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그린데탕트를 위한
정부 정책 제안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 나용우

윤석열 정부의 남북 그린데탕트

남북 그린데탕트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후보시절부터 남북관계의 정상화와 공동번영 추진을 위한 핵심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대선 공약을 토대로 판단해보면, 북한 비핵화와 병행하여 남북간 교류협력을 추진할 것으로 이해된다. 남북 ‘그린데탕트’ 구상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추진된 것으로, 윤석열 정부에서 업그레이드하여 남북관계 정상화의 핵심 과제로 제시한 것이다.

그린데탕트는 학술적 용어라기보다는 정책지향적 개념으로, 환경을 의미하는 그린(Green)과 대립․갈등관계 사이에서의 긴장완화(Detente)가 결합된 용어이다. 즉, 환경 및 생태문제를 공동 대응하기 위한 협력이 정치군사적 신뢰구축으로 이어져 분쟁국간 화해협력으로 연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북핵 고도화에 따라 정세가 악화일로에 있던 한반도에서 환경을 비롯한 비전통적 이슈들을 통해 전통적 안보 차원의 긴장완화를 모색했다.

이러한 패러다임 하에서 이명박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그린데탕트를 북한에 제안하였다. 두 정부는 환경협력을 통한 긴장완화 혹은 평화구축이라는 목표를 공유했으나, 정책의 핵심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그린데탕트가 녹색성장을 기본 구상으로 하는 남북협력 차원이라면, 박근혜 정부는 긴장완화를 위한 정책으로 그린협력을 활용하였다.

윤석열 정부의 그린데탕트 역시 기본적으로 과거 정부의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최근 북한의 모라토리엄 파기로 인해 윤석열 정부가 맞이하게 될 한반도 정세는 더욱 엄혹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음도 또 다른 변수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그린데탕트’가 최초 구상되었던 시기보다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실질적인 환경적, 생태적 피해를 전지구적으로 경험하게 됨으로써 남북 모두 환경 및 기후변화 대응의지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 측면이다.

남북한이 기후변화 대응, 재해재난 관리 및 환경협력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상호이해 및 화해협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 미세먼지, 재해재난, 기후변화 공동 대응, 산림협력, 농업․수자원 협력 등 남북 그린데탕트를 추진하겠다고 공약하였다. 동시에 비핵화 이전이라도 재난 긴급구호, 영유아 임산부 영양지원, 보건의료지원 등 인도적 지원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환경이슈로만 인식했던 과거의 그린데탕트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환경문제를 북한 주민들의 실질적 삶의 질 개선과 직접 연계해 추진할 것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그린데탕트를 위한
협력 가능 분야 모색

최근 기후위기 대응 등 환경관련 이슈는 남북 그린데탕트를 위해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 폐쇄적인 북한이 적극적으로 국제무대에 나서고 있는 분야가 바로 기후변화 대응 부문이다. 2015년 파리협정 이후 북한은 2016년,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제시하고, 조건부로 국제사회의 지원이 있을 경우 그 목표를 더욱 높이겠다고 했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자연재해가 주민들의 생활 및 국가경제 전반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친다고 언급하며, 기상관측 등 기상수문사업의 과학화 및 현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렇듯 북한 주민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기후변화 공동대응을 통해 남북 그린데탕트 협력을 추진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역량을 제고할 수 있도록 기후변화 관련 기술 및 정보 공유, 주민생활 개선 목적의 식수위생 설비사업 등을 남북간 우선 추진해볼 수 있다.

남북간 그린데탕트를 추진할 수 있는 또 다른 분야로는 자연재해 공동대응이 있다. 남북간 기상 관련 예측정보 공유, 접경지역 내 산불취약지, 산사태 위험지, 홍수 범람지역 공동조사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주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킴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다. 특히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보급, 자연재해 공동대응 인프라 구축 등 보다 본격적인 한반도 그린데탕트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린데탕트 추진을 위한 선결조건

