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을 돌아보고, 2020년을 바라보다.

정리 권지연 교류총괄지원팀 대리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여전히 무거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추운 겨울인 2019년이 가면, 따뜻한 봄 2020년이 올까. 비록 우리의 시선은 뒤를 돌아보지만 발은 여전히 앞을 향해 있어야 할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더 잘 걸어 나갈 수 있을까. 염려와 고민, 그리고 아쉬움을 신년좌담회를 통해 풀어보았다.

사회


공용철

KBS PD

좌담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최혜경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운영위원장


김용규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교류협력지원실장

공용철

2018년의 온풍이 언제 그랬냐는 듯 2019년은 한랭한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국제 대북제재 국면 속에서도 남북협력의 가능성으로 계속 거론되었던 금강산관광마저 요원해지는 현 시점에서 북한은 남한과의 교류협력에 대해 완전히 여지를 두지 않는 모양새인데요, 각 참석자 분들께서는 2019년 남북교류협력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양문수

2019년은 꽤 희망을 가지고 출발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절망까진 아니겠으나 먹구름이 드리웠습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의 합의들을 실천하는 것이 곧 교류협력의 중요한 동력이었는데, 2019년 2월 하노이회담의 불발로 합의를 거의 실천하지 못하게 되었죠.

개성·금강산관광사업 정상화, 동해관광특구, 서해경제공동특구, 남북철도·도로분야 협력 등 큰 틀에 대해 합의는 이뤘지만 실천을 위한 세부 논의는 시작조차 못했습니다. 남북 간 합의를 이행하지 못하면서 북한은 자신들의 고조된 불만을 높은 수위의 비판으로 표현해왔고, 끝내 금강산 관광 시설 철거 통보에 이르렀습니다. 금강산관광 이슈도 지금이야 소강상태이나, 여전히 불씨가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2019년은 남북관계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해온 해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2016년 개성공단 중단 이후가 최악인 줄 알았는데, 2019년 연말에 와서 보니 지금이 더 최악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안타깝기만 한 상황입니다. 

공용철

그동안 남북관계를 보면 정치·군사적으로야 꾸준히 기복이 있었으나, 사회문화교류나 대북인도지원은 이와 무관하게 이루어져온 특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엔 정치 부문에 완전히 종속된 것은 아닌가 하는 평가도 나옵니다. 최혜경 위원장님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최혜경

대북인도지원 단체의 실무자이자, 단체 연합회 운영위원장 입장에서 한 해를 돌아보며 자기반성을 겸해 2019년을 평가해 보려고 합니다. 사회자 말씀대로, 정치적 부침에 사회문화나 인도지원 분야가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특히 2019년에 있어 가장 안타까운 건, ‘기존의 룰이 적용되지 않은 한 해’였다는 점입니다. 보통 남북관계가 경색되더라도 민족 동질성 회복이나 관계 증진을 위해 진행되는 사회문화교류 사업이나, 인류애적 정신을 기반으로 추진되는 대북인도지원·개발협력 사업들은 어느 정도 유지되면서 남북관계의 모멘텀을 만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2019년은 전혀 이 룰이 작용하지 않았던 것이죠. 

정부도, 그리고 민간도 생각만 너무 많았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남북교류협력의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다가 실제 행동, 구체적 실천은 하지 못했다고 씁쓸한 마음으로 자평합니다. 적극적으로, 주체적이지 못했습니다.

정부에 대해선 ‘이 정도로 아무것도 안 할 거면, 2018년에 왜 그렇게 많은 합의를 했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국제대북제재를 당연히 지키고 따라야합니다. 하지만 남북 간 민족문제, 예를 들어 이산가족 상봉이나 민족역사연구 등 특수성을 강조하며 남북 간 교류협력의 필요성을 더 적극적으로 피력했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조심스럽게만 접근한 것 같습니다.

민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북인도지원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서로 다른 시각을 모아내기 위한 적극적 담론 제시 등 아젠다 메이킹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이 한계를 보였습니다.

