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교역과 보건·재해협력에서 해법을 찾다,
평화경제 실현을 위한 전문가 라운드테이블 

정리 : 권지연 교류총괄부 대리

많은 이들이 평화가 곧 경제라는 등식에 공감한다. 그러나 남북 대화가 중단된 이후 ‘평화경제’라는 단어는 아주 멀리 있는, 우리 삶과 큰 연관 없는 거대담론 같다. 게다가 북한의 도발로 촉발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2017년을 기점으로 촘촘해지며 사실상 대북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지금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언제 깨질지 모르는 취약한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일까, 단지 잠시 유예 중인 갈등 국면을 지나고 있는 것일까?

최근 큰 변수가 발생했다. 코로나19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등 경계 없는 강력한 전염성 질병과 기후위기로 촉발된 각종 자연재해가 등장한 것이다. 이제 평화는 그저 번영을 위한 전제조건을 넘어 생존의 필수조건이 되었다.

난제라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 통일부가 주최하고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가 주관한 ‘평화경제 실현을 위한 전문가 라운드테이블’이 11월 13일(금) 개최됐다. 총 2개 세션으로 진행된 본 회의는 1세션에서는 작은교역을 주제로, 2세션은 보건·자연재해 협력을 주제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 세션의 패널로 참석해 각자 전문 분야의 관점에서 평화경제를 위한 아이디어나 추진 전략을 제시했다. 아래에서는 행사에서 논의된 내용들을 간략히 요약한다.

"생필품류의 물물교환에서, 
설비제공형 위탁가공으로 발전시켜야"


동명한 前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남북협력실장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대북제재의 기본 정신을 존중하되, 한미워킹그룹처럼 남북간 소통과 조율하는 제도, 소위 ‘남북워킹그룹’과 같은 기구를 통해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는 명분과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작은교역의 구체적 아이템으로는 최소한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생필품류의 상호 교환(구상무역)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생필품 중심의 물물교환은 위탁가공, 더 나아가 설비제공형 위탁가공교역 등으로 점차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0년 동안 여러 중소기업의 대북사업을 지원하면서 느낀 바는 설비제공형 위탁가공이 원천·관리기술을 동시에 이전하면서 남북 간 경제의존도를 높여 평화 달성에 도움 되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너무 앞선 구상이 아니냐는 지적도 가능하지만, 우리 내부에서 이 정도 제안이 어렵다고 생각하면, 남북교역에 대해 국제사회의 어떤 동의인들 이끌어낼 수 있겠나? 북한 입장에서도 단순 교역은 중국과 해도 되는데 굳이 남한과 여러 어려움을 겪어가며 할 이유가 없다. 현실을 직시하자. 그리고 진실과 원칙, 정도를 가지고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 당국의 컨트롤 타워
역할이 핵심"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작은교역을 비롯한 남북협력이 제대로 추진되려면 통일부와 남북협회 등 컨트롤타워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 지자체나 민간기업, NGO는 작은교역이든 인도적 지원이든 교류의 물꼬를 트려고 아이디어를 모으며 몸부림 치고 있다. 여러 주체들의 수많은 아이디어가 있지만 현재로선 너무 우리 사회 내부에서만 맴도는 것이 현실이다. 다양한 아이디어와 정보를 통합하고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유도해 성공사례를 만들어내야 할 시기라고 본다.

북한은 과거 남북경협 방식을 탈피하려는 의지가 분명하므로 구체적 협력아이템을 선정할 때 새로운 북한의 니즈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최근 빈발하는 자연재해를 체계적으로 방지하겠다고 김정은 위원장이 수차례 밝힌 바 있다. 또한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과 환경 보전을 위한 산림 조성도 꾸준히 강조돼왔다. 북한의 최근 관심사와 연계해 좀 더 협력 수준과 내용을 고도화시켜 초기 성공사례로 연결하는 게 중요하다.

