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호부터는 남북교류협력을 비롯한 남북관계를 연구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고, 또 그들의 연구에 대해 직접 들어보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젊은 날의 치열한 고민과 새로운 성과들을 함께 만나보실까요?

뒤돌아보기북한사 연구에서 
남북한의료사 연구로

첫 번째 YOUNG, 김진혁 연구자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사학과 조교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진혁

약력

2009년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학사

2013년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석사

2015년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2015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간사

2016-2017년 미국 럿거스대학교(Rutgers, the State University of New Jersey) 방문연구학생

2019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사학과 조교

QUESTION 01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북한 역사를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은 북한이라는 곳을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한국현대사를 돌이켜 보면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혁신적 논의들이 북한과 관련이 있다거나 그런 의심을 받은 후 무너졌던 예들을 종종 발견하는데요, 반면 북한에 대한 이해와 그에 기반한 지식 생산은 국가에 의해 독점되었고, 이적 행위자로 규정되었던 이들조차 북한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었죠. 이후 북한을 이해하자는 운동에서부터 시작한 움직임이 보다 단단한 연구로 발전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간 중요한 학술적 성과물들이 나왔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못하고 북한은 지금도 언론에서 소재적으로만 다뤄지기 일쑤입니다. 국내외 언론들은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전문가들의 토론에서부터 지도자 부부의 패션 취향 분석까지 여러 층위를 넘나들지만, 여전히 북한은 현상적인 측면에서 불량국가, 테러국가, 비정상국가, 왕조국가 등을 전제하고 이야기되기 다반사입니다.

여기서 연구자로서 북한이라는 국가의 본질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북한이라는 나라의 성격에 대한 선학(先學)들의 이론적 논의가 있습니다. 가족국가론, 수령제론, 유격대국가론 등은 북한이 가지는 어떤 국가적 특징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만, 북한이라는 국가의 시스템까지 설명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았습니다. 근대국가로서 북한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에 대한 검토를 준거 지점으로 삼고, 다른 논의들로 확장‧연장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QUESTION 02

이후 연구는 어떻게 진행하셨나요?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 부합하는 연구를 석사논문(2013)으로 어떻게 표현해 낼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근대국가의 핵심적 기능 중 두 가지를 합법적 폭력인 공권력 행사와 건강한 인구를 유지·재생산하기 위한 보건의료행정의 실천으로 꼽고, 그 가운데 비합법적 영역과 합법적 영역의 구별이 어려운 치안행정 보다는 북한이 사회주의적 우월성을 자랑하는 분야이자 근대국가의 일반성에 접근하기 수월한 보건의료행정에 주목하기로 했습니다. 마침 모리타 요시오(森田芳夫)의 『조선종전(終戰)의 기록』(1964)에 대한 강독세미나를 통해 해방 직후 한반도에 만연한 전염병으로 많은 인구가 사망하였다는 사실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석사논문에서는 해방 이후 북한이 전염병에 대응하면서 위생방역행정을 재건하는 과정을 살펴보고, 그 일환 중 하나인 위생교육이 국가가 원하는 인민을 창출하는 과정과 맞닿아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하였습니다. 내용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해방 직후 일제의 퇴장으로 행정은 마비되었고, 해외에서 귀환자들이 급격히 들어오면서 1946년 콜레라가 빠르게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훈련된 의료인력이 부족한 북한은 소련의 도움을 받으면서 대처해나갔고,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전일적인 행정구조를 만들어갔습니다. 이 같이 위계화된 행정체계의 설치는 근대국가의 일면이면서도, ‘사회주의를 건설하던지, 아니면 이(lice)가 사회주의를 무너뜨리던지’ 둘 중 하나라는 레닌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사회주의국가가 가진 예방의학의 핵심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이 과정은 국가를 위해 복무하는 인민을 만들기 위한 위생교육을 동반하는 것이었습니다. 극단적으로 국가의 조치에 따르지 않은 이는 간첩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 논문은 한국역사연구회 북한사반 연구선배들의 큰 도움을 받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 과정에서 재미있는 문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역사는 결국 과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석사논문에서 구조나 체계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하다 보니, 마침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할 때 만난 그 문서는 북한의 의과대학 교수진들의 이력서와 자서전이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서 운용했던 정보부대는 북한에서 입수한 문서들을 미국 국립기록청(National Archives and Research Administration)에 보관해두었고, 다행히도 이런 문서들 상당수는 국사편찬위원회와 국립중앙도서관에 수집되어 연구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에 대한 분석은 분단 이전 의사들이 결국 북한 체제에 어떻게 결합되었는지, 즉 재북(在北) 의사들의 정체성을 검토할 수 있는 자원이었습니다. 마침 북한의 보건의료제도를 만드는 주역 중 하나였던 최응석에 대해 함께 검토하는 기회 또한 얻게 되어 연구논문 두 편을 공간(公刊)하게 되었습니다(2014; 2015).