또한 2019년 김정은 위원장의 육성 신년사 등 남북 교류협력사업에 대한 북한의 적극적 의지를 읽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협력 분야에 종사해 온 우리 또한 정치적 시각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었다고 봅니다. 2018년 남북관계가 개선되며 교류협력 담론이 당국 간, 즉 톱다운(top-down)으로 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해 시민사회는 우려를 표했습니다. 북한도 이 톱다운 방식을 선호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과 교류사업을 해봤다는 지난 시간의 경험이 북한의 사업 방식을 이해하고 있다는 미명 아래 ‘북한 사업단위들도 이런 상황에서는 움직이지 못할 거다’하고 넘겨짚고는 새로운 시도하기를 주저한 점이 많았죠. 과감한 시도를 스스로 옭아맨 것이 참 아쉬운 2019년입니다.

그러나 2018년 마련된 남북관계의 진전을 계기로 남한 내 시민사회의 여러 분야, 예를 들어 환경, 평화, 청년 등과 같은 시민사회 단체들과 2019년에 폭넓은 협업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공용철

남북교류협력의 객관적 현황이 바로 방북허가증이나 물품반출입과 같은 통계일텐데요, 김용규 실장님께서 18년에 비해 19년에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용규

2018~2019년 간 주요 통계지표인 방문현황, 물자반출입(교역)현황, 인도지원현황을 비교하여 설명드리자면, 2018년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사회문화교류가 주를 이루며 총 7,498명이 방북·방남했지만, 2019년은 11월말 기준 방남은 한 명도 없고, 2월 6.15새해맞이 행사, 10월 월드컵 축구 예선전이나 아시아남여역도선수권대회 등 일부 사회문화교류차원의 방북과 개성공동연락사무소 관리운영인원 방북 등 총 1,464명에 그쳤습니다.

방문현황(명)

구분

2018

2019

방북

6,689

1,464

방남

809

-

합계

7,498

1,464

교역액(백만불)

구분

2018

2019

반출

21

7

반입

10.2

0.2

합계

31.2

7.2

인도지원액(억원)

구분

2018

2019

당국

12

95

민간 (단체 수)

65(13)

136(8)

합계

77

231

(2019 년 11월 말까지)

교역은 5.24조치 이후 개성공단을 제외하고 거의 이뤄진 것이 없었지만 2018년에 비상업적 거래이긴 하나 개성공동연락사무소 및 이산가족면회소 시설 개보수 관련 반출입이나 당국·민간차원의 인도지원 사업으로 인해 총 3,100만 달러의 교역액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2019년은 개성공동연락사무소 운영자재나 소모품 등이 주를 이뤘고 NGO에서 지원한 의약품 등을 포함해도 총 700만 달러에 불과했죠.

인도지원 분야는 외형상 실적만 놓고 보면 19년 실적이 향상된 것으로 보입니다. 18년의 경우 당국차원의 산림병해충방제 약제지원, 민간차원의 의약품·분유·밀가루·콩기름·농자재 등 총 77억원이 지원되었습니다. 19년도에는 당국차원에서 이뤄진 WFP(세계식량기구) 모자보건사업과 유니세프 영유아지원사업, 민간차원의 실적을 포함 231억원에 이릅니다. 그러나 NGO 단체들의 인도지원사업 참여 수를 보면 8개 단체로 18년도 13개에 비해 줄었습니다. 그만큼 민간 차원의 대북지원 사업 추진이 여러 가지로 어려웠다는 방증입니다.

2008년 이후 지난 정부 기간 중에는 북한이 남북협력사업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나오더라도 주로 정부가 이런 저런 이유로 통제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회담의 결렬 여파는 남북관계를 직접 타격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취약 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거나, 사회문화교류 사업은 정치·군사적 상황과 관계없이 진행하겠다고 피력하고 있지만, 오히려 김정은 위원장은 민화협이나 민경련 등 대남 기구들의 활동을 전면 중단시킴으로써 남북관계를 평창올림픽 이전으로 돌려버렸죠.

인도적 지원을 위한 대북 물자제공도 지원물자에 따라 UN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이하 ‘1718위원회’)의 면제 승인이 있어야 가능한 상황이고, 2018년에 모처럼 재개된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나, 개성만월대발굴사업 등도 북한 민화협이 활동을 중단하면서 개점휴업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2018년이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를 견인했다면, 2019년은 북미관계에 남북관계가 끌려간 양상을 띠었다고 생각합니다.

