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 방송교류 시례와 남북 방송교류 제언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
심영섭
독일 통일에서
방송교류의 역할
1945년 나치 정권이 패망하자 전승국은 독일을 동서독으로 나눴다. 소련군이 진주한 동독지역은 공산주의 체제를 도입한 독일민주주의공화국(DDR)이 수립되었고,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점령한 지역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한 독일연방공화국(BDR)이 수립되었다. 동독 공산당은 집권 초기 동독 주민의 서독 이주를 막고, 사회 불만을 억누르기 위해서 강력한 정보통제를 했다. 그러나 동서독 경계선은 남북으로 길게 늘어지다가 중부 독일에서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가로지르는 ‘ㄴ’자 형태였으며, 동독 심장부에 있는 베를린은 동서 베를린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서 동독은 서독으로부터 유입되는 방송전파를 효율적으로 막을 수 없었다. 비록 동서독은 서로 다른 정치 체제가 대립하고 있었음에도 분단 기간 완벽한 형태의 정보단절은 없었다. 오히려 동독 주민들은 서독 방송을 언제든 이용할 수 있었다.
서독에서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상황이 열악한 동독은 친인척 교류라는 명목으로 서독인들의 동독여행과 친인척에게 송금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편 교류를 허용했다. 그 결과 서독에 친인척이 있는 동독 주민은 품질이 좋은 서독상품을 이용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사치재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주민은 불만이 많았다. 동서독 분단 시절 내내 동독은 서독에서 유행하는 소비상품의 대체상품을 개발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다. 동독 정부는 1970년 동서독 정상회담 이후 동독주민들의 서독방송 수신을 사실상 허용했고, 동베를린에는 서독 특파원이 상주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동독인들은 서독방송을 통해서 서독은 물론 자유주의 체제에 대해서 비교적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동독 정부는 자신들이 기술적으로 차단할 수 없었던 방송과 달리 서독 신문이 동독지역에서 자유롭게 유통되는 것은 끝내 거부했다. 반대로 동독의 신문 등 인쇄 매체는 예외를 제외하고는 서독으로 반입될 수는 있었다. 물론 서독에서 동독신문의 수요는 거의 없었다. 분단시절 서독방송은 광범위하게 동독에서 시·청취되었는데, 서독의 방송은 독일 문제에 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동서독 주민들이 통일 독일에 대한 희망을 유지하게 했고, 독일어와 독일문화에 대한 공통점을 강조함으로써 독일인의 민족적 동질성을 유지하는데 기여했다. 서독의 공영방송법은 민족적 과업인 통일을 위해 방송이 역할을 하도록 명문화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독일제2공영TV방송(ZDF)의 정관 제3조는 “독일 제2TV 방송은 전체 독일의 TV 시청자들에게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특히 독일의 현실에 대한 공정한 모습을 전달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공영방송과 달리 상업방송은 독일을 위한 공적책무를 주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독일통일을 주요한 의제로 다루었다.
동서독 방송교류의 영향
1970년대 초부터 동서독은 프로그램공동제작과 프로그램교류를 꾸준히 추진했는데, 1986년에는 동서독이 문화협정을 체결하고, 그 후속 조치로 사실상 방송전파가 동서독 경계선을 넘어도 문제삼지 않았으며, 방송교류도 사실상 제한없이 허용하였다. 그 결과, 동독지역에서는 매일밤 방송전파를 통해서 동서독 주민들이 통일되었다. 동독주민들은 서독 공영방송을 통해 교양교육을 받았고, 서독 상업방송의 오락프로그램과 영화, 드라마를 통해 외부로 향한 동독주민들의 동경을 충족시켜 주었다.
물론 이러한 방송 교류가 처음부터 허용된 것은 아니다. 베를린시 라이프치히거리에서 시작된 굶주림에 지친 동독 주민들의 ‘빵을 달라’는 평화시위를 소련군이 탱크를 앞세워 무력으로 진압한 후, 동독은 베를린에 장벽을 설치했으며, 동서독 경계선에는 지뢰가 설치된 비무장지대를 만들어 동독인들의 서독탈출을 막았다. 마찬가지로 동독 공산당의 청년조직인 자유민주주의청년단(FDJ)은 서독 쪽으로 향해진 옥외안테나를 부숴버렸다. 그러나 1971년 동독 정권은 대외적으로 개방된 국가를 지향하겠다고 밝히고 통제보다는 서독 방송과의 경쟁을 선언했다. 하지만 서독 방송의 시청을 원천봉쇄할 수 없었기에 선택한 선언적 조치에 불과했다.
