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3중고 탈출 전략과 
남북 협력 방안


정은이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부연구위원

최근 전 세계 경제성장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더 이상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어 가고 있다. 여기에 북한은 ’제재‘라는 또 다른 상수가 작동하고 있어 경제가 더 나빠질 것이라는 예측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더욱이 올 8~9월에 걸친 기상이변은 서부 곡창지대에 직접적인 피해를 가져와 내년 식량사정조차 밝지 않을 전망이다. 그럼에도 최소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와 같은 경제 혼란 현상은 보이고 있지 않다. 오히려 물가는 안정적이며 장마당도 정상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는 ’코로나-19‘ 팬데믹 현상과 함께 북한이 직면한 3중고의 대응 전략을 분석해 보고, 이에 따른 남북 협력 방안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공식 통계를 통해 본 대북제재와 ‘코로나-19’ 충격의 상반된 양상

2000년 이후 증가하기 시작한 북·중 무역은 한때 70억불에 근접할 정도로 급증하였으나 2016년 제재가 강화된 이래 급감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2018년은 무역액이 전년 대비 51%나 감소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대중수출이 87.3%나 감소하여 1990년대 이래 최대 무역수지의 적자를 기록하였다(그림 1 참조).

<그림 1> 북·중 무역 추이(2001~2019년, 단위: 달러)

* 출처: KITA(한국무역협회) 자료 근거 필자 작성 

더욱이 2020년 ‘코로나19’가 시작된 이래 상반기 북·중 무역총액은 <그림 2>와 같이 전년 대비 약 68%나 감소하였으며, 3~4월에는 90% 이상 대폭 감소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최근 제재 강화 이후 북·중 공식 무역 추이와 더불어 2016년 5.24 조치 이후 대중 의존도가 약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그림 3), ‘코로나-19’시기 세계적인 경기 위축현상에서 북한도 예외가 될 수 없으며 여기에 대북제재와 기상변화가 더해져 3중고를 겪고 있다. 

<그림 2> 2019~2020년 북·중 무역액 월별 추이(1~7월)

* 출처: 중국해관통총서

<그림 3> 북한의 대중 의존도 추이(2000~2019)

* 출처: KITA(한국무역협회)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3중고의 위기 속에서도 물가는 상당히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즉, 북한 물가를 대표하는 식량(쌀, 옥수수)가격, 유가 및 환율 등은 2020 ‘코로나-19’ 초기를 제외하면 안정적이며 특히 식량가격은 오히려 전년대비 하락 추세이다(그림 3 참조).

<그림 4> 전년 대비 쌀 가격 상승률

* 출처: Daily NK 북한 물가 동향자료에 의해 필자 작성

뿐만 아니라 최근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나 2009년 화폐교환 시기와 같이 경제가 어려워지면 집 가격이 하락하거나 투매하는 극단적인 현상도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코로나-19’로 인해 방역이 강화되면서 개인 음식배달업이 성행하는가 하면 자본금이 탄탄한 돈주는 지금이 기회라며 아파트 건설에 투자하는 역설적인 현상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김정은식 자력갱생’과 체제 내구력 증대 

이와 같이 3중의 위기 속에서도 북한이 최소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와 같은 식량난이나 경제혼란 등 극단적 현상이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물가 등 경제가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공식통계에서 간과되기 쉬운 다음 요인에 착안할 필요가 있다.

무역통계에 보이지 않는 비공식 무역부문이 ‘코로나-19’시기에도 여전히 존재하며, 이로 인해 시장이 일정 정도 살아나고 내부 물자 공급도 유지되는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국경봉쇄는 중국이 아닌 북한이 자체 방어의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시도한 것으로, 이는 바꿔 말하면 북한의 필요에 의해 언제든 재개 가능하다는 말이다. 실제로 최근 식량과 생필품 중심으로 북·중 간 물류가 재개되고 있으며, 그 중에는 세관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 비공식 무역도 복합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즉, 코로나-19로 인해 무역량이 급감했다고는 하지만 당국이 경제 위기로 이어질 만큼 북·중 간 교역을 원천 봉쇄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북·중 무역 감소가 북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북한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관건이다. 사실, 최근 시장의 확대로 인해 대외의존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으나 외부에서 평가하는 만큼 전체 경제에서 무역의 비중은 높지는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북한은 체제의 특성상 사회주의 자립경제에 의한 경제를 건국 이래 강조 및 기본적으로 구성해 왔으며, 따라서 이는 무역이 차단되어도 자체로 생존 가능한 최소 자력갱생 구조를 갖추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물론, 그 수준이 여전히 열악하지만 주목할 점은 과거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에 비해 내구력이 향상되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과거에는 중앙 집권적 공급체계 하에서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졌다면, 2002년 이후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를 도입한 이래 주민, 기업 및 지방정부 등 다양한 하부 경제주체가 의식주 등 문제를 스스로 책임지도록 구조가 변하고 있다. 2013년 지역별로 수많은 경제개발구가 나오게 된 배경, 그리고 2019년 4월 개정 헌법에 국가 주도의 ‘대안의 사업체계’를 삭제하는 대신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실행을 명시한 점 또한 이러한 정책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이는 중앙정부의 경제적 부담감소와 함께 하부단위에 책임을 부여하고, 그만큼 자율성을 부여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종전에는 국가가 평균적으로 배급을 제공하여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일을 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구조로 경제가 변화되어 가고 있다. 바꿔 말하면 경제가 종전보다는 시장에 더 의존하는 메커니즘으로 발전하도록 작동하는 것이다. 최근 지방공업에서 자체 비교우의를 발휘하여 상품 개발과 함께 브랜드를 내놓는 것도 바로 이러한 흐름의 하나이며, 이를 통해 각자가 생존의 내구력을 키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김정은식 자력갱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에 따르는 격차도 함께 발생하고 있다.