그러나 그린데탕트 추진을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조건이 있어야 한다. 우선 남북간 대화 의지가 그 첫 번째 조건이 될 것이다. 북한이 올해 들어 ICBM 발사 등 모라토리엄을 파기하면서 정부와의 직접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지만, 새로 출범할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에 따라 변화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권영세 통일부장관 지명자는 현재 어려운 환경이지만 남북대화의 모멘텀을 조기에 만들고자 한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대화를 위한 대화가 아니라 북한 비핵화의 입구이자 남북관계 정상화의 출발로 대화를 지속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은 북한이 국제사회에 자발적 참여를 지속하는 것이다. 2019년 국가재해위험감축전략(National Strategy for Disaster Risk Reduction)과 2021년 7월 자발적 국가검토보고서(VNR, Voluntary National Review)에서 확인되듯, 과거와 달리 북한의 상황 및 관리 역량을 국제사회에 일정 수준 공개함으로써 국제사회로부터의 지원과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파리협정 이행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의 조건부 상향조정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세 번째 조건은 국제사회의 역할로서 대북 관여(engagement)의 유연한 적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북핵 등 북한의 군사적 도발로 인해 높아진 대북제재를 현 상황에서 조건 없이 완화할 수는 없지만, 기후변화 및 환경생태, 민생과 관련된 그린데탕트 분야에서는 유연하게 제재 면제 혹은 예외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실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일부 보건의료, 민생부문에서 제재 면제가 승인되었으나, 제재를 보다 유연하게 적용할 것이라는 국제사회의 공식적 합의를 끌어낸다면 북한의 자발적 변화를 추동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조건은 한국 정부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그동안 정부는 남북관계에 있어 실적 혹은 성과 위주의 교류협력을 추진해왔다. 청중인 국민들로부터 남북교류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야 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우리와의 대화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국제사회에는 적극적 지원과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양자간 직접 교류가 어렵다면, 국제사회 혹은 국제기구가 교류의 주체가 되고 이에 한국 정부가 직접 이해관계자(혹은 파트너)로서 관여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는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와 국격에 맞는 기여외교를 강조하는 “당당한 외교”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의 역할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이하 협회)는 2007년 설립된 이후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남북교류협력 활성화 지원이라는 목표를 위해 그 역할을 점차 확대해왔다. 새로 출범할 윤석열 정부에서 남북 그린데탕트 추진에 있어 협회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특히 그동안 교류협력을 진행하면서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가 그린데탕트 추진의 모멘텀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정부가 큰 틀에서 정책을 조율하더라도 그린데탕트는 민간단체, 기업, 지자체, 국제NGO, 국제기구 등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해야 효율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 현재도 협회는 접촉신고 및 물품 반출입 예비검토, UN 대북제재 면제신청 지원 등 여러 복잡한 행정절차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통일부와의 긴밀한 협력으로 업무의 효율성을 제고해 다양한 교류의 주체들이 활발히 활동하도록 협회의 지원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정부는 남북 당국간 대화와 함께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에, 이제 국내 주체들에 대한 지원에서 국제민간단체 혹은 국제기구와의 연계로 그 활동범위를 확대하고 국제적 역량을 강화해 국제사회와 함께 남북교류협력의 폭을 점차 확대해 나가길 기대해본다.

포스트코로나시대,
대북지원은 재개될 것인가?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한반도전략연구실
부연구위원 이지선

대북지원의 현황 분석 및 특징

작년 말부터 북한이 중국과의 육로 교역을 간헐적으로 재개하는 모습이 관측되었다. 북한 당국이 국경 폐쇄 조치를 점차 완화시킨다면 국제사회로부터의 인도적 지원도 덩달아 재개되리라 예상한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북한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고강도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면서, 원조사업 재개 또는 확장에 대한 기대감은 바닥을 치게 되었다. 최근에는 북한이 해금강호텔을 비롯한 남측 시설들을 해체시켜 남북협력을 상징해왔던 금강산 관광사업의 흔적마저 지우고 있다.

현재, 북한과는 인도적 지원을 포함한 어떠한 형태의 협력도 기대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대북지원이 감소 또는 중단되게 된 기존의 맥락들을 다시 한 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추후에 남북 간 대화나 협력의 물꼬가 다시금 트였을 때, 북한의 의도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여 이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대응할 수 있는 전략적 자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북지원 감소 및 중단의 세 가지 이유

첫째, 코로나19 사태 발발 이전부터 북한은 인도적 지원이 제재면제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상당 부분 거부해왔다는 점이다. 2016년을 기점으로 유엔과 국제사회가 이전보다 더 강력하고 포괄적인 대북 경제제재를 발동시켜왔다. 다른 한편으로, 2018년 8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는‘대북 인도지원 면제를 득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인 이행지원지침 7호(Implementation Assistance Notice No.7)를 채택하였다. 2020년부터 팬데믹 상황을 고려하여 제재 면제 승인 건수가 빠르게 증가했지만, 북한 당국의 폐쇄적 방역지침 그리고 강력한 국경 봉쇄 조치로 대부분의 물품 반입이 좌절되었다. 2022년 3월까지도 북한에 전달되는 인도적 지원 규모와 범위는 의미를 부여할 만한 확장세를 보이지 않았다.

