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끌어가는 ‘평화’라는
이름의 수레
- 주요 주체들의 역할을 중심으로
손종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국장
‘제3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2018~2022)의 구체적 이행을 위한
‘2020년도 시행계획’
통일부는 지난 4월 24일 ‘제3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2018~2022)의 구체적 이행을 위한 ‘2020년도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는 제3차 남북관계 발전 기본계획을 토대로 3차년도 계획인 2020년도 남북관계 발전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국회에 보고하였다”고 밝혔다. 통일부의 이번 2020년도 시행계획 발표는 2005년 제정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으로, 이 법은 남북관계 발전의 비전과 목표, 추진방향을 담은 5년 단위의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과 이에 따른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하도록 정하고 있다.
통일부가 이날 밝힌 2020년도 시행계획은 제3차 기본계획에서 정한 평화공존, 공동번영의 양대 비전을 바탕으로 △북핵 문제 해결 및 항구적 평화정착, △지속 가능한 남북관계 발전, △한반도 신경제공동체 구현 등의 3가지 정책 목표를 제시했다. 통일부는 이러한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기본 방향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을 위한 일관된 노력 경주, △남북관계의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한 창의적·현실적 방안 모색, △남북협력을 위한 국내외 기반 구축 등의 3가지를 잡았다.
위의 3가지 기본 방향에서 관심을 끄는 대목은 ‘남북관계의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한 창의적·현실적 방안 모색’이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남북 간 직접 교류가 거의 중단된 상황에서 현재의 경색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남북관계가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이 확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창의적·현실적 방안 모색’의 내용으로 ‘사람·가축 감염병 등 보건의료 및 방역, 재해재난, 기후 변화 등 비전통적 안보 분야에서의 남북협력 추진’과 ‘민간·지자체와 분권·협치 기반을 구축하고 남북중·남북러 협력을 적극 추진하는 등 교류협력의 다변화·다각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올바른 방향에 걸맞은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자, 그럼 이제 위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코로나19 : 대북보건의료
긴급지원 필요성 대두
우선 보건의료와 남북협력, 민간, 분권 등의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더해 국제사회와의 협력도 주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2020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를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데려다 놓았다. 이전에 그 누구도 겪어본 적이 없는 세계가 우리 앞에 와 있는 것이다. 물론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세계가 어떻게 다를지 아직 자세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코로나와 관련한 전 지구적인 협력이 더욱 절실한 이유다.
코로나19와 관련한 남북 간의 교류와 지원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문제다. 북측은 이미 중국에 코로나19가 발생하고 확산될 때부터 진단장비와 체온계, 방호복 등의 지원을 요청하고 나섰다. 외신에 따르면 북쪽의 검역 당국은 국제기구와 비영리단체에게 코로나19 진단 검사와 관련한 물품 지원을 긴급 요청하고 있다. “북쪽 당국은 코로나19 진단키트를 보유하고 있고 진단 능력도 갖췄지만 수량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국제기구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는 게 외신의 설명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그 어느 때보다 촘촘한 지금, 대북 인도지원의 주요한 주체들의 각 역할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져야 코로나19를 비롯한 보건의료 분야의 긴급한 수요에 대처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북제재 국면 하 대북 인도지원의 주요 주체는 누구인가? 바로 남북 당국과 UN, 그리고 민간단체이다. 이 네 주체 중 어느 하나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대북 인도지원을 추진하는 일은 상당히 어려워진다.
더 튼튼한 남북관계를 위해 주체 모두가 노력해야
우리 정부는 최근 코로나19와 관련해 손소독제의 반출을 승인한 바 있다. 손소독제의 경우 유엔의 대북제재에 저촉되지 않지만, 진단장비와 키트, 방호복 등을 북한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유엔의 대북제재 면제승인을 받아야 했다. 유엔 제재면제 신청과 국내 남북교류협력법 상 물자 반출 승인이 기본적으로 별개 과정인지라 그 규모나 역량이 열악한 민간단체의 경우 대북인도지원을 위한 과정이 녹록치 않다. 우리 정부가 절차의 간소화와 제도 개선에 힘을 쏟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어렵게 유엔 대북제재위원회의 제재면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코로나 19로 인한 북중 간의 국경봉쇄와 격리조치 등으로 물자를 북에 보내는 것도 쉽지 않다. 더욱이 현재 북측은 우리 정부나 민간단체의 직접적 인도지원 의지에 이렇다 할 호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 민족화해협의회나 민족경제인연합회 등 주요 대남사업 기구는 그 활동을 중단해 제대로 된 창구들이 모두 문을 닫은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북에 전달되는 인도지원 물자는 대부분 중개인을 통해 중국 대련에서 북의 남포로 연결되는 해로를 이용하는, 복잡한 경로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시간도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물류비용도 높아 민간단체들에게 부담이 된다. 과거 단동-신의주의 중국 쪽 육로뿐만 아니라 도라산에서 개성으로 이어지는 경의선 육로를 통해 물자를 전달하기도 했던 민간단체들은 지금의 상황이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남과 북을 잇는 주요한 통로를 다시 복원하여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없애는 데 있어 우리 정부의 노력 뿐 아니라 북측 당국 또한 적극적으로 응답해 주어야 할 것이다.
