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변화와 교류협력,
어떻게 볼 것인가

사회자


공용철

KBS PD

대담자


김중태

한국통일협회 민간교류협력원장


신준영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사무국장


손종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국장

2019년 북미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교착상태를 유지하던 남북관계가 최근 북한의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급랭했다가,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남 군사행동계획 전격 보류 발표 등으로 예측하기 어렵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많은 우리 국민들이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는데요, 어떻게 보셨는지요? 예상하셨던 바인지, 또 그 원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저도 크게 충격 받았습니다. 예전부터 시설 폭파 등이 거론되어도 즉각 행동에 옮긴 경우가 별로 없었는데, 그래서 우리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충격도 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유에 대해서는 대북전단 살포를 들었지만, 그 저의는 9.19군사합의를 비롯한 남북 간 최근 합의들이 얼마나 진척되고 있는지에 대한 북한의 강력한 문제제기였다고 봅니다. 남북 간 합의 이행이 지지부진한 상황에 대해 북한의 불만이 축적되어 오던 중에, 남한의 총선 이후를 기대하다가 코로나19라는 예상 못한 일에 대응하는 사이 2020년의 절반이 지나갔죠. 이런 상황에서 남북 정상 간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북한의 강한 불만이 충격적 방식으로 표출된 모양새입니다. 

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는 장면을 보며 참담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그랬겠습니다만, 개성 현장에서 근무했던 저로선 더욱 그 마음의 어려움이 크게 느껴졌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참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일이라는 것이 하다보면 뜻대로 안 풀릴 때도 많은데, 좌절과 분노의 표현이 그렇게 극단적 방법으로 나온다는 것에 사실 북한에 대한 실망도 느꼈습니다. 우리가 정말 서로 많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도 새삼 들었습니다.

폭파 이전부터 북한이 여러 번 관련 성명을 냈습니다. 폭파 보도를 접한 뒤 그 성명들을 다시 들여다보며 이러한 행동의 원인을 짚어봤는데요. 성명들이 공통으로 제기하는 문제는 대북전단이었습니다. 아마 북한으로선 그들의 최고 존엄에 대한 모욕에 반드시 대응해야 하는 당의 방침도 있을 테고, 한편으로는 대응하지 않으면 오히려 처벌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에서 나온 행동 아닐까 합니다. 과거 대북전단 문제로 고사총까지 쏜 적도 있었으니까요.

그동안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지 못해 최근엔 살포하지 않나 궁금해 하던 차에, 보도만 되지 않았을 뿐 지속적으로 전단이 살포되었음을 이번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군사분계선 일대 전단 살포 중지는 4.27 판문점선언으로 남북이 합의한 사항인데, 합의 위반행위를 지금까지 왜 그대로 두었는지 의문도 들었습니다. 남북관계 관련 종사자나 전문가, 또 우리 관계 당국은 대북전단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어떤지 익히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미리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물론 북한이 연락사무소 폭파라는 충격적 방식을 취한 것에는 많이 놀랐습니다. 6.15공동선언 이후 20여 년간 부침은 있었으나 진전해가던 남북관계가 송두리째 날아간 듯한 허무함, 두려움 등 복잡한 심경이었죠. 다만 북한이 저 정도로 충격적 요법을 사용한 저변엔 합의 불이행 문제에 대해 그만큼 확실한 우리의 대응을 요구한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이 와중에 군사중앙위원회 예비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발표한 대남 군사행동 보류는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중단이 아닌 보류라는 건 우리의 대응을 좀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속도 조절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저도 원인이 뭘까 고민하다 한번 상대의 입장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되짚어봤습니다. 전단 살포라는 판문점선언 합의사항 위반에 대한 불만도 있겠지만,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처럼 남북 협력의 상징들로 조성된 그 넓은 땅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불만이 쌓여온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개성 같은 경우는 만성 식량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이 경제협력 사업한다고 군대까지 뒤로 철수하면서 넓은 부지를 조성했는데 10년 넘게 방치되니 답답함이 극에 달한 건 아닐까 하는 것이죠.