둘째, 대북지원계획의 중장기적 추세에서 일정한 변화들도 관측되었다. 북한 상주 유엔 인도주의 국가팀이 발표한 ‘필요와 우선순위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긴급한 식량공급을 위한 단기 구호사업들의 예상수요가 점차 감소한 반면, ‘개발식량원조’라는 인도적 지원과 개발 지원의 성격을 중첩적으로 가지는 사업 수요가 꾸준히 증대되었다. 물론, 보건과 영양 분야가 여전히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에 있어 가장 주요한 협력분야라는 점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북한 당국 또는 주민들의 선호도, 즉, 만성적인 식량문제 해소를 위한 중장기적 개발사업 필요성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도적 지원의 감소와 중단은 코로나19 사태나 국제제재 자체가 가져온 결과이기보다는 이를 계기로 북한 당국이 불편하게 여겨온 국제기구의 간섭과 모니터링을 축출하고, 기존의 국제협력 구도를 ‘인도적 지원’이 아닌 ‘개발사업’ 중심으로 재편성하려는 의도로도 읽힐 수 있다. 실상 북한은 2005년부터 꾸준히 구호에서 ‘개발사업으로의 전환’을 천명해왔다. 서구의 원조규범 및 ‘공적개발원조’라는 형식 아래, 인도주의 지원 전달 과정상 요구되는 원조 배분의 투명성과 모니터링으로 인해 서구 공여기관들과 북한 당국 간 상당한 긴장관계가 형성되었다. 이를 반영하듯, 북한은 국제지원 협상 및 전달 상 비교적 유연성과 약식성을 보이는 비전통적인 공여국(대표적으로, 중국과 러시아)과의 협력관계를 꾸준히 확장해 왔고, 2015년부터는 비전통적 공여국의 지원 규모가 서구 중심의 전통적 공여그룹의 지원규모를 넘어섰다.

심화되는 북한의 식량사정과 정체된 대북 지원

2021년 12월 발표된 식량농업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국경 봉쇄 그리고 국내 이동 제한 조치로 인해 주민들의 식량소비 급감과 영양불균형이 매우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식량지원의 필요성이 더욱 커짐을 시사한다. 또한,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이 2021년 12월 발간한 ‘2022 세계 인도주의 지원 개요’에서 아시아 지역 내 아프가니스탄, 미얀마와 더불어 북한을 식량위기가 더 악화될 국가로 지목하였다.

북한 내 식량문제가 심화되고 있으나 이에 대해 국제인도주의커뮤니티와 북한 당국은 현재까지 이렇다 할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유엔은 2020년 이후 대북 인도적 지원 계획을 수립하지 않고 있다. 대북 인도적 지원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던 세계보건기구와 유엔아동기금의 경우에도 2021년 3월 지원 사업을 중단하였고 아직까지 북한 내 상주하는 직원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국경 상황에 아무 변화가 없는 가운데 민간 구호기관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유엔 그리고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완화 내지 해제 없이 국제사회와 북한 간 개발재원의 이동이 거의 불가하기에, 결국 북한이 바라는 개발 지원의 도입은 김정은 정권의 비핵화 의지 표명 및 실질적인 행동 변화와 결부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화된 식량위기 상황과 대비하여 북한은 미사일 실험 도발을 감행해왔다는 점에서 식량안보 및 대북지원 논의는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개발과 평화가 연계된 한반도형 지원방식 필요

국제제재와 군사적 도발의 악순환 가운데서도 남북 교류 채널 확보와 한반도 안보를 위해 대북지원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단순화된 논리도 이제는 상당한 피로감을 안고 있다. 현재로써는 대북지원 및 남북협력이라는 시도가 매우 요원해 보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적 지원을 넘어서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 및 협력의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중 하나가 개발과 평화를 연계할 수 있는 한반도형 지원 방식 고안이며, 국내적으로 관련 논의들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도 ‘지원을 통한 평화 유도’라는 시도들은 여전히 실험단계에 있으나 이와 관련해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이미 논의·발전되어 온 '긴급구호-재건-개발'연계 접근법 그리고 '인도적 지원-개발-평화 넥서스' 등의 담론들을 눈여겨 볼 수 있다. 한국은 북한의 행보뿐만 아니라 관련 국제 담론들을 지속적으로 추적, 활용할 필요성이 여전히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