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 라오스를 가다

- 농식품과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라오스 지역개발 사례

오용준 한밭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 / 
사단법인 나눔과기술 공동대표

“보뺀양(BOR PRENNYANG).”

지난 6년간 배운 몇 안 되는 라오스어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괜찮아요, 잘 될 거야”란 뜻이다. 하지만 어떤 때는 “그 정도 하면 됐어요, 대충해요”라는 뜻으로 쓰기도 한다. 6년 전 적정기술을 이용한 국제개발원조(ODA) 사업의 일환으로 라오스에 첫발을 디딘 우리에게 전자의 뜻은 낯선 곳에서 희망을 주었지만, 후자의 의미로 대답이 나올 때면 곧이어 무언가 고장이 나거나 문제가 생길 때가 많아 긴장이 되곤 했다.

일을 시작하며

나와 (사)나눔과기술(과학기술 NGO단체)의 동료들은 2014년 정부사업(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의 일환으로 착수된 적정기술 라오스거점센터(이하 ‘센터’)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이 사업은 현지의 대학(수파노봉대, Souphanouvong University)에 거점센터를 설립한 후, 라오스 북부지역의 천연 농식품을 이용하여 지역발전을 돕고 라오스 북부 오지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었다. 기술적으로 두 개의 전혀 다른 주제였지만, 적정기술을 이용하여 라오스 북부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목적은 같았다. 이 일을 위해 4년 동안 필요한 네 가지 단계의 계획을 세웠다. 먼저 센터 지원 시설을 구축하고, 지역개발에 도움이 될 제품 또는 기술을 선정하며, 이어서 필요한 각종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이용해 시범시설을 설치하여 지속 가능하게 운영하는 것이었다. 첫 해에는 라오스 북부 7개 주의 거점지인 루앙프라방에 있는 수파노봉대학교에 센터 지원시설을 설치하고, 대학의 교수들이 한국의 전문가들과 협업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시설로는 사무국, 농식품 가공시설과 에너지기계 조립용 작업장을 만들었다. 이와 동시에 농촌경제에 도움이 될 상업화가 가능한 천연식품 원료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수파누봉대학교

민물김 ‘카이펜’

‘남박’시

라오스 북부지역 주민들은 ‘카이펜(Keipen)’이라 불리는 민물 조류를 강바닥에서 채취하여 말린 후, 여러 종류 가미를 하여 우리의 바다김 정도 크기로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있었다. 맛이 꽤 좋아 지역의 유명한 전통식당의 요리 목록에 늘 있다. 하지만 상품성이 낮고, 위생이 대단히 열악하여 일반 주민이나 외국인들에게는 그다지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김은 매우 중요한 음식이고 생산 기술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민물김 ‘카이펜’의 현대화는 도전해 볼 만한 주제였다. 절치부심 끝에 루앙프라방에서 중국 쪽으로 3시간 거리에 ‘남박’시(district)를 중심으로 십여 개 생산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남박시 대표들과 고품질 민물김을 위한 시범공장을 설치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버블세척기, 살균기, 건조장 등 적정기술의 개념을 고려한 민물김 처리 장치를 설계한 후, 현지에서 조달 가능한 재료와 장비들을 이용해 이들을 제작하였다. 시에서 약 오백평의 땅을 내놓아 ‘봄’ 마을에 작은 공장 하나를 지었다. 생산은 여성연맹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여성들이 나섰다. 2016년 1월 처음으로 포장된 제품이 나왔고, 한국으로 일부를 가져와 공인기관에서 위생검사를 하였다. 문제가 되었던 모래 등 이물질이 거의 없어지고, 위생도 현저히 나아져 보통은 튀김으로 섭취하지만 그냥 섭취해도 문제가 없는 수준을 얻었고 보존 기간도 많이 연장되었다. 기존의 카이펜 제품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새 제품의 가격을 높이고, 중산층 이상의 고급시장에 팔리도록 하였다. 생산된 해부터 수도인 비엔티엔에서 매년 열리는 식품 박람회에 출품하여 매번 전량 매진되면서, 특히 외국인들도 찾기 시작했다. 

