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한반도, 
남북교류협력의 가능성은

고유환 통일연구원장

미 바이든 행정부의 대한반도 및 대북정책의 윤곽이 점차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 미국의 대북정책이 많은 영향력을 가지는 것도 사실인데요.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은 어떻게 북한을 대할 것이라고 보십니까?

2019년 2월 말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현재까지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모두 교착국면입니다. 북한이 하노이 ‘노딜’의 한 원인을 남측의 중재자, 촉진자 역할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대남사업을 ‘대적(對敵)사업’으로 환원한데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복병을 만나 관계복원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1월 초순 북한에서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가 있었고, 1월 20일 미국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했습니다. 북한의 8차 당 대회는 향후 5년의 전략노선을 결정했고, 바이든 행정부는 향후 4년의 미국 국내문제와 세계정세를 새롭게 재편해 나가겠죠.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했던 정책 중에 계승할 부분은 계승하고 극복할 부분은 부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도 무조건 트럼프 정책을 부정(ABT: Anything But Trump)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변하지 않는 것은 대북 제재를 유지할 것이란 점이겠습니다. 외교적 방법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실현하지 못했고 전쟁 수단은 사용할 수 없지 않습니까?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제재란 점에 대해서는 공화당과 민주당 행정부 모두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2018년 싱가포르에서 타결된 6·12 북미공동성명을 부정하지는 않을 겁니다. 6・12 북미공동성명은 북미관계 개선의 방향과 의제를 제시했기 때문에 부정할 이유가 없죠. 다만 접근방식에 있어 하향식(top-down)보다는 상향식(bottom-up)을 선호할 것으로 보입니다. 즉 바이든 행정부는 실무적으로 접근하여 성과가 기대될 때 정상회담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개입을 꺼렸다면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을 포함한 3자, 4자, 6자 등 다자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 정상 간 1:1 접근을 선호했다면, 말씀하신 대로 바이든 행정부는 다수의 관계국들과의 조율과 협상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중 하나인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은 무엇이겠습니까?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 대북정책 재검토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추측이 있었습니다만, 바이든 행정부는 북핵문제를 미국과 동맹국의 안전을 해치는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미국의 시급한 우선순위”로 꼽고 있습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동맹 및 파트너와 함께 “조율된 외교적 접근, 제재 이행에 조율된 접근, 조율된 메시지”를 강조한 바 있고, 바이든 대통령은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가급적 조속히 ‘포괄적 대북전략’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에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이 전략적 목표와 관련해 “미국과 동맹에 대한 위협감소 및 남북 주민의 삶 증진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는데, 이는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한반도 평화·안전·생명공동체 개념과 다르지 않습니다.

북한의 올해 상황도 녹록치 않아 보입니다.

맞습니다. 유엔 안보리에서 켜켜이 쌓아 올린 제재에다가 ‘셀프봉쇄’를 선택한 북한의 경제사정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유엔 대북제재, 자연재해, 코로나19로 삼중고를 겪고 있는 북한에서 사회 전반의 이완현상이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장 세력과 결탁한 고위 인사들의 일탈이 증가하고, 관료집단의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행위’가 심각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북한은 연초에 8차 당 대회와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하여 전열을 정비하고 자력갱생노선을 재확인한 바 있습니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은 미국과의 대결을 제재 대 자력갱생의 장기전으로 정리하고 이번 당 대회에서 ‘주체의 힘과 내부 동력’을 극대화하여 경제위기를 돌파하려고 하지만 성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자신이 취임 일성으로 약속했던 인민생활향상 공약을 실현하지 못했음을 시인한 파격도 있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아직 노력과 정성이 부족하여 우리 인민들의 생활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자책하고 인민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여러 차례 표명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입니다. 북한당국이 자원을 우선으로 배분하는 평양의 살림살이조차 공개적으로 걱정할 정도로 경제사정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북교류협력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우리 정부의 역할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남북관계를 끊어 버렸습니다. 남북관계 복원과 관련해서 지난해 김여정 당시 제1부부장이 나쁜 경찰(bad cop) 역할을 맡아 악역을 했다면, 올해는 김정은 위원장이 좋은 경찰(good cop) 역할을 하면서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노력을 본격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지 않으면 전면 복원은 어렵고 인도적 분야에 국한된 부분적 남북협력에 나설 수 있으리라 봅니다.

통일연구원에서 올해 정세전망을 하면서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7월을 전후한 5월에서 9월 사이가 남북관계 복원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한 골든타임이라고 전망한 바 있습니다. 3~4월 한미연합군사연습 등과 관련된 고비를 잘 넘기고, 북한이 중국, 러시아로부터 코로나 백신을 지원받아 방역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면 남북관계 복원과 한반도 평화-비핵 교환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할 수도 있을 겁니다.

8차 당 대회에서 북한은 방역협력, 인도주의적 협력, 관광협력을 비본질적 문제라고 하면서 첨단군사장비 반입, 한미군사연습 중지, 남북합의 이행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남한이 사회문화, 보건의료 등 쉬운 문제 우선의 기능주의적 접근을 시도하는 데 비해서 북한은 정치·군사적인 근본문제 우선해결을 주장하고 있죠.

우리 정부 차원에서는 북한이 주장하는 근본문제 해결에 집중하면서 상황악화를 방지해야 하고, 민간차원에서는 보건의료 등 인도주의적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 좋겠습니다. 북한이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에 맞서 자립경제를 달성하여 자력갱생하려고 하지만 객관적 상황은 악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어려워지고 있는 경제사정을 고려하여 협력방안을 찾는다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남북교류협력도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과거 방식의 답습이 아니라 북한의 관심사항과
코로나시대라는 특수성을 반영하여
새로운 남북협력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남북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제 남북교류협력도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과거 해왔던 방식의 답습이 아니라 김정은 시대 북한의 관심사항과 코로나시대라는 특수성을 반영하여 새로운 남북협력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2년 전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5만 톤 쌀 지원을 북한이 수용하지 않은 적이 있습니다. 주체적 힘과 자체의 역량으로 자립경제를 실현하여 자력갱생하겠다는 북한 당국으로서는 남한이 제공하는 쌀을 받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호혜성이 있는 협력사업을 발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국 간 신뢰를 회복하기까지는 지자체와 민간이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다. 지자체의 경우 자체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예산과 기반을 갖추고 있죠. 지자체가 활발한 남북협력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해야 합니다. 지자체는 지방의회 등을 통해서 사업추진의 타당성 등을 자체 검증할 수 있는 장치가 있습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가동될 때도 창구 일원화의 문제점이 노출된 적이 있습니다. 남북 주민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 교류협력이 증대되려면 창구가 많을수록 좋을 것입니다.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는 남북교류협력의 가교로서 기존 남북간 협력 사업인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그리고 지자체와 민간단체의 대북협력 사업을 지원하는 노력을 기울여주면 좋겠습니다. 또한 현 시기에 맞는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발굴하고 지원할 필요도 있는데, 아무래도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겠죠. 북한이 방역을 정책의 최우선순위로 삼고 국경을 봉쇄하고 있으니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지 않으면 교류협력도 쉽지 않을 겁니다. 현 단계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코로나19 예방백신 지원일 것 같습니다.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한 대북 백신지원, 한국에서 생산하고 있는 러시아 코로나 백신 스푸트니크V를 러시아 등과 협력하여 지원하는 방안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그 밖에도 세계식량계획(WFP) 등과 같은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주의 지원 확대나 탄소중립, 탄소배출권 등 기후변화와 관련한 남북협력을 적극 모색하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통일연구원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