동독방송에 비친 동독의 모습은 "성공적이고 행복하며, 만족하고 빛나며,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이었지만,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그래서 동독인들은 서독 방송을 통해서 동독방송이 전해주지 않는 동독의 문제점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1980년대 중반에는 동독주민의 90% 가까이가 서독공영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다. 당시 동독지역에서 서독의 양대 공영방송인 제1공영방송(ARD)의 저녁종합뉴스인 ‘타게스샤우(Tagesschau)’ 시청률은 22%, 제2공영방송(ZDF)의 저녁종합뉴스인 ‘호이테(Heute)’ 시청률은 40%로 나타났다.
물론 동독지역 전체가 서독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독방송을 수신할 수 없었던 동남부의 산악지대가 있는 작센 지역은 동독에서 "무지한 자들의 계곡" 혹은 "죽은 눈동자의 계곡"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동독에서도 억양이 억센 작센 사투리는 놀림거리였는데, 동독정권은 이러한 지역감정을 이용하여 동서독 접경지대와 동서베를린 검문소에 작센 출신의 병사를 국경수비대원으로 집중적으로 배치하여 공포심을 자아냈다. 역설적이게도 상당수 동독 탈주자가 작센 출신이었고, 동독 정권을 무너뜨린 ‘촛불시위’가 시작된 곳도 작센이었다.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자유에 대한 그리움, 낯설지만 새로운 세계를 향한 욕구는 더 폭발적일 수밖에 없었다.
남북 방송교류 제언
남북한은 동서로 긴 휴전선으로 나뉘었다. 남북한 모두 방해전파를 통해서 상호 방송 시청 및 청취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보다 먼저 평화적 통일국가를 만든 동서독에서 보듯, 방송 교류의 핵심은 국경을 넘는 전파에 있지 않다. 통일을 향한 염원을 같은 언어로 만든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통해서 동질성을 회복하는 데 있다. 언론과 정보교류 과정에서 서독 정부가 동독 정부보다 앞설 수 있었던 것은 저급한 정치선전과 체제홍보가 아니었다. 서독 방송의 저력은 공영 방송의 수준 높은 시사교양프로그램과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갖는 창의적 문화의 저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언론교류도 상대적으로 통제될 수밖에 없는 인쇄 매체에 의존하지 않고, 접경을 자유롭게 넘어갈 수 있는 주파수를 활용한 점이다. 새로운 기술을 통해 낡은 방어벽을 넘어섰다.
독일통일이 있었던 1990년과 달리 미디어 환경은 새로운 기술인 온라인과 모바일이 주도하고 있다. 북한 주민의 이제는 자유롭게 모바일을 이용하여 통신할 수 있고, 국가인터넷망을 이용할 수 있다. 아직 남북으로 나뉜 휴전선을 온라인과 모바일로 넘을 수는 없지만, 북한과 접경한 중소국경도시에서는 중국휴대전화서비스를 통해서 남쪽으로 영상통화도 가능하다. 길은 어느 정도 열려있다. 여기에 북한 주민의 상당수가 DVD나 CD, 소형기억장치(USB)에 담긴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휴대용영상수신기를 소유하고 있다. 물론 북한에서 TV와 라디오 보급률이 100% 가깝다는 점에서 여전히 방송을 통한 정보교류는 중요하다. 남북이 합의할 수 있다면, 상호 특파원교류와 상호 방송주파수 차단해제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맞게 북한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정보를 새로운 플랫폼과 단말기를 통해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동서독 통일과정에서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은 일방적인 정치혐오와 비난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서독이 독일통일 과정에서 ‘방송을 통한 통일’을 이끌었던 것은 동독 주민들도 거부감없이 수용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공공적인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 TV방송의
변화와 함의
KBS 남북교류협력단 연구원 윤해숙
김정은정권의
방송정책
북한에서 TV방송은 ‘대중적이며 종합적인 보도선전수단’인 동시에 ‘힘있는 사상문화교양수단’으로 정의된다. 특히 TV매체가 가진 ‘직관성, 생동성, 신속성, 대중성 그리고 보급력과 전파력’이라는 속성으로 인해 ‘가장 우월한 선전수단’의 위상을 갖는다.
