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의 기억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

* 인터뷰 : 공용철 KBS PD·웹진 ‘이음’ 편집기획위원

* 정리 : 권지연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대리

역사적 첫 남북 간 최고 지도자의 만남. 바로 6.15 남북정상회담이 어느덧 20주년을 맞이했다. 이후 세 차례의 정상회담이 열렸고 그때마다 화해와 평화의 시대가 손에 잡힐 듯 했다, 곧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 같기도 했다. 20년의 시간이면 강산은 두 번 변했을테고, 사람은 어엿한 성인이 되었을테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여전히 안개 속에서 지난 20년 동안 걸어온 길을 막연히 되짚을 뿐이다.

6월 15일에 대한 기억이야 누구에게나 있겠으나 2000년 그 역사적 현장을 시작으로 네 번의 남북정상회담에 항상 함께 했던 이의 기억은 어떨까.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에서 만나 특별인터뷰를 진행했다. 6.15 남북정상회담 20주년을 맞는 소회부터 최근 남북관계에 대한 분석과 교류협력을 위해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에 대한 조언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시간으로 꽉 채워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6.15 남북공동선언이 곧 20주년을 맞이합니다. 특별수행원으로 6.15 정상회담에 참가하신 것을 시작으로 남북 간 정상회담에는 항상 특보님께서 계셨습니다.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사실 안타까움이 큽니다. 2000년 6월 15일 성남비행장에 도착했을 때나 2007년 10월 4일 밤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귀환보고대회를 가졌을 때 제가 가졌던 인상은 같았습니다. “평화가 목전에 왔다”라는 것이었죠.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그리고 9월 평양에서는 비핵화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까지 이뤄졌으니 평화와 공동번영의 새로운 지평이 드디어 열리는구나 했는데, 지금 이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남북 간 가능성은 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국내, 남북, 국제적 여건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이 마음을 모아 단합하고 지도자가 비전을 갖고 담대히 나가면 얼마든지 남북 간 평화, 공동번영, 통일은 이룰 수 있습니다. 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현장에 네 번 다 참석해 본 사람으로서 그 가능성을 아직도 굳건히 믿습니다. 

6.15 남북정상회담은 말 그대로 ‘최초’의 남북 간 정상회담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처음이다 보니 많은 것이 낯선 상황에서 회담이 진행됐을 것 같은데요.

오히려 첫 정상회담인만큼 더 철저한 사전 준비가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의 노고가 뒷받침 된 회담이었죠. 정몽헌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 일본기업인 요시다 다케시와 만나 남북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보고 제안한 것에서 시작해, 김대중 대통령께서 직접 특사로 발탁했던 당시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은 중국 상해, 싱가폴 등에서 북측 특사인 송호경(당시 아태 부위원장)을 만나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이후 국정원에서 당시 임동원 원장, 김보현 국장, 서훈 과장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는 등 역사적 회담을 준비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던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남북 정상 간 교섭의 장이자 이후 남북관계를 풀어갈 하나의 통로가 마련되었다는 것, 그리고 6.15 회담이 최초로 열렸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도 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 92년의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과 같은 공동의 합의는 있었지만 각각 총리급, 차관급이 합의한 것이었으니까요.

정상회담과 관련해 우리가 자세히 들여다 봐야할 점은 지금까지 회담에서 논의된 의제들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 아시다시피, 회담별 의제와 합의 결과의 패턴을 보면 6.15 남북공동선언은 1항에서 민족 자주적으로 통일문제를 해결해 가자는 선언에서 시작해 통일방법, 이산가족 해결문제, 경제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과 교류 활성화까지 남북관계의 총론을 제시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후 2007년 10.4 공동선언은 각론이라 할 것이며, 2018년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은 시행세칙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4.27과 9.19 선언은 비핵화, 군사적 신뢰구축, 종전선언, 한반도 평화체제 사안까지 다루고 있어서 남북관계가 6.15 선언 이전으로 퇴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화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6.15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 의의가 상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특히 정권에 따라 평가도 꽤나 달라져왔습니다.

