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북중 접경지역 활용 실태
곽승지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 교수
북중 접경지역은 우리에게 활짝 열려있다. 혹자는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북중 접경지역이 중국의 영역이라는 점을 들어 접근에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북중 접경지역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가볍게 여기며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의지를 가지고 노력한다면 길은 얼마든지 있다. 스스로 한계를 정해 놓고 가능성을 차단하기보다 희망을 품고 적극적으로 미래를 만들어간다면 말이다. 실제 최근에도 많은 사람들이 북중 접경지역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며 이 지역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중에는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며 주목할 가치가 있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분단 70년을 극복해야 한다는 열망이 드높았던 2015년 6월, 한국을 대표할만한 지성 32명이 압록강에서 두만강까지의 장장 1,400km에 달하는 북중 접경지역을 답사했다. 남북관계가 꽉 막혀있던 상황에서 더 늦기 전에 70여 년간 이어져온 분단의 슬픈 역사를 끝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진 평화의 여정이었다. ‘평화 오디세이’로 이름 붙여진 이 여정에 각계에서 서로 다른 일을 하는 32명의 지성이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북중 접경지역에 대한 가치와 의미는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01
의미있는 두 가지
북중 접경지역 답사 사례
2015년 6월 22일 시작해 26일까지 5박 6일간 이어진 여정은 북중 접경지역에서 한반도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고 미래에 대해 고민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중앙일보의 홍석현 회장이 아이디어를 내고 주도한 답사 과정은 북중 접경지역을 무대로 하여 한민족이 겪었던 슬픈 역사를 돌아보며 어떻게 보다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 성찰과 숙고의 시간이었다. 참가자들은 이 특별한 지역을 답사하며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글로 적어 중앙일보에 릴레이로 기고함으로써 자신의 감상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 글들은 다시 『평화 오디세이』(메디치미디어, 2016.1)라는 단행본에 담겨 더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파고들었다.
평화 오디세이에 대한 여운이 가실만한 3년여의 시간이 지난 2018년 10월 말 홍석현 회장은 오랫동안 천착해 온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구상을 정리한 저서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를 출판했다. 책의 내용만으로 보면 앞서의 북중 접경지역 답사와 연결할 지점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제목에서 풍기는 인상으로는 결코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앞서의 답사 여정을 평화 오디세이로 명명한 궁극적 이유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고민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다소 억지를 부리자면 북중 접경지역을 답사하였던 그 여정이 결국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로 귀결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이 주장하는 바도 이 같은 억지(?)에 힘을 보태는 듯하다. 통일보다 평화를 앞세우는 가운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동북아시아의 공존과 공영이 필요함을 말하며 넌지시 북중 접경지역의 가치를 생각하게 하고 있으니···.
1) 「매일경제」, 2018.10.7.
2) 「연합뉴스」, 2019.10.16
홍석현 회장의 역저가 나오기 직전,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 회장을 중심으로 경제인들이 북중 접경지역을 둘러보기 위한 답사 길에 올랐다. 이들의 답사는 경제인들끼리 경제적 시각으로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북중 접경지역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살피기 위한, 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목적지향적 여정이었다는 점에서 앞서의 평화 오디세이와는 달랐다. 평화 오디세이가 다양한 관심을 가진 다수의 사람들이 북중 접경지역에서 각자의 시각으로 남북관계 및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피기 위한 집단적 움직임이었다면, 경제인들의 답사는 북중 접경지역에서 향후 남북한 간의 교류협력을 위한 실질적 방안을 모색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1) 박용만 회장도 북중 접경지역 답사 직후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한 컨퍼런스(2018.10.16, 대한상의 국제회의장)에서 인사말을 통해 답사 사실을 언급하는 가운데 이 지역을 통해 북한과 경제협력을 추진하는 데 대한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2)
북중 접경지역이 한국인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1992년 8월 한중수교 이후부터이다. 이전에는 갈 수도 없었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다. 세계적인 냉전체제하에서 진영 간 대립의 최전선을 형성하고 있던 터라 역사 속에서 혹은 꿈속에서나 이 지역을 넘나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압록강-백두산-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펼쳐지는 북한과 중국의 접경지역은 일제의 식민 상태에 있을 때도 중국과 한반도의 접경지역이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세종이 4군6진을 개척한 1440년대에 이르러 한반도 전역이 조선의 땅으로 편입된 이후부터 이 지역은 중국과 한반도의 접경지대를 형성했다. 그런 만큼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 이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02
객관적으로 북한을 바라보기 위한 열린 공간
북중 접경지역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은 이 같은 역사적 인연과 함께 이곳이 북한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열린 공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모색하기 위해, 북한사람들에 대한 연민 때문에 등등의 다양한 이유로 이곳을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기실 한국과 중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이유로 북중 접경지역을 찾았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잠시 다녀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정 기간 머물다 가는 사람도 있다. 또 아예 장기간에 걸쳐 이 지역에서 삶을 영위하며 교류협력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위에서 소개한 두 가지 사례는 잠시 다녀가는 경우로서 최근에 있었던 주목할 만한 사례에 해당한다.
