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한 구상’의
대규모 식량 공급
프로그램에 대한 제언

남북사회통합연구원 이사장 
김형석 (前 통일부 차관)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경축사를 통해 북한에 대한 ‘담대한 구상’의 구체적 내용을 제시하였다. 북한이 확고한 비핵화 의지만 보여준다면 북한의 민생과 경제를 살리기 위한 우리 및 국제사회의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코로나19에 따른 자체 봉쇄로 식량난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윤대통령에 의해 제시된 ‘대규모 식량공급 프로그램’은 특별한 의미가 있으며, 북한 주민의 고통해소를 위해 실현되어지길 기대한다.

북한은 연간 50만 톤에서 100만 톤 정도의 식량부족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김일성 시절부터 ‘이밥에 고깃국’이 북한주민의 희망사항이다. 2022년 지금도 북한은 자력갱생의 기치아래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자력부강하겠다’는 목표로 사회주의 농촌 건설 등 농작물 생산 증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영농자재 부족과 홍수 등 자연재해로 인해 북한 주민 수요를 충족할 만한 식량 생산을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의 곡물생산량은 2021년 기준 440만 톤(농진청 추정)으로, 수요량 540여만 톤을 감안할 때 연간 100만 톤 정도의 식량 부족 상황일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식량난에 대한 지원은 1995년 김영삼 정부시절 한국산 쌀 15만 톤 지원이 최초이다. 이후 2000년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시기 차관형태로 쌀 및 옥수수를 매회별 40만 톤에서 50만 톤 규모로 지원하였다. 이러한 대규모 식량지원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면한 북한의 핵문제 해결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 공급 프로그램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북한이 수용 가능한 방식으로 진행하고 그리고 일단 시작된 이후에는 남북관계가 완전한 파국으로 가지 않은 한 가급적 정치 군사적 상황에 기계적으로 연계하지 않고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추진 방식과 관련해서 북한이 지난 2021년 유엔에 제출했던 ‘자발적국가검토보고서(VNR)’ 사례를 고려해 봄직하다. 이는 북한도 유엔회원국으로서 유엔기구가 공시한 프로그램에 응모해서 절차적으로 모양새 있는 지원 방안을 선호한다는 의사 표현이다.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90년대 중반부터 국제기구의 북한 내 활동이 이루어 져 왔기에 북한 당국과 주민에게 낯설지 않은 세계식량계획(WFP) 등 유엔산하 국제기구 사업 형태로 대규모 식량공급 프로그램을 진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단순한 식량 공급에 그치지 않고 농촌현대화와 상하수도 및 보건의료 수준 개선 노력 등 북한주민의 일상생활 환경 개선과 연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공급하는 식량은 쌀 뿐만 아니라 옥수수, 밀가루, 분유, 영양식 등 지원 대상에 적합한 품목으로 선정 가능할 것이다.

대규모 식량 공급 프로그램을 남북이 직접 추진하는 방안으로는 2000년대 식량차관 형식이 있다. 품목은 가급적 국내에서 조달 가능한 품목으로 선정해서 육로, 해로, 항공로를 이용해서 북한 전 지역에 전달하면 좋을 것이다. 초기에는 당장 부족한 식량 공급을 위주로 하되 점차적으로 비료 등 영농자재와 다수확 품종 개발 지원, 그리고 산림 녹화와 치산치수 등 농작물 재배 인프라 지원 등 북한 농업생산성 제고 방향으로 추진하는 게 필요할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 맞게 ‘스마트 팜’과 같이 지역별 특화 농산물 재배 방식 전파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구상무역형태로 북한에 대한 식량공급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다. 남북 간에는 2007년 7월 ‘경공업 원자재 제공 및 지하자원 개발협력’에 관한 합의를 채택한 바 있다. 합의 채택이후 우리 측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에서 조달청을 통해 8천만불 상당의 신발, 비누, 섬유 원자재를 구매하여 북한 측에 선박 편으로 제공하면서 우리 전문가들이 북한 공장을 방문하여 제품생산 자문 등을 해준 바 있다. 북한은 광물자원으로 5년 거치 10년 분할 조건으로 상환하기로 하고 2007년 3%에 해당되는 240만불을 마그네사이트 현물로 상환한 바 있다. 이러한 방식은 대규모 식량공급 프로그램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식량공급의 대가로 희토류를 포함한 북한 내 광물자원은 물론 농수산물 등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경제적 자원과 교환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에서 더 나아가면 대규모 식량공급 프로그램 취지가 인도적인 만큼, 이산가족 문제, 납북자 및 국군포로 문제 해결과 연계해 보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전체 사업을 총괄하고 재정지원을 하되, 사업 수행은 민간이 나서서 지역별 기관별로 나누어서 진행하면서 개별 사업을 수행하는 민간단체가 실향민들을 적절하게 참여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식량공급 프로그램의 틀 속에서 실향민들의 ‘고향마을 돕기’ 차원의 활동이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 해결은 식량공급과 직접적, 공개적으로 연계하기는 어렵겠지만 정부가 비공개적으로 북한 당국의 호응을 유도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임진강 등 남북한 공유하천의 공동 개발과 연계하는 방안도 있다. 북한이 우리와 협력해서 수자원을 공동으로 이용하고 자연재해 예방에 협력하는 경우 우리에게는 농업 및 생활 용수 확보와 가뭄, 홍수에 따른 인적 물적 손실 예방 효과가 있는 바, 이의 댓가로 북한이 필요로 하는 식량을 공급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에게 시혜적으로 지원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협력으로 발생한 우리측 경제적 이득의 보상으로 식량을 제공받는다는 실리적 명분을 주어 우리에 대한 협력적 태도를 취하도록 유인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대규모 식량공급 프로그램은 북한주민의 일상생활을 보장하는 인도적 사안으로 북한의 확고한 비핵화 의지가 우선되어야 하지만, 일단 시작이 되면 가급적 지속적으로 추진됨으로써 77년의 분단시대를 마감하고 남북한이 함께 번영하는 한반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대규모 식량 공급 및
농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기술지원 프로그램

