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땅 한반도. 일제 강점, 광복, 그리고 분단과 오르내리는 남북관계까지 ‘아무 일 없음’과는 거리가 먼, 이처럼 다이내믹(!)한 곳이 또 어디 있을까? 한국 사람이라면 익숙한 한반도 근현대사 100년을 남북이 아닌 제3자, 유럽 사람인 프랑스 감독이 다큐멘터리 영화로 담아냈다.
영화는 총 2부로 구성되는데, 눈에 띄는 연출은 주제별로 연관된 태권도 품새 시범영상을 맨 앞에 배치했다는 점이다. 남한 사람의 눈에 익숙한 세계태권도연맹(WT)의 품새도 있지만, 택견 같기도 하고 태권도 같기도 한 묘하게 낯선 태권도 품새들도 눈에 띈다. 바로 북한과 해외에서 주로 수련하고 있는 국제태권도연맹(ITF)의 품새 동작이다. 모양은 다소 달라도 태권도라는 공동의 뿌리를 남북이 가졌다는 점에서 마치 우리의 분단 역사를 시각적으로 보는 기분이다.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이 뿐만 아니다. 남북 간 고위급 인사들의 인터뷰가 교차되며 한반도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에 대해 마치 서로가 대화하는 듯한 방식을 취했다는 점이다. 한반도 역사에 대한 북한의 시각을 주로 북한의 공식 매체를 통해서만 접했던 우리에겐 북한 통일연구소장(리종혁), 북한 공식기록물 영상 감독(리통섭) 등의 발언은 다소 새롭다. 호전적이고 선동적인 일방통행식 전달이 아닌, 동일한 사건에 대해 다른 환경과 교육 등을 통해 형성된 개인의 생각을 듣는 것만 같다. 20년 간 한반도 이슈에 관심을 가져온 감독이 약 3년 동안 북한 당국을 설득하기 위해 들인 지난한 노력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백년의 기억’이 처음 소개된 건 2019년 제1회 평창국제영화제였다. 북미 하노이회담 노딜로 한반도 정세 전망이 썩 좋진 않았지만, 여전히 남북관계의 개선을 말하던 때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악화일로로 치닫는 남북관계에서 이 영화를 보자면, 영화 전반에 흐르는 화해와 통일을 향한 다르면서도 같은 남북의 염원이 왠지 아득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는 역사의 반복을 계속 겪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