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과 의료 인프라의
현대화 개발협력에 대한 제언

고려의대 교수, 통일보건의료학회 이사장
김신곤

북한은 긴급구호적인 일회성 인도지원을 받는 것으로부터 지속가능한 개발협력 추진으로 자신들의 정책 기조를 바꾸겠다는 것을 2005년 공식적으로 천명한 바 있다. 그리고 그에 따라 다수의 기관으로부터 다양한 소규모의 직접적 지원을 받는 것으로부터, 대규모의 체계적 개발 협력사업을 추진하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면서 핵강국으로 자신들의 국가 위상을 자랑하며, 과학과 교육을 국가 건설의 주요 도구로 내세우고 있다. 특히 북한당국은 2021년 VNR 보고서를 발간하여 SDGs 이행동향을 국제사회에 보고한 바 있는데, 이 중 병원과 의료 인프라 현대화와 관련된 내용이 눈길을 끈다.

공중 보건 부문의 물적 기술적 기반을 통합한다 : 평양종합병원을 최고 수준으로 완공시키고 삼지연 인민병원과 같이 도별 인민병원을 현대적으로 건립하며 전국의 치료시설과 예방시설을 현대화하는 것이다. 평양제약공장과 같은 제약공장과 의료기구 공장의 보수와 현대화를 통해 자재 공급의 기반을 확고히 한다.

의료봉사의 질을 개선한다 : 완벽한 먼거리의료봉사체계, 구급의료봉사체계(응급 의료 시스템), 의료봉사의 질관리체계(의료서비스 품질 관리 제도) 도입으로 의료봉사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고려의학을 보다 과학화하고 필수 의료 기구와 의약품을 높은 수준으로 우리식화할 것이다.

우리 정부도 지난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북한의 병원과 의료 인프라의 현대화 지원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남북한 정부의 보건의료 영역에서의 정책적 방향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고, 정세의 변화 여부에 따라 병원과 의료인프라 현대화와 관련된 개발 협력이 활발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필자의 연구팀은 지난 9월 통일부 용역으로 진행한 '한반도 보건의료협력을 위한 중장기 전략행동계획(2022~2026)'를 보고하였다. 5가지 협력 영역 즉, 1) 건강안보 환경조성 2) 주요 질병부담완화 3) 회복탄력적 보건의료체계 구축 4) 혁신적 연구개발 협력 5) 지속가능한 협력체계 구축을 바탕으로, 전략적 목표와 전략적 우선순위, 그리고 전략적 활동을 제시하였는데 그 중 병원과 의료인프라 현대화와 관련된 개발 협력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전략적 우선순위 (Strategic priority)

북한 방역정보 및 감시체계 구축 협력

전략적 활동 (Strategic activities)

- 실험실 정보관리시스템 지원 및 거점별 신종 감염병 신속대응 시스템 구축

-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 기술이전 및 지적재산권 보호체계 구축 등 패키지 협력

전략적 우선순위 (Strategic priority)

감염병 의료대응 역량강화 및 전문병원 건립 협력

전략적 활동 (Strategic activities)

- 주요 도시에 음압병실이 확보된 감염병 전문병원 건립

- 외국 감염병 전문병원 벤치마킹 연계 및 지원

전략적 우선순위 (Strategic priority)

진단 및 감시체계 인프라 구축 협력

전략적 활동 (Strategic activities)

- 북한 실험실 정보시스템 프로그램과 IT 장비 지원

- 실시간 모니터링과 감시체계 구축을 기술지원(운영, 품질, 데이터, 인력관리 등)

전략적 우선순위 (Strategic priority)

감염병 방역인력 역량강화

전략적 활동 (Strategic activities)

- 제3국을 통한 역학조사 및 방역인력 교육프로그램 연계

- 기존 개발도상국 인력교육 프로그램의 벤치마킹

전략적 우선순위 (Strategic priority)

국제사회를 통한 필수 의료물품 및 장비 지원

전략적 활동 (Strategic activities)

- 국제기구 및 주요국, 국제 NGOs 등을 통한 필수 의약품 및 의료장비의 지원

- 필수의약품, 의료소모품, 의료 장비의 관리기술 이전

전략적 우선순위 (Strategic priority)

의료기관의 개보수 사업 협력

전략적 활동 (Strategic activities)

- 2,3차급 의료기관의 전기/수도/냉난방 등 인프라 현대화

- 지역별 거점 인민병원의 신설 협력

전략적 우선순위 (Strategic priority)

의료기관의 의료정보화 협력

전략적 활동 (Strategic activities)

- 북한 '먼거리의료정보체계'의 기자재 및 기술지원 협력

- 병원 환자정보시스템 프로그램의 개발협력

전략적 우선순위 (Strategic priority)