공용철

남북교류협력에 대해 정부 정책이 적극적 추진 내지 발전 도모에 그 입장이 있다는 것을 상수로 둔다면, 북한이 변수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실제 2017년 북한은 긴장을 고조시켰다가 2018년 연초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화해무드로 돌아섰다가, 또 2019년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대남사업단위들의 활동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하는 등 남북협력의 흐름을 좌우했습니다. 북한의 드라이브가 남북교류협력에서 주효했던 모양새인데요, 그렇다면 북한의 입장을 좀 알아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최근 들어 북한이 왜 남한과 거리를 두는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북한 내부 사정에 대한 평가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양문수

대북제재가 본격적으로 작동한 것은 2017년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북한이 받는 충격도 더 커지는 구조죠. 접근성의 한계를 감안하고 인용하자면, 한국은행이 발표한 북한 경제성장률은 각각 전년대비 2017년에는 –3.5%, 2018년은 –4.1%를 기록했으나, 2019년은 마이너스이긴 해도 그 수치가 상대적으로 18년보다 줄어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북한 GDP 성장률


국제대북제재는 북한의 기존 수출길 90% 이상과 핵심적 원부자재와 기계·설비에 대한 수입을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그렇게 제재가 실행되면 북한의 대외수출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외화보유고가 감소하며, 자연히 북한 지도층 수요에 필요한 품목에 대한 수입도 줄어 압박을 한다는 구상이죠. 2019년 초에 일각에서는 빠르면 연내에 북한의 외화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낼 거라 예측하기도 했지만, 막상 1년을 지나고 보니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18년도 북한의 대중수출은 전년대비 88%, 대중수입은 33% 감소해 수출입이 모두 감소했습니다. 그러나 19년도 들어와서 완전 바뀌었습니다. 수출의 감소세가 멈춘 것입니다. 19년도 1월부터 10월까지 통계를 보면, 대중수출은 1.4% 증가했고, 더 특기할만한 점은 대중수입이 전년 동기 대비 16.1% 증가한 것입니다. 북중 무역을 통해 제재가 주는 충격을 일정 부분 완화한 것이라고 분석 가능합니다. 다만, 이러다보니 중국에 대한 대규모 무역적자가 발생합니다. 2018년도에는 20억 달러를 기록했는데, 2019년에는 최소 비슷하거나 더 증가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북한 정도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에서 무역수지 적자 20억 달러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중수입을 줄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대북제재 초반에 예상한 것처럼, 즉 수출을 제한하면 외화가 바닥나서 수입도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아직은 맞지 않은 것이죠.

그렇다면 수출이 아닌 다른 형태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합니다. 해외파견근로자나 관광수입 등이 그 예겠죠. 그 외 불법적인 행태들도 존재할 겁니다. 그리고 확실히 몇 번의 북중정상회담 이후 북중 접경지역에서의 단속이 느슨해진 점도 있습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대북제재를 이행하고 있으나 두 나라 간 관계 변화로 비공식적 무역에 대해서는 예전보다는 단속이 덜하지 않겠냐는 것이죠. 그렇게 막힌 수출길을 일부 상쇄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공용철

최근 북한이 인도지원, 특히 취약계층 지원과 같은 제안에 ‘공화국 이미지를 훼손한다’거나 ‘우린 그렇게 못살지 않는데 왜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취급하느냐’ 등 성명을 내기도 합니다. 2017년 이후 제재가 심화되었는데도 북한 주민들의 의식주는 더 나아졌다는, 특히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나 연구에서는 먹는 부분에서 개선이 있음이 눈에 띄기도 했고요. 북한 주민들의 의식주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있다고 한다면 인도협력의 접근방법도 바뀌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가요?