결론 : 역량강화에 따른 남북 협력의 방향  

이상 분석에 의하면, 대북제재와 더불어 대홍수,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북한 경제는 현재 3중고에 직면해 있으며, 전망 또한 밝지 않다. 이는 북한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과거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와 다른 점은 위기에 대응하는 각 경제 주체들의 역량이 강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종전에는 주민 의식주를 비롯하여 공장기업소의 생산, 지역의 재정에 이르기까지 중앙집권적 틀에서 국가(중앙)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구조였다면 최근에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등을 통해 각 하부단위들이 스스로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분권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국가 재정의 부담을 감소시키는 만큼 각 경제 주체들의 책임을 강화시킨다는 의미다. 대신 국가는 자율성을 부여한다. 그런데 자율성의 부여는 각 경제주체들의 역량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왜냐하면 그만큼 각 경제주체들의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증대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김정은식 자력갱생이며 위기에 대응하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경쟁’과 함께 ‘격차’도 발생시킨다. 실제로 북한은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이후 각 공장기업소, 기관, 지역, 개인, 도농 간 격차가 커지고 있다. 따라서 향후 남북협력은 분권화된 방향에서 지방, 지자체, 개인 등 다층적 차원에서 협력이 이루어져야 하며 동시에 취약지역, 계층에 대한 인도주의적 협력도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김정은 리더십과 남북관계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파격 행보’가 화제다. 지난 10월 10일 새벽에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에서는 시작부터 끝까지 50여회에 걸쳐 ‘인민’을 언급하고 눈물까지 보이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강력한 국제적 대북제재와 코로나19, 수차례의 자연재해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인민들에게 감사와 격려를 표시를 한 것이다. 그리고 “하늘같고 바다같은 우리 인민의 너무도 크나큰 믿음을 받아 안기만 하면서 언제나 제대로 한번 보답이 따르지 못해 정말 면목이 없다”라는 자책 발언을 이어갔다.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파격 행보’

그리고 사흘 뒤 태풍 ‘마이삭’으로 큰 피해를 본 함경남도 검덕지구를 시찰한 김 위원장은 “인민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라고 자책하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과거에 딱 한번 공개연설을 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스타일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남쪽 언론에서는 이런 발언내용을 ‘김정은 위원장의 반성화법’이라고 지칭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과 행보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집권 초기부터 이어졌다. 2012년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5월 초 김정은(당시 당 제1위원장)은 평양의 놀이공원인 만경대유희장을 현지지도하면서 작심한 듯 관리일꾼들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직접 보도블록 사이에 난 잡초를 뽑은 후 "만경대유희장은 인민들이 이용하는 곳인데 이렇게 방심해 두고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가슴 아파하지 않는 일꾼, 인민들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 일꾼들이 천만 명이 있은들 무슨 필요가 있는가"라고 질타한 후 "이 기회에 (일꾼들의) 인민들에 대한 복무정신을 똑바로 간직하도록 경종을 울려야 하겠다"라고 말했다.

북한 언론매체들은 이날 화난 표정으로 발언하는 그의 사진과 함께 발언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대단히 이례적일 일이었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 김 위원장의 질책내용을 공개한 적이 거의 없었다.

일회성으로 그칠 것이라는 예상도 빗나갔다. 그는 2012년 4월 15일 김일성광장에서 한 첫 공개연설을 시작으로 신년사 발표나 주요 행사 때 직접 연설을 이어갔다. 현지시찰을 간 지역이나 공장 등에서 문제점이 발견되면 그 자리에서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올해 8월 홍수피해를 입은 황해북도 은파군을 방문할 때는 직접 승용차를 몰고 간 장면이 그대로 보도됐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직접 운전해 해외인사를 만난 적은 있지만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졌다.