과거 혁명가극, 예술영화, 기록영화, 선전화, 가요 등 미디어 콘텐츠를 매개로 한 북한정권의 지배 이데올로기 강화 노력은 김정은정권 들어서 TV매체를 주요 영역으로 전개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동정과 주요 정치일정 및 국가행사들이 TV를 통해 생중계되거나 영상과 함께 신속하게 보도되고, 현대적인 촬영기법과 방송기술이 적극 도입되었으며, 드론, NLE(비선형편집시스템), CG(컴퓨터그래픽) 등 첨단 장비들이 TV부문에 투입되었다.
최근 들어 새로운 채널이 추가로 설치되었고 방송시간이 대폭 늘어났으며, 2020년부터는 태풍과 코로나19 등 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재난방송 시스템을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 방송에 거는 기대만큼 방송원들에 대한 대우도 높아져 리춘희 아나운서가 열병식의 주석단에 서거나 원로 방송인들에게 새로 건설된 고급주택에 입주할 기회가 주어졌으며, 입주 당시에는 김정은이 직접 가정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프로그램에 기자가 실명을 걸고 직접 출연하기도 하고, 방송에 엔딩 크레딧을 도입해 제작진의 이름을 밝히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주민들이 북한매체를 외면하는 현상이 심각하다는 데 있다. 경제난 이후 배급제가 무너지면서 주민 생활에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축소되고, 휴대폰의 대중화, 저장매체의 소형화 등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외부문화 접촉이 보다 쉬워진 현실에서,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더 이상 선전선동, 대중 교양을 목적으로 한 기존 북한방송의 콘텐츠를 강요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김정은정권은 집권 이후 비사회주의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년), ‘청년교양보장법’(2021년) 등을 제정하여 남한이나 미국 등 외부 영상물이나 콘텐츠를 접하는 경우에 대한 처벌의 수위를 지속적으로 끌어 올리는 등 외부문화에 대해 공세적으로 대응하며 젊은이들의 사상이완을 경계했다.
그러나 처벌수위가 점차 강해지는 이러한 조치들은 단속과 처벌에도 주민들의 외부문화 접촉을 차단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방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북한 방송으로는 외부문화를 접한 주민들의 높아진 문화적 수준을 충족시킬 수 없으며, 이는 북한이 체제안정을 위해 강조하는 ‘붓대’의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는 요인이 된다. 결국 북한의 TV방송 앞에는 선전선동이라는 기존의 역할과 함께 대중성을 제고해야 하는 과제가 중대하게 나선다. 물론 이 두 가지 과업은 TV방송이 체제보위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복무할 것을 전제하고 있다.
최근 북한 TV방송의 변화
최근 북한 방송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속보성, 정보공개성, 주민 생활 밀착형 정보 제공 등 보도매체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으며, 영상과 표현 측면에서는 다양한 촬영 기자재 및 편집 기법을 도입하고 CG, 3D 등 최신기술을 적용하여 현대화, 서구화된 이미지로 변화하고 있다.
1) 내용적 측면의 변화 :
‘속보성’과 ‘정보공개성’의 강화
지도자의 동선이나 주요 간부들의 행적이 비공개 처리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2018년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당시 주요일정이 다음 날 바로 영상화되어 보도된 것을 시작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동정이나 당 및 국가의 주요회의 등이 방송을 통해 비교적 신속하게 보도되고, 날짜와 장소도 명확히 공개되고 있다.
2020년과 2021년 진행된 태풍 특보와 수해 관련 재난 방송에서는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피해 현장상황이 공개되었으며, 현지방송원이 직접 피해 현장을 찾아 상황의 심각성을 전하기도 했다. 과거 재난재해 발생시 피해상황을 영상이나 수치로 공개하던 것을 꺼리던 북한당국의 정책과는 전혀 달라진 대응이었다. 태풍 피해 현장 상황 전달과 예방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이례적으로 세 차례에 걸쳐 24시간 재난방송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방송과 보도에서 점차 ‘속보성’과 ‘현장성’, ‘정보공개성’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TV의 정보 제공 통로로서의 역할은 특히, 제공되는 정보가 시청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일 때 더욱 관심을 높일 수 있다. 2019년부터 시도된 재난 방송도 도입 초기에는 태풍 등 피해 예상이 가능한 특정 자연재해 중심에서 점차 확대되어 주민 생활과 밀접한 폭우와 폭염, 한파 등 다양한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편성되었다. 이와 함께 기후에 따른 온열 질환, 한랭 질환, 기저질환자들의 대처 방안 등 주민 건강 관리 정보 프로그램이 제작되어 편성되었다.