북중 접경지역을 다녀가는 사람들이 모두 남북한 간의 교류협력을 염두에 두거나 그 일을 하려고 움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의 사례에서 본 바처럼 이 지역을 찾는 다수의 사람들은 현재를 넘어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뭔가를 하려고 한다. 접경지역을 찾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교류협력을 지지하고 우리 민족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을 찾기를 바라며 그러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북중 접경지역을 포함한 중국 동북지역)을 찾고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조선족동포를 만나고 북한 주민과 산천에 대해 연민을 느껴야 한다. 그리하여 중국 동북지역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온 조선족동포와 두만강과 압록강 너머의 북한 주민을 더 많이 이해함으로써 이들과 함께 미래로 나아가려는 생각을 품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중국 동북지역의 지정학적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한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중국 동북지역과 이곳에서 접하는 사람들은 장차 한민족의 미래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견인할 공간이고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곽승지, 『중국 동북지역과 한민족』, 모시는사람들, 2017, p. 13)
그동안 북중 접경지역을 찾은 한국인들을 사례별로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다. ①백두산과 두만강 및 압록강을 보고 조선족동포들의 삶을 살피기 위한 관광객, ②북중 접경지역에서 북한의 변화를 살피기 위한 관찰자들, ③북한과 교류협력을 꾀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려는 개인 혹은 NGO 관계자들, ④북한의 변화를 기대하며 선(先) 투자하는 기업들, ⑤북한과의 거래를 위한 사업가들 등이다. 한국인 외에도 북중 접경지역에는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외국 국적을 가진 한민족은 물론 순수 외국인도 있으며 조선족동포들을 포함한 중국인들도 그 대열에 합류하곤 한다. 이 지역이 폐쇄사회인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위한 창구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위의 다섯 가지 사례들 중 첫 번째의 관광객들을 제외한 네 가지 사례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 것으로서 궁극적으로는 북중 접경지역을 통해 어떤 형태로든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꾀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단순히 관광에 목적을 둔 사람들도 그 이면에는 북한 및 남북관계의 변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미래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결코 남북 교류협력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03
북중 접경지역을 교류협력에 활용한 다섯 가지 사례들
- 관찰자
먼저 ②번 관찰자들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로는 학자들은 물론 학생들이나 기업인이 모두 포함된다. 폐쇄사회인 북한의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제한적이지만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의 북한지역의 변화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기 혹은 부정기적으로 이 지역을 답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조선족동포들이 주도하는 중국측과 남북한이 연계한 학술회의 등도 이 범주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과 중국이 연합해 개최하는 많은 학술회의들 중에서도 ‘두만강포럼’을 손꼽을 만하다. 한국의 최종현학술원(한국고등교육재단의 국제학술사업을 2019년부터 승계)과 중국의 연변대학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두만강포럼은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여러 나라들 간의 교류와 협력을 주제로 2008년 이후 올해까지 12회에 걸쳐 이어져 왔다. 2019년 올해는 연변대학 설립 7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9월에 성황리에 개최됐다.
3) 「프레시안」, 2019.1.25
4) 「프레시안」, 2019.1.27
연구단체나 학생들이 일정한 연구목적을 가지고 이 지역을 방문하는 경우도 흔한데 연변에 살다보면 자주 접하게 된다. 하나누리 동북아평화연구원은 공식 출범에 앞서 동북아의 평화와 경제협력을 모색하기 위해 북중 접경지역을 답사(2019.1)했다. 답사 후 조성찬 원장은 「프레시안」에 실은 기고문에서 “남북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선 동북아의 평화와, 상호 경제협력을 통한 상생발전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느꼈다”3)며 관찰자로서 답사의 성과를 평가했다. 그는 또 기고를 마무리하면서 “그 어떤 지정학적·지경학적 이유도 우리 안에 깊이 내재된 '연결에 대한 욕구'를 억제하지 못한다. 우리의 삶은 이어져서 어울려 살아야 한다. 이러한 내적 성찰이 이번 기행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4) 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 협력자
③번 유형인 북중 접경지역에서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꾀하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는 사람들이나 NGO는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기 전까지 지속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휴전선을 통해 북한에 접근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북중 접경지역이 북한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람들(또는 NGO)이(가) 북중 접경지역을 찾는 것은 한중 수교가 이루어진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관심사는 다양하다. 북한 주민들의 어려움을 돕기 위한 필요한 물자 지원, 지원체계 구축을 위해 현지 관계자들과 관계 맺기, 북중 접경지역에서 떠도는 북한사람들을 통해 북한 실정 살피기 등등.