전력 분야도 좋은 협력 아이템이라고 본다. 제재 때문에 대규모 협력은 불가능하겠으나, 극소형 수력발전소, 태양광 같은 다양한 에너지원을 활용한 발전, 전력 절약설비·기계 생산 등 북한의 최근 관심 분야 중 제재를 위반하지 않고 협력사업으로 추진할 부분이 있으므로, 협력 추진을 위한 전략 고도화가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꼭 필요로 하는 ‘영농물자’를 품목으로 정부 차원의 채널 구성"


이종근 드림이스트 대표

교역·경협기업 사업자 입장에서 말씀드리고자 한다. 교역을 하려면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북측과 이야기할 기회가 전무한 상태다. 지금까지 교역사업자들의 공식창구였던 북한의 민경련(민족경제협력인연합회) 중국 사무소는 전화도 거의 받지 않는다고 한다. 많은 교역기업인들과 일했던 중국 중개인들도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북한의 엄격한 봉쇄 등으로 사업 협의가 어려운 상태다. 더욱이 남북교역 단절이 너무 길다. 어떻게 버티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교역기업들 또한 새로 뭔가 시도할 만한 힘이 다 빠진 상태다.

작은교역 세부 품목으로는 영농물자를 제안하고 싶다. 연중 북한이 국가적 차원에서 모두가 나서서 매달리는 일이 바로 영농물자 조달이다. 매년 1월에서 늦게는 4월까지 대부분 북한 무역일꾼들이 중국의 단둥, 심양, 베이징, 상하이 등지를 물자 조달하려고 현금을 들고 동분서주한다는 것은 이 분야 사람들이 거의 다 아는 사실이다. 남한에서는 아주 쉽게 구하는 기초물자로 비료, 비닐박막, 농약 같은 품목들이다. 북한의 이런 필요에 대해 우리가 먼저 제안하면 어떨까? 정부 차원에서 채널을 만들면 좋겠다. 영농물자는 시기를 맞추는 것이 핵심이며, 장기적으로는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인도적 사업과도 연계된다.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시기와 품목을 선택해야”


이제훈 한겨레 선임기자

대북제재는 현재 교역 추진에 있어 가장 큰 고려사항이다. 제재 위반행위는 당연히 금지되어야 하나, 위반 우려를 가지고 지나치게 확대해석 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지난 8월 경 언론보도로 논란이 되었던 개성고려인삼주와 설탕의 물물교환이 그 예다. 작은교역을 추진하더라도 물품과 거래상대방 관련 명확하고 가시적인 기준, 즉 HS코드와 제재리스트를 기준으로 제재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우려 등을 이유로 확대해석 하는 것은 피하는 게 바람직하다.

물물교환 방식에서 구체적 품목을 선정하는 데는 등가성과 호혜성이 중요하다. 북한 입장에서는 북중교역에 비해 손해나는 장사가 아니어야 한다. 또한 남한에서는 수입대체 효과가 있고, 또 국민들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그런 물품이어야 한다. 작은교역은 본격적으로 진행될 남북경협의 마중물 역할이므로,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품목을 잘 선택해야 한다. 작은교역은 그 자체로 큰 규모의 사업은 아니나 오랜 세월 남북교역이 단절된 현재 상황에서 굉장히 주효한 역할을 할 것이고, 특히 오랜 세월 교역 중단 상황을 견뎌오는 대북교역 사업자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남북문화관광축전 등 남북 지역민들의 정서적 관계를 활용하자"


박병직 한반도평화관광포럼 대표

남북 간 교역 재개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 재개를 위한 노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현대아산의 독점사업권 폐기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남한의 기업이 어떻게 마음 놓고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여의치 않지만 향후 남북 지역을 연계해 여행하는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여기에 외국인을 유치하는 것이 한 방법일 수 있다. 북한 국가관광총국은 ‘조선관광’이라는 공식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외부에 적극 홍보중이다. 외국인 여행객을 매개로 남북관광 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고 본다.