의료생산시설 기술, 원료

/ 원자재 협력 및 기술이전 추진

전략적 활동 (Strategic activities)

- 표준 GMP 인력 교육

- WHO 및 한국의 필수의약품 생산 기술이전 추진

전략적 우선순위 (Strategic priority)

ICT 기반 국가 보건정보체계 구축 협력

전략적 활동 (Strategic activities)

- 정보 관리 분석, 보건 의료 정보체계 관리자/통계 전문가의 역량 구축

- 보건 통계 소프트웨어 도입 등을 위한 기술적, 재정적 지원

전략적 우선순위 (Strategic priority)

접경지역 연구협력센터

(생명보건단지) 공동건립

전략적 활동 (Strategic activities)

- 개성공단 등에서 산/학/연/병 복합체(생명보건단지) 남북 공동건립 추진

- 생명보건단지 공동건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 및 공동 위원회 설립

이상의 내용들을 보면 인프라 현대화 뿐만 아니라, 기술이전과 인력개발의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다른 개발도상국가의 개발협력 프로젝트에서 보듯이 인프라, 기술, 인력의 3박자 맞아야 지속가능성한 발전이 담보되기 때문이다. 또한 국경봉쇄나 유엔제재 완화 여부에 따라 속도조절이 필요한 내용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작년의 평양심장병원 관련 장비들의 패키지 유예와 같이 보건의료영역에서는 남북, 북미의 조율 여하에 따라 통 큰 지원과 개발협력도 가능할 수 있다.

특히 평양종합병원은 펜데믹 상황에서 중환자 치료를 위한 최후보루로써 최고지도자의 인민사랑을 보여줄 사례로 준비된 측면이 있으므로 북한 입장에서 우선순위가 높은 협력과제이다. 따라서 평양종합병원의 성공적 개원이 가능할 수준의 제반 의료장비 및 물품에 대한 패키지 지원과 함께 국경개방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접경지역 시도인민병원의 감염병 진단/검역 장비 지원도 병행하되, 파격적인 식량과 약품이 함께 제공될 수 있다면 북한 당국도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북미 간의 '전략적 인내'가 '강 대 강'이 아닌 '선 대 선'으로 나아가게 하려면 북미 모두에게 실리 뿐만 아니라 명분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가적 차원에서 인도적으로 지원하고 도와준다는 고전적인 방식은 퍼주기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자존심이 강한 북한도 이제 원하지 않는다. 당장은 북한의 기대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식량이나 약품, 의료장비를 보내더라도, 중장기적으론 남북이 방역장비, 의료장비, 백신 등을 생산하는 개발협력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개성공단을 바이오-메디컬 단지로 전환하면서 인류의 감염병 위기극복에 기여한다는 명분을 만드는 것이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외부지원을 받는다는 부담도 적어지고, 보건의료 영역에 국한한 유엔제재 유예도 가능하다. 이를 매개로 북한이 국제사회와 소통할 수 있다면 현재의 강 대 강 대립구조를 완화하며 비핵화 로드맵 협상까지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보수정부이기에 오히려 파격적 시도가 가능할 수 있다. 막힌 담을 헐기 위해 보건의료 영역에서의 원포인트 정상회담이라도 개최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남북의 생명을 연결하는 끈은 연결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북한 주민 건강권 향상을 위한
남북 보건의료협력의 과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조성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북한의 방역 및 보건의료