민간단체 또한 창의성과 유연성이라는 민간의 힘을 발휘해 나가야 한다. 정부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목표를 공유하는 파트너로서, 또 ‘분권과 협치’의 주요 축으로서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즉 당국만의 만남으로 추동하는 관계 개선이 아닌 다양한 주체들이 각 영역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여 나갈 때 남북관계의 뿌리 또한 더욱 단단하고 깊게 자랄 수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현 정부의 노력에 힘입어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가 여당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책임감으로 의회와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또한 민간의 창조적 접근이 폭넓게 수용될 수 있는 환경이 조속히 마련되길 소망한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는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우리에게 새로운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홍제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지난 4월 12일 북한 제14기 제3차 최고인민회의가 개최되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한국의 국회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 하지만 정부에 대한 견제 기능을 하지 못하며 당 중앙위에서 이미 결정된 사항에 대해 지지와 찬성을 표하는 정도의 역할만 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고인민회의가 우리 국회와 같은 역할을 실질적으로 수행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북한 전문가들은 매년 4월 개최되는 최고인민회의의 결과에 주목해 왔다. 주요 법령 재·개정 사항, 북한 당국의 정치·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 조직 인사 내용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와 경제목표 조정
이번 회의 결과에서 경제 부문과 관련해 가장 주목할 부분은 경제목표 달성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음이 공식적으로 언급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최고인민회의 하루 전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당 중앙위 정치국회의 논의 결과에서 더 명확히 드러난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 회의에서 “투쟁과 전진에도 일정한 장애”가 조성될 수 있다는 인식 하에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결정 관철을 위한 사업에서 일부 정책적 과업들을 조정·변경”하는 문제에 대한 토의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조정이 이루어진 결정적 요인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충격이다. 북한은 코로나19 유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1월 말부터 국경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는데, 이로 인한 중국 물자 수입 감소가 국내 생산 및 소비에 영향이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다른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감염 우려 때문에 주민들의 경제활동도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 충격 또한 상당할 수 있다. 그렇잖아도 2017년 하반기 한층 강화된 대북제재가 2년 이상 지속됨 속에 경제 여건이 악화된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온 코로나19의 충격은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결정 사항을 불과 3개월여 만에 변경토록 만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조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관련 보도 내용만으로는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코로나19와 관련해 채택된 공동결정서에 경제건설, 인민생활 안정과 관련된 구체적인 목표가 제시되어 있다는 것으로 보아, 경제 전반에 대한 목표의 수정·변경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바꿔 말하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충격이 경제 전반에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주요 건설 사업 일정이 조정·지연될 것으로 보이며, 상황이 장기화되면 수입 감소 및 생산 위축으로 인해 식량 수급, 생필품 공급 등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의 경제조직자적 역할 강조
회의 내용 중 경제 부문과 관련해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국가의 경제조직자적 역할 강화가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의 경제조직자적 역할’이라는 표현은 지난해 말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이번에 그 의미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국가가 “자원과 자금 원천을 전반적으로 장악하고, 나라의 경제를 통일적으로 관리·운영할 수 있는 자금력, 집행력을 확보”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대북제재,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가 경제 전반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의 경제조직자적 역할 강화가 곧 시장의 위축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 부문의 비중과 역할이 확대된 오늘날의 북한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시장 부문을 위축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시장 부문을 계획 부문에 편입시키는 조치를 더욱 확대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시대 들어와 북한은 시장 부문을 계획 부문에 편입시키는 조치를 취해 왔다. 기업이 스스로 생산 품목, 생산량 등을 정하여 비공식적으로 해 온 생산 활동을 ‘기업소 지표’ 도입을 통해 공식 영역으로 편입시킨 것이 단적인 예다. 이를 통해 북한 당국은 기업에 자율권을 부여해 생산 활동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비공식 부문을 공식 부문으로 흡수하여 국가의 경제에 대한 관리·통제를 강화하며, 과세 대상을 확보해 재정을 안정화하는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북한 당국이 시장 부문의 과도한 확대는 경계할 것으로 보이므로, 이러한 조치는 단계적·제한적인 형태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방역·보건협력 및 경제협력 여건 조성에 대비해야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남북교류협력을 비롯한 대남 정책과 관련된 언급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코로나19와 관련해 우리가 제안한 남북 방역협력에 대해서도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남북, 북미 간 경색 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교류협력을 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북한 당국이 아직은 자체 역량으로 코로나19에 따른 어려움에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충격이 단기간 내에 사그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북한은 강력한 대북제재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독자적으로 코로나 방역과 경제 위축 문제를 동시에 풀어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방역을 위해 국경을 계속 봉쇄하자니 경제 상황 악화가 우려스럽고, 코로나의 확산력을 놓고 볼 때 부분적으로라도 국경을 열기가 부담스러운 딜레마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북한은 주변국이나 국제사회에 지원·협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요청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 과정에서 남북 방역·보건·의료협력을 추진하거나 경제지원·협력에 관한 논의를 재개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북한이 호응하지 않는 가운데 교류협력 사업을 제안하고 추진하기보다는 북한도 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상황이 조성되고, 보다 열린 태도를 보일 때 사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차분하게 준비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래야 물실호기(勿失好機), 남북교류협력의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