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강한 붓의 놀림. 곧 앞으로 달음질쳐 나갈 듯 역동하는 힘이 느껴지는 한 마리 흰 소의 검은 눈망울이 선하다. 평안남도 평안에서 태어난 이중섭은 매운 서리바람같은 일제 강점기에도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를 그렸다. 소를 유독 좋아했던 이중섭은 학창 시절 하루 종일 소만 지켜보다 어느 날에는 소도둑으로 오해 받아 신고를 당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6.25전쟁이 일어난 고국에서 전전하며 생활고에 시달리자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내야만 했던 이중섭은 항상 가족을 그리워했다. 담배 은박지를 캔버스로 삼아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항상 그림을 그려 보냈다. 그에게 전쟁은 극한의 가난과 가족과의 이별, 그리고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가져다 준 비극이었다.

인생의 아이러니는 이 때 이중섭의 걸작 「소」 연작이 탄생했다는 점일테다. 깊은 고통 속 피어난 예술혼은 ‘소’라는 동물이 가진 역동성과 따스함, 그리고 결코 멈추지 않는 우직한 희망을 그려냈다. 어두운 땅을 딛고 의연히 나아가는 흰 소의 모습은 결코 삶의 의지를 놓지 않으려던 작가 자신의 모습이기도, 또 우리 민족의 모습이기도 했다.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속담처럼, 보기에는 느려도 꾸준히 걷는 그 걸음이 결국 목표한 바에 가 닿는 유일한 방법이리라. 상서로운 흰 소의 해, 각자가 걸어갈 그 걸음을 응원하고 싶은 2021년이다.

소의 말

이중섭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