북한 입장에서는 정상회담부터 여러 합의는 많았지만 이행은 안 되고, 군사적으로는 한미동맹과 관련된 영역이야 제약이 있겠지만 첨단 무기 도입 등으로 남한의 군사력 증강이 지속되는 상황이니, 전단 살포를 막는 정도는 남한 당국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판단한 것 같습니다. 폭파라는 과격한 보여주기를 택한 것에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지만, 우리가 어느 정도 원인 제공을 한 건 아닌지 조심스럽게 판단해봅니다.

상당 부분 그 의견에 공감합니다. 이번 사무소 폭파의 단초가 일부 탈북자 단체에서 날려 보낸 전단에서 파생했으니 그 이야기를 안 할 순 없겠죠. 다만 남북관계에 대한 분석은 한 면만 보는 건 적절치 않고 종합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분법적으로 옳고 그름을 나눌 문제는 아니니까요.

남북관계의 급변의 배경과 원인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필요합니다. 5월 30일 한 탈북자단체가 뿌린 대북전단으로 촉발된 갈등 요소가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 담화로 시작해 수위가 계속 고조됐고, 결국 6월 16일 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까지 이르렀죠. 그 처사만 놓고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동안 북한이 공언해왔기 때문에 소위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싶은 일입니다. 그나마 추가 군사행동이 보류조치 된 건 다행이긴 합니다.

합의 이행에 대해 말씀들 주셨는데, 이번 정부에서 남북 세 차례 정상회담에서부터 유례없는 우리나라 대통령의 평양 능라도5.1경기장 연설까지 있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진척이 없는 합의 사항들에 대해 북한도 내부에 대한 설명, 소위 대내 정치적 필요도 이번 폭파에 영향을 줬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동의합니다. 우리가 봐도 합의 이행 부분은 아쉬운 점이 없잖아 있는데, 북한도 그랬겠죠. 꼭 폭파라는 극단적 방식이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 또한 장기적, 전략적 고찰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남북 간 합의 이행을 너무 우리 입장에서만 생각한 건 아닐까요? 북한에서는 긴급한 수요가 있고 그래서 꾸준히 합의 사항이 이행되는 것 자체에 굉장히 중요성을 두고 있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 상황에서야 이행되면 좋고, 안 되도 어쩔 수 없다 할 수 있지만 북한은 아니었단 거죠. 지금 국면이 호락호락 하진 않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고, 남북협력 사업에 대한 미국과의 관계 등과 같은 과제들을 제대로 풀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번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통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지만, 현재 남북의 기본관계는 적대관계인데 그동안 우리가 교류협력 관계로 소위 우리의 지향점, 보고 싶은 면만 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남북교류협력은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비정치적 영역의 교류가 적대관계 해소를 가져올 거란 기대치를 가지고 여러 사업들을 추진해왔고, 여기 계신 분들도 각자 영역에서 그러한 활동을 하셨습니다. 근데 결국 정치·문제가 핵심이고 여기에 걸려서 교류협력도 진행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기능주의적 접근방법에 한계가 있는 건 아닐까요?

남북관계의 주체를 구분해서 이해하는 게 좋겠습니다. 당국 간 관계가 있고, 저희는 민간으로서 북한과 교류협력 관계를 추진했죠. 남북 당국 간에는 정치·군사와 교류협력 사이에 우선순위가 바뀌거나 이견이 생기기도 하지만, 민간 입장에서는 당국이 서로 부디 잘 조정해서 나아가 주길 바랄 뿐입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파국 상태에 가깝습니다. 북한은 미국을 설득하든 유엔을 설득하든 남한은 합의를 이행하라 압박하고, 우리도 여러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충돌이 불가피합니다. 어느 일방의 입장대로만 할 수 없는 것이 당국관계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남북교류사업에 몸담고 있는 민간단체 종사자 입장에선 당국관계가 좋아도 나빠도 늘 염려를 하게 됩니다. 당국 차원에서 서로 잘 풀어가 교류협력에 좋은 환경이 마련되길 바라기야 하나, 민간이 당국 관계에 종속해 항상 그에 따라갈 순 없으니까요. 민간은 실핏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당국 간 사업이 불도저로 신작로를 뚫어 간다면, 민간은 공사가 중지되더라도 길을 찾아 산과 바다로 나서고 오솔길이라도 내는 것이 그 역할의 차이입니다.