지역 축제도 유용한 아이템이 될 수 있다. 축제는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서를 공유하는 것에서 시작한 것으로 공동체 형성에 기여한다. 송이축제, 개성인삼축제 등 남북이 공동 축제개발 하면 소득도 창출되고 더 나아가 제3국 수출 등 판로 확보에도 유리할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 보편성 있는
남북협력을 추진해야"


이석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글로벌 보편성’에 맞춘 남북협력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염병이나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은 북한을 국제사회로 이끌고 남북 간 협력을 구상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대북제재 또한 보편성의 측면에서 돌파할 수 있고, 북한의 호응을 끌어내기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속해서 디지털경제(수자경제1))와 기후변화 및 감염병, 보건 분야의 대처를 강조하고 있으므로 이를 고리로 남북협력의 새로운 방안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남한 또한 디지털뉴딜, 그린뉴딜과 같은 새로운 정책기조가 있으므로 ‘디지털 동반’같은 모토로 직간접적으로 연계하는 구상이 필요하다.

내년 발표될 북한 5개년 경제계획에 나타날 북한의 성장전략과 한반도신경제구상이 서로 조응한다는 논리를 통해 북한의 호응을 유인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의 관심사를 달성하는 데 남북경협이 도움이 된다는 등 신속한 비전을 제시한다면 어떨까 한다.

1) 수자경제.
모든 경제활동을 컴퓨터와 결합시킨다는 북한식 표현.

"제도적 정비를 통해 우리 기업인들의 교역 추진 동력을 보장해야"


전경수 금강산기업협회 회장

금강산경협인으로 가장 아쉬운 것은 5.24조치다. 최근 10주년을 맞이해 통일부에서 5.24조치의 실효성이 상실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의 선언으로 5.24 조치가 시작됐으므로 이에 대해서는 현재 대통령이 직접 폐기선언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우리 경협기업인들도 북한도 진정성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작은교역이든 큰 교역이든, 남북교역을 하려면 법률과 같은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정치·군사적 이유로 교역이 갑자기 중단될 경우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보상해주는 법적 근거가 없다면 우리 기업들이 어떻게 안심하고 교역에 뛰어들 수 있을까? 제도적 정비가 없으면 작은교역이든 개별관광이든 어떤 형태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한편 작은교역 추진 시 기존 사업자들의 사업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교역 이전 남북 신뢰구축을 위한 협력이 꼭 선행되어야"


공용철 KBS PD

작은교역의 의의는 충분히 인정한다. 하지만 교역은 상대방이 있다. 작은교역의 상대방인 북한 입장에서 제재국면 중 남한과 가능한 교역 아이템이 한정되어 있는데, 이 소규모 사업을 과연 선택할지 의문이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최대교역국인 중국과도 국경봉쇄를 단행했다. 우리라고 예외가 될 수 있겠나? 결국 코로나 시대 남북협력은 '신뢰구축'에 핵심을 둬야 한다. 예를 들면 보건협력이나 인도적 지원, 필요하다면 쌀 지원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종식 후 북한이 다시 문을 열면 제재국면 하 가능한 것은 관광이라고 본다. 멀리서 볼 것 없이 판문점을 활용하면 좋겠다. 북한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 남한의 외국인 관광객 등 전쟁과 분단의 역사가 여전히 현재진행중인 판문점 일대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미 관광 명소나 전시시설도 꽤 구비된 상태다. 초기에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남북 군사분계선을 판문점 일대에서 오고가며 관람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한다. 유엔사령부 및 관련 국가들과 협의도 필요하겠지만, 아주 작은 공간인 판문점 일대부터 경계를 열고 신뢰를 쌓아가는 시도를 해보면 좋겠다.

