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전략경쟁 속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문법


이희옥 성균관대학교 교수

미·중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중국이 변하기 전에는 세상이 안전할 수 없다”라는 미국의 인식은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미·중 수교 당시 건설적 관여를 통해 중국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이른바 ‘키신저 질서’이고 다른 하나는 경쟁적 접근을 통해 중국을 ‘강제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선교 이상주의(missionary idealism)이다. 바이든 정부도 ‘동맹과 다자의 방식’을 활용하는 외교적 형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를 계승하고 있다. 집권 초기부터 홍콩의 민주화, 신장-위구르 지역의 인권문제, 글로벌 가치사슬체계의 디커플링 등 전방위적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편 중국은 글로벌 패권을 추구할 의지와 능력이 없고, 중국모델과 사회주의 이념도 중국 현실에 적용될 뿐 수출용이 아니며, 여전히 개발도상국의 대국이라고 강조하면서 몸을 낮추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 국내총생산의 70% 수준까지 추격한 자신감이 증가하면서, 미국주도 국제질서에 대한 일방적 순응을 거부하고 중국의 국가이익에 직접적인 영역에서는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지구전(持久戰)에 대비하고 있다. 특히 ‘백년대변국’이라는 외부로부터의 위기의식을 주입하면서 공산당 지배와 마르크스주의를 다시 호명하는 등 ‘정체성의 정치’(The politics of identity)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신냉전이 출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과거 냉전과는 달리 무기화된 상호의존(weaponised interdependence)이 있고, 양 진영의 개방도가 높으며, 현재 중국의 종합국력도 현상(status quo)변경을 시도할 수준이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이에 대한 미중내부에서도 다양한 토론이 전개되고 있다.

첫째, 미국 내에서 미·중 전략경쟁을 보는 시각이다. 여기에는 민주당 내 진보파의 탈패권론, 전통적 관여론, 기술과 경제영역의 전략경쟁, 군사와 이념영역을 중심으로 전면적 대결론, 글로벌 이슈에서의 협력론 등이 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거친 외교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체제경쟁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전략경쟁으로 보는 시각이 주류이다.

둘째, 중국의 대응 담론이다. 여기에는 미국의 공세에 적극적 대응을 요구하는 강경론,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신중론, 미국의 도전에 맞서 기술 자주화 등 내부정비가 필요하다는 준비론, ‘미국이 때려도 중국을 동정하는 나라가 없는’ 상황에서 주변 지역에 대한 매력 공세(charm offensive)를 펼쳐야 한다는 자성론 등이 혼재해 있다. 일단 중국은 종합국력의 한계를 인정한 상태에서 준비론과 신중론을 혼합해 대응하고 있다.

'정체성 정치'의 충돌

미국은 중국을 기독교화, 자유화, 민주화하고자 하는 오랜 꿈이 있었고 자본주의 국제질서에 편입시켜 협력적인 국가로 만들고자 했다. 2001년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킨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9.11 사건과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미국외교정책 중점을 중동(中東)에 두고 국내 경기회복에 집중하는 동안 소극적 개방과 적극적 경기부양을 통해 폭발적으로 부상한 중국을 제어할 기회를 놓쳤다. 이런 점에서 2018년부터 시작된 미·중 무역 전쟁은 대중국 견제를 위한 불가피한 전략 선택이었다. 더구나 미·중 수교 이후 공화당과 민주당을 막론하고 미국인의 반중 정서가 가장 높은 상황에서 ‘중국 때리기(China Bashing)’는 미국 국내정치의 부담에서도 자유로웠다.

바이든 정부는 오바마 정부와 트럼프 정부의 대중국 정책을 선택적으로 수용해 경쟁적 접근 기조를 분명히 했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잠정지침>에서는 중국을 세계를 위협하는 유일한 경쟁자로 규정하고, 55개의 동맹과 동류 국가(like minded countries)들과 함께 민주주의를 세계적 차원으로 확산시켜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중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중국 주도의 지역 협력체와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의 확산을 차단하고자 했다. 제1차 쿼드정상회의에서 발표한 <쿼드의 정신>에서도 “인도·태평양과 이를 넘어 안보와 번영을 증진하고 위협에 맞서기 위해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규범에 기초하고 국제법에 기반한 질서의 증진에 전념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으며, 2021년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러한 기조를 다시 확인했다.

