당시 중국의 인구센서스는 조선족의 인구를 1백92만3천800여 명으로 기록했다. 10년 후인 2010년 인구센서스에서는 그 수가 1백83만여 명으로 약 9만여 명 줄었다. 이때부터 조선족의 절대 인구가 줄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족의 인구수는 인구통계에서 보여주는 것이 다가 아니다. 거주지에 등록한 사람을 근거로 하는 중국의 인구통계 방식에 따라 조선족 인구수는 실재 거주하는 사람들의 수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연산 작가

2) 곽승지, 『동북아시아시대의 연변과 조선족』, 아이필드, 2008, 29쪽

중국의 개혁개방정책과 한중 수교 이후 조선족 동포들은 살길을 찾아 앞다투어 중국의 연해지역 개방도시는 물론 한국 등 외국으로 삶의 무대를 넓혀왔다. 이에 따라 오늘날 조선족 동포들의 주된 삶의 터전이었던 중국 동북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50만여 명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 이미 80만여 명을 넘어섰으며 한국을 제외한 다른 외국에 적을 두고 살고 있는 사람도 20만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중국의 동북지역 밖 개방도시 곳곳에는 조선족 동포들의 새로운 집거지가 생기고 있으며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수도 대략 50만여 명은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이다. 중국 동북지역에 정주해 살아온 조선족 동포들의 다수는 이제 인구의 초국가적 이동이 보편화되고 있는 새로운 시대에 즈음해 중국 내의 여러 도시는 물론 한국과 여타 외국으로까지 재이주해 살아가고 있다. 조선족 동포들의 탈영역화에 이은 재영역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선족 동포들의 생활 영역이 변하고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무엇보다도 조선족 동포들의 생활 반경은 훨씬 더 넓어졌지만 북중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국 동북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남과 북이 북중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교류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가교 역할을 할 인적 토대가 크게 약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현실은 우리에게 중국 동북지역의 지정학적 가치와 함께 조선족 동포들이 지니고 있는 지문화적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필자는 십 수 년 전 중국 연변지역과 조선족 동포들에 관해 쓴 책에서 조선족 동포들이 지닌 가치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 바 있다. “동북아시아공동체가 현재화될 것을 상상하면, 연변지역을 터전으로 하여 조선족 동포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크나큰 행운이다. 19세기 말 이후 우리 민족이 감내해야 했던 질곡의 역사의 산물인 조선족 동포는 어쩌면 21세기 새로운 소통의 시대가 도래할 경우를 대비해 절대자가 예비해 놓은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생각하기에 따라 연변과 조선족 동포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는 무궁무진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

조선족 주거 형태 실내 / 출처 : GK2016 ,CC by

조선족 동포들이 살고 있는 중국 동북지역을 일반화해 연변으로 칭한 이 주장은, 사람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시대와 상황이 바뀌었고 남북한 간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추동하는 것이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감상적으로만 평가할 일은 아니다. 실제로 중국 동북지역, 특히 연변지역을 비롯한 북중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조선족 동포들 다수가 살아가고 있으며 이들은 남북한 간의 교류와 협력을 위한 가교로서 음으로 양으로 적지 않은 기여를 해 왔다. 이를 입증할 구체적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조선족 동포들이 남북관계를 위한 가교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한국과 중국 간에 외교관계가 수립되기 전부터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기 2년 전쯤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는 당시 한국의 민정당 실세였던 박철언 의원과 북한의 이종옥 부주석 간의 만남을 주선했다.3) 이 모임에서는 가칭 남북통일대책기구 설치에 대해 합의하기도 했다. 이 무렵 연변조선족자치주 주도(州都)인 연길에는 ‘이산가족생사확인중개소’라는 명칭으로 남과 북에 흩어져 살고 있던 이산가족들이 만날 수 있는 상설기구가 설치되기도 했다. 이 중개소는 1993년 7월까지 유지되었으며 수 십 가구의 이산가족 생사를 확인하는 성과를 기록했다.4)

3) 「경향신문」, 1990.10.5.

4) 「세계일보」, 1993.9.27

5) 윤운걸, 前 흑룡강신문 연변특파원

이산가족 생사를 확인하는 중개소가 성과를 거두자 연변라디오방송도 함께 나섰다. 1993년 1월부터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상봉의 그날을 그리며’ 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산가족을 찾는 일에 동참한 것이다. 당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직접 담당했던 한 조선족 언론인은 최근까지도 술이 거나해지면 그때의 감격스런 일들을 떠올리곤 한다. “언론인으로서 가장 자랑스러운 일을 꼽으라면 연변라디오방송에 근무할 당시 이산가족 생사를 확인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한 것을 서슴없이 들겠다. 한중 수교 직후의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같은 핏줄이면서도 서로 생사를 모른 채 남과 북에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감격스런 일이었다. 남과 북의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우리가 하였다는 점에서 조선족으로서 커다란 긍지를 느꼈다.”5) 그에 따르면 방송 시작 2년여 만에 50여 이산가족이 상봉하였다고 한다.