민간에서의 교류협력이라는 건 분단국가에서 남북이 서로 좋은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 그 자체가 목표이므로 당국의 것과는 다소 다릅니다. 당국은 각자 전략을 갖고 있으니 충돌이 있더라도 잘 합의해 풀어가면 좋겠고, 우리는 우리의 갈 길을 계속 걸어갈 뿐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남북교류협력 역사에 항상 ‘지금’ 같은 순간만 있었던 것 아니었습니다. 2006년 10월 9일 북한의 1차 핵실험이 있고 나서 이틀 뒤 저와 저희 단체는 교류협력 사업 차 평양에 갔습니다. 당시 극심한 군사적 긴장 속에도 우리 민간단체들은 진행 중이던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고 방북도 계속 이뤄졌습니다. 비록 지금은 아니지만 2006년 당시 상황이 앞으로 왜 없겠습니까? 남북교류협력을 정부 차원의 것만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주체가 함께 하는 것으로 넓혀가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지난 해 정말 아쉬웠던 기회가 있습니다. 북한은 2019년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금강산과 개성공단을 조건없이, 대가없이 재개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이건 북한 입장에선 최소화한 요구였다고 봅니다. 물론 우리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를 설득해야 할 쉽지 않은 과제가 있었습니다만, 근래 추진하려던 개별관광 같은 사업을 그 시점에서 금강산 지역에서라도 추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당국 차원의 일이고 민간단체인 우리 입장에선 아쉽다고 할 수밖에 없겠지만 말입니다.

사회자께서 말씀하신 기능주의의 한계, 즉 군사정치 분야가 먼저냐, 비정치적 분야가 먼저냐 하는 문제라기보다는 화해협력을 추구하는 과정에선 교류협력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최근 우리가 너무 교류협력에만 치중했다라고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번 폭파사건 원인을 우리의 귀책사유에 두는 것도 다소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왜 합의해놓고 안 하느냐?’하는, 우리에게 미흡한 점도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더 근본적인, 즉 ‘이행할 수 있는 합의’였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있었지만 첫 번째 회담에서부터 ‘비핵화’라는 원론적 부분에 대한 개념 정리가 없었다고 봅니다. 너무 뜨거운 감자라 선뜻 손대기 어려웠겠지만, 합의문의 ‘비핵화’가 북한의 비핵화인지,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인지 모호합니다. 만일 남한 사람들에게 물으면 많은 이들이 당연히 ‘북한의 비핵화’라고 하겠죠. 북한 사람들에게 물으면 ‘한반도의 비핵화’라고 할 겁니다. 가장 핵심적인 지점이 정리되어 있지 않으니 필연적으로 다른 문제들이 파생됐습니다. 비핵화 문제의 주요 당사자 중 하나인 미국의 입장은 한결같이 ‘선 비핵화 후 제재해제’였는데, 과연 우리 정부가 ‘비핵화’에 대해 북미 간 입장 차이를 충분히 조율했는지 하는 것이죠.