정치 때문 아니겠습니까. 남북문제를 가치와 이념을 갖고 재단하다 보니 생긴 결과라고 봅니다. 사실 비핵화, 평화, 공동번영에 대해 보수든 진보든 다 공감하는 것 아닙니까? 소위 진보 정권이라고 해도, 군사안보에 대한 강조나 북한의 군사도발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입장은 공통으로 있어왔습니다. 평화, 비핵화, 안보 이런 가치들은 누구나 다 동의하고 찬성합니다. 가치나 이념 목표에 있어서 진보나 보수 간에 큰 차이가 있다고 보지 않다고 봅니다. 단지 방식의 차이입니다. 어떻게 목표를 혹은 가치를 달성할 것인가 하는 방법에 대한 의견 차이가 남남갈등의 원인이 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방향을 돌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결국 남북문제가 가치와 이념의 영역에 너무 몰입되어 있다고 봅니다. 상식과 역사의 순리를 외면하는 데서 오는 소모적 논쟁도 많습니다. 역사의 순리에 맞게, 또 상식에 맞게 대북정책을 펴면 이념과 가치 차이를 극복해 여야든, 보수 진보든 다 받아들일 수 있고, 또 북한도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갈 수 있는데 이게 참 쉽지 않죠. 많은 아쉬움을 느낍니다.

특보님께서는 최근 6.15 정상회담에 대해 ‘통일 정책에 대한 큰 틀의 합의’라고 평가하셨습니다.

6.15 정상회담 이전까지 북한의 통일노선이라는 것은 ‘남조선 적화통일전략’ 아니었습니까? 미제를 축출하고 우리식 사회주의를 구축하는 한반도 무력통일이 전부였죠.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북진통일, 반공통일로 이어져오다 1990년대 독일이 통일되면서 흡수통일이 공공연하게 거론됐습니다. 우리도 계속 우리식의 통일, 즉 우리를 기준으로 하는 1민족 1국가 1영토 1정부를 원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남북이 각자 추구하는 통일이 서로 대척점에 있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양자 간의 통일방안에 대해 결론에 도달한 것이 바로 남한의 남북연합(연합제)과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간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연합제(1민족 2국가 2제도 2정부), 그리고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 양자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처음 수용한 것이 6.15 정상회담입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당시 남북의 연합방식으로 각자 주권을 유지하되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오고가는 ‘사실상의 통일’을 만들자는 것이 연합제의 핵심이니, 북한의 연방제 수준을 좀 낮추면 되지 않겠느냐고 김정일 위원장을 설득했던 것이 주효했던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공동선언문을 영문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단어 선택의 오류가 있었고, 이 오류가 오랜 시간 소모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영문 번역에서는 우리의 연합제를 ‘confederation’으로 표현했는데, 이 때문에 북한의 연방제인 ‘federation’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니냐는 오독이 발생한 것이죠. 엄격하게 말하면 우리의 연합제는 ‘Union of South-North’이고 북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conferderation 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소모적 공방은 지양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남북관계마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원인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기본적으로는 북미관계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하노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9.19 평양공동선언 제5조 2항에 기초해서 싱가폴에서 북미 간 합의한 6.12 공동성명에 상응하는 조치를 미국이 취하면 영변핵시설을 영구히 폐기하겠다고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거절해버리고 오히려 북한이 ‘핵을 비롯한 화학무기나 각종 미사일을 먼저 포기하면 북한경제의 밝은미래를 약속한다’고 하면서 “Take or leave”라는 식으로 행동했죠. 비록 당시 마이클 코헨 사건 등으로 미국 내부 정치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상당한 외교적 결례라고 봅니다. 결국 북핵문제 해결 의지가 없다는 강한 인상을 준 대목이었고, 여기서 북미관계가 아주 틀어져 버린 것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에서 성과를 통해 자기 정권의 최고 과제인 경제건설의 기회를 살려, 북한 인민이나 군부들에게 자신의 정책을 설득할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는데 그게 불가능해졌습니다. 소위 수령이 체면을 잃어버린 것이죠. 중국, 러시아 그리고 우리의 계속된 권유에 지난 해 10월 스톡홀름에서 북미 예비회담은 했지만 평행선만 그었을 뿐입니다. 당시 김명길 북 외무성 순회대사는 “미국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우리 인민의 발전권을 저해하는 적대시 정책을 폐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대화에 나오지도 않을 것”이라며 아주 강경하게 말했습니다. 그 이후 약 8개월 간 북미 대화는 전혀 없었습니다.