GS&J 인스티튜트 권태진 원장

윤석열 대통령은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구상을 제안하였다. ‘담대한 구상’의 세부 계획은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 공급 프로그램, 발전과 송배전 인프라 지원, 국제 교역을 위한 항만과 공항의 현대화 프로젝트, 북한 농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기술지원 프로그램, 병원과 의료 인프라의 현대화 지원, 국제 투자 및 금융 지원 프로그램이 들어 있다. ‘담대한 구상’은 애초 윤 대통령이 5월 10일 취임사에서 제시한 ‘담대한 계획’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담대한 구상에 대해 북한은 “비핵화로 전환한다면”이라는 가정 자체가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였고, 한국 내에서도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하려면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앞으로 ‘담대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보완 조치와 함께 국제적인 환경이 조성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온다면 담대한 구상 중 대규모 식량 공급 프로그램과 농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기술지원 프로그램은 협상 초기에 논의될 의제가 될 것이므로 서둘러 실행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가 있다.

북한은 2021년 6월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실현을 위한 고위급정치포럼(HLPF)에 제출한 자발적국가검토(VNR) 보고서에서 잦은 자연재해와 낮은 회복탄력성, 농자재 부족, 낮은 기계화 수준 때문에 식량 생산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함을 인정하고 앞으로 농업과학 기술 발전과 다양한 노력을 통해 식량 자급자족 달성을 실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은 2021년 12월 말에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향후 10년을 목표로 식량 자급을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 중 우선 극복해야 할 과제는 바로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연간 식량 소요량은 600만 톤인데 현 수준의 생산량은 500만 톤에도 미치지 못한 상황이다. 향후 10년 내 식량 생산량을 20% 이상 늘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와 같은 경이로운 목표를 달성한 예를 찾아볼 수 없다.

북한이 목표로 하는 식량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은 국제사회와의 협력, 그 중에서도 남북협력을 추진하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한국의 대규모 식량 공급, 중기적으로는 북한의 농업 생산성 증대를 위한 기술협력이 그 중심에 있다. 북한이 식량부족 문제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해결하려면 농업 부문의 발전과 함께 전반적인 경제 발전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방식으로 식량 문제를 해결하여 요즘과 같은 세계적인 식량 위기 가운데서도 식량안보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식량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의 고통을 조기에 완화하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많은 양의 식량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북한에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함으로써 주민의 영양 부족 문제를 해소함과 동시에 농업 활동에 필요한 노동력 공급을 증대시켜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식량의 안정적 공급은 북한이 지속가능한 농산물 생산체계를 준비케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북한은 짧은 기간에 식량 생산을 늘리기 위하여 개간, 간척 등을 통해 농지를 외연적으로 확장함과 동시에 이모작과 곡물 위주의 연속적인 단작을 통해 농지의 내연적 확장을 꾀하고 있다. 이와 함께 화학비료 등 농자재의 대량 투입과 밀식 재배로 토지를 약탈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영농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식량을 증산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영농 기반을 약화하고 자연재해의 피해를 확대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에 식량을 일시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당 기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만 북한 주민의 식량부족을 해소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의 영농체계를 구축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자원·식량 교환 프로그램은 북한에 대규모의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 2007년 남북한 사이에 합의한 경공업 원자재 지원 합의는 좋은 사례가 된다. 당시 한국은 북한에 8천만 달러 상당의 경공업 원자재를 지원하고 북한은 받은 원자재의 3%에 해당하는 광물을 두 차례에 걸쳐 한국에 상환하고 나머지는 지하자원 개발권으로 갚도록 합의한 바 있다.

북한의 농업 생산성은 한국의 50~6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벼와 옥수수, 감자의 생산 기술은 한국의 70% 내외이나 보리와 밀, 채소, 과일, 축산물 생산 기술은 한국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특히 생산성 향상에 많은 시간과 재원이 소요되는 육종, 병해충 방제, 수확 후 기술은 더욱 취약하다. 북한이 좀 더 효과적으로 농업 생산성을 증대하려면 기후와 자연생태가 유사한 한국의 농업기술을 받아들여 북한의 여건에 맞는 방식으로 응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미 남북한 사이에는 농업기술 교류 경험이 축적되어 있으며 그 성과가 입증된 바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가의 교류와 지식의 공유가 가장 효과적이며 필수적이다. 기술의 교류는 종자, 농기자재, 농기계 등 물적 교류를 수반한다. 한국에서 환경 문제를 일으키는 축산분뇨를 유기질 비료로 자원화하여 북한에 제공한다면 북한은 농지의 질을 개선하면서 농업 생산성을 증대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한국은 환경 개선과 함께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 공급 프로그램이나 농업 생산성 증대를 위한 기술지원 프로그램은 적어도 5~10년에 걸쳐 지속성 있게 추진하여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협력사업이다. 남북한은 조급함을 버리고 안정적이고 지속성 있게 협력을 추진함으로써 서로 신뢰를 쌓아나가야 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더욱 높은 단계의 협력을 통해 한반도의 번영과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 비록 지금은 북핵 문제로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우려하고 있지만 남북한을 비롯하여 관련국들이 머리를 맞대고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날이 반드시 도래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