양문수

주민생활 수준이 국가경제 수준과 궤를 같이 하는 부분도 있지만 아닌 부분도 있습니다. 예전에도 북한의 계획경제가 균열되거나 불안정해지면 시장이 어느 정도 보완 역할을 했었습니다. 최근 북한은 ‘자력갱생’을 강조하는데, 이는 시장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북한이 외부세계에 대한 ‘자력갱생’을 주장한다고 보이지만, 북한 내부적으로는 국가가 주민들에게 자력갱생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으로 읽힌다는 겁니다. 개인, 가족, 기업소 등 개별 경제주체 차원에서 알아서 생존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주민 간 경제조건에 편차가 커집니다. 제재로 인해 유입 자원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제재의 직접적 충격을 받는 부문과 아닌 부문, 예를 들어 광산이나 수산물 분야는 직격탄을 맞았지만 잡화나 의류 등 임가공 수출은 오히려 급격히 증가하는 것이죠. 제재 국면이기 때문에 더 사정이 나아지는 지역도 있을 겁니다. 금이라도 생산되는 곳이면 오히려 지금 같은 상황에서 확실한 부를 창출하는 식입니다.

북한의 시장이 발달하면서 제재로 인해 직접 영향을 받는 부문의 사람들도 기업소를 떠나 큰 도시의 일용노동자로, 또는 접경지역에서 보따리무역 등에 종사하며 생계를 해결합니다. 직장을 잃어도 자구책을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죠. 다만, 아주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고서는 본래 소속으로 일할 때만큼 소득 수준을 회복하긴 쉽지 않을 겁니다. 결국 전반적으로 놓고 보면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이 좋아졌다고 하긴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히려 나빠지는 쪽이겠죠. 다만 예상만큼 악화되지 않을 뿐이겠습니다.

공용철

최혜경 위원장님께 질문 드립니다. 방금 전 2019년도 평가에서 적극적이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북민협 차원에서 또는 민간지원단체 차원에서 북과 접촉면을 계속 가져 오셨을 거 같은데요, 민간 영역에서 이뤄지는 남북교류에까지 북한 당국이 제한을 두는 등 냉랭하게 돌아선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최혜경

2000년대 초반 남북관계가 한참 활발할 때, 소위 두 걸음 내딛을 수 있을 때 우리도 한 걸음 또는 반걸음만 가도록 정부 당국에서 민간 차원의 페이스 조절을 요청하기도 했었습니다. 북한도 지금 그렇다고 봅니다. 위에서는 남한 정부가 합의된 사항을 지키지 않는다는 등의 비판과 함께 남한과 교류협력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데, 밑에서는 계속 인도지원이나 사회문화교류 사업을 추진한다면 일관되지 않은 시그널을 준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특히 2019년 하반기로 갈수록 북한이 우리를 비난하는 강도도 세졌는데, 더욱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전략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공용철

김용규 실장님께서는 18년도는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를 견인했지만, 19년도는 그 반대였다고 하셨습니다. 북한과 미국 양 쪽을 바라만보다 한 해를 보낸 건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실무 현장에서 느낀 소회는 어떠셨는지요?

김용규

현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에서 진전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두 지점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2018년 9.19 평양공동선언 합의 직후, 또 하나는 2019년 1월 김정은 위원장 육성 신년사 직후였습니다. 9.19 선언에서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의 우선 정상화’에 대한 합의가, 1월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는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는 재개에 대한 용의’가 있었죠. 하지만 이 두 지점에서 너무 많은 고민을 하다가 다소 실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 뒤 국제 대북제재 강화와 한미실무워킹그룹 등이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면서 남북교류를 풀어갈 여지는 더 좁아졌습니다. 어쩌면 북미 양쪽을 바라만 봐야 하는 현 상황은 예견된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협회 사업 추진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남북교역 재개 등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각 분야별 실무분과위원회 구성이나, 북한 상품전람회·투자설명회에 참석해 북한의 경제개발 추진 방향을 파악하고 이에 대응하려는 사업 등을 계획했으나 경색 국면으로 실천하지 못했던 점이 아쉽습니다.

공용철

문재인 정부 초기에 민간 영역의 교류를 포함해 정부가 남북관계를 너무 독점한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북민협이나 또 남북협회 등 민간 영역이 좀 더 주도해 갈 수 있는 여지는 없었을까요? 북한이 워낙 문을 걸어 닫고 있어서 어려웠을까요?

