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과 평화

제2편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남북 공동방역 사업


정해관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사회의학교실 교수

01

들어가는 말

말라리아는 인류의 가장 오랜 모기매개 감염병으로 기원전부터 동서양 공히 널리 알려져 왔다. 말라리아는 말라리아원충(原蟲)에 감염된 모기에 물린 사람에게 일정기간 잠복기를 거쳐 주기적 고열이 발현되어 일반인도 손쉽게 다른 질환과 명확히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가졌다. 최근에도 세계적으로 연간 2억 2천만 명이 감염되고 40만 명이 사망하는 질병부담이 가장 큰 감염병 중 하나다. 대부분의 말라리아는 아프리카를 비롯한 열대지방에 주로 만연하는데, 이 경우 보통 치명률이 높은 열대열(熱帶熱) 말라리아1)다. 온대지방에서는 치명률이 낮은 삼일열(三日熱)2) 말라리아가 주로 만연하는데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선진국가들의 클럽인 OECD 국가들 중 결핵과 더불어 말라리아 발생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에 속한다. 북한 역시 연간 4,000명이 넘는 환자가 보고되어 우리나라의 10배가량 높은 발생률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보건의료지표는 선진국 수준임에 비해, 한때 완전히 사라졌던 말라리아가 남북에 걸쳐 이렇게 높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1) 열대열 말라리아 : 열대열 원충에 의하여 일어나는, 중증의 말라리아. 심한 발작이 특징으로 급성으로 대뇌, 콩팥 또는 위장의 증상들이 매 48시간마다 일어남으로써 때로는 사망을 초래하기도 한다. 주로 많은 수의 적혈구들이 영향을 받아 끈끈한 덩어리를 형성하여 말초 혈관을 막는다. (출처: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편집주)

2) 삼일열 : 감염된 모기에 의해 삼일열 원충의 감염으로 발생하는 열병. 오한, 전율을 수반하는 열 발작이 나타나고 발한기가 48시간마다 반복되며, 비종, 빈혈, 두통 및 구토 따위를 수반한다. 열 발작 간격은 점차 길어져 1년 반 정도면 치유되지만 종종 재발한다. (출처: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편집주)

02

남북의 말라리아 현황

우리나라에서도 말라리아는 학질(虐疾)이란 이름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알려져 왔다. 기록상으로는 고려사에서부터 말라리아가 언급되어 있어 그 당시 이미 말라리아가 일반적으로 만연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공식 기록은 일제강점기로부터 시작하는데 당시 기록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말라리아가 만연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방 후에는 한국전쟁의 상흔에서 벗어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말라리아의 발생도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농촌인구가 줄어들고 환경이 개선되고 영양상태가 좋아지면서 1970년대 들어서는 남북 공히 말라리아는 퇴치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1993년 서부전선에서 근무하는 군인으로부터 시작된 말라리아의 재출현은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2000년에는 3,000명을 넘어섰고 환자의 범위 역시 현역 군인으로부터 제대군인을 거쳐 일반시민에 이르기까지 급격히 늘었고, 지역 분포 또한 남부지역까지 확대되었다. 한편 북한은 공식 보고에 의하면 1998년 처음으로 말라리아의 재출현이 있었는데 첫해 환자는 2,000명을 넘었고 이후 2000년대 초반 연간 30만 명을 넘을 정도로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었으며, 주로 남부지역에서 많이 발생했지만 그 범위도 전국적이었다. 2000년 남북대화가 재개되면서 남북 정부는 협력하여 말라리아 퇴치사업을 벌였고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도 시작되었다. 그 결과 말라리아는 남한의 경우 최근 수년간 연간 500명 전후, 북측은 연간 4,000명 전후의 발생을 보이고 있다.

출처: 질병관리본부(2020.5월)

출처: 질병관리본부(2020.5월)

우리나라의 말라리아는 역학적으로 몇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국내 말라리아는 삼일열 말라리아로 열대지방에서 만연하는 열대열 말라리아에 비하여 치명률이 낮아 사망에까지 이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삼일열 말라리아는 모기가 없는 겨울을 지내야하는 온대지방에 주로 분포하는데, 겨울을 나기 위해 삼일열 말라리아 원충은 열대열 말라리아보다 진화적으로 더 정교한 생존과 번식기전을 갖추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장기 잠복기’로 불리는 현상이다. 통상적인 잠복기가 감염된 모기에 물린 후 1~3주 후에 증상이 발현되는데 반해, 장기잠복기 환자는 겨울을 전혀 증상 없이 지나고 다음 해 여름에 첫 증상이 시작된다. 이러한 특이 현상은 한국전쟁 중 처음 보고되었다. 겨울을 나야하는 말라리아 원충이 장기잠복기를 거치면, 모기가 없는 계절(겨울)에 증상이 발현해 전파할 모기가 없어 질병의 증식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점을 극복할 수 있게 되므로 이는 매우 정교한 기전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방역의 측면에서 많은 어려움을 가져온다.

국내 환자는 주로 남북 접경지역에 발생하는데 인구 10만 명 당 발생률을 산출해 보면, 군인이 아닌 일반인을 기준으로 볼 때 군사분계선으로부터 주소지까지의 거리에 반비례하여 발생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주요 발생지역은 경기도, 인천광역시, 강원도의 접경지역이며 특히 최근 10년간은 경기서부와 인천북부 도서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1990년대 발생 초기에는 현역군인들이 가장 많았으나 이후 제대 군인을 거쳐 일반인에게도 환자가 다수 발생하여 현재는 일반인 환자가 가장 많다.