북중 접경지역에서의 NGO들의 활동 중에는 정토회가 운영해 온 ‘좋은벗들’이 1990년대 후반 먹고 살 길을 찾아 이 지역으로 탈출한 꽃제비 등 탈북자들을 돕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자료를 엮어 책으로 펴내 사회적 관심을 유발한 사례를 들 수 있다. 좋은벗들은 우리민족서로돕기 불교운동본부에 참여하면서 북한 주민의 인권에 관심을 가졌는데 북한이 ‘고난의 행군’으로 명명할 만큼 극심한 식량난을 겪던 1997년부터 북중 접경지역에서 북한의 식량난 실태와 인권 상황에 대해 조사를 벌인 후 북한에 300만 명 이상의 아사자가 발생했다고 주장해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이 시기 북중 접경지역을 통해 중국으로 탈출한 북한사람이 30만 명에 이른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좋은벗들은 또 탈북자 등의 증언을 토대로 ‘북한 주민들의 사는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북한주민들의 인권 실상을 생생하게 전하기도 했다.
- 기업
북중 접경지역엔 중국 다른 지역에 비해 한국기업이 상대적으로 적다. 한국의 8배에 가까운 넓은 중국 동북지역 중 요녕성의 심양과 대련 등지에 일부 한국 대기업들이 진출해 있지만 길림성과 흑룡강성 지역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따라서 ④번의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며 선투자하는 기업들 또한 드물다.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북한으로 들어가는 중국측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요녕성 단동(丹東)에 진출한 SK 네트웍스와 길림성 훈춘(琿春)에 위치한 포스코현대국제물류유한공사를 들 수 있다. POSCO그룹과 현대그룹이 공동 투자한 국제물류단지는 북한으로의 진출을 위한 기반 조성 차원에서 약 45만 평의 부지를 훈춘시로부터 50년간 장기 임차해 2012년 9월에 착공됐다, 현재 제3기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는 가운데 라선항 개발이 지연되면서 이 회사 역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멀지 않아 북한의 변화가 본격화된다면 이 회사의 위상과 역할은 크게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04
북중 접경지역 활용 위한 중국과의 협력관계 구축 중요
북중 접경지역에는 한 때 많은 한국인들이 거주하였으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북한과 직간접적인 거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장기화되고 중국측이 접경지역에 대한 경계를 강화한 데 이어 한국의 5.24조치가 지속됨에 따라 한국인이 북한을 상대로 거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이다. 북중교역의 80% 이상을 차지한다는 단동지역에는 한 때 수천 명의 한국인이 살았고 그 중 적지 않은 사람이 직간접적으로 북한과의 교류협력 사업에 참여했지만 이제는 단동에 거주하는 사람이 1천명도 채 안 된다고 한다. 현실을 냉정히 진단하면 400~500명도 안 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정은 연변지역도 마찬가지다. 연변지역에는 많을 때 한국인 수가 1만 2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요즘은 아무리 많게 잡아도 4천여 명도 안 될 것이라 한다. 물론 이 지역에 사는 한국인이 모두 북한과 사업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북중 접경지역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수도 크게 줄었고 한국인이 북한과 관련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는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북중 접경지역에서 ⑤번 유형인 북한과 직접 거래를 위한 한국인 사업가들은 찾기 어렵다. 조선족동포들과 미국 등 외국 국적을 가진 동포들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편하게 북중 접경지역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갈 수 있는 곳은 북중 접경지역의 중국지역이다. 휴전선을 통한 북한지역으로의 접근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중 접경지역을 남북 교류협력을 위한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이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의지가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국과의 협력관계 구축을 통한 윈윈(win-win)전략을 세워야 한다. 크게 보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이지만 NGO를 비롯한 민간 영역에서도 적극 거들어야 한다. 즉 정부는 정부대로 민간은 민간대로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제 몫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협회의 공식적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