최혜경

서두에서 말씀드린 자기반성을 다시 한 번 하게 됩니다. 대북인도지원 단체의 존재 목적은 인도지원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새로운 시대가 왔고 그래서 새로운 방식으로 남북교류협력을 추진해야 한다’라는―물론 마땅히 고민하고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 명제지만―생각에만 너무 치중해 그 ‘새로운 무엇’만을 고민한 것 같습니다. 과거처럼 빈번한 만남 속에서 북한과의 충분한 협의를 하며 이 명제를 고민했다면 상관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남북관계 경색으로 우리 안의 고민으로만 남아있게 됐죠.

일시적인 경색 국면일거라 생각한 점도 컸습니다. 곧 열릴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해온 물자지원과 같은 대북인도지원 또한 북한이 받지 않는다 혹은 제재면제 승인이라는 허들을 넘어야 한다는 이유로 다소 소극적으로 대했습니다.

북한은 이제 자력갱생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더 이상 단순 물자지원으로 대북인도지원 단체들과 만나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도지원의 역학구조가 바뀐 것이죠. 이 바뀐 역학구조를 잘 다뤄내면서도 전통적인 인도지원도 계속 결합시켜 사업의 흐름을 이어갔어야 하는데, 이를 주도하지 못한 점이 뼈아픈 반성으로 다가오는 19년도였습니다. 

공용철

일국(一國)의 카드였던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이 국제사회의 카드가 되면서 우리 정부가 시도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중국은 개별관광 등은 허용하는 등 제재 준수 상황에서도 여지를 두고 북한과의 관계를 대했는데요, 제한적 범위라도 우리가 좀 더 시도해볼 여지는 없었을까요?

양문수

두 가지 점에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첫째는, 4.27 판문점선언이나 9.19 평양공동선언이라는 남북 간 합의에 국회 비준 동의를 받지 못한 점이죠. 여야 간 합의가 어려운 상황이긴 했습니다만, 결국 국가 전체 의제로 설정되지 못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남북관계 진전 초반에 교류협력의 분권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현실적으로 민간단체나 지방자치단체가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자율적으로 추진하는 데 있어 큰 권한을 갖지 못했습니다. 초기에 좀 더 분권화를 중점적으로 추진했다면 당국 차원에서 잘 안 풀릴 때 민간 주체들이 끌어가고 거기에 어느 정도 편승하면서 숨고르기를 할 여지를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다보니 지금 와서 개별관광 추진을 정부 차원에서 할 수도 없고, 민간에서 하자니 경색된 남북관계와 고조되는 군사적 긴장으로 관광객 신변안전 보장도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공용철

남북협회가 주도적으로 정책을 수립하진 않지만, 일각에서는 민간과 정부를 연결하는 다리로서 좀 더 주도적 역할을 했어야 하진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협회도 여러 노력을 기울이셨을텐데 19년 남북협회의 업무 수행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김용규

그 점이 참 아픈 부분이죠. 현재의 위·수탁 계약 구조 하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상당한 벽이 됩니다. 또 가교 역할 말씀하셨는데, 민관 사이 다리를 놓기 위한 재료가 있어야하는데, 남북교류협력이 거의 이뤄지지 않다 보니 거기서도 별로 확보된 것이 없었죠. 마땅히 비판에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회에서는 교류협력을 추진해 나갈 주체들인 민간단체나 지자체 등을 대상으로 정책 지원, 네트워킹을 통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 교류협력의 추동력을 만들기 위해 인적 역량 강화 프로그램인 아카데미나, 의제 설정 및 논의를 위한 세미나, 전문가포럼 등을 통해 환경을 조성하고자 애썼습니다.

특히 2019년 7월 이후 지방자치단체들이 대북인도지원의 주체로 공식 등장하면서 원스톱 서비스 체계를 구축하고, 권역별 설명회나 지방순회 교육을 통해 정책의 구체적 내용을 전달하고 수요에 맞는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원스톱서비스를 수행하고 있는 남북교류협력 종합상담센터는 개소 이후 200여 건의 민원상담과 컨설팅을 진행했습니다.

대북지원사업에서는 국내 민간지원단체의 대북제재 면제승인에 일정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총 3개 단체가 1718위원회에 대북인도지원을 위한 제재 면제승인을 신청했고, 이를 지원해서 2개 단체는 승인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말씀드린 바대로, 우리 협회가 남북교류협력에 있어 제대로 된 역할을 하려면 법적 안정성 확보를 통해 활동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 이번 국회에서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어려웠습니다. 다음 국회에서라도 성과를 내기 위해 계속 애쓰려고 합니다.