조선족 동포들이 남과 북을 연결하는 가교로서 역할한 일은 위의 사례 외에도 부지기수다. 조선족 동포들이 남북한 사이에서 중간자로서 역할을 한 일들을 분류하면 △남북한 학자들 간 학술교류 △남한기업의 북한 진출 △남한 NGO들의 대북사업 등을 들 수 있다. 이 밖에도 △탈북자 지원 △남북 경협 촉진 등 유형·무형의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 이들은 동반자로서 혹은 보조자로서 남북한 간 교류협력 사업에 참여함으로써 사업 추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수백 명의 조선족 동포들이 금강산 관광사업을 위해 현지 시설관리 업무 등에 참여함으로써 남북한 모두에게 도움을 준 것이나 평양과학기술대학 건설 과정에서 조선족 사업가 및 기술자들이 조력한 것 등도 이에 해당한다.

단동에서 바라본 북중 국경 / 출처 : Jack Upland ,CC by

단동에서 바라본 북중 국경 / 출처 : Jack Upland ,CC by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장기화되면서 남북한 간 교류협력이 크게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제한적으로나마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북중 접경지역에 조선족 동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북 제재가 엄격해진 이후 이루어진 남북 교류 및 협력 관련 이벤트들을 살펴보면 그 뒤에는 어김없이 조선족 동포들의 조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이 ‘해방 후 대재앙’으로 표현한 2016년 8월 말 두만강 대홍수로 북한이 큰 피해를 입었을 때 일부 NGO들이 북한 돕기에 나서 크고 작은 지원을 하였는데 이때도 북중 접경지역에 살고 있는 조선족 동포들이 중간에서 역할 했다. 조선족 동포들은 전면에 나서지 않아 존재 의미가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상황이 좋건 나쁘건 간에 한 민족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족 동포들의 역할과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위와 같이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일 못지않게 이념과 제도의 차이로 인한 남북한 간의 거리감을 좁히는 데도 직·간접적으로 기여해 왔다는 점이다. 즉 조선족 동포들은 북한을 자유롭게 왕래하고 그곳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어 북한에 외부 세계, 특히 남한사회에 대한 정보를 전파함으로써 북한주민들의 의식 변화에도 영향을 미쳐왔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경험한 사람들로서 북한주민들과의 교류를 통해 남한사회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정보가 공유된 것이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표시하는 중국도문변경 / 출처 : Prince Roy ,CC by

북-중-러 국경 / 출처 : Senkaku Islands ,CC by

6) 김강일, “남북통일에 있어서 중국 조선족의 역할,” 「교포정책」 vol. 57, 해외교포문제연구소, 1998

조선족 동포들의 이 같은 역할은 역으로도 성립된다. 북한주민들은 두만강과 압록강 너머에 조선족 동포들이 살고 있어서 여러 이유로 중국 동북지역을 찾게 되는데, 이곳을 찾은 북한사람들은 자연스레 북한에서 접할 수 없던 외부세계의 모습을 접하게 된다. 북중 접경지역을 넘어 중국을 찾는 북한사람들은 관료나 사업가는 물론 노동자 혹은 조선족 일가친척을 찾아오는 일반 주민 등 다양하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동조하면서 한 때 중국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크게 줄어든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디에서나 이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일가친척을 찾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친척의 도움을 받아 장기간 체류하며 일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잠시 머무는 게 아니기에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발전된 사회에 대해 더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북중 접경지역과 그 주변에 조선족 동포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조선족 동포들이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하고 있는 것에 대해 조선족사회에서도 당연한 것으로 평가한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더 하지 못할 뿐이지 할 수만 있다면 더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연변대학 김강일 교수는 중국 동북지역에 살고 있는 조선족 동포들이 남북관계에 기여할 수 있는 바에 대해 일찍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설명한 바 있다. 첫째, 남과 북의 완충지대로서 남북한 간의 갈등을 중재하고 완화시킬 수 있다. 둘째,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의 경험을 북한에 전파함으로써 북한의 정치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 셋째, 사회주의 문화와 자본주의 문화를 두루 경험했기 때문에 남북한 주민들의 문화교류에 이바지 할 수 있다.6)