북한의 경우 말라리아의 지역적 분포는 군사분계선에 면한 시도를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으나 일부 환자는 중국과의 주요 교통로인 평안북도지역에도 분포하고 있다. 남북한의 환자 발생 분포를 지리적으로 볼 때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대칭적으로 분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 천삼협동농장에 부착된 말라리아 예방 포스터(출처: flickr, Eric Lafforgue)

남북이 비슷한 시기에 말라리아의 재출현을 겪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의 경우 1990년대 초 대규모 자연재해로 촉발된 고난의 행군 시기에 만연했던 영양실조와 홍수 등 요인으로 모기가 창궐하고 말라리아도 재출현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이후 북한의 말라리아 환자 수는 북한의 식량생산이나 경제수준의 향상,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외부원조 등의 요인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공식적인 보고에 의하면 1998년 말라리아가 북한에 재출현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역학적 특성을 감안하면 실제 재출현 시기는 1990년대 초~1980년대 말로 추정된다. 주요 발생지역이 북한 남부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농사를 짓기 좋은 평지가 발달해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률이 높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남측은 환자 발생 분포가 군사분계선에 인접한 북쪽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는 감염 모기가 직접 남측으로 날아와 말라리아를 전파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일반적으로 말라리아모기는 수 킬로미터 이상의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고 보고된 바 있다. 더욱이 최근 접경지역 개발이 활발해지며 신도시 개발 등 인구 증가와 거주 환경변화를 고려하면 말라리아 퇴치는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건강문제다.

남북 공히 세계보건기구(WHO)의 말라리아 퇴치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러나 현재 상태로 볼 때 단기간 내 퇴치 가능성은 높지 않다. 무엇보다도 남한의 경우 말라리아 발생원이 주로 북쪽에 있다고 한다면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남북이 동시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힘들다. 말라리아가 창궐한 지역에서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가 중 공동방제를 통하여 성공을 거둔 사례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들 수 있다. 남북 또한 공동방제가 이루어지던 2008년까지의 경과를 보면 말라리아 환자수가 최고조에 달했던 2000년대 초반의 상황에 비해 극적인 환자의 감소를 기록하며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아쉽게도 2009년 이후 남북은 모두 방제에 있어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03

남북 말라리아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

우리나라는 지난 2001년부터 세계보건기구(WHO)를 통해 북한에 말라리아 퇴치 관련 물품 및 기술요원 훈련비 등을 지원해 오고 있다. 2001년에 약 50만 달러로 시작한 대북한 지원 규모는 점점 증가하여 2006년부터는 매년 100만 달러 이상 지원하고 있다. 또한 2009년부터는 The Global Fund(‘에이즈, 결핵 및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세계기금’)에서도 북한 말라리아 퇴치사업을 위해 지원하고 있다. 대북 말라리아 퇴치사업 지원은 2001년 이후 북한 지역의 말라리아를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판단되며 이는 남한 지역의 말라리아 발생률 감소로 이어졌다. 그러나 사업 계획이 전적으로 북한의 요구에 따라 수립되고 사후 평가도 불가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관련 자료도 극히 제한적으로 공개되는 등 계획 및 평가에 있어 우리나라가 철저하게 소외되었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또한 주로 물자 지원 사업에 치우쳐 관련 북측 보건 인력에 대한 교육 훈련 기회가 거의 없었으며 우리 측에서는 막대한 원조 자금을 투입하고도 대규모 말라리아 관리사업의 노하우를 제대로 축적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민간단체인 그린닥터스에서 개성공단에 설립한 병원을 통해 일부 북한 말라리아 환자를 치료하기도 하였으나 산발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에 그쳤다는 아쉬움이 있다.

북한에 대한 유례없는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말라리아 방제는 인도적 측면에서 예외조치에 해당될 뿐 아니라 이를 통하여 얻는 공동의 편익이 매우 크기 때문에 조속히 공동방제를 위한 물꼬를 터야한다. 남북 공동 방제를 위해서는 이전까지 진행된 남북공동방제사업에 대한 철저한 평가를 바탕으로 조속하고 지속가능한 퇴치를 남북 양쪽에서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방역물자의 공급보다는 전문 인력 양성과 교류가 병행되어야 하고, 충분한 치료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약제의 공급과 진단시약 지원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투입된 약제가 제대로 환자에게 충분한 기간 동안 지급될 수 있도록 내부 공급체계가 보장되도록 해야하며, 접경지역을 포함한 모기에 대한 공동 모니터링도 필요하다. 영상인식시스템 등을 통한 모기종별 자동 계수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남북 공동 기술개발사업으로서 활용성과 확장성이 높은 사업이 될 것이다.

자료를 공유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남북 간 보건의료 시스템 차이 등에서 비롯되는 상이한 점들을 지역수준에서 점검하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비교적 소규모 지역 단위의 시범사업을 시도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남북 간 보건의료 교류를 전체적으로 조정하고 적재적소에 적시에 배정하기 위한 거버넌스 구축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결핵, 코로나19, 아프리카돼지열병, 인플루엔자 등 시급한 공동방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구조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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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는말

말라리아를 비롯한 감염병의 공동방제는 어느 한쪽에서 베푸는 시혜가 아닌 그 성과를 양측이 같이 가져가는 윈-윈 사업이다. 우리로서는 접경지역 개발로 얻는 이익을 고려할 때 말라리아 방제는 매우 시급한 사업이기도 하다. 교착된 남북협력사업 재개의 첫 단추는 말라리아 공동방제로부터 시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