"토종씨앗을 매개로 국내외 공감받는 남북교역을 시도해 보길"


황방열 서울특별시 남북협력추진단장

통일부가 적극 추진하는 작은교역조차도 남북관계 현실을 감안하면 매개자가 꼭 필요하다. 보통 중국회사가 중개인 역할을 한다. 북한 물건은 원산지증명서가 있어야 남한으로 반입할 수 있는데, 이 증명서도 중국의 중개회사를 통해 받아야 한다. 그런데 요즘엔 평상시보다 더 높은 중개수수료를 요구하는 사례가 왕왕 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을 포함해 남북 간 직접 협의할 수 없어 제3국의 중개인을 고려하지 않으면 아예 어려운 게 현실이다. 교역 뿐 아니라 사회문화교류 등 비상업적 교류도 제3자의 중간역할이 없으면 진행하기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작은교역을 위한 구체적 품목으로는 토종씨앗을 제안하고 싶다. 남한은 전후 산업화, 현대화 과정에서 씨앗을 많이 개량해 토종씨앗이 드물어졌다. 상대적으로 북한에는 토종씨앗이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서울에 최근 동아시아 최대 규모로 서울식물원이 조성됐는데, 여기에서도 북한 평양식물원과 교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다른 품목의 경우 물물교환조차도 퍼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토종씨앗과 같은 품목은 제재와도 관계없고 국민들의 공감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청산결제를 도입해 제재국면 하 남북교역의 확장성을 키워야"


김기헌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기획실장

남북교역을 재개하고 더 나아가 활성화하려면 결제 수단과 방법에 대한 전향적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 현재 작은교역 즉 물물교환 방식을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나 교역이 한 두건 성사된다고 해도 그걸로 그칠 가능성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청산결제가 그 대안 중 하나다. 2000년 초반 청산결제 합의서도 남북 간 채택한 바 있는데, 이번 기회에 적극적으로 고려했으면 한다. 교역 물품을 화폐로 계산하면서도 화폐를 주고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어 대북제재 국면에서도 유효할 것이며, 상호 합의만 되면 연말에 상계처리하고 남은 금액은 의약품, 밀가루, 콩기름 등 현물로 정산할 수도 있다.

실제 사례도 있다. 이란의 핵합의 파기 당시 달러 교환 없이 우리나라의 건설기술과 이란산 석유가 청산결제 방식으로 거래된 적이 있다. 만일 시중 은행이 미국의 세컨더리보이콧 등 규제를 우려해 남북간 청산결제를 안하려고 하면 통일부 소속으로 전담은행을 하나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5.24조치 관련해서는 정부의 분명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하고, 그 자체가 남북 신뢰와 대결상태 문제를 해소하는 데 큰 의의가 있으리라 본다.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은 남북 당국간 합의서가 25개가 있는데, 일종의 행정조치에 불과한 5.24조치로 일거에 다 무력화되어 버린 문제점이 있다. 제대로 이 문제가 정리되지 않는다면 판문점선언을 국회 비준받는다 한들 얼마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 꼭 제대로 해결돼야 할 과제라고 본다. 

"의료품 생산시설을 접경지역 등에 조성해야"


박상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코로나19 위기로 건강안보 강조, 탈세계화, 공급망의 재편, 리쇼어링2) 등 전 세계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상대적으로 친숙한 건강권(health right) 개념과 달리 최근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건강안보(health security)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다. 건강안보의 핵심은 ‘감염병의 확산을 저지하고 통제’하는 데 있다.

상대적으로 보건의료 환경이 취약한 북한으로서는 건강안보가 곧 체제안정과 직결되는 중요한 의제다. 최근 감염병 위기를 겪으며 북한은 단순 의료물자를 지원받는 것을 넘어 자국 내 전반적 보건의료체계 강화, 특히 전문적이고 상시적인 조직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남한의 질병관리청 같은 조직체계 대한 니즈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남북협력의 포인트도 여기에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개발협력이나 인도지원 차원뿐만 아니라 경제협력까지 고려한다면, 의약품·의료용품 생산시설을 북한지역이나 남북 접경지역에 조성하는 사업을 제안하고 싶다. 지금까지 우리 대북보건의료 활동 대부분은 재원을 국제기구나 민간단체를 통해 지원하고, 이들이 유니세프 입찰조달 시스템 등을 거쳐 의약품을 조달해 전달하는 형식이었다. 여기에는 생산 부분이 빠져있다. 한반도 건강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의료물품이나 약제 생산시설 구축을 국제 ODA와 접목해 추진한다면 지속가능한 중장기 협력모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 리쇼어링(reshoring).
해외에 나가 있던 기업이 해외 임금 상승, 자국 세제 혜택 등 여러 이유로 본국으로 돌아오는 현상을 의미한다.