정상회담이라는 큰 성과 이후 과정에도 아쉬움이 큽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야 우리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지만, 우리의 제재조치인 5.24조치 등에 대해선 확실한 입장을 가졌어야 했던 건 아닐까요? 5.24조치의 실효성은 상실되었지만 해제는 아니라는 모호한 태도는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최근 남북교역·경협에 종사했던 기업인들과 만나 5.24조치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니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하더군요. 5.24조치의 실효성이 상실됐다면 진작 방북이나 교역 관련 물품반출입 등을 정부에서 승인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제재 국면 하에서도 진행할 수 있는 남북 간 협력 사업들이 분명 있고, 그렇다면 우리가 몇 가지 선택사항을 가지고 한미워킹그룹이든지, 미국에 직접 가든지, 유엔으로 가든지 해서 제재 예외조항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회담 이후 우호적인 외부 환경 변화를 기대하며 다소 안이하게 대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남북 당국관계가 부침을 겪어도 민간 영역에서는 계속 교류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최근 민간 교류협력이 굉장히 축소된 데에는 북한 입장에서 볼 때 과거와 달리 민간교류에 대해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 작용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5년 전 쯤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조사 현장을 볼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얻어 개성에 갔을 때 개성 시내를 보고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집집마다 태양열 패널이 설치돼 있어 자가 발전으로 전력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요. 학교 운동장에는 200대는 족히 넘는 자전거들이 주차되어 있어, 2000년 대 초반 가구 당 자전거 1대 정도였다면 추정컨대 당시 가구당 자전거 2~3대는 되는 듯 했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절에는 민생 부분의 광범위하고 긴급한 수요가 있어 민간 차원의 교류가 도움이 될 수 있었겠지만, 어느 정도 어려운 시기를 벗어난 북한이 이젠 좀 민간교류에 대한 입장이 좀 바뀐 건 아닐까 합니다. 민간교류는 당국 차원만큼 큰 규모는 아니니, 남한 사람들과 자꾸 만나는 과정에서 체제 리스크 부담만 가중되고 대규모 발전을 도모하기엔 부족하니 북한에서 별 호응이 없었던건 아닐까요?

우리가 종종 북한을 단일하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올해 초부터 자력갱생이 강조되며 북한 사회의 각 단위들이 소위 ‘알아서 해야하는’ 측면이 많아졌습니다. 지방 단위의 자율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아졌고, 관계자들 일부는 북중접경지역에 나와 여러 협력사업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추진하려고 했었죠.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불가능한 상태이긴 합니다. 이제는 웬만하면 북한에서도 물자들이 남한에서 온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민간영역이 활동할 기회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전체적으로 삶이 나아진다고 해도 북한 주민들의 생활은 또 각각 다른 측면이 있어서 여전히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은 유효하다고 봅니다.

또한 이번 정부 들어 교류협력이 정부 중심으로 되어 온 측면이 크지만, 예전부터 다소 당국 간 상황이 좋지 않을 때도 북한에서는 우리 민간단체들과 교류사업에 대한 의사를 계속 보내왔습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기회가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민간단체들은 우리 당국에 남북 간 민간교류 영역을 풀어 화해협력 분위기를 지속할 수 있도록 남북 정부 간 의제를 협의하길 꾸준히 주장했지만, 결국 그 해 연말에는 ‘민간 패싱(passing)’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변화가 없었습니다. 북한이 호응하지 않는 측면도 있겠습니다만, 지금으로서는 민간 영역의 남북교류가 미진한 것에 우리 당국의 역할이 더 큰 것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2018년과 2019년 각각 원인이 다르다고 봅니다. 2018년은 남북 간 모처럼 조성된 화해협력 분위기를 당국 차원에서 유지·관리하고자 했고, 연장선상에서 민간영역이 교류협력을 추진하다 혹시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발생하진 않을까 우려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북한과 협의한 사업 합의서를 가져온 단체들이 꽤 있었는데 우리 정부에서는 나중에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아무래도 과거에 우리 사회 내의 입장 차이와 여러 공방을 겪었던 경험 때문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판단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2019년은 북미 하노이회담 결렬로 한반도 내 화해 분위기가 급변하며 북한 내 입장 변화가 큰 몫을 했던 것 같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세 번이나 합의를 했음에도 진척이 없는데, 그 하부 단위인 민간에서 무슨 성과를 낼 수 있겠는지, 그래서 ‘남쪽과 마주서지 말라’하는 지시도 내린 게 아닐까요? 2019년은 북한 당국의 태도에 의한 단절이었던 것입니다.

