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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역곡천(驛谷川). 인간들이 나눈 경계 상 위치로 설명하자면, 북한 강원도 평강군에서 발원해 남한 강원도 철원군, 경기도 연천군을 거쳐 임진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이다. 특히 철원을 지나면서 내가 만들어낸 평탄한 지대에는 그렇게 곡식이 비옥하게 잘 자란다. 한탄강 녀석과 함께 임진강의 주요한 지류 중 하나인데, 내가 그 뭐라더라, 비무장지대라고 하는 중서부전선에 위치하고 있어서 아무나 보러 올 수는 없다고 한다.

70년 전에 진짜 죽을 뻔 했다. 온 천지가 무너지는 줄 알았다. 물을 먹으러 오던 동물들도 한동안 보이지 않고, 특히 인간들은 농사지을 때 보던 평소 모습과 달리 얼룩덜룩한 옷을 입고 큰 소리를 내는 물건들을 서로를 향해 쏘아댔다. 그러고 나면 꼭 내 맑은 하천이 벌겋게 물들곤 했다.

큰 소리가 멈춘 지 67년의 시간이 흘렀다. 한탄강 녀석은 많이 변했다고 한다. 난 사실 그대로다. 이상하게 사람들이 그 이후로 오질 않는단 말이지. 대신 동물들은 더 많이 온다. 에이, 모르겠다. 난 그저 내가 존재해온 대로 앞으로도 계속 흘러갈 뿐이다. 언젠가는 사람들이 이 역곡천 주변에서 다시 농사도 짓고 할 날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