"재난·재해 예방협력은 안전한 한민족 정주공간 확보와 직결"


추장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북한이 자연재해에 취약하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2013년 자료 기준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위험지수가 전체 180여 개 나라 중 북한이 7번째로 높다는 결과도 있다. 이 취약성은 현재 진행형일 뿐 아니라 미래에는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 차원에서 극한기후 현상이 북한 지역에 더 빈발할 것이라는 보고서도 최근 많이 나오고 있다.

경계를 개의치 않는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해선 남북협력이 꼭 필요한데 여건이 녹록치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자연재해 협력은 단지 예방 차원이 아닌,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 모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정주공간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남북은 환경공동체라는 미래 비전과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구체적 협력 아이템으로는 감염병 방역협력에 의료폐기물 처리를 포함해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 방역 작업에는 필연적으로 의료폐기물이 발생한다. 폐기물 안전처리 기술과 설비를 지원하는 것을 포함해 단기적 차원에서 협력사업을 제안해보면 어떨까? 자연재해의 경우는 홍수피해 상습발생지역 중심으로 홍수 예·경보 및 대피시설, 응급대응을 위한 물자 지원 등을 통해, 기후위기에 대응한 회복력을 증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온라인 플랫폼 활용해 의료정보와 지식 공유하는 협력사업 가능"


이혜원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겸임교수

2016년 발표된 UN Strategic Framework(UNSF) 2017-2021에 따르면 2017년 북한은 복원성(Resilience),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분야에 가장 많은 수요를 갖고 있으며, 재난이나 재해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데 관심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UN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서 발표한 보고서에도 보건의료 분야 대북지원 중 IFRC(국제적십자사연맹) 지원이 가장 높은 비중으로 나타나, 재해관련 수요도 많았고 또 이에 대응한 지원도 가장 많이 들어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니세프나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가 주로 북한 내 재난·재해 피해 회복을 위한 필수물품 지원을 담당했는데, 북한의 군사적 도발과 대북제재 강화 등 상황 변화와 함께 지원 규모가 많이 줄었다. 그러나 북한 내 식량 및 필수 의료물품 등에 대한 수요는 여전하며, 절대적 부족분에 대한 공급은 지속되어야 하므로, 외부 지원이 감소하면 북한 내부 생산으로 보충하도록 지원할 수 있다. 제약공장에 의약품 원료를 지원하는 것 등은 제재 예외항목이거나 면제 승인을 받을 가능성도 높다.

한편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이후 의료정보의 과학화, 현대화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데, 신약개발이나 공동연구 등을 매개로 남북 간 협력할 수 있는 지점이 충분하다고 본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협력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북한과도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같이 최근 지식과 기술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탄소중립 달성하려면 북한 산림인프라 발전이 필수 전제"


김소희 (재)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

기후변화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현재 단순한 변화가 아닌 위기 상태로, ‘기후위기’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전염병도 산림이 무분별하게 벌채된 결과 박쥐, 모기 등이 서식지를 잃고 인간 거주지까지 내려오며 접촉으로 시작됐다는 일부 분석도 있듯, 인간의 환경파괴, 특히 산림벌채가 가져오는 나비효과는 오늘날 인간에게 막대한 피해를 미치고 있다.

지난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각국이 선언하고 있는 ‘탄소중립’을 우리나라도 2050년까지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제조업이 많고 온실가스 방출량이 많은 우리나라 특성상 탄소중립이 되려면 현재 국민 1인당 13톤인 방출량을 2톤까지 줄여야 하는 엄청난 과업이 놓여있는 현실이다. 남한 차원을 넘어 한반도 전체가 함께하는 큰 틀로 인식을 전환해야만 실제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본다.