지난 5월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을 알리면서 최대비상방역체계가 시행된 이후, 조선중앙TV는 방송 시작시간을 오전 9시로 앞당기고, 코로나19 관련 정보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 편성한다. 최대비상방역체계 하에서 취해지는 봉쇄와 격폐, 자가격리 상황에 대한 대처방법을 상세하게 전달하고 극복이 가능하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의 경우, 손 소독, 약 복용 방법 등의 내용을 애니메이션이나 공연물로 제작해 어린이들이 즐겨 보는 시간에 반복 편성했으며, 어린이가 열이 날 때 부모가 대처할 수 있는 방법과 투약법 등을 자세히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제작되었다.
[코로나19 관련 프로그램 중 어린이 치료 내용, 출처 : 필자 캡처본]
이에 더해 TV는 김정은이 위기 상황을 직접 지휘하면서 주민들이 불안해 할 의약품 공급 문제와 방역사업의 편향들에 대해 선제적으로 문제 제기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지시했으며, 이후 전개되는 행정적 조치들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있음을 거의 매일 전하며 지도자와 당, 국가가 주민들과 함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주민 생활 밀착형 정보 제공 측면에서 요리프로그램에서도 단지 요리법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원이 요리사와 함께 직접 요리를 만들어 보면서 어려운 점이나 시청자가 궁금해 할 법한 질문을 묻고 전문가에게 답을 듣기도 한다. 남한의 육아 상담 프로그램과 유사함 교육 프로그램도 제작되어 육아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방송은 어린이들의 독서 교육, 식습관 교육 등 바른 습관을 위해 부모들이 조력해주는 방법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자녀의 문제 행동에는 부모의 태도가 원인임을 지적하고 부모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방송 소재였다.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도 눈에 띄는데, ‘꼬마시청자들의 목소리’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어린이, 학부모, 선생님, 등 다양한 연령, 직업의 주민들이 방송에 바라는 점을 듣고 조선중앙방송위원회 김은향 기자가 출연해 시청자 요구에 따라 변화하겠다는 답변을 한다.
2) 방송 영상 및 표현의 변화 :
최신 방송기술 도입과 영상의 서구화
방송 내용의 변화가 주민들의 정보 취득 욕구를 반영한다면, 방송 영상의 변화는 대중 문화 소비 주체로서 주민들의 높아진 시청기준을 반영하고 있다. 먼저, 방송 화면이 과거에 비해 매우 화려해졌다. 드론이나 핸디캠, 지미집, 크레인 등 첨단 촬영기자재를 적극 활용하고, 구도나 연출 또한 과거 정적이고 획일화된 양식에서 다양해진 촬영 동선, 생동감있는 화면 구성, 서구적인 연출법 등이 시도되고 있다. 후반작업에도 NLE와 CG, 3D, VR 등 최신 방송기술을 제작 및 편집에 도입하여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최근 북한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가수 김옥주를 주인공으로 하여 올해 제작된 두 편의 뮤직비디오에서는 김옥주의 가창 장면과 함께 녹음 스튜디오에서 연주자들과 자연스럽게 연습하는 장면, 바닷가 등 자연을 배경으로 연주하는 이미지 등을 구성해 서구의 뮤직비디오를 연상케 하였다.
[김옥주 뮤직비디오, 출처 : 필자 캡처본]
풍경스케치나 각종 프로그램의 배경, 브릿지 화면에는 드론으로 촬영한 평양 시내, 대동강 주변의 전경이나 화려한 평양의 야경 부감 화면이 자주 삽입된다. 날씨 방송에도 크로마키와 위성영상, 다양한 형태의 그래프를 통한 데이터 시각화를 도입해 시각적인 효과를 살렸다.
