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말라리아 공동방역,
최고의 보건외교가
될 수 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이요한 교수

한반도 접경지역에
발생하는 말라리아

대한민국은 OECD 국가들 중에서 말라리아 발생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경제력이 낮은 것도, 말라리아 감시나 방역을 못하는 편도 아닌데 말이다. 우리나라 말라리아 발생의 대부분이 DMZ 인접 주민들과 군인들에게 일어나고 북한도 발생 다수가 북쪽 지방이 아닌 DMZ를 끼고 있는 강원도, 황해도에서 일어나는 걸 보면 말라리아 발생이 남북 간에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말라리아 원충감염 모기들이 너비 4km에 불과한 DMZ를 왕래하는 것이며 남한이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북한에서 한창 말라리아 발생이 창궐할 때 우리 정부가 남북 말라리아 공동 방역과 물품 지원에 그렇게 노력했었던 이유이다. 남한은 그동안 국제기구의 대북 말라리아 방역사업의 주요 원조 국가였고 우리 쪽 말라리아 발생자수가 가장 많은 지역인 경기도는 2010년 북측과 함께 DMZ 및 개성시, 황해도 지역 방역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수행하기도 하였다. 북한에서의 말라리아 발생은 국제기구나 남한 등의 도움을 받아서 북한당국이 방역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하면 급격히 줄어들었다가 반대로 방역이나 매개체 방제사업을 소홀히 하면 다시 증가하는 패턴을 보였다.

말라리아 종식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과
북한의 말라리아 대응 현황

국제사회는 SDG를 통해 2030년까지 말라리아를 종식시킨다는 목표를 세웠고 WHO는 2021년에 세계 말라리아의 날을 맞아서 2025년까지 25개국에서 말라리아를 완전히 퇴치하겠다는 계획인 E-2025 이니셔티브를 세운 바 있다. 즉 말라리아는 관련 당사자나 당사국간 협력만 잘되면 기술적으로는 이것을 종식시키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E-2025 계획의 목표 대상국 25개국 중 북한도 포함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북한에서도 적절한 도움과 협력만 있으면 충분히 말라리아 퇴치가 빠른 시간 안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 발간된 ‘WHO 2022 세계 말라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북한의 말라리아 발병 건수는 2,357건으로 이전의 감소세를 뒤로하고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것은 아마도 WHO의 말라리아 통제 프로그램의 핵심 물품인 살충제 처리된 방충망, 실내 살충용 스프레이, 말라리아 진단키트, 치료제, 모기 기피제 등의 전달이 북한의 강력한 국경 봉쇄와 이동 제한 조치로 크게 위축된 것에 기인했을 것이다.

사실 북한의 말라리아 통계는 매우 불완전하다. 말라리아 발생 통계는 다른 감염병과 마찬가지로 잘 갖추어진 진단 및 감시체계를 바탕으로 해야 정확할 수 있는데 북한과 같은 저소득국가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말라리아 진단은 현미경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나 현재 북한의 실험실 환경이 매우 열악하기에 대부분의 진단이 임상증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감시체계도 여러 가지 심증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워낙 모기에 물린다는 것이 일상적인 것이라 질병간의 연관성을 특정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말라리아 증상이라고 하는 것도 발열, 두통, 구토, 권태감 등 모두 비특이적이라 질환 발생을 잡아내고 추이를 모니터링 하는 것이 매우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이 고난의 행군 이래로 최악의 식량난과 경제난을 겪는 북한 상황에서는 여러 이유로 말라리아 발생과 그로 인한 질병부담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고 자연히 이것은 남한의 말라리아 발생 증가로도 이어질 수 있다.