2020년은 사실상 2019년 말부터 북한의 ‘자력갱생, 정면돌파’ 천명을 보며 쉽지 않겠다 예상한 상태에서 오히려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로 상황이 다소 보류된 것으로 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폭파로 당국 간 갈등이 터져 나오면서 정말 어려워진 모양새입니다. 발표된 성명서를 보면 ‘배신자’라는 표현이 눈에 띄는데요, 배신은 신뢰가 전제되어야 성립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북한이 말하는 배신자는 곧 약속의 상대방인 남한 정부를 겨냥하는 표현입니다. 다만 민간영역은 좀 다르다고 봅니다. 약속을 할 기회도 못 가졌으니 배신할 것도 없죠. 민간단체에서 보낸 많은 사업제안서가 책상 위에 놓여있을테고, 북한 입장에서는 이 제안서들까지 함께 배신자로 여기고 무시할지, 아니면 한 번 들여다보고 고려할지 고민 정도는 하지 않을까요?

북한 조선노동당의 최고 강령이 조국통일인데, 남한과 관계를 다 끊어버린다고 하면 자기모순이 됩니다. 당국과 관계를 끊으면 민간에서라도 교류를 유지하면서 남한 정부를 비판하기라도 해야 하죠. 실제 예전에 그랬습니다. 당국 간 관계가 안 좋을 때는 우리 민간단체 사람들이 사업 차 방북하면 보통 정치 이야기는 삼가기 마련인데 북한 담당자들의 정치 평론(?)을 꼭 듣게 되곤 했거든요. 그것도 그들에겐 하나의 통일전선일 겁니다. 그래서 오히려 한편 민간영역에서는 교류협력의 여지가 좀 더 있는 건 아닐까 합니다.

신준영 국장님께서 민간 영역에 대한 정부의 관리를 말씀하셨는데, 한때 정부에 있었던 이로서는 어느 정도는 짐작은 됩니다. 한동안 남북관계가 좋지 않았던 상태에서 민간의 교류협력 추진이라는 것이 정부에는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우리 정부는 남북교류협력에 있어 민간영역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또 충분히 그 전문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교류협력 초창기에야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시간이 축적되며 각 민간단체들만이 가진 히스토리, 노하우가 존재하는데, 정부에서는 그만큼 세세하게는 알기 어렵습니다. 

남북교류협력의 전망이 어두운데, 현장에서도 지금 어려움을 겪고 계실 것 같습니다. 어떤 영향이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타개해 가실 계획인지 궁금합니다.

저희 단체는 정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사업은 장기간 진행되는 일이라 예전에는 개성공단에서, 개성공단 폐쇄 후에는 공동연락사무소 숙소에서 숙식하며 발굴 현장으로 출퇴근 했는데 이제 그 사무소마저 폭파됐으니 바로 물리적 제약이 생긴 거죠. 저희 만월대 사업뿐만 아니라 궁예도성 조사나 남북 공동유해발굴 조사 등 DMZ 일대에서 이뤄지는 사업 대부분 직접 타격을 받았을 겁니다.