그러나 일부에서는 조선족 동포들이 남북문제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입장과 역할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한다. 즉, 중국의 정치제도와 조선족 동포들의 중국내 위상 등을 감안할 때 여러 가지 제약 요인이 있고 조선족 동포들 스스로도 남한사람들에 비해 절실함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상해 복단대학에 재직했던 박창근 교수는 한반도문제와 관련한 조선족동포의 위상을 ‘비당사자로서 보조적 역할자’로 정의했다.(박창근, “남북통일 과정에서 중국 조선족의 역할,” 「OK Times」 통권 제143호 (2005.10), 해외교포문제연구소, 12-18쪽) 조선족동포들은 남북문제의 직접적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도의적 차원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또 조선족 동포들의 역할을 제한하는 주요 변수로 △중국 내에서 조선족의 위상 △남북문제에 대한 남북한의 입장 차이 △조선족의 정체성 등을 들었다. 즉 조선족동포들은 남북한 사이에 끼어있는 사실상 비당사자로서 한반도문제에 대해 역할 하고자 하더라도 이러한 변수들에 의해 일정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조선족 동포들이 남북한 간 교류협력을 지원하는데 적극 나서게 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박창근 교수는 조선족 동포들의 역할 제고를 위해서는 이들이 남북문제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는 것과 함께 조선족사회의 발전이 전제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여야만 그것을 위한 사명의식이 증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한기업인을 포함한 한민족기업인들과 조선족기업인들 간의 교류 확대 △북중 접경지역이며 조선족사회의 중심인 연변 조선족사회의 발전 등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강일 교수는 남한의 조선족정책에서 전략적 사고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가운데 조선족사회와의 관계를 민족공동체를 넘어 경제블럭화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즉, 단순히 민족적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실사구시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남한 사람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선족 동포들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조력자요 매개자라고 언급하는 가운데 이들의 역할을 당연시하며 큰 기대를 하곤 한다. 이러한 주장은 일부는 맞지만 많은 부분 잘못됐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선족 동포들은 남북관계가 개선되기를 바랄 뿐 아니라 그동안 실질적으로도 조력자요 매개자로 기여해 왔다는 점에서 일부는 맞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입장과 처지를 생각지 않고 한 민족이라는 정서에 기대어 막연히 자기중심적 희망사항만을 고려했다는 점에서는 잘못된 것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박창근 교수가 언급한 바처럼 조선족 동포는 스스로 남북관계 개선의 직접적 당사가가 아닌 비당사자로서 보조적 역할자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도록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건들이 충족되어야만 한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이를 애써 외면해 온 것이다.

조선족 동포들이 남북한 간의 교류협력을 위한 가교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역할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우선 조선족 동포들이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가운데 남한의 대북정책에 대해 이해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심정적으로 북한에 더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조선족 동포들에게 남한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남북관계 개선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납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연변을 포함한 중국 동북지역의 지정학적 가치가 조선족의 역할을 견인하는 측면이 크다는 점에서 조선족 동포들이 이 지역에서 확고한 지위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여야 한다. 지금처럼 조선족 동포들 다수가 살길을 찾아 동북지역을 떠나 다른 곳으로 재이주함으로써 인적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들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출처 : Prince Roy ,CC by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까? 우선 조선족 동포들이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실질적 당사자로 역할 할 수 있도록 그들의 위상을 제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들이 중국 공민이라는 점에서 모두를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남북한 간 교류협력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에 대해서라도 그들이 실질적 당사자이며 중요한 동반자라는 인식을 갖도록 하여야 한다. 필자는 그동안 남북관계 개선, 나아가 통일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그 행위의 주체를 재외동포는 물론 한반도 주변의 나라와 주민들에게까지 확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이해관계가 있는 나라와 사람들을 망라함으로써 통일환경을 새롭게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한 일이지만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동북아시아지역 전체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는 현재의 상황을 뛰어넘는 새로운 구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공동체의 비전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조선족 동포들이 북한과 교류하고 협력하는 사업을 지원하는, 남북협력기금과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들이 북한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에서 감당해야 할 리스크를 한국사회가 일정하게 부담함으로써 이들의 역할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의치 않다면 남한 내 기업들을 포함한 한민족기업들과 조선족기업들 간의 연대를 통해 이들 기업이 북중 접경지역을 무대로 하여 북한과 교류협력을 강화하는 방법을 강구할 수도 있다. 현재도 유사한 형태의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실질적인 지원 제도가 없어 일정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또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조선족 동포들과 대북사업을 하는 조선족동포들 간의 연대를 통해 관계를 확대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가 북중 접경지역을 한반도와 중국의 접경지역으로 인식하고, 중국 동북지역에 살고 있는 조선족 동포들을 남북한 교류협력의 실질적 당사자로 역할 하도록 위상을 제고한다면 이 지역을 무대로 한 남북한 간 교류협력의 기회는 크게 확대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누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이른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의 문제일 것이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서는 남과 북이 보다 적극적으로 접촉함으로써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북한을 접촉할 수 있는 두 개의 창구 중 하나인 북중 접경지역을 사실상 방치해 왔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혹자는 곧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이런 노력은 괜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남북관계 개선 이후를 생각하면 이 지역은 더 중요하고 가치 있게 될 것이다.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질서가 형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중 접경지역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일과 이 지역을 무대로 남북한 교류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조선족 동포들의 역할을 제고하는 일은 남북관계의 현재와 미래는 물론 동북아시아에서 새로운 질서가 형성될 때를 대비한 거시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협회의 공식적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