공용철

2020년 전망을 해보겠습니다. 각 분야의 전망이나 추진 방향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양문수

어느 시기인들 안그랬겠습니까만, 경제협력은 정세의 영향을 아주 크게 받습니다. 지금으로선 정치적 상황이 쉽게 좋아질 것 같진 않고, 일부에서는 아예 상황이 끝났고 서로 갈 길을 가야한다는 분석도 있을 정도입니다.

초미 관심사인 금강산관광 시설에 대한 철거 문제는, 북한이 행동으로 당장 나서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5.24조치 이후 만 10년이 흐르는 지금 시점에서 시간이 갈수록 우리 내부의 인적·물적 인프라의 내구성도 소진될 수밖에 없습니다.

최소 숨통이라도 틔우자는 차원에서 개별 관광이나 인도지원사업 등을 통해 남북 간 인적·물적 자원이 오고갈 필요는 있습니다. 이를 정부 스스로는 못해도 민간차원에서라도 대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건 어떨까 합니다.

최혜경

김정은 정권의 등장 전후로 북한은 인도지원이라는 수직적 관계 대신 인도협력, 즉 수평적 관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거 고난의 행군 시기와는 다른 북한의 경제 상황을 고려해 2015년부터 국내 대북지원단체들은 북한과 기존 긴급구호와 같은 단순 인도지원과는 다른 형태의 인도분야 협력방안을 논의해 왔습니다. 이후 남북관계 악화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2018년 판문점 선언 이후 지속가능한 개발협력 차원으로 실제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죠. 예를 들어 사회적경제 시스템을 북한의 실정에 맞게 변용해 초기 협력이나 지원을 통해 일정 수준까지 다다르면 북한 내 지역 자체 생산품 등을 통해 물자를 조달해 스스로 순환할 수 있는 구조로 사업을 꾸려가는 식입니다.

앞으로 인도지원사업은 더 전략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시혜적 인도지원이 아닌 상생협력에 대한 북한의 지속적 요구가 있는 상황에서, 남북 공동 상생을 위한 사업을 하는데 그 세부 내용 중 하나로 취약계층에 대한 물자를 지원하겠다는 것과, 그저 사업 자체가 취약계층을 위해 물자를 보내겠다는 것이 있다면, 받는 입장에서 당연히 후자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또 우리 스스로 경계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봅니다. 북미관계가 해결되면 자연스럽게 시차를 두고 남북관계도 풀려갈 것이라는 막연한 긍정을 하고 있진 않은가 합니다. 그러나 2019년을 지나며 북한의 속내도 달라졌다고 평가합니다. 남한이 전혀 움직임이 없는 것에 몹시 실망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설령 2020년 북미관계에 진전이 있더라도 남북관계가 함께 풀릴 거라고 보지 않습니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 등 북한도 남한과의 사업은 언제든 내부 사정으로 중단될 수 있는 불안정한 사업으로 평가하진 않을까요? 민족의 공영·공존이라는 특수성에 기반했더라도, 남한의 사업 주체들은 이제 여러 선택지 중 하나, 즉 ‘one of them’의 상황이 이미 도래한 것은 아닌가 합니다.

이제 한 개별 민간단체에서 대북인도협력 사업을 수행하기엔 패러다임이 변했습니다. 긴급구호와 같은 인도지원 사업은 한 단체가 처음과 끝까지 수행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제 개발협력 측면에서 접근하면 여러 단체의 컨소시엄이나 지자체와의 협력 구조로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성에 대한 요구도, 비용에 대한 요구도 커졌습니다. 그래서 2020년은 트라이얼(trial), 소위 ‘베타테스트’ 기간으로 삼아야 될 것 같습니다. 북한 내부 상황의 변화, 그리고 대북인도지원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정서도 많이 바뀌었기에 여기에 맞는 새로운 대북인도협력 사업을 대가를 들여서라도 새롭게 부딪히며 찾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신뢰할 수 있으며 사업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북한의 파트너를 찾고 사업모델을 발굴 할 수 있습니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이건 곧 실패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일하는 것이며, 또 외부에 대해서는 이 실패를 용인해 달라는 요청이기도 합니다.

