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지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曺)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둘처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그렇게 고대하던 ‘그 날.’ 한반도 곳곳은 환호와 감동의 눈물로 들썩였고, 사람들은 광복을 경축하는 시가행렬에 앞장섰습니다.

그리고 7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또 다른 ‘그 날’을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 75년 전 우리가 함께 했던 날처럼 다시 한 번 같은 공간, 서로의 곁에서 기뻐할 수 있게 될까요? 그날이 오면. 

  • 45년 8월17일 경찰서 앞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