남북관계는 두 번째 원인이겠죠. 북미관계가 교착상태에 있더라도 우리가 좀 더 주도권을 가지고 국제 대북제재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 밀고 나가는 강단이 필요했습니다. 개성공단, 금강산, 철도연결사업 등 할 수 있는 것이 많은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미워킹그룹에서 미국과 협의하는 건 좋지만 남북관계의 세세한 부분까지 논의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가 몹시 아쉬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에도 그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와 대화채널은 만들어놓고 유지하면서 북미 간 어려운 상황을 함께 협의하면서 해결해 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물론 남한에 북한이 실망한 부분도 있었을 겁니다. 9월 평양선언을 기초로 제안한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를 트럼프가 거절했으니까요. 남한의 자주권을 의심하는 북한의 선입견의 영향도 큽니다. 근데 사실이 아니지 않습니까? 북한이 응해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북미관계 악화, 우리의 결기 부족, 북의 선입견으로 인한 냉담한 태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상황이 이렇게 꼬였다고 봅니다.


우리가 살길은 하나입니다.

남북관계를 풀면 이런 편가름 외교는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코로나19가 많은 변화를 야기하고 있는데, 특히 미중관계가 악화 일로를 겪고 있습니다. 남북관계의 상위 개념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미중관계가 나빠지면 우리가 독자적 활동 영역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우리의 독자적 생존전략을 어떻게 마련하면 좋겠습니까?

한국은 미국과는 동맹,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입니다. 동맹이 더 우위이긴 하나, 동맹을 위해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깬다는 것도 납득하긴 어렵습니다. 우리 입장에선 미중이 잘 지내길 바라는 수밖에 없죠.

미중관계가 악화됨에 따라 중국을 겨냥해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대중견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현실적 해법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반대로 중국의 부상에 편승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없죠.

왜 우리가 신중해야 하고, 왜 미국 또는 중국과 각을 세우지 않아야 합니까? 바로 국가 이익 때문입니다. 대중국 무역규모가 우리 무역의 24%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은 9%, 일본은 7%입니다. 경제적 이유에서 만이 아니라 군사안보적으로도 몹시 중요합니다. 중국은 극초음속 탄도미사일인 둥펑(東風)을 비롯한 중장거리미사일, 남중국해에 배치된 대공미사일 등 한반도에 직접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전략자산을 다량 확보한 군사대국입니다. 이 상황에서 소위 미국 편을 들다 중국과 척을 지면 중국은 대북 군사지원을 강화할 겁니다. 결국 더 강해진 중국과 북한을 마주하게 되고 1950년의 정세가 다시 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중국의 대북 군사지원이 본격화 되면 북한의 대남 전략이나 군사전략도 변할 겁니다. 우리가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약간 불편해진다고 해서 당장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거대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진 근거리 국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미국처럼 강한 나라도 중국의 부상을 걱정하고 견제하는데 지리적으로 더 가까이 있는 우리가 중국에 대해 어떻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살길은 하나입니다. 남북관계를 풀면 이런 편가름 외교는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올해 신년사에서 문재인 대통령께서 함께 할 수 있는 쉬운 것부터 시작해가겠다고 강력한 의지를 밝히셨죠. 하지만 촘촘한 국제사회 대북제재를 간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대북제재의 핵심은 전략물자입니다. 전략물자를 제외하면 오히려 다 가능한 것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도지원 목적 사업에도 전용 가능성 등으로 인한 제재해당 물자들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산림 녹화사업을 추진할 때 필수적인 스틸파이프 등이 그 예입니다. 그렇지만 UN 1718위원회(제재위원회)에 가서 설명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제재위원회든 미국이든 제재나 결의안은 해석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설득력 있는 논리를 갖고 설명하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봅니다.