한국전염병사(2018)

이후 박사논문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제가 학계에서 어떤 학문적 정체성을 가진 연구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동반되었죠. 북한사(北韓史)인가, 의료사(醫療史)인가라는 경계에서 어떤 공부를 저의 중심으로 삼을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실제적으로는 박사논문을 북한사로 쓸 것인가, 의료사로 쓸 것인가라는 문제와 겹치는 부분이었죠. 개인적으로 박사논문은 학계에서 돌파하지 못하는 과제를 해결하는 의미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북한 보건의료를 주제로 할 경우 해방 이후부터 1950년대까지 방대한 시점을 과연 다룰 수 있을 것인가가 난점이었습니다.

북한을 공부하는 연구자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문제는 자료였습니다. 1950년대부터는 북한에서 생산한 내부문서를 볼 수 없다는 점에서 1940년대와는 자료의 밀도 차이가 큽니다. 결국, 1950년대 소련이 생산한 보고서를 참고할 수밖에 없는데 과연 보건의료 관련 내용이 얼마나 충실한가하는 의문을 가지고 국내에서 접근 가능한 문서들을 확인해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니면 러시아 문서고에서 직접 찾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판단도 있었죠.

북한만으로 박사논문을 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무엇보다 어느덧 연구자로서 저의 정체성이 북한사보다 의료사 연구로 무게가 실리고 있었습니다. 북한사 연구로 공부를 시작하였지만 석사논문 이후로 의료역사연구회에서 의료사를 공부하는 분들과 같이 교류하면서 연구의 관심이 보건의료의 역사 연구자로 점차 옮겨갔습니다.

다행히 이 와중에 여러 경험을 폭넓게 할 기회를 얻으며 많은 연구자들에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 국내외 학술대회를 여러 차례 총괄실무(2015)하면서 인문사회과학 연구들의 관점을 엿볼 수 있었고, 미국 럿거스대학(Rutgers University)에 해외연수(2016-2017)를 하며 남북한 보건의료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며 새로운 연구방법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한국전염병사』(2018)를 공저하면서 1990년대 남한 전염병의 역사를 개괄하고, 북한의 전체시기 전염병에 대해서 정리해보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고려대학교 대학원생 국제학술대회(Korea University Graduate Student Conference)를 조직(Organizer, 2018)하고 총괄실무를 했고, 현재는 한국에서 의학사 연구의 핵심인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사학과에서 조교(2019~현재)로 일하면서 관련 연구의 최전선에서 연구활동을 돕고 이와 관련한 실무를 하고 있습니다.

박사논문을 본격적으로 써야겠다고 결심하고 준비하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제목은 「한국의료체계의 형성(1945-1960)」입니다. 북한을 공부하면서도 그렇다면 남한은 어떠했는가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남한의 의료사도 아직 정리되어야 할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현대의료를 설명하는 것은 남한만으로도, 북한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해방과 전쟁, 그리고 분단의 지속, 갈등과 대화라는 남북한 관계사 속에서 의료사를 이해할 때 한국현대의료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판단 속에서 서두를 떼고 논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집필 중이기 때문에 제 박사논문이 어떤 결과물이 될지는 아직은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남한 쪽 비중이 북한보다 높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남한 연구에 대한 정리가 필요해 작년부터 새로 만들어진 한국역사연구회 정치사회사 읽기반에 출석하며 남한사 공부에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QUESTION 03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박사논문의 초고를 쓰는 와중에 이렇게 스스로 점검하고 돌이켜볼 수 있는 지면을 너그러이 허락해준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박사논문이 완성될 2020년 말경에 다시 박사논문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허락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박사논문을 쓰고 난 후에 본인의 연구 분야를 입론으로 정리해본 이후의 일이라고 생각해서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북한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 중의 하나가 북한이라는 주제로 서로의 연구를 도울 수 있는 연구자들이 많이 있지만 학제 간 분류에 따라 교류하지 못하는 현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단 우려를 뒤로 미뤄두고 첫 주자의 영광을 안아봅니다.

이 지면이 단지 개인에 대한 소개뿐 아니라  남북한 의료의 역사연구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작은 단편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또한, 각자의 현장에서 연구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많은 이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건투를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