2013년에는 ‘설마 죽이기야 하겠나’라는 관측을 깨고 고모부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을 사형시키고, 올해 6월에는 2018년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인 개성남북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시키는 ‘깜짝 행보’도 보였다. 외부 관찰자들은 이러한 그의 행보와 리더십에 대해 ‘독단적 태도’, ‘체제 불안정성’, ‘예측불가능성’ 등을 지적한다. 과연 그럴까?

김정은 리더십은 2009년부터 준비됐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북한은 36년 만에 당 대회를 개최하고,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비롯해 정치국회의를 정기적으로 소집하면서 회의장면이나 그 내용도 가급적 공개하고 있다. 김정일 시대 때는 공개된 적이 없는 정무국회의도 공개했고, 2018년 3월 남측 특사단이 방북했을 때는 처음으로 조선노동당 본부청사까지 개방했다. 경제 목표 달성에 미달하면 김정은 위원장은 직접 나서서 실패를 자인하고, 더욱 분발하겠다며 양해를 구하고 있다.

일회성이면 ‘예측불가’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정례화 되면 관행이자 리더십으로 자리 잡게 된다. 더구나 최고지도자의 결정이 단독이 아니라 당 내 논의의 결과나 북한을 움직이는 엘리트층 사이의 공감대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면 단순히 ‘독단적 태도’라고 규정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파격’, ‘예측불가’라는 단순한 평가에 앞서 북한 최고지도자의 행보나 북한의 정책방향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큰 틀에 문제가 없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먼저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은 성장과정과 교육환경에 따른 개인의 성향도 반영되겠으나 시대상황의 변화와 3세대로 세대교체 된 북한 주도층의 성향 등을 반영하고 있다.

북한은 2009년 김정은을 공식후계자로 확정한 후 후계자의 활동시스템을 만들고, 새로운 정책기조를 만들기 위해 당과 내각의 정책담당자가 폭넓게 참여한 상무조(태스크포스팀)를 조직해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후계체제 구축과 새로운 정책 방향 수립이 맞물려 진행된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2010년 9월 당 대표자회와 김정은의 모습 공개 전까지 이뤄졌고, 이후에는 세부(각론) 논의가 이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이러한 사실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재일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2012년 7월 11일 김정은이 "경제의 지식화가 촉진되는 세계의 추세에 맞게 인민을 잘 살게 할 수 있는 '우리 식의 발전목표와 전략전술'을 이미 세워놓으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언급해 간접적으로 이 같은 작업이 이뤄진 것을 시사했다. 특히 이 무렵 중국의 학자들은 이러한 후계 작업을 주도한 북한의 실무집단에 대해 ‘100인위원회’ 혹은 ‘300인위원회’라고 호칭하며, 이들이 40대 중심의 차세대로 구성돼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러한 실무진들은 새로운 후계자의 리더십 모델로 여전히 북한사회에 ‘강력한 지도자’로 각인돼 있는 김일성 주석의 통치방식을 벤치마킹(Benchmarking)하고, 경제정책의 경우 2002년에 발표된 ‘국방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킨다’는 기존 선군시대의 경제건설 방향인 국방공업 우선발전 노선을 새롭게 업데이트했다. 이에 따라 ‘경제건설의 총적 목표와 전략적 노선’, ‘과학기술 중시에 기초한 인민경제의 현대화와 정보화’, ‘국가경제력 강화를 위한 인민경제의 활성화’, ‘국토관리개선에 의한 산림녹화’, ‘새 세기에 맞는 대외경제관계의 확립’, ‘우리식의 사회주의경제관리 확립’, ‘경제지도일꾼들의 책임성과 역할 제고’ 등 다양한 현안들이 검토, 수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정책방향은 이후 김정은체제가 공식 출범한 후 ‘과학기술제일주의’,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경제특구와 경제개발구 확대 등으로 구체화 되었다.

또한 단상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 백마를 타는 모습, 머리 모양 등은 김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을 재현하려는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최근 논란이 된 ‘위임통치’, 즉 김 위원장이 측근에게 권력을 나눠주는 형태의 위임통치를 하고 있다는 것도 당·정·군의 ‘집단적 협의구조’로 운영된 김일성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북한 간부들에게 그렇게 낯선 행태는 아니다.