이번에 동해북부선 철도연결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정부가 힘있게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 우리측 구간을 복원하는 데 그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미국과도 어느 정도 논의가 되었기 때문에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봐야합니다. 북한이 이제 호응해 오면 실질적으로 북측의 철도 개보수 작업까지도 진행될 겁니다. 미국도 이에 충분히 긍정적 시그널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정부가 그동안 대북제재 국면에 전폭적 협조 태세를 유지한 것도 있겠습니다만, 제재 내에서도 남북협력 할 수 있는 분야가 많으니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는게 맞다고 봅니다.

금강산관광 재개 등을 고려할 때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이 민간 기업이나 은행 입장에선 대북제재 보다 더 강력한 억지력을 가지기도 합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해답의 키워드는 ‘궁즉통(窮則通)’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창의적인 여러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국제적 거래와 별로 관계가 없는 중소기업들이나, 지자체, 지자체의 산하기관 등 다양한 주체가 나설 수 있습니다. 상호금융조합 같은 금융기관 등 ‘궁즉통’의 논리에 따라 새로운 묘수를 찾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북한의 호응을 말씀하셨는데, 코로나19로 남북 두 정상 간 친서교환을 하는 등 서로 기본적 신뢰는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대남기구에 남측과 일절 접촉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신뢰가 있는데 북한이 나오진 않는 이유는 뭘까요?

북한이 아무리 수령 중심의 체제라고 해도, 수령이 어떤 정책을 채택해서 결과가 있어야 정통성도 확보되고 내부적 지지를 얻지 않겠습니까? 2018년도부터 김정은 위원장이 대화 공세에 나와서 초반에 각광받았지만 지금 결과를 보면, 오히려 서른 다섯 차례에 걸쳐 대북제재는 강화되고, 4.27 판문점선언, 9.19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된 것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인민들에게, 당에, 군부에 뭐라 설명할 길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만큼 남북 두 정상은 서로 원만히 합의한다고 해도 국내외적 제약 때문에 원하는 대로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느꼈을 겁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작은 성공’입니다. 하나라도 성공의 신화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정상회담이나 당국자회담은 남북관계 발전과 개선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구체적 개선의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북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우리 국민의 마음에 와 닿는 성과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성취해 내는 순간 그 작은 성공이 기하급수적으로 변화의 큰 흐름을 만들어 낼 것으로 확신합니다.

남북 간 교류가 미진하다보니 이를 지원하는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도 다소 침체된 것 같습니다. 남북교류협력 발전을 위해 협회의 역할이나 방향에 대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간단합니다. 정관에 있는 대로만 하십시오.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이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과연 협회는 지금 정관에 있는 대로 하고 있는가? 협회가 민간기업 및 단체들의 대북사업을 지원해주기로 했다면, 진출할 수 있게 해야 하고, 북측이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방금 말씀드린 작은 성공이라도 한번 만들어보길 바랍니다.

선이후난(先易後難), 대통령께서도 이미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쉬운 것부터 먼저 풀어나가고 깊고 넓게 가야합니다. 이것이 평화경제의 기본 아니겠습니까? 평화경제의 핵심은 남북 간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오가면서 공동번영, 특히 경제공동체의 기틀을 마련하는 겁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도 평화경제의 큰 그림 아래서 나왔는데, 핵문제 등 정치·군사적 요인으로 멈춰있습니다. 남북협회의 미래도 평화경제와 함께 간다고 생각합니다. 협회가 앞으로도 활발하게 움직이며 평화경제의 동력을 만들어가는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정부나 당국이 나서기 어려울 때 사실 견인차 역할을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에서 해야 합니다. 관(官)도 민(民)도 아무것도 못하는 게 현실인데 협회의 위치와 위상 제고를 생각한다면 먼저 구멍을 뚫어내야 합니다. 저는 작은 성공이 어쩌면 정부 대 정부에서 일어나기보다는 협회 중심으로 올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작은 성공’입니다.

하나라도 성공의 신화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