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과 평화

제3편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반도 생명·안전공동체


조한범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

01

코로나19와 초국경협력

코로나19 사태는 한반도는 물론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인류가 새로운 위험에 직면해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사회학자인 벡(U. Beck)은 이미 위험사회(Risk Society)라는 개념으로 현대가 직면한 새로운 위험에 대해 경고했다. 벡이 규정한 현대 위험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위험의 평준화’이며, 이는 누구도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전사고, 미세먼지, 기후변화 등의 영향은 인종과 성, 빈부, 그리고 국가 간 차이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대의 지구촌 사회는 글로벌 가치사슬(GVC)과 초연결(Hyper-Connected)로 상호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이는 풍요로운 현대문명이 가능한 원인이다. 그러나 지구촌 사회의 긴밀한 상호의존성은 현대의 위험에 따라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기도 한다. 개별 국가의 경제적 위기는 곧 바로 세계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일본만의 일이 아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국경과 지역의 차이가 무의미함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현대사회는 ‘위험의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Risk Society)라고 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앞에서 많은 국가들이 국경을 닫고 봉쇄정책을 실시했지만 의도했던 효과는 의문이며, 경제성장률 저하 등 오히려 더 큰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다. 한국은 개방적 자세로 투명한 정책을 통해 K-방역으로 불리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며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현대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초국경 협력의 강화가 필요하다. 코로나19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은 고립주의가 아니라 지구촌 공동의 노력과 협력이며, 이를 통해 백신과 치료법을 개발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는 현대의 새로운 위험에 직면한 인류에게 공동체의 의미를 재인식시키고 있다.

02

북한의 인간안보
(Human Security) 위기와
한반도 생명·안전공동체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3월 17일 평양종합병원 기공식에서 “수도에 마저 온전하게 꾸려진 현대적인 의료보건시설이 없는 것을 가슴 아프게”라고 자책한 것처럼 북한의 보건의료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올해 7월 16일 현재 북한의 코로나 확진자는 0명이며, 검사를 받은 경우는 1,211명에 불과하다. 이는 북한의 보고를 그대로 인용한 통계로 신뢰성에 의문이 있다. 동기간 남한의 확진자는 13,612명에 검사는 1,441,348건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 검사능력의 한계를 알 수 있다. 북한의 감염병실태도 심각한 상황이며, 세계보건기구(WHO)의 「2019 결핵보고서」에 따르면 결핵 사망자만 연 2만여 명에 달한다.

김정은 체제에서도 식량난은 지속되고 있다. 유엔기구들이 올해 7월 공개한 「세계 식량안보 및 영양 상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주민 47.6%가 영양 부족상태이며, 이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심각한 상황이다. 영양 부족문제는 보건의료 상황의 악화로 이어진다. 올해 대북제재, 코로나19, 그리고 홍수피해의 영향을 감안할 경우 북한의 식량난 악화 가능성은 자명하다. 북한 주민들은 심각한 인간안보 위기에 직면해 있다.

북한의 보건의료 위기는 남북한 모두의 문제이며, 당면한 코로나19 사태는 한반도 공동체성의 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7월 발생한 탈북민 출신 월북자를 코로나19 의진자로 규정하고 개성을 봉쇄한 데 이어 국가비상체제를 선언했다. 의진자 사실 여부를 떠나 바이러스 앞에 군사분계선(MDL)이 무의미함을 입증하는 사례이다. 접경지역 일대에서는 말라리아가 집중 발생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감염 멧돼지의 사체도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유행성 출혈열, 조류독감(AI), 솔잎혹파리병도 남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북한의 보건의료 위기는 한반도 전역에 영향을 미치며 이를 방치할 경우 통일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보건의료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남북 보건의료 협력이 시급한 이유이다.

2009년 북한이 황강댐을 무단 방류해 우리 측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며, 올해 장마에도 방류통보를 하지 않았다. 남북은 임진강, 한탄강, 북한강 등 여러 공유하천으로 연결되어있다.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등줄기이며, 한반도의 생태계는 하나로 연결되어있다.

한반도 분단체제는 장기간 남북 대치와 아울러 각각의 사회에 냉전문화의 형태로 재생산되어 고비용구조를 형성해왔다. 그 비용이 남북한 구성원 모두에게 전가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제 분단체제를 해소하고 공동체로서 한반도의 정체성을 회복할 때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에게 한반도 공동체의 가능성과 당위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 출발점이 남북한 전체의 인간안보를 위한 한반도 생명·안전공동체 형성이라고 할 수 있다.

03

한반도 생명·안전공동체 형성방안

존 볼턴 前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한국 정부의 통일어젠다에 입각한 ‘판당고’, 즉 외교적 춤판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에만 집중할 수 있는 미국과 달리 우리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그리고 궁극적인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에서 미국과 전략목표가 동일할 수 없다. 우리는 한반도의 당사자로서 문제 해결의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남북이 수천 년을 이어온 공동체로서의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분단체제의 고비용구조는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 한반도 생명·안전공동체 형성은 분단체제 해소의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보건의료, 생태‧평화, 그리고 인도협력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한반도 생명·안전공동체는 정치‧군사적 제약과 대북제재 국면의 한계를 우회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다.

우선 코로나19 남북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민간과 정부의 대북의료지원을 본격화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진단키트, 마스크, 소독제, 방호복 등 관련 의료용품의 대북지원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결핵, 간염 등 북한의 전염성 질환 치료와 보건의료 인프라 개선 등 협력의 범위를 점차 확대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남북한 간 보건의료 상시 협의체제 구축이 필요하며, 가칭 ‘남북보건의료공동위원회’를 구성해 개성 또는 평양에 접촉창구를 설치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보건의료 분야를 시발점으로 이산가족, 식량난해소 및 농업협력, 생태·환경 등 인도적 차원의 남북협력을 본격화해야 할 것이다. 독일 사례를 참조하여 인도협력과 정치·군사문제를 분리해 지속가능한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대북 인도지원 국제협력체제의 구축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생명·안전공동체 형성을 위해서는 접경협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말라리아, ASF, AI, 솔잎혹파리병 등 접경지역의 남북 공동 방역‧방제협력을 확대하고 남북 공유하천, 산림, 재난관리 협력이 본격화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 접경협력과 비무장지대(DMZ) 국제평화지대화의 연계도 필요하다. 생태·환경, 바이러스와 같은 인간안보 관련 초국경협력을 다루는 가칭 ‘DMZ 초국경협력기구’, ‘DMZ 국제 생태·평화 협력기구’ 등 국제기구를 DMZ 인근에 창설하거나 기존 기구를 유치하는 방안이 강구될 필요가 있다. DMZ 국제평화지대화와 연계해 동아시아 그린 데탕트 국제협력도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 생명·안전공동체 형성은 남북한 인간안보를 보장하는 방안이며, 대북제재 국면에서도 남북관계 발전과 상호 신뢰를 형성하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말라리아 방역 남북협력 경험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이미 오래전에 소멸한 말라리아는 1990년대 중반 전방지역에서 발병해 큰 피해를 초래했으며, 북한에서 남하한 모기가 주요 원인이었다. 2000년 이후 북한에 대한 방역지원으로 발병이 현저하게 감소했지만, 남북관계 악화에 따른 지원중단 이후 다시 증가해 OECD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반도 생명·안전공동체 형성을 위한 남북협력이 시급히 본격화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