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과 평화

제 1 편

남북공유하천을 통한 상생과 통일


장석환 대진대학교 건설시스템공학과 교수,
한국수자원학회 부회장

안 내

교통·통신 기술의 발달로 물류와 사람이 지구 곳곳을 자유롭게 다니는 시대. 그 이면엔 급속한 기후변화, 감염병 유행 등에 어느 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불편한 사실도 뒤따릅니다. 한반도를 지리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남한과 북한은 그래서 더욱 서로의 생존에 큰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인류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일들이 도사리고 있는 이 시대, 남북의 평화와 우리의 생존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웹진 <이음>에서 준비한 새 연재 ‘생존과 평화’를 통해 분야별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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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2020년 6월 16일 북한이 개성공단에 위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탄으로 폭파한 사건이 발생했다. 또한 청와대 핫라인을 포함한 남북 간 모든 통신 연락 채널을 차단·폐기한다고 밝혔다. ‘대적(大敵)‘ 발언 이후, 북한은 교류와 소통의 차단을 의미하는 행동들을 하고 있다.

정치적 이유로 인적 교류뿐 아니라 전파나 통신까지도 인위적으로 막을 수 있지만, 남북관계에서 흐름의 연결을 막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아무리 군사적, 정치적 대립이 있어도 상·하류 연결을 끊을 수 없는 것은 남북한을 흐르는 하천이다. 북한지역에서 발원하여 남한으로 흘러오는 남북 공유하천은 임진강과 북한강이 대표적이다.

‘공유하천(transboundary river)’은 두개 이상의 국가사이에서 경계를 이루거나 이들 국가의 영토를 연속적으로 흐르는 하천을 의미한다. 전 세계 145개국에 공유하천이 존재하고 이들은 끊임없는 갈등과 또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공유하천 갈등은 일반적 원칙이 없고 국제법이나 기구는 강제적 구속력이 없이 상·하류 국가 간의 협의를 기반으로 조정하고 있다. 그러나 보통은 상류국가의 군사적, 경제적 우월한 지위로 하류국가는 항상 피해를 감수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미국과 멕시코의 콜로라도 강, 메콩강의 중국과 베트남,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아랄해가 대표적인 공유하천의 갈등 사례이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남북공유하천의 갈등은 치수(治水)적인 문제, 이수(利水)적인 문제와 환경 문제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하류인 남한 지역은 해마다 여름 장마철에는 북한의 댐 방류로 인한 홍수 위험이 내재되어 있고, 갈수기 봄철에는 북한 댐의 담수(湛水)로 하류에 물이 공급되지 않아 가뭄이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남북공유하천 협력을 통하여 상생한다면 새로운 통일모델을 창출할 수도 있고, 비정치적 방식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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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하천 치수(治水) 갈등

대표적 남북공유하천은 임진강과 북한강이다. 임진강은 유역면적 60%이상 대부분이 북한에 속해 있고 북한강은 약 23%가 북한 지역에 있다. 남북 공유하천에서는 상류인 북한 유역은 급경사에 빠른 유속으로 인해 홍수량이 평지인 하류에 전달되어 예고 없는 일방적인 홍수의 위험이 상존해 왔다.

2003년 북한강 상류 휴전선 바로 위에 소양강 댐 크기와 비슷한 저수용량 26억 톤 규모의 ‘임남댐(금강산댐)’이 완공되었다. 이에 남한에서도 북한 임남댐 수공(水攻) 위협에 대한 방어용으로 2004년 홍수전용 댐인 ‘평화의 댐’을 축조했다. 임진강에는 팔당댐보다 큰 3억 5천만 톤 규모의 ‘황강댐’이 2007년에 완공됐고 2011년 북한의 무단방류로 인한 홍수에 대응하기 위한 ‘군남홍수조절댐’이 건설됐다. 임진강 유역에서만 2001년부터 북한은 4월5일댐을 비롯한 5개의 댐, 남한은 2016년까지 한탄강 댐 포함 홍수 전용 방어 댐 2개를 건설했다. 결과적으로 15년 동안 무려 7개의 댐이 지어진 전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유역이다. 남한 댐 3개는 상류 북한에 건설된 댐들에 대한 일종의 홍수 대응 댐이다. 남북 협력만 잘 이루어졌다면 아름다운 강에 수 조원이 드는 댐이 들어설 이유도, 그에 따른 갈등도 없었을 것이다.

