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적 대북지원을
다시 생각한다.


최대석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국제구호단체들이
북한을 떠나는 이유

며칠 전 한 일간지에서 현재 북한에 국제 구호단체의 활동가들이 단 한명도 남아 있지 않다는 다소 충격적인 기사를 접했다. 지난 3월 중순에 힘든 여건 속에서도 성실히 현장을 지키던 세계식량계획(WFP) 직원들과 아일랜드에 본부를 둔 ‘컨선 월드와이드’ 관계자들마저 북녘 땅에서 철수한 것이다. 비교적 최근까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라는 대북지원 NGO에서 활동해 온 필자로서는 앞으로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더욱 고립되고, 지난 20여 년간 이어온 대북지원도 중단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왜 이들은 북한 땅을 스스로 떠날 수밖에 없었을까? 유엔의 대북제재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인도주의 사업과는 무관하며, WFP를 비롯한 국제 구호단체 관계자들은 이를 줄곧 견지했다는 점에서 주된 이유가 될 수 없다. 미국의 독자적인 대북 금융제재로 국제 구호단체들이 송금과 사업비 집행에 어려움을 겪어 왔지만 이것도 결정적인 이유로 보기 어렵다. 국제 활동가들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국경봉쇄였다. 물리적인 국경폐쇄로 누구도 북한에 입국할 수 없었고 한번 나가면 재입국이 허용되지 않았다. 자연히 인력교체, 휴가, 해외출장이 어려워졌고, 북한 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의약품과 생필품이 점차 소진되면서 더 이상 버틸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국경봉쇄로 인한 북한 사회 영향

코로나 19사태 초기에 북한당국이 국경을 폐쇄한 것은 보건 시스템이 열악한 국가로서는 일견 당연한 조치였다. 전체인구의 40%가 영양결핍으로 면역력이 떨어지고, 중증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는 병동과 치료제도 태부족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북한당국은 코로나 19 확산을 막기 위해 주민들의 지역간 이동을 통제하고, 확산의 우려가 있는 경우 지역전체를 봉쇄하는 강력한 수준의 방역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경봉쇄와 지역간 이동통제는 대북제재와 자연재해로 가뜩이나 어려운 북한경제와 주민들의 삶에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국경봉쇄 직후 북한의 시장물가는 쌀과 휘발유 등을 중심으로 급등세를 보였다. 경제적 불확실성에 대비한 사재기가 증가한 결과이다. 북중무역이 활발했던 국경지역은 방역강화와 무역중단으로 이중의 경제적 충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원산갈마지구, 평양종합병원 등 국가적 사업도 자재부족으로 완공이 지연되고 있다. 올해 초 8차 당 대회에서 김정은은 수입의존도를 낮추고, 당 재정사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언급을 하였다. 국경봉쇄가 장기화될 것에 대비한 조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다시 소환된 ‘고난의 행군’

지난 4월초 김정은은 당 세포비서대회를 마치면서 ‘고난의 행군’을 다시 소환했다. 북한역사에서 ‘고난의 행군’은 김일성이 1938년 12월부터 1939년 3월까지 100여 일 동안 항일 빨치산을 이끌고 중국 지린성에서 압록강 국경까지 감행한 강행군을 말한다. 북한은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1990년대 중반 아사자가 속출하는 최악의 식량위기가 발생하자 위기극복을 위한 담론으로 ‘고난의 행군’ 정신을 강조한 바 있다. 당 세포비서대회에서 김정은이 이 구호를 다시 언급한 것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주민들의 생활여건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로 여겨진다.

설상가상 지난해 작황도 좋지 않다. 농촌진흥청은 2020년 북한의 식량작물 생산량을 440만t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했다. 쌀이 202만t으로 가장 많았고, 옥수수가 151만t, 감자와 고구마가 54만t, 그리고 보리와 콩, 기타 잡곡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이는 전년인 2019년 464만t에 비해 무려 24만t이나 감소한 것이다. 그 중 쌀이 전년대비 22만t(9.8%) 감소했는데, 농촌진흥청은 지난여름의 폭우와 태풍이 생산량 감소의 주원인으로 분석한다. 지난해 북한은 중국이 지원한 옥수수 등 곡물 60만t과 55만t의 비료로 어려움을 피할 수 있었다. 북한의 연 평균 식량수요량을 550만t이라고 추정할 때, 지금과 같은 국경봉쇄가 장기간 지속된다면 올해 북한은 심각한 식량난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난의 행군’이 결코 흰소리만은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 대한적십자사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민간차원의 지원을 적극 모색해야 하며, 무엇보다 국제 구호단체 활동가들이 조기 복귀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대북 인도지원이 필요한 이유

돌이켜보면 북한은 1990년대 중후반의 ‘고난의 행군’을 시장의 확대와 국경무역, 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최근 북한이 다시금 자립경제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 국경봉쇄가 장기간 지속될 경우 경제전반의 침체로 이어지고, 주민들의 생활여건은 또다시 아사자가 속출하는 1990년대 중반 상황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필자는 지난 20년 가까이 대북지원 활동을 통해 ‘고난의 행군’ 기간 북한주민이 얼마나 힘든 세월을 겪었는지 간접적이나마 체험한 바 있다. 아무리 북한당국이 밉더라도 북한주민들이 또다시 식량위기로 내몰리는 상황만큼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문재인 정부 4년간 대북지원은 정말 미미한 수준이다. 북한과 각을 세웠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보다도 훨씬 적다. 정부차원의 직접적인 지원이 불가능하다면 지금부터라도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 대한적십자사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민간차원의 지원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나아가 정부는 북한의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에 대비하여 조기경보체계를 가동하는 등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으며, 국경봉쇄 해제 등 인도적 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북한당국에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제 구호단체 활동가들이 조기 복귀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