건조 중인 카이펜
식품박람회에 참가 중인 봄마을과 리마을의 생산 대표 여성들

시범 공장이 어느 정도 순탄해져 라오스의 언론에 알려지면서 인근의 ‘리’ 마을에 두 번째 공장을 착공하기로 결정했다. 시에서 약 천 평의 부지를 제공하였고, 생산시설과 함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지원으로 수처리 시설도 넣을 수 있었다. 두 번째 마을 공장이 자리를 잡으면서 관리와 경영은 마을위원회로 이전하고, 두 마을에서 약 오십여 가정이 생산에 참여하면서 현재까지 지역의 여성들에게 주요한 수입원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라오스 정부로부터 인정받는 좋은 일도 있었다. 라오스의 식품의약담당 부처로부터 라오스 최초로 카이펜 식품에 대한 인증을 받았고, 정부에서 지역발전을 위해 추진하는 프로그램인 “한 지역 한 품목(ODOP, One district, one product)” 프로그램에 우리가 생산한 카이펜이 대표로 선정되었던 것이다.

어느 제품이나 브랜드가 중요하다. 민물김 ‘카이펜’을 비롯하여 사차인치, 흑생강 및 차(茶)류를 추가로 개발하면서 홍보와 마케팅을 위해 ‘아롬디(AROMDEE)’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아롬디는 라오스 말로 ‘기분 좋은’이란 뜻이다. 이름처럼 봉사의 정신으로 이 일에 뛰어든 우리에게나 라오스 북부 오지의 농민들에게나 이 모든 일들이 기분 좋은 일이 되기를 기대하며 지은 브랜드명이다.

"

기술은 특정한 목적, 
특히 사람을 위해 과학에서

유용한 가치를 끌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오지마을을 위한 소형 복합 신재생에너지 보급

라오스는 풍부한 수력발전을 기반으로 전력 생산량이 인근국에 비해 높은 편이다. (2020년까지 수력발전량 12,500㎿ 예상) 하지만 송배전 시설의 미비로 오히려 전력을 수입하고 있고 아직 전력이 공급되지 않는 농촌 오지가 많은 편이다. 농식품 일을 추진하는 동안 센터의 에너지 팀에서는 라오스 북부오지 마을의 에너지 공급을 두 가지 신재생에너지 기술―태양광발전 및 초소수력발전―을 복합해서 해결하고자 했다. 라오스는 연중 건기와 우기가 뚜렷해서 두 종류의 발전 시설을 조합하면 연중 어느 정도 발전량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태양광 발전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1~5 ㎾급의 초소수력 발전은 우리나라는 경험이 거의 없고 장치도 전무한 상태였다. 초소수력은 지형조건만 잘 갖추어 진다면 하루 24시간 전력생산이 가능하므로 일조에 전적 의존하는 같은 용량의 태양광보다 4~5배 생산량이 크다는 장점이 있다.

우선 초소수력 장치는 오랜 경험을 가진 뉴질랜드의 전문가 그룹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태양광 발전과 초소수력 발전으로부터 얻은 직류전원을 배터리에 저장하고, 이를 마을에 일정시간 공급하는 전체 시스템을 설계했다. 이어서 라오스 루앙프라방 주정부의 도움으로 몇 개의 시범마을 후보지를 선정했다. 설치가 완료된 후에도 시설이 지속 가능하려면 전기료를 내며 사후관리 비용을 자체적으로 충당할 준비가 된 마을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두 번째 후보지인 ‘탓동’ 마을 주민들이 동의했다. 95가구 약 500명의 주민이 전기 없이 살아왔고 앞으로 십 년은 전기 공급이 될 가능성이 없는 마을이었다.

탓동마을의 초소수력 발전시설 작업을
돕고 있는 라오스 현지 주민들

자재들을 현지로 수급하고, 드론으로 현지 마을의 지형을 조사하고, 소수력 발전을 위한 수로와 장치를 설치하며, 각 가정까지 송전 시설을 완공하기 까지 매우 힘든 과정이었지만 모든 일이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특히 루앙프라방 시내에서 현지까지는 세 시간의 험로를 완공 때까지 수십 번을 다녀야 하는 길이었지만, 현지 센터장과 많은 분들이 잘 견뎌 준 노고가 대단했다. 공사가 완료되고, 몇 분들의 기부까지 이어져 대형 TV와 냉장고를 마을 회관에 설치하며 주민들에게 더욱 좋은 선물이 되었다. 복합 발전 시스템 전체 비용이 타 국가에서 추진한 사례보다 훨씬 낮아 향후 ODA를 통한 개발도상국 에너지 지원에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완공식을 마치고 나서 우리 가운데 전문가 한 분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다. 현지 발전상황을 상시 원격 모니터링하자는 것이었다. 2G 휴대전화가 겨우 연결되는 오지였으나 이를 극복할 방안을 찾았다. 발전시스템에 부착된 센서들의 신호를 2G의 문자로 자동 전송되도록 하고, 이를 받아 다시 4G가 되는 지역에서 데이터로 저장하여, 스마트폰의 어플리케이션으로 언제든지 현지 상황을 점검하도록 하는 개념이었다.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결국 시스템이 완성되어, 현지의 태양광과 수력 발전량, 배터리 저장상태와 주민들의 사용량 등을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하면 실시간으로 언제든 볼 수 있게 되었다. 상당수의 기술과 경험들은 함께 일했던 수파노봉대학 교수들에게 전수 되었고, 이제 사후관리도 이들이 하고 있다.

