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남북교류협력사업의 평가와 전망 


최완규 신한대학교 설립자석좌교수, 
前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2021년 특별 시리즈, 명사초대석이 독자 여러분을 찾아 갑니다. 남북관계 주요 분야 명사들은 올해 남북관계 전망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남북 교류협력은 다시 열릴까요? 첫 번째 명사는 신한대학교 설립자석좌교수, 그리고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신 최완규 교수님이십니다

2020년의 남북관계를 통한 교훈 :

한반도의 당사자는 누구인가

2020년 남북교류협력 사업은 유령(specter)같은 존재였다. 사업의 실체는 보이지 않고 소문만 요란했던 것이다. 남한은 북한의 싸늘한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일방적인 대북 교류협력사업을 제안했고 남한 사회를 향한 보여주기 행사에 치중했다. 북한 또한 교류협력사업의 중단 책임을 남측에 전가하면서 비난의 수위를 높여 왔다. 사실 남북교류협력 사업은 2019년 3월부터 전면 중단의 길로 내몰리게 되었다. 그 해 2월 하노이 북미회담이 남과 북의 기대와 달리 결렬되었기 때문이다.

하노이회담의 실패의 후과는 컸다.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남북관계를 정립할 수 있다는 희망은 곧 실망이 되고 말았다. 보수진영에서는 미국의 결렬 책임은 외면한 채 일방적인 대북 유화정책의 실패라고 정부를 공격했다. 그 결과 2018년 남과 북이 3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애써 만들어 놓은 화해 평화와 교류협력의 공간은 사실상 거의 실종되었다. 남북한의 화해협력과 평화의 공간이 양측의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이것은 예정된 실종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남과 북 모두 두 가지 귀중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남의 대북정책과 북의 대남정책이 미국의 동북아와 한반도정책의 종속변수가 되는 한, 그 운신의 폭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또한 한반도 비핵화, 남북한 평화체제 수립, 한미동맹 강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일도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물론 미국이 한반도 정세, 한반도 비핵화문제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비핵화와 평화문제의 일차적 당사자는 남북한이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결렬 이후 교류협력사업은 물론이고 남북한관계 자체를 2018년 이전으로 돌려놓았다. 2020년 6월에 들어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앞장서서 대남강경책과 비난발언의 수위를 높였다. 6월 4일에는 “최악의 사태를 마주하고 싶지 않다면 제 할 일을 똑바로 하라”고 경고하면서 9일 남북한 연락선을 차단시켰고 13일 담화에서는 “확실하게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면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폭파를 암시했다. 결국 6월 16일 2시 50분 공동연락사무소는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북한은 4.27 판문점선언과 남북화해의 상징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라는 충격적인 방식으로 없애버렸다. 이것은 북한이 남한과 미국이 획기적인 입장 변화가 없는 한, 이들과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자신의 결의를 확고하게 보여준 것이다.

남북이 주도하는 한반도 평화가
왜 중요한가

그렇다면 남과 북은 어떻게 남북관계의 시계를 2018년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을까? 지난 2년간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남북교류협력사업의 동력은 어떻게 다시 확보할 수 있을까? 우선 한반도 문제해결의 핵심 고리는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이 쥐고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실천해야 한다. 하노이 회담의 결렬 책임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결정적 원인은 트럼프의 예측불허성과 미국의 국내정치 사정, 제재만능주의 세력의 부상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남북한 모두 미국바라보기 일변도정책의 부정적 결과들을 냉철하게 되새겨 보아야한다. 이미 남북한은 평창올림픽을 전후해서 평화올림픽을 명분으로 한반도의 평화문제를 주도한 경험이 있다. 이때는 남북한관계가 한미와 북미관계를 일정부분 견인해 나갔다. 남한정부가 군사안보의 문제를 미국과 전면에서 전향적으로 다루는 자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회담의 결렬이후 남북관계와 남북미관계, 특히 군사와 안보의 문제는 다시 미국이 주도하는 양상을 보였다.

사실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은 인민생활과 민수경제부문과 관련된 5개항의 제재 해제와 영변 핵시설 제거를 맞교환하는 제안을 했었다. 회담 결렬 후 리용호 외무상은 우리의 주된 목표는 체제의 안전담보 확보인데 미국이 완강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서 차선책으로 제재해제를 요구한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남북한 관계는 여전히 정치・군사적 이성이 경제와 사회문화적 이성을 압도하는 구조를 보여주는 사례다. 정체된 남북관계와 교류협력 사업을 재개시키는 핵심적 조치는 경제사회문화교류와 협력사업에 앞서 군사안보의 시계를 평창으로 되돌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실존하는 상대방을 인정하라

나아가 교류협력사업을 재개하고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정책의 한 쪽 당사자인 북한의 타자성을 인정해야 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남북한관계가 정체된 지난 2년간 남한은 정부는 물론이고 지방정부, 민간협력단체 모두 북한의 입장보다는 자신들의 목표와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한 대북 사업을 계속해서 일방적으로 제안해 왔었다. 나의 생각으로 상대방을 전유(專有)하거나 평가하면 상대방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없는 존재를 상대로 무슨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동안 여러 차원에서 북한의 타자성을 무의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금강산관광사업 재개 문제를 놓고 남측은 북측의 고민과 계획보다는 재개 그 자체만 관심을 두는 제안을 계속 내 놓았었다. 최근 김덕훈 내각총리의 금강산관광지구 개발 사업을 현지에서 파악한 보도 내용(2020년 12월 20일: 주체적 건축사상과 건설정책을 통한 자체개발 사업 추진)을 보아도 그동안 남측의 생각이 일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최소한의 협치 없이는
남북교류협력도 없다

이러한 조건들을 원활하게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대북정책과 남북관계 영역에서 만은 협치의 영역을 만들어 내야 한다. 정부는 야당과 정부의 정책에 비판적인 사회세력과도 치열하게 대화하고 설득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물론 대북정책은 사안의 특성상 일정부분 이념 내지 체제논쟁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온전히 합의해 기초한 정책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 가는 과정에서 협치의 절차와 과정, 형식을 밟는 것과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반대세력의 협조가 없는 정부의 대북정책의 운신의 폭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속성도 보장받을 수 없다. 정권이 교체되는 5년마다 정책이 바뀐다면 상대방도 그에 대응하는 정책밖에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만 한국 정부는 바이든 새 정부의 대북정책(군사안보)을 견인하고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정책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며, 그래야만 정부 주도의 교류협력사업은 물론이고 지방정부나 민간협력단체가 주도하는 교류협력사업도 재개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