2020년 초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할 즈음 북한은 신속히 국경을 봉쇄하고 2020년 1월 28일부터 중앙인민보건지도위원회를 구성하여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성이 없어질 때까지 위생방역체계를 국가비상방역체계로 전환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후 한동안 북한은 공식적인 감염자가 없다는 주장을 반복하며 강력한 봉쇄에 기반한 비상방역체계를 유지해오다 2022년 5월부터 노동신문 등을 통해 이른바 '유열자'수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7월 29일 마지막 유열자가 발생한 것으로 발표한 후 8월 10일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 개최하고 최대비상방역체계에서 정상방역체계로 방역등급을 하향조정하면서 이후 북한은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성공적으로 대응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코로나19 유행 이전부터 북한 보건의료의 현대화에 상당한 관심을 두고 원격진료와 같은 새로운 기술의 도입, 시설과 장비의 현대화 등에 관심을 보인 바 있다. 하지만 유엔의 대북제재 등으로 인해 충분한 물자를 동원하지 못해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표적으로 2020년 3월 17일에 착공한 평양종합병원도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 지도와 질책에도 불구하고 예정된 10월말에 완공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도 별다른 소식이 없는 상태이다. 최근 유엔 대북제재위원회의 제재 면제 승인을 받은 평양심장병원 건설을 보더라도 2007년부터 추진하였다가 2010년 5.24. 조치로 대북 지원이 끊기면서 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건설이 중단된 채로 방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북한의 보건의료체계 현실은 사회주의 보건의료체계의 틀과 형식은 유지되나 실질적으로는 의료기관에 필수약품과 물자가 공급되지 못하고 정부당국의 관리기능도 상당부분 상실된 상황으로 전해진다. 현재 북한은 전역에 보건시설이 광범위하게 존재함에도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를 포괄적으로 제공하는데 심각한 제약이 있는 상황이며 이러한 문제는 농어촌지역에서 더욱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장마당을 통한 약품구매와 같은 비공식 사적 의료의 등장으로 무상의료 및 공공의료를 대원칙으로 하는 사회주의 보건의료 원칙이 약화되었고 시장원리의 의료가 부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북한의 현재 보건의료체계의 결핍현상과 의료의 시장화를 경계하는 시각이 최근 김정은 연설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2022년 9월 8일 북한 제14기 제7차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은 "우리 인민들의 생명건강을 보호증진시킬수 있게 의료봉사사업을 계속 개선해나가야 하겠습니다. 이번에 공공보건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보건의 현 실태가 전면적으로 평가되였으며 그 수준과 능력제고의 절박성이 더욱 립증되였습니다."라고 언급하여 북한 내 보건의료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북한 주민의 건강과 건강권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3번은 보편적 건강보장(health for all)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적절한 건강의 유지는 모든 인간의 보편적이며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이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영양의 공급과 함께 적절한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은 생존권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모든 인류가 누려야할 국제인권 프레임에 포함되어 있다. SDGs에서도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한 보건의료체계강화, 건강권 보장, 보건의료 형평성 강화 등을 포함하여 건강 이슈를 포괄적 사회문제로 접근한다. SDGs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모든 세대의 감염성/비감염성 질환, 사고와 상해, 보건의료체계 관련 세부목표들을 구체화하고 있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이전에 방대한 의료인력과 시설을 확보하여 주민의 의료접근성을 극대화하였고 강력한 감염병 예방 정책과 출산율 감소정책을 통해 국민의 기대수명을 상당수준 끌어올렸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 이후 남북한 기대수명이 상당한 격차를 보이게 되었고 이 격차는 중년이후의 연령대에서 많이 나타나는 만성질환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는 북한 주민의 주요 질병부담원인 만성질환이 보건사업과 보건의료서비스를 통해 적절히 관리되지 않은 점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경제성장과 보건의료체계가 개선되지 않고는 특히 비감염병으로 인한 사망이 대부분인 성인 사망률을 의미 있게 줄이는 것이 어렵고, 출생 시 기대수명도 어느 정도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으며 분석된 바와 같이 현재 남북 간의 10세 이상의 기대수명 격차가 앞으로도 줄지 않게 될 것이다.

남북 보건의료 협력의 과제

현재 북한의 보건의료체계가 효과적으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자원 투입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북한 국가경제체제의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와 함께 사회주의 의료의 특성을 따라 이미 구축되어 있는 방대한 보건의료조직과 체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운영제도의 개혁도 필요하다. 한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이 경제개혁 및 의료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외교적으로 제시하고 지원할 준비를 해야 한다.

북한이 남한 및 국제사회와의 대화에 다시 나선다는 전제에서 우리는 북한의 보건의료체계가 앞으로 보다 회복탄력적인 성격을 가지도록 국제사회가 협력하여 다각적인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통일부와 학계가 북한 보건관련 이해당사자들과 함께 설정한 북한의 회복탄력적 보건의료체계 구축을 목표로 한 전략은 적절한 방향을 보여준다. 보건의료체계의 근간이 되는 보건인력의 역량 강화, 필수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한 의료시설의 현대화, 필수의약품 및 장비 등의 의료생산 역량 강화를 목표로 하여 이를 구현하기 위한 다각적인 전략과 세부활동들이 구상되었다. 이러한 전략들이 보다 실천성을 가지도록 하는 실행전략이 국제사회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재 북한은 남한과의 직접 교류협력을 중단하고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지만 국제기구를 통한 개발협력의 채널은 완전히 단절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대표적인 보건의료 개발협력의 채널인 세계보건기구(WHO)와 북한과의 논의를 고려하여 교류협력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

보건의료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문제이다. 기본적인 보건의료서비스 이용은 모든 인간의 기본권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북한 보건의료 체계가 정상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작동해야 한다, 보건의료 시스템의 현대화를 통해 북한 주민들의 최소한의 건강권을 확보하도록 남한 정부를 비롯하여 국제사회가 협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