처음으로 전기 공급 후 마을의 청소년들을
모아 놓고 영화 상영

라오스에서 있었던 농식품 개발을 통한 지역소득 창출 활동과 오지 마을의 신재생에너지 공급 활동은 그동안 적정기술 설계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사회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던 우리와 같은 학자들에게는 살아있는 좋은 현장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십 이년 전 미국 MIT 대학에 방문교수로 있을 때 에이미 스미스(Amy Smith) 교수의 수업을 통해 처음 적정기술을 접하며 시작된 일이 현장을 통해 한 매듭을 짓게 되어 보람이 있다. 기술은 기본적으로 ‘적정(appropriate)’하다. 과학이 극한 미소(微少)와 무한 광대(廣大)한 세계에 대한 인류의 궁금함과 진리를 알고자 하는 열망의 세계라면, 기술은 특정한 목적, 특히 사람을 위해 과학에서 유용한 가치를 끌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가치를 만들지 못하는 적정하지 않은 기술은 살아남기 힘들다.

지난 십 년 가까이 적정기술이 한국사회에 주목을 
받아 온 것이 대단히 반가운 일이지만,

단순히 오래된 기술을 보급하는 정도로 
인식된 점도 있어 안타깝다.

앞으로 적정기술 활동에 정보통신과 
첨단 기술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그 정신과 가치를 잘 보존해서 인류의 최소한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더 소중하게 사용되기
를 기대한다. 

적정기술과 대북개발협력

김선 굿네이버스 국제사업본부장

대표적 적정기술 결과물로 꼽히는 Q드럼

필자가 개인적으로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라는 용어를 접하게 된 것은 20여 년 전이었다. 당시 대학 과제를 하던 중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른스트 슈마허 저)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우리 사회에서 그리고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후 사회생활을 하며 70여 회 이상 북한지역을 방문하며 대북협력사업을 수행하고, 아프리카에서 5년간 현장에서 국제개발협력사업을 경험하였으며, 현재는 NGO 본부에서 남북협력기금과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를 집행, 관리하며 지난 20년간 개발협력분야에서 개발도상국에게 실질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늘 고민해왔다.  

01적정기술
(Appropriate Technology)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영국의 경제학자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E. F Schumacher)가 1966년에 저술한 책으로 ‘중간기술’이라는 용어가 최초로 사용되었다. 중간기술은 당시 공업화를 이루며 앞서 나갔던 소위 부자 나라들의 자본 집약적 기술과 개발도상국의 전통기술 중간에 위치하는 기술의 집합을 의미한다.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통해 공업화, 대량생산을 당대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당시 최첨단기술만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작고 단순한 것에 의해서도 행복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중간기술이라는 용어는 그 의미가 마치 부자 나라들의 최신기술보다 못한 기술이라는 오해를 일으킬 수 있어 ‘적정기술’이라는 용어로 발전되어 사용되고 있다.

첨단기술이 자본과 힘으로 무장한 현대 테크놀로지의 결정체이고 산업을 이끄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첨단기술의 경쟁은 상위계층을 위한 것이다. 첨단기술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재원을 필요로 하므로 전 세계의 과반이상을 차지하는 가난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남의 이야기인 것이다.

생각해보자. 인공위성과 위치추적시스템, 고해상도 TV, 홍채와 지문을 인식하는 스마트폰이 아프리카 우간다 흙집에서 전기도 없이 사는 주민에게 얼마나 먼 이야기며, 미얀마 산골 소년에게 어떤 의미이겠는가. 굳이 최빈곤층에 국한하여 생각하지 않더라도 중남미나 동남아의 중간개발국 주민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정기술은 다르다. 적정기술은 최상위계층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중간계층, 저소득층 등 지구상의 절대 다수를 위한 기술이다. 예를 들어 전기가 없는 지역에 전기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항아리 냉장고’나 ‘페달 세탁기’ 같은 것들이다. 항아리 냉장고는 1990년대에 나이지리아 교사가 발명한 것으로 진흙으로 만든 두 개의 항아리 사이에 젖은 모래를 넣은 간단한 구조로 되어있다. 덕분에 전기 공급이 되지 않는 지역의 주민들이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페달 세탁기
페달 세탁기 구조
항아리 냉장고
적정기술제품인 Life Straw