공용철

마지막으로 올해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에 바라는 점이나, 또 협회의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용규

2019년 추진 사업에 대해 설명 드리면서 아쉬웠던 점으로 꼽았던 법적 안정성 확보가 2020년의 당면 과제라 하겠습니다. 당국 간 합의사업의 이행기구로서, 또 효율적 남북교류협력을 지원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죠. 안정적 조직 운영을 위한 추가예산 확보와 인력 증원도 절실한 과제입니다.

2019년 12월 17일자로 통일부로부터 남북교류협력시스템 운영과 관련한 제반 업무를 우리 협회가 이관 받았습니다. 즉 지자체·단체·기업 등의 민원신청을 소관부서별로 분류하고, 북한주민접촉신청이나 방북신청, 차량 등 운송장비 운행신청 등의 업무를 협회가 총체적으로 담당·지원하게 된 것입니다. 이 업무들이 차질 없이 수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외에도 지난 9월 개소된 종합상담센터 운영업무와 남북교류협력의 원스톱서비스 제공에도 힘쓸 예정입니다. 또 북중접경지역의 중요성을 감안, 중국 단둥에 협회 사무소를 개소·운영하는 문제를 19년도에 검토했는데, 이를 실현하는 문제도 보다 구체화해 나감으로써 남북교류협력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합니다.

최혜경

민간단체 입장에서는 인도협력 분야에서 협회가 전문적 역할을 충분히 해 주고 있다고 봅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사업 추진의 제약조건은 그대로였는데, UN 제제면제 승인 신청 지원과 같은 구체적인 일들을 협회에서 지원하고, 특히 현장을 찾아가는 등 민간단체의 사업 자체를 이해하고자 노력을 기울이신 점을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점을 살려 협회가 전문성을 더 많이 확충해 갔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UN 대북제재면제 승인 신청에 있어 다른 부처보다는 통일부가, 또 민간과 대면하는 남북협회가 더 깊게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닐까요? 협회 직원이라도 UN에 파견해서 면제승인 업무를 지원해주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또 남북협회는 인도분야 뿐 아니라 남북교역·경협 분야 기업들과도 오랜 시간 네트워크를 구축해왔으니, 이를 적극 활용하여 허브로서 남북교류 각 분야 주체들을 연결시켜 주고, 집약해 내는 사업도 추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양문수

김용규 실장님께서 말씀하신 법적 안정성 확보나 예산·인력의 확보와 같은 당면과제는 가장 기초적인 요건입니다. 여기에 올해 꼭 좋은 성과가 있음을 전제로 하고 협회는 사회적 기능을 해 나가길 당부하고 싶습니다.

지금과 같은 인적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이나 세미나와 같은 의제 형성 과정은 다른 기관에서도 진행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남북교류협력의 플랫폼으로서 정말 국민들의 관심을 끌어내고, 또 관심 있는 주체들을 계속 모이게 하고 내실 있게 다지도록 하는 일 등에 협회가 중장기적 사업 추진의 방점을 두어야 합니다.

남북관계가 재개되면 정부가 주도하기도, 그렇다고 민간에 전부 일임하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각 플레이어들이 유기적으로 뛸 수 있도록 연결하고 조정하는 역할이 중요합니다. 대북사업의 특수성 상 폐쇄적으로 사업이 진행되며 정보 공유가 거의 되지 않곤 합니다만, 어딘가에는 정보가 모이고 파편화된 입장을 조율하는 중간고리가 필요합니다. 남북관계가 발전할수록 필연적으로 이 중간역할, 즉 플랫폼 기능이 정말 필요하게 되죠. 말씀하신 가장 최소의 조건인 법적 안정성 확보 이후 또한 면밀히 고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공용철

좋은 의견들을 주셨습니다. 남북협회가 여러 제약을 딛고 남북협력의 발전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내부에서 각고의 노력을 다해주시길 당부 드리며, 또 한편으로는 외부자의 입장에서도 관심과 지지의 목소리를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남북교류협력의 협력적 거버넌스 구축을 위해 남북협회가 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시고 성원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