반면 중국도 20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00년, 2022년 제20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중국의 가치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자본주의, 민주주의, 거버넌스 위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를 체제 정당성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정치사회 영역 전반에서 공산당의 지배력을 확대하고 애국주의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중국의 길을 걷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여기에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민족적 자부심(national pride)을 대외정책에도 투사하기 시작했다.

향후 미·중 전략경쟁은 과거 땅과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구도를 벗어나 새로운 게임체인저로 등장한 데이터 플랫폼 경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미국은 인공지능, 양자 컴퓨팅과 같은 신흥기술을 둘러싼 경쟁이 세계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보고 이에 대한 대비를 서두르고 있다. 지난 2월 24일 반도체를 포함한 희토류, 의약품, 고용량 배터리 등 4개 품목의 공급망을 100일 동안 우선 점검하는 ‘미국의 공급망’ 행정명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은 권위주의를 활용해 거대한 데이터를 여과 없이 수집하고 이를 기술과 산업에 응용하는 중국의 ‘기술독재’를 문제 삼았고, 실제로 국가안보를 이유로 중국 화웨이사의 통신장비와 반도체 사용을 규제하기도 했으며, 급기야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산업의 쌀’인 반도체의 기술과 장비가 중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동맹국들과 함께 봉쇄했다.

한편 중국도 “10년 동안 하나의 칼을 간다(十年磨一劍)”라는 정신으로 과학기술의 도약을 독려하고 있고, <제14차 5개년 규획>에서는 ‘제조중국 2025’를 발전시킨 ‘과학기술혁신 2030 중점 프로젝트’를 제시하는 한편 당 중앙에 군민융합발전위원회를 두고 정책 시너지를 높이고자 한다. 특히 미국의 기술 디커플링의 총공세 속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출로를 인력 확보에 두고 향후 5년동안 50만명의 반도체 전사를 양성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향후 미·중 관계는 갈등의 피로가 누적되어 국내정치의 부담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전선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중국경제가 빠른 회복력(resilience)을 보이는 상황에서 미국도 쇠퇴해가는 패권을 온전하게 복원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사실 미국이 ‘동맹국과 함께’라는 것도 역설적으로 ‘미국 홀로서기’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세계에 대한 위협이 권위주의와 독재체제에 있다는 미국식 접근법에 많은 국가가 공감할 것이라는 전제가 있으나, 중국에 대한 위협인식 차이가 있고, 미국도 대중국 견제에 참여한 국가들에 구체적인 클럽 이익(club goods)을 제공하기도 쉽지 않다. 중국 문제를 둘러싼 한미 인식도 미국은 중국을 ‘사회주의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단일 정체성으로 접근하고 있으나, 한국은 중국을 지정학, 지경학, 지문화 요소 때문에 복합 정체성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는 결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결국, 미국이 기후변화, 핵 비확산, 글로벌 보건안보, 군비축소 등의 영역에서 실용적이고 성과지향적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더구나 바이든의 지지기반은 러스트 벨트의 백인 노동자가 아니라, 중국과의 교역과 투자에서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실리콘 밸리라는 점에서도 미·중 전략경쟁의 장기화는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의 목표를 관철하는 데도 부담이며, 2022년 미국의 중간선거에도 민주당 정부에 반드시 유리하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중국공산당 창당 100년을 계기로 중국이 정치적 동원 기제를 완화할 경우 ‘갈등 속 부분적 협력’의 국면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한국외교는 다양한 정책 공간의 범위에서 실사구시적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외교의 실사구시적 해법