02적정기술과 국제개발협력

20세기를 거쳐 21세기로 접어들며 국제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빈곤문제 해결이었다. 그래서 2000년에 세계정상이 모여 8개 목표를 중심으로 2015년까지 15년간 빈곤퇴치를 하겠다고 선포한 것이 ‘새천년개발목표’, MDG’s(Millenium Development Goals)이다. 세계가 경제발전을 거듭하며 날로 발전해가지만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발전이 지체된 국가들의 이슈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음모론적인 시각에서는 MDG’s가 저개발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부자나라들이 저개발국을 아주 조금 발전시켜 결국 자국의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신제국주의(New Imperialism)적 활동이라는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비약이다. MDG’s는 부족하나마 빈곤퇴치를 위해 전 세계가 함께 힘을 합친 중요한 경험이었고, 8개 목표 중 ‘보편적 초등교육의 제공’ 분야에서는 꽤나 높은 성과를 이루기도 하였다.

MDG’s는 당시의 화두였던 빈곤퇴치에 대한 시대정신을 잘 반영하기는 했으나 몇 가지 한계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빈곤퇴치의 해결 범주가 너무 좁았다는 것과 불평등 문제에 대해 간과했다는 점이다. MDG’s를 통해 식량을 지원한다든가 교육의 기회를 넓히는 데는 분명한 성과가 있었으나 단순한 원조개념이 강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된 것이 2016년부터 시작된 ‘지속가능개발(발전)목표,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다. SDG’s는 개발을 이루는데 있어 경제와 환경, 사회개발을 두루 아우를 뿐 아니라 불평등 이슈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이 불평등에 대한 이슈는 여러 분야에서의 해결책을 요구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적정기술’이다. 적정기술은 부자를 위한 기술이 아닌 가난한 자, 자원이 부족한 자를 위한 기술이기 때문에 그 목적 자체가 불평등 해소에 있다. 컬럼비아대학의 석학인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는 불평등 이슈에 대해 21세기에 최첨단을 경험하는 이 많은 인류는 여전히 100년 전의 삶을 살아가는 더 많은 인류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적정기술은 자본을 따라가는 논리가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그러나 그 숫자가 결코 적지 않은)을 따라가는 기술이며 그 자체가 불평등 해소의 지극히 현실적인 대안인 것이다.

03북한에서의 적정기술

한반도를 야간에 찍은 위성사진을 보면 남과 북의 전력소비량 차이를 극명하게 볼 수 있다. 남한은 경제적으로 이미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다고도 말할 수 있다. 특히 첨단 기술과 에너지 소비 측면에서는 어느 국가에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반면 북한의 경우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으로 경제발전이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다. 더구나 지속적인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물자의 부족 등으로 북한주민들은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오래된 현실이다.

굿네이버스는 대북협력사업을 진행하며 교육, 보건의료, 농업, 식량, 광업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협력사업을 진행하였고 학교, 병원, 육아원에서부터 유가공 공장, 사료공장, 아연제련소 등을 설립하고 10번의 준공식을 했다. 도시와 농촌 지역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며 대북 개발협력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점을 꼽자면, 남한의 최첨단 기술의 적용에 대한 부분도 있지만 현장에 적합한 사업인지에 대한 부분이다. 아무래도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을 상대하며 이왕이면 모양새가 좋은 사업을 선호할 수도 있다. 이따금씩 협동농장이나 단위사업장에서 정말 필요한 것보다는 보여주기 위한 모양새 좋은 물자를 요청하기도 한다. 물론 때로는 좋은 모양새가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굿네이버스를 비롯한 남한 NGO 입장에서는 가급적 주민들에게 가장 실질적으로 필요한 물자나 기술에 대한 교류에 집중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굿네이버스에서는 최신식 제약공장, 사료공장도 지원하지만 농촌에서 실제로 쓸 수 있는 적정수준의 사업지원도 해왔다. 특히 협동농장 사업장에서 그러한 사례가 많이 있었다. 

젖소 목장의 경우 젖소 지원과 착유기에 대한 요청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보통 젖소를 어느 공간에 들어가게 하고 기계식 착유기를 통해 집유(集乳)하는데, 이 설비가 들어가려면 우사(牛舍)가 현대식이어야 하고 집유시스템이 함께 갖춰져 있어야 한다. 당시 상황에서 이러한 설비 전체를 갖추는 것보다 차라리 사육 두수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더 효율적이었다. 그래서 디자인한 것이 이동식 착유기였다. 이 방식은 우리의 발달된 농장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으나 북의 농장에서는 이동하며 젖소를 착유하고 우유 통에 넣는 형식이 훨씬 실효성 있는 방식이었다. 물론 사람이 직접 젖소에게 가서 손으로 착유하는 방식도 있으나 점차 기계에 대한 수요가 생기는 상황에서 필요한 기반시설을 모두 갖추지 않고도 적용할 수 있는 유용한 적정기술의 사례이다. 