반복되는 임진강의 수해방지를 위해 2000년 6·15공동선언에 ‘임진강 수해방지사업을 공동 추진’하기로 합의, 2001년부터 실무협의회가 운영됐다. 협의회는 수문조사와 홍수예보 구축, 산림조성 등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2009년 9월 황강댐의 무단 방류로 임진강 야영객 6명이 사망하는 사고를 계기로 사업협의가 중단됐다. 이후 매년 여름철이면 하류의 주민들은 북한의 임남댐과 황강댐의 일방적 방류에 홍수의 위험을 안고 긴장감에 시달린다. 최근 기후변화 영향으로 한반도의 강우가 증가하고 국지성 호우가 강해질수록 상류 북한 댐들의 사전 예고 없는 방류에 대한 염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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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하천 이수(利水) 갈등

반대로 가뭄 때나 갈수 시에는 상류 북한 대형 댐의 담수로 하류 지역의 가뭄은 더욱 더 심각해지는 이중고를 치르고 있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2007년 황강댐 건설 이후 임진강 하류 유역에 매년 2억 톤 이상의 강물이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는데, 임진강 하류는 황강댐 건설 이전에 비해 평균 30% 정도, 농번기인 봄철 갈수 시에는 약 50% 정도 하류 유입량이 줄어들었다. 황강댐은 예성강 쪽으로 물길을 바꾸는 유역변경식 발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임진강 하류는 수(水)생태와 환경이 점차 바뀌고 염분 피해가 발생해 어업과 농업에 지장을 받고 있기도 한다. 임진강에 설치된 군남댐이나 한탄강 댐은 다목적댐이 아니고 홍수전용댐으로 평상시 담수를 할 수가 없어 가뭄이나 물이용에 적절하게 대처를 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북한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강원도 휴전선 상류에 소양강 댐 크기인 약 26억 톤 저수용량으로 건설된 임남댐 영향으로, 댐 건설 전후 30% 이상 화천댐 유입량이 줄어들었다. 임남댐의 저수된 물은 45km 도수터널로 동해안에 있는 안변창녕 수력발전소에 물을 공급하는 유역변경에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상류의 일방적인 물이용은 하류 물공급의 변동을 초래해 남한 지역의 이수와 발전 용량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우리는 북한강에 화천댐부터 팔당댐까지 수력발전댐을 운영하고 있는데, 상류 물공급 감소로 발전용량은 줄어들었고 본류 하천 유지유량이나 생태유량의 부족도 야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공유하천 상류 북한 댐들로 인한 하류 하천의 부족량이나 환경적 영향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협력과 상생을 위해서는 선제적으로 꾸준한 모니터링과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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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하천을 통한 남북 상생방안