북한의 산림인프라 구축은 단지 인도적 차원이 아닌,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는 우리의 국가적 목표, 나아가 전 세계의 공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필수적 과제다. 산림은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를 흡수해 환경 회복력을 증진시키는 핵심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 6, 70년대 전국민 나무심기 운동 사례를 보면, 나무를 심으면 쌀이나 밀가루를 주곤 했다는데 이를 접목해 나무심기와 식량지원을 패키지로 하는 사업 등을 세계식량기구(WFP) 등에 지속적으로 제안하는 중이다. 이런 협력 프로젝트를 우리 정부에서도 관심 갖고 함께 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수의축산 협력은 남북 모두 혜택을 받는 대표적 분야"


서정향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고난의 행군 시기를 시작으로 국내외 대북지원 NGO가 예전엔 600여 개 정도 북한에서 상주했다고 한다. 최근엔 코로나19와 맞물려 3~4개 정도 단체만 상주하고 있는 실정인데, 이들 모두 질병퇴치와 식량공급 관련 기구로 북한 주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 즉, 가장 기본적 수요를 도와주는 기구들만 결국 살아남은 셈이다.

우리의 대북협력 또한 인도주의적 고려와 정치적 명분을 모두 충족시키는 차원에서 추진될 필요가 있다. 비영리 공공인프라 사업이 대표적인데, 수의축산 협력분야에서는 2003~2009년까지 북한 지역에 양돈장을 건설하고, 후보돈, 질병예방백신 지원 등을 활발히 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환경관련 규제로 대규모 양돈장 신설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 우리 양돈업의 보존·발전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현재 북한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문제가 심각해 동물성 단백질 공급이 어려운 상황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북한 주민의 건강권과도 연계되는 것이므로, 동물전염병 퇴치와 식량공급 차원에서 비정부기구 등과 협력해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는 대북농수축산 정책을 수립하기를 기대한다.

"북한과 국제사회의 수요에 기반해 접근해야 성공적인 협력사업 가능"


문경연 전북대학교 국제인문사회학부 부교수

북한 주민들, 특히 아동이나 노약자, 임산부 등 취약계층은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는 상황이다. 쌀값이 안정적이라는 발표들도 있지만, 실제 북한 내부 사정을 코로나19 상황에서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기구는 전무한 수준인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비록 대북제재 준수나 한미 간 원만한 공조 유지 등 대북인도협력에 녹록치 않은 환경이지만, 합의나 협의를 이루는 것에 치중해 만성적 식량 부족으로 위기에 처해 있는 취약계층 주민들의 긴급한 필요는 외면한 것은 아닌지 고민과 반성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북한도 국제적 기준, 특히 SDGs(지속가능한 발전목표)에 근거한 국가발전계획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2019년 블라디보스톡에서 발표한 SDGs 이행현황에서는 목표별 관련 조직까지 구비하는 등 상당히 구체화된 수준을 보여줬다. 앞으로 우리가 대북인도협력을 제안하고 추진할 때 SDGs를 기반으로 접근한다면 북한의 호응과 이해를 끌어내기도 유리하리라 본다.

결국 ‘수요기반접근법’이 중요하다. 북한의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과 같은 북한의 수요와, 유엔의 수요 즉 국제사회의 공동 목표, SDGs나 여러 프레임워크(Frameworks)들을 가지고 남한 뿐 아니라 다양한 행위주체들이 개입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것이 유효할 것이다. 그래야 북한 입장에서도 해당 프로젝트가 자국에 어떻게 작용될지 ‘예측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어 적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고, 우리 국민들과 국제사회의 지지도 끌어낼 수 있으리라 본다.

"한반도 생명공동체 만들려면 원헬스(One Health)로 바라봐야"


오용관 (사)통일농수산사업단 이사

환경파괴나 기후위기의 해결책은 원헬스(One Health), 즉 인간-동물-환경이 온 생명체 관계임을 인식하고 공감하는 데 있다고 본다. 원헬스는 2000년대 초반 제시된 개념으로, 사람, 동물, 환경 건강을 달성하기 위한 다학제적 접근법을 의미한다. 아직 우리는 사람 방역, 동물 방역, 환경문제를 별개 부처가 소관하는 것에 익숙하지만, 이미 2018년 1월에 국내 감염병 예방·관리를 위해 환경부, 보건복지부 등 5개 부처가 공동 대응하는 ‘한국형 원헬스’ 관련 기본계획이 발표된 바 있다.