우유통
이동식 착유기


필자가 아프리카 말라위에 있을 때 했던 개발사업 중 하나가 사탕수수 숯을 제작해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말라위 농촌지역에서는 조리용 연료를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주민들이 나무를 잘라 사용하였고 이 때문에 나무가 점점 부족해지고 땅이 황폐해져갔다. 정부는 산림황폐화를 막기 위해 주민들의 개인 나무 벌목을 금지했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주민들은 갈 곳을 잃은 채 현실적인 이유로 불법벌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는 이런 상황 속에서 버려진 사탕수수, 옥수수 대를 탄화시키고 카사바(아프리카의 주요 구황식물) 등과 섞어 숯을 만들었다. 이 기술은 MIT교수와 학생들이 연구한 기술로 적정기술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사업은 끝내 성공하진 못했다. 정부가 강력히 벌목을 금지하고 숯을 개별생산하기보다 대량생산하여 단가를 낮춰야 구매력이 약한 주민들도 활용을 할 텐데, 정부의 규제가 느슨하다보니 주민들은 숯을 이용하기보다 계속 불법벌목을 했고 대량생산을 못하니 단가는 낮추기 어려웠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선순환이 시작될 텐데 기술이 기술로만 남게 되어버린 사례이기도 한다. 적정기술이 현실에서 활용되려면 기술 이외에 여러 여건이 함께 조성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림녹화가 시급한 북한지역을 생각하며 예전에 아프리카에서 했던 사업이 다시 떠오르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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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개발협력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점은

현장에 적합한 사업인지에 대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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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북한 적정기술의 과제와 전망

많은 사람들이 북이 멀지 않은 미래에 핵과 관련된 이슈를 정리하고 한반도의 평화구축은 물론이고 남한 및 국제사회와 협력하며 발전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과거의 남북교류는 다소 일방적인 측면도 있었고 국제개발의 담론과 방향, 교훈과 상관없이 그저 북의 요청과 남의 응답으로 단순하게 이루어졌다. 이는 마치 MDG‘s 시대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제 다시 활발해질 북에서의 남북, 국제 교류를 바라며 적정기술과 관련하여 두 가지로 제언을 해본다.

첫째, 말 그대로 적정한 지원과 적정한 기술을 앞장세워야 한다.

남북교류의 시발점이 된 것이 90년대 북한의 자연재난이었는데 아무래도 당시의 시작이 긴급구호적 성격이 강하다보니 무언가를 지원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에는 남북 간 활발한 교류가 있었고 긴급구호보다 개발적인 측면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개발적인 국면으로 전환기에는 너무 모양새를 중요시하거나 여러 정치적 역학으로 실제적으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기에는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당국 간의 교류이므로 당연히 고도화된 산업교류도 필요하겠지만 김정은 위원장도 신년사에서 밝혔듯이 실제 주민의 생활을 개선할 수 있는 실효적인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이에 가장 적합한 기술이 바로 적정기술이다. 평양뿐만 아니라 북한 어느 지역에서도 재원이 아닌 적정한 기술로 활용될 수 있는 그러한 기술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둘째, 남한의 기술을 강요하지 말고 북한현실에 맞게 그리고 북한 당국자와 함께 개발해야 한다.

기술자나 학자들이 자주 하는 실수 중 하나는 본인이 경험한 기술이나 이론을 상황이 다른 곳에서도 그대로 적용하려는 것이다. 물론 현장 중심으로 맞춘다고는 하지만 그 생각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 자신의 기술이 많이 변형되어 심지어 핵심기술의 일부가 빠지는 상황까지 감내하면서라도 현장에 적용되는 기술을 구현해야 한다. 북한의 현장은 개인의 기술이나 이론의 검증을 위한 장이 아니라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다. 그리고 아무리 좋고 적정한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북한 당국이 제도적으로 실질적으로 뒷받침 해주지 않으면 절대 실생활에 뿌리 내릴 수 없다.

여전히 북한은 제재 하에 있고

언제 남북교류가 제대로 가동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새 시대의 교류는

가장 효율적이고 실제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날이 오기를. 그리고 ‘잘’ 하기를.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협회의 공식적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