방송 스튜디오도 과거 스틸사진과 목재를 활용한 고전적인 분위기에서 비디오월이나 메탈 데스크, CG 등을 활용해 서구 뉴스 스튜디오를 연상케 한다. 소개편집물(다큐멘터리) 등의 개인 인터뷰 장면에서도 이전과 같이 주로 해당 인물의 활동공간에서 미디엄 숏을 잡는 고전적인 구도만이 아니라, 남한의 TV스튜디오와 같이 별도의 무대에서 배경조명, 무대미술, 핀조명, 소파 등의 소품에 신경을 써 인터뷰의 집중도와 감동을 높이기 위한 장치로 사용했다.
방송 말미에는 엔드 크레딧이 신설되었는데, 출연자가 아닌 제작진의 실명이 기재된다. 특히 프로그램 성격에 따라 연출자, 촬영가에 이어 컴퓨터기교(CG) 제작자가 세 번쨰로 이름을 올리기도 한다. 녹음기술자, 해설자보다 위에 있는 것이다. 프로그램 마지막에는 ‘조선중앙텔레비죤’이라는 기관명이 뜨는데, 각진 서체에 광택있는 느낌의 3D 타이포그라피로 표현하여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이 들게 한다.
TV화면에 등장하는 방송원들의 변화도 눈에 띈다. 열병식 등 주요행사나 당과 국가 차원의 주요 보도는 여전히 리춘희 아나운서가 전담하고 있으나, 일반 보도, 현장 리포팅 등에 젊은 아나운서들이 투입되어 밝고 생동감있는 분위기를 통해 변화하고 있는 조선중앙TV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여성 아나운서들의 의상과 머리 모양이 전보다 화사하고 다채로워졌으며, 남성 아나운서도 중후하기보다는 젊고 친근한 인상을 준다. 젊은 방송원들은 리포터처럼 직접 현지 취재를 나가 대중교통이나 거리에서 주민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요리를 해서 맛을 보기도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남한의 생활정보프로그램이나 리얼 버라이어티처럼 선전성보다는 재미가 가미된 오락성 프로그램으로 연출된다.
2018년부터는 열병식이나 새해맞이 축하공연 등 국가행사의 실시간 생중계가 본격화되었다. 2019년 신년경축공연은 처음으로 야외에서 진행되었는데, 조선중앙TV를 통해 행사를 실황중계했다. 남한이나 서구의 새해맞이 행사를 연상케 할 정도로 행사의 규모도 컸으며, 레이저 조명, 불꽃놀이로 화려하게 진행되었다. 이를 중계하는 방송에도 크레인, 레일, 지미집, 드론 등이 적극적으로 동원되어 현장감을 살렸다. 실황중계 경험이 쌓이면서 중계기술도 점차 노련해지고 있다. 다수 배치된 현장 카메라 간의 장면 전환이 자연스러워졌고, 사전촬영 이미지 영상을 활용해 현장중계와 교차편집하면서 공연을 단순히 중계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없는 TV시청자들에게도 공연의 현장성과 함께 보다 질 높은 볼거리를 제공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방송 변화의
정치적 함의
최근 북한 방송의 여러 변화 지점들은 북한체제와 그에 복무하는 북한 TV방송의 특성상, 결국 북한 정권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들은 북한방송에 대한 주민들의 소구력을 확보함으로써 정치적 지배력을 유지‧강화하고자 하는 김정은정권의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조선중앙TV를 위시한 북한 방송이 정보매체로서의 기능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행한다면, 관영매체에 대한 소구력을 높이는 돌파구가 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정권 차원에서도 방송의 영향력과 변화의 요구를 제고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생활과 직결된 정보들을 신속하게 전달한다는 매스미디어의 기본적인 보도적 역할을 강화함으로써 주민들의 관심과 신뢰를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외부문화를 차단하는 동시에 자체적으로 방송 트렌드와 스타 연예인을 배출해 주민들의 대중문화 소비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시도도 방송의 대중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에 더해, 과거에는 ‘주체사상’이라는 강력한 매개와 선전선동을 통해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유지하려 했다면 이제는 국가의 보호, 삶의 안전 차원에서 지도자와 당, 국가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공동체성을 유지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 최근 김정은은 재난재해 예방 및 복구, 코로나19 대응을 직접 지휘하고 있다. 그리고 방송을 통해 그 과정을 신속하고 구체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위기상황을 지도자와 당, 국가의 존재를 주민들에게 재인식시키는 계기로 삼고, 방송을 통해 이를 현시하는 것이다. 북한정권이 방송에 새롭게 요구하는 정치적 역할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