예전 개성공단 폐쇄 조치로 개성 만월대 발굴이 어려워졌을 땐 오히려 평양에 가서 고구려 고분 조사를 한 적도 있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 직접적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한다면 그런 방식이 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또한 남북 양자 간 사업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과 함께 국제협력사업, 예를 들어 러시아와 북한 나선에 있는 이순신 장군 관련 유적인 녹둔도 발굴 사업 등과 같은 형태도 꾸준히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이외에도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일도 현재 진행 중입니다. 현재 남북교류협력법은 교류협력의 행위를 너무 좁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가다서다가 필연적 운명인 남북교류에서 반드시 남북이 공동으로 해야 한다면, 단절된 기간에는 손 놓고 하릴없이 있는 수밖에 없겠죠. 그러나 남북 간 교류협력이 ‘접촉을 통한 변화’, ‘민족동질성 회복’을 목적으로 한다면 북한도 변화대상이지만 우리도 대상이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교류협력 사업을 통해 확보된 수많은 콘텐츠를 우리 사회에 전파하고 남북교류협력의 가치에 대해 알리는 것, 이것 또한 남북교류협력 사업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아카이브 구축, 전시회 등 여러 형태의 퍼포먼스가 가능하며, 이런 과정을 통해 교류협력의 성과를 우리 국민들과 공유하는 기회를 만드는 사업까지 교류협력의 일환으로 보고 법률에서 제도화하는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또한 교류협력법 개정에 대해 여러 준비와 의견 제시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민협(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차원에서는 세 차례 법률소위원회를 개최해 체계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 중에 있죠. 핵심은 민간 분야에 대한 규제완화라고 봅니다. 현재 인도지원사업자 지정제도 대신 협력사업 자체에 대한 승인을 받는 방식으로 바꾸는 등 당국의 자의적 판단의 여지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 6월에 출범한 21대 국회와도 협력하고 여론을 수렴하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북인도지원의 가장 큰 장애물은 유엔 대북제제입니다. 지난해 미국 뉴욕에서 ‘2019 대북인도협력 국제회의’를 공동주최하면서 절실히 느낀 점은, 남한 사회에서 오랜 시간 이뤄진 대북인도협력의 고유성, 전문성을 국제사회에서 잘 모르고 있으며, 동시에 우리의 활동들을 잘 알리기만 한다면 충분히 이해와 존중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실제 북한 개풍양묘장 조성 사업이 유엔 대북제재 면제 승인을 얻는 성과를 이뤘죠. 일련의 과정을 통해 유엔이나 국제사회와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우리 활동에 대한 이해의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결과 ‘민간공공외교’의 중요성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작은 부분부터 하고 있습니다. 사업과 성과에 대한 여러 자료들을 영문으로 만들어 국제사회 관계자들에게 메일을 주기적으로 보내며 우리 활동을 알리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북인도지원, 이제는 ‘지원’이라는 표현도 잘 쓰지 않는 추세인데, 북한과의 협력의 틀을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볼 것인가, 즉 패러다임의 전환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처음 대북지원의 시작은 2000년대 전후로 ‘우리 동포가 굶고 있으니 도와주자’에서 시작했다면, 이제는 시혜적 차원에서 벗어나 좀 더 발전된 틀, 즉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속가능한 개발목표, SDGs를 남북 관계에도 적용해야 합니다. 인류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각자 강점과 약점을 상호 보완해 가는 방식, 그리고 한반도 지역 내 공동 목표를 함께 설정하고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며 달성해가자는, ‘한반도 SDGs’를 조성하기 위한 옹호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북한도 자발적 국별보고(VNR, Voluntary National Reviews)1)를 올해 7월에 뉴욕에서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1년 연기되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북한도 지속가능한 개발목표에 관심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겠죠. 남북이 SDGs를 매개로 협력해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자 합니다.

1) Voluntary National Review(VNR)는 그 나라의 국제적 목표(SDGs) 달성 진행상황과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선언을 각 나라가 평가하는 과정이다. 2020년 기준 51개 국가가 VNR을 하기로 서명했고 남한은 2016년 보고에 참여했으며 2016년부터 지난해 2019년까지 약 160개 국이 VNR에 참여해오고 있다.

지금같이 어려운 때 남북교류협력을 지원하는 기관인 남북협회의 역할이 무엇이었으면 하시는지요?

남북협회는 민관의 가교입니다. 정부에서 미처 다 메우지 못한 부분, 특히 국민 눈높이 맞춘 교류협력 사업에 대한 준비와 시행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남북교류협력이 어려운 이 시기를 준비의 기회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남북교류협력 중 경제협력 분야는 대북제재로 인해 운신의 폭이 좁습니다. 이런 때를 활용해 과거 정부의 일방적 조치로 경제적 손실을 입은 개성공단 입주기업이나 일반교역업체, 금강산관광 관련 기업 등에 대한 사후 관리에 힘써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미증유의 일들이 재발하지 않길 간절히 바라지만, 남북관계가 앞으로 계속 나아가다 보면 정치군사적 문제로 오르락내리락 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지 않겠습니까? 이를 대비해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가 관심을 가지고 경협보험제도, 보상문제 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투자보장, 4대 남북경협 합의서의 실효성 담보 등 제도적 정비에 적극 나섰으면 합니다. 한편 기업인들도 이제는 확실히 시장논리에 입각해 본인의 의사결정으로 남북경협 사업에 진출한다는 마인드도 정비하길 바랍니다.