게임이론 관점으로 보면 남북 공유하천 문제는 전형적인 비협조 게임이며 제로섬(zero-sum) 게임이다. 북한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상류에서 일방적인 수자원 개발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피해는 하류에 위치한 남한이 예고 없이 당하게 되는데, 이는 일방적 외부성이 존재하는 현재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지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수량배분, 수력발전이나 수질오염 뿐 아니라 환경과 생태계 문제까지 고려한 통합관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비용·편익(B/C) 분석을 포함한 통합적 접근으로 상·하류 편익과 보상에 대해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협치 및 상생을 통한 문제해결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공유하천에서의 물 분쟁은 물에 대한 직접적인 비용·편익분석을 통해 물과 관련된 수력에너지, 상하수도, 환경 분야 협력 분야들로 대체, 해결할 수 있다. 즉, 공유하천의 공동 물관리에 따른 상·하류의 편익을 분석하고 상·하류가 얻을 수 있는 이익만큼 상대에게 보상을 해주는 방식이다. 이 때, 보상은 상대가 필요한 부분으로 대체, 제공해야 공평하다. 예를 들어 하천을 공동관리 할 경우, 하류인 남한에서의 치수, 이수, 환경과 수력 발전까지 기대한 잠재편익을 북한의 수력에너지 기술이나 홍수예·경보 시스템 혹은 상하수도 시설로 보상하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공동관리를 하지 못한 대가는 남북 각자 수 조원의 댐들을 계속 건설해야 하는 경제적, 환경적 손실로 돌아온다. 하스 등(Haas et al.)은 공유하천에서는 ‘이익공유‘를 기반으로 관련당사자국들로 구성된, 법적 구속력을 갖는 협약체결을 권장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 간의 ’콜롬비아강 조약‘, 남아공-보츠와나-나미비아 국가 간 ‘오렌지-센쿠강 협약’이나 구 동·서독의 접경위원회 등이 대표적이다.

남북공유하천 공동관리와 조사를 위해 남북이 참여하는 비정치적, 비군사적 물관리 기구가 필요하다. 이에 공유하천 수자원 관리 및 이용 협력 방안을 위한 “남북 공유하천 수자원 관리 위원회”의 설립을 제안한다. 필요하다면 중국까지 포함해 남북 전문가와 반관·반민 형태의 거버넌스로 구성할 수 있다. 위원회를 통한 공유하천의 수계관리는 단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제1단계 기술적 자료 구축 단계, 제2단계 수자원 공동사업 및 협력 단계 그리고 제3단계인 경제적 협력 및 수계 공동관리 단계를 거쳐 상호 협력과 상생을 모색하는 단계적 접근방안이 필요하다. 공동조사를 기반으로 한 홍수나 가뭄에 대한 일원적 통합물관리는 통일의 패러다임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남북한 공유하천에서의 갈등을 해소하는 일은 중요성이나 시급성으로 볼 때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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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강원도 화천댐에서 북한강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비무장 지대 내에 백암산이 있다. 1960년대 한 청년 장교가 우연히 그 곳에서 6·25전쟁 당시 무명용사의 돌무덤과 녹슨 철모를 발견하고 적은 시(時)에 장일남이 곡을 붙인 노래가 ‘비목(碑木)‘이다. 그 곳에 ’평화의 댐‘이 지어졌고 비목 시비(詩碑)가 북한강을 쓸쓸하게 바라보고 있다.

한국적 산수화풍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겸재(謙齋) 정선은 한탄강을 따라서 철원을 거쳐 금강산을 가는 여정에서 ‘화적연도’, ‘삼부연도’, ‘정자연도’ 등 한탄강 절경을 화폭에 담았다. 지금 이 곳에는 한탄강댐이, 임진강 본류에는 군남조절지댐이 들어서 있다.

북한강 임남댐과 임진강 황강댐의 건설로 인한 남북한 공유하천에서의 갈등을 해소하는 일은 중요성이나 시급성으로 볼 때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는 문제이다. 외국 사례에서 보듯이 공유하천 갈등은 당사자인 남북 간 협상과 협력을 통해 문제를 풀어갈 수밖에 없다. 특히 홍수조절을 위한 치수문제, 상류 댐 건설로 인한 하류의 수량 부족 문제, DMZ를 포함한 유역의 환경보존 및 관리를 다룰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물을 통한 남북 공동개발 문제를 포함, 복잡하고 다양한 남북 간의 협력과 상생을 필요로 하고 있는 분야가 많다. 역지사지의 입장으로 임진강을 잘 이용하면 남북의 여러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통일의 문제도 진전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유하천이 제대로 흘러야 비로소 통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