바이든 정부가 가치외교를 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외교의 전략적 모호성의 공간이 좁아지면서 다양한 정책 방향에 대한 논의가 등장했다. 우선 한국외교의 가치를 선제적으로 제시하고 중국으로부터의 제한적 손상(limited damage)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구체적으로 한미동맹 강화, 쿼드협력체 참여,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 축소, 한중관계의 위상 격하 방안을 제시한다. 이와는 달리 미·중 관계와 한반도 문제를 최대한 분리하고 역내 진영 구도를 완화하며, 다자주의를 통해 위험을 분산하고 한반도 문제의 중심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있다. 한국외교는 이러한 정책 공간의 범위에서 실사구시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첫째, 가치와 주권의 문제이다. 한국은 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 자유무역, 다자주의를 존중하는 국가 정체성을 발신할 필요가 있으나, 복잡한 이해가 걸려 있는 한중관계의 핵심사안을 동맹환원론만으로 접근하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중국 역할론, 대체시장 없는 탈중국화의 위험, 한중간 교역과 투자 규모를 고려할 때 편승의 위험이 있다. 따라서 주권과 가치문제를 구분하고, 동류 국가와 함께 다자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사안별로 선택적으로 지지와 반대를 표명하고 공개와 비공개 방식을 결합할 필요가 있다.

둘째, 새로운 지역질서 개편에 대한 참여의 수준과 범위이다. 미국은 중국을 포위 압박하기 위해 인도 태평양 전략과 쿼드 협의체를 적극적으로 가동했다. 중국도 자국이 주도하는 AIIB 설치와 RCEP 체결을 주도했으며 심지어 타국이 주도하는 CPTPP에도 가입 의사를 밝히는 등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개방적 다자협력에 모두 참여하는 확대균형(extended equilibrium)을 모색하는 한편 다른 국가를 자연적으로 배제하는 지역협력체에 대한 참여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셋째, 탈중국화와 대중국의존도의 축소문제이다. 한국의 대중국 교역의존도는 25%로 미국과 일본의 교역량의 합보다 많으며 반도체 수출의 60%는 중국에서 이루어진다. 더구나 문제는 최대시장인 중국에서 혁신하고 생존하지 못하는 한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근본적으로 미·중 간 완전한 디커플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미·중 관계도 협력과 갈등을 반복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참여의 범위와 방식을 유연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으며, 시장의 자율에 맡기는 전략이 불가피하다.

넷째,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이다. 미국이 전략적 안보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사드 추가배치와 미사일 및 핵 전략자산 배치를 요구하고 중국은 다양한 보복수단을 동원해 이를 저지하는 구도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즉 미국은 동맹의 신뢰를 문제 삼고 있고 중국도 한중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의미를 묻고 있다. 이런 점에서 미·중 관계와 한반도 문제를 최대한 분리하면서 안보 민감도를 줄일 필요가 있다.

한반도 평화의 제도화와 공고화

미·중 전략경쟁의 성격이 갈등과 협력과는 무관하게 한반도 문제는 종속변수가 될 위험이 있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라는 점에서 실패를 복기할 필요가 있다. 우선 남북한, 북미간 교착국면 속에서도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는 도발 행위를 자제하고 한미 양국도 연합군사훈련을 탄력적으로 접근한 상태에서 평화의 제도화를 유지해 온 것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남북한 판문점 회담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으로 만든 한반도 평화의 불씨를 살리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근본문제 즉, 북한이 주장하는 대북한 적대시 정책과 부분적 제재해제 문제를 정면에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특히 9.19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단계적, 동시적 해법을 운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스냅백(snap back)을 활용할 수도 있으며, 중국을 통한 북한의 설득, 국제 제재 밖에서의 공용인프라 건설을 통한 과감한 경제협력, 북한 접경지역에서의 산업 클러스트 건설, 대규모 인도적 지원, 중단된 평양종합병원 건설 지원, 의료거버넌스 협력, 지식공유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 무력 완성도가 90% 수준에서 하노이 정상회담이 열렸다면, 현재 그 공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북한이 코로나, 경제난, 제제라는 삼중고를 견디지 못하고 걸어 나올 때까지 제재를 강화하고 전략적 인내를 유지하자는 주장이 한반도 평화관리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1년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대북정책 리뷰를 마치고 외교적 해법을 제시했고,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남북한 협력(cooperation)의 동력을 확보했다. 이를 살려 불안한 평화를 제도화하고 공고화로 가는 길을 여는 등 불가역적인 평화를 구축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