더불어 국민들에게 교류협력의 가치를 알리고 우리 삶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많이 알리는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새롭게 관심을 가지고 시작하는 향후 세대들이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일 수 있으리라 봅니다. 비온 뒤 땅이 굳는다고 이 기회에 협회의 역할을 기대합니다.

최근 제 고민 중 하나는 남북교류협력 민간단체의 지속가능성입니다. 인도지원, 저희와 같은 사회문화교류, 또 통일·평화시민운동 등 분야는 다양합니다. 대체로 보면 저와 같은 시민단체 1세대들은 마치 독립운동처럼 통일운동을 시대적 사명으로 여기고 학생운동을 한 경험들을 갖고 있습니다. 다음 후배들도 학생운동의 끝세대로 소위 ‘지사(志士)’ 정신으로 이 분야에 뛰어들었고, 대부분 최저임금도 안 되는 활동비를 받고 생계는 배우자가 책임지는 식으로 살아왔죠. 근데 앞으로는 어떨까요? 다른 시민운동 분야도 비슷한 상황이겠지만, 남북관계라는 특수성, 항상 좋은 것도 아닌 고비용 저효율, 심지어 국가보안법까지 기다리고 있는 이 분야에 어떤 매력을 느껴서 청년들이 기꺼이 일하려고 할까요?

지금과 같이 지사적 태도로 일하던 세대가 퇴진하고 나면 남북교류협력의 시민운동 흐름이 없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북교류협력법이라는 법률에 근거해 남북 민간교류라는 공적인 일을 수행하는 민간단체들인데, 남북관계 부침 속에서도 이 단체들의 전문성과 노하우가 사람과 단체를 통해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장치가 있었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현재 교류협력 사업 진행 시 지원받는 남북협력기금이나 정부 보조금은 순수 사업비로만 활용할 수 있는데요, 정작 그 일에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상근 직원은 자신의 인건비를 받을 수 없는 구조입니다. 인건비를 마련하려고 동시에 연구프로젝트를 해야 할 정도죠. 설령 인건비 항목이 있어도 기존 상근직원이 아닌, 프로젝트별로 채용한 새로운 사람에게만 집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남북관계에 대한 전문성, 또 단체별 사업 특수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는, 심지어 프로젝트 기간 동안만 일할 수 있는 인력에게 상대방인 북한과의 협의나 방북, 물품반출입 같은 일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결국 단순한 업무밖에 줄 수 없고, 역량 있는 인재를 양성해 갈 수가 없습니다. 교류협력 사업을 추진하는 민간단체들이 있어야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도 ‘교류협력 지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남북협회도 이 문제에 대해 관심가지고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신준영 국장님이 말씀하신 사항은 북민협 차원에서도 논의되었던 바입니다. 국제개발 분야 단체들의 사례도 많이 참고했는데, 국제개발협력 민간단체들과 협력하고 있는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는 출연금으로 운영되고 있어 사용이 상대적으로 유연하더군요. 최근 남북협회에서 법적 지위 확보 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협회의 제도화는 남북교류협력 분야 시민사회 조직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단순히 정부의 위탁업무를 수행하는 것에서 한 단계 나아가 남북교류협력과 관련된 모든 분야를 지원하고 또 포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 해 저희 단체가 대북인도지원 사업에 대한 유엔 대북제재 면제 승인을 받았는데, 면제 승인 신청 과정에서 협회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시민단체 입장에서는 남북협회가 사업 추진에 많은 지원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원 기능이 더 강화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으면 합니다.

공용철 PD

오늘 쉽지 않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촉발된 충격은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군사행동 계획 보류 발표로 한동안 서로의 의중을 탐색하는 고요한 긴장으로 지속될 모양새입니다. 호기(好期)가 교류협력 사업의 전제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교류협력이 기회를 만들어가는 돌파구나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오늘 참석해주신 분들이 각 영역에서 어려운 시기에서도 애쓰고 계신 점에 감사합니다. 남북협회 또한 남북교류협력을 지원하는 기구로서, 각 분야에 깊은 관심과 이해를 가지고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민간영역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업무를 수행해주시길 당부 드리며 오늘 대담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