대북인도지원이나 개발협력은 기존 우리의 경험이나 방식을 이식하는 것이 아닌, 원헬스 개념을 갖고 보건-수의-환경전문가 등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해야 한다. 북한은 세 분야 모두 다 열악한 상태로 개별적으로 해결하는 것 보다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만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생명·안전공동체라는 큰 틀, 그리고 수단으로 원헬스를 북한에 설득해야 하는데, 북한도 충분히 코로나19나 ASF, 자연재해 등으로 원헬스 개념과 시스템의 필요성에 공감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국제사회의 공통 문법인 SDGs를 활용해 북한 개발협력사업을 계획해야"


강우철 한국수출입은행 책임연구원

남북 간 특수성이 아닌 국제사회가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일반적 접근법으로 우리의 북한개발협력 사업을 바라보면 여러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많이 언급된 SDGs는 오랜 기간 국제사회가 논의를 거쳐 확정한 세부목표들로 잘 구성되어 있어, 이미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언어이자 문법인 셈이다. 우리만 해도 국정과제를 전략으로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사업을 수립하고 계획한다. 이와 같이 북한개발협력 사업을 수립할 때 SDGs를 활용해 정의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그러면 국제사회도, 북한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SDGs로 북한개발협력 계획을 수립하면 자연스럽게 국제기구 및 국외 민간단체들과도 협력하기 수월해진다. 대북제재가 오래 지속되는 현 상황에도 국제사회는 여전히 보건의료 분야에서 북한과 지속적으로 협력을 이뤄내고 있다. 남북관계를 한반도 안에서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나, 국제사회 공여국의 일원으로 역할을 모색하는 것은 남북관계 특수성을 보완할 수 있는 타개책이 될 수 있다.

다른 개도국 개발협력 사업과 가장 큰 차이점은 북한의 수용성 부분이다. 아무리 남한 사회의 국민적 동의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면제 승인 등이 갖춰져도 북한이 사업을 수용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유사한 조건의 협력사업이라도 지원주체가 남한인지 아닌지 선별해서 수용하는 등의 경우를 보면, 결국 한반도 평화경제든 생명공동체 구현이든 정치적 노력도 매우 중요함을 시사한다.

"좋은 아이디어의 실천력을 담보하는 것은 남북신뢰의 회복과 개선에 달려있어"


손종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국장

2010년까지 많은 국내 민간단체가 북한을 직접 오고가며 대북지원 활동을 해왔다. 이후 상황 변화로 상당히 위축되긴 했으나 단체들이 마냥 손 놓았던 건 아니다. 인도지원에서 국제개발협력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며 국내 단체들도 해외 NGO나 국제기구와 협업하고, 또 유엔 대북제재 국면을 타개하려 여러 시도를 지속했다. 뉴욕에서 국제회의를 하고 유엔 1718위원회나 미국 국무부 관계자 등을 만나며 한국 내 대북지원 NGO들이 얼마나 있고, 또 어떤 사업을 1990년대부터 꾸준히 해왔는지에 대한 옹호사업을 펼쳤다. 그 성과로 약 9개 사업에 대해 유엔 제재면제 승인 사례도 만들어졌다고 평가한다.

여러 전문가분들이 말씀하신대로 SDGs는 북한과 국제사회를 이해시키고 호응을 유도하는 하나의 틀이다. 공용어로 활용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와 지지를 끌어내는 데도 유의미할 것으로 생각한다. SDGs를 통한 동북아지역 차원의 개발협력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이 틀을 활용하면 북한의 참여를 끌어내는 데 더욱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끼리 아무리 좋은 전략과 아이디어를 도출해도 궁극적으로 남북관계의 개선이 뒷받침되어야 북한의 호응을 유도할 수 있으리라 본다. 현 단계는 남북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