즉,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과 행동은 이미 그가 후계자로 부상할 시점부터 북한 내부에서 준비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감독(2세대 원로그룹)과 작가(신세대 실무집단)의 연출에 따라 주연배우(김정은 위원장)가 작품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리더십은 시대적 상황과 세대교체에 근거

둘째로 김 위원장의 행보는 북한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국내외 조건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최근 북한에서 ‘인민’은 정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로 등장했다. 북한에서는 이를 정치적으로 ‘인민대중제일주의’라고 선전하고 있다. 인민대중제일주의는 인민중시, 인민존중, 인민사랑의 원칙에서 인민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옹호보장하기 위해 당원이든 관료든 이를 위해 멸사복무(滅私服務)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김일성 시대의 ‘인민의 심부름꾼’, 김정일 시대의 ‘인민을 위해 복무함’ 이란 구호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시대어(時代語)로 ‘인민대중제일주의’가 나온 셈이다. 김 위원장은 ‘인민대중제일주의’를 국내 정치와 외교에서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6월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첫 북미정상회담을 마친 후 “김정은이 자신의 인민을 무척 사랑한다”라고 발언했다. 대단히 논란이 된 정치적 발언이었는데, 그가 이렇게 평가한 것은 김 위원장이 미국의 압박에 ‘인민’을 대응논리로 사용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밝힌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첫 북미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을 무척 거칠게 밀어붙였다. 당장 핵을 포기하라는 요구였다. 이때 김 위원장은 “인민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란 논리로 대응했다. 배불리 먹지도 못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미국의 압박에 대응해 만든 핵인데, 아무런 대가없이 내놓는다면 인민이 납득할 수 있겠냐는 반론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을 포기하려면 인민을 설득할 수 있는 미국의 상응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에둘러 말한 것이다. 이를 두고 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재미있고 매우 똑똑하며 뛰어난 협상가”라고 치켜세웠다.

5년 전 열린 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 때 김 위원장은 연설을 끝내면서 이례적으로 “전체 당원동지들에게 호소합니다. 우리 모두 위대한 인민을 위하여 멸사복무해 나갑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설문에서 ‘인민’을 무려 90번 넘게 언급했다.

이후 북한 내부에서는 당, 정, 군의 일꾼(간부)들에 대한 사업태도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 검열이 이뤄졌고 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간부들의 관료주의와 부정부패행위 근절을 천명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의 언론매체에서는 연일 “인민들이 느끼는 애로에 대하여 못 본 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일꾼으로서 자격을 상실한 사람”이라고 비판하며, 간부들이 인민들의 목소리에 점 더 귀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과 함께 손님들의 의견을 세심히 청취한 결과 품질 향상과 판매량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강원도 원산구두공장 등 모범사례 등도 집중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친절한 행정’과 ‘갑질 근절’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인민대중제일주의’ 구호를 통해 모든 정책의 우선순위가 주민들의 삶 개선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인민을 위해 봉사하고 인민을 보살피는 국가, ‘어머니 당’이라는 이미지를 쌓아 정권과 체제를 안정화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 실질적이든 감성적이든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현재의 난국을 돌파하기도 어렵고, 자칫 체제가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는 남과 북, 미국 모두에게 상황관리국면

북한은 공식적으로 ‘개혁’, ‘개방’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 자체를 꺼렸지만 김정은 체제 출범이후 경제정책과 제도, 기존의 관행을 개혁・혁신하는 노력을 해온 것은 분명하다. 이제는 내부적으로도 ‘개혁’, ‘개방’이라는 용어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세계적 추세 수용’과 ‘실리 추구’를 앞세운 김 위원장의 경제 분야 리더십으로 인한 변화이기도 하다. 또한 김 위원장의 개인적 성향을 넘어 북한의 3세대와 4세대 주민들의 인식과 지향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김 위원장의 리더십이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연극’으로 그칠지 북한 주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지는 시간이 증명해 줄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코로나19 대유행 사태 이후 ‘정면돌파전’을 내세운 북한이 대외문제보다는 내부의 체질개선에 더 힘을 쏟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현실적인 교류나 대화가 어려운 조건에서 내부 개혁과 대중의 지지확보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진정되지 않으면 실질적인 남북교류나 북미대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위기국면이나 중요시점마다 ‘친서 외교’를 통해 상황관리를 하고 있는 점은 북한과 김 위원장이 여전히 북미대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으로서도 당면 과제인 경제 건설을 위해서는 ‘평화적 환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남과 북, 미국 모두 한반도의 위기고조를 막는 상황관리가 필요한 시점이고, 이러한 정세관리가 적절히 이뤄질 때 내년 1월 북한 노동당 8차대회 개최 이후 ‘대화국면’을 기대해 볼 수 것이다.


과거 김일성 시대의 ‘인민의 심부름꾼’, 김정일 시대의 ‘인민을 위해 복무함’ 이란 구호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시대어(時代語)로 ‘인민대중제일주의’가 나온 셈이다. 김 위원장은 ‘인민대중제일주의’를 국내 정치와 외교에서 활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