대북보건외교를 통해 함께 이루는
한반도 말라리아 종식의 꿈

이제는 말라리아 공동 방역을 위한 대북 보건 외교가 필요하다. 외교는 근본적으로 우리를 위한 노력이며 너희를 돕겠다는 것은 그 다음이다. 남북 교류나 지원의 개념에 앞서 우리 국민 보호를 위해 너희가 꼭 해줘야 할 것을 해달라는 접근이다. 사실 우리가 이러한 접근을 그동안 하지 못했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은 이제 더 이상 인도적 지원과 같은 ‘도움’을 외부로부터, 특히 한국으로부터 받고자 하는 생각은 눈꼽 만큼도 없는 것 같다. 북한에 지원을 한다는 자세는 북측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정상국가로 대접받기를 원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우수 국가로 대접받기를 원한다. 이러한 북측의 입장을 볼 때 말라리아 방역은 오히려 그들에게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만약 북측이 방역을 잘해서 우리 측 말라리아 발생이 많이 줄어든다면 이게 다 그들의 공로가 될 수 있다. 북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외교적 요구를 합리적으로 개진하고 후속조치에 필요한 사항들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북한은 다른 건 몰라도 감염병 방역사업은 자신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잘한다고 한다. 실제로 북한식으로 방역을 하면 웬만한 감염병은 아예 유행이 되지 않거나 산발적 유행에 그치게 되니 그런 자랑이 허언만은 아니다. 그래서 북측에서 방역을 제대로 못해 남측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은 본인들도 그리 달갑지 않은 소리일 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우리의 주장에 반응하지 않겠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신경이 쓰일 것이라 본다. 신경을 안 쓰고 있다면 신경 쓰이게 만들어야 한다. 근거를 바탕으로 남측 말라리아 발생의 원인이 북측 방역의 실패 혹은 남북 공동 방역의 부재임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야 한다.

극도로 경색된 남북관계 상황에서 이 무슨 무책임한 생각인가 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말라리아는 적절한 도움과 의지, 꾸준한 노력을 함께 하면 충분히 퇴치가 가능한 감염병이다. 남북이 힘을 합쳐 단기간 내 이룰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데 말라리아 퇴치는 충분히 가능한 목표이며 국제사회가 그 어떤 것보다 응원해 줄 수 있는 보건학적 가치가 큰 문제이다. 누가 봐도 이 문제가 비정치적 이슈인 것도 장점이다. 보건외교 역량을 총동원해서 국제사회나 국제기구를 통해서도 이 점을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담대한 구상과는 별도로 자국민의 생명과 건강보호라는 측면에서 보건외교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좋겠다. 남북 당사자만의 사업이 북측에 많은 부담을 줄 것이기 때문에 국제기구가 주관하는 프로그램 형태가 가장 좋을 것이다.

현재 질병관리청에 북한지역 말라리아 퇴치 사업에 편성되어 있는 예산이 연간 천만원 정도라고 하는데 관련 예산을 증액하고 국제기구와 민간단체 등의 아이디어를 모으고 설득해야 한다. 국제사회 파트너십을 통한 대북 보건외교를 통해 보건학적 가치가 매우 큰 이 한반도 말라리아 퇴치를 이루어 낼 수 있다면 이것은 국제보건학계에서도 기념비적인 보건외교의 성과와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

북한의 결핵,
함께 풀어야 할 우리의 과제

결핵연구원 연구개발센터장 최영은

결핵의 역사

결핵은 수천 년 전 석기시대의 화석에서, 고대 이집트와 페르시아의 미라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되었을 정도로 매우 오래된 감염병이자 역사상 가장 많은 인류의 생명을 앗아간 질병이다. 결핵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속되어 왔으나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천만 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하고 백오십만명 정도가 결핵으로 사망하고 있다.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 과거에는 가족들이 함께 결핵에 걸린다는 이유로 유전병으로 생각되기도 했으나 1882년 독일의 로버트 코흐가 결핵의 원인균을 발견하면서 유전이 아닌 균에 의한 감염병임을 알게 되었다. 이 원인균의 발견 이후 인류는 결핵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로버트 코흐가 결핵균 발견을 발표한 날로부터 바로 백 년이 되던 1982년 3월 24일, 국제 항결핵 및 폐질환연맹(IUALD)은 3월 24일을 세계 결핵의 날로 지정할 것을 건의하였고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는 이를 받아들여 세계결핵의 날로 매년 기념하고 있다.

결핵은 18세기 이후 인구가 밀집한 도시 지역의 가난하고 영양이 부족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급격히 퍼져 나갔다. 이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일제강점기 결핵 관리를 위하여 '전염병예방령(1915)'을 만들고 이후 또 조선총독부령으로 ‘폐결핵 예방에 관한 건’(1918)을 공포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였다. 이후 한반도를 휩쓴 전쟁으로 인한 기근과 피난행렬 인파의 밀집은 결핵을 급격하게 확산시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1960년대 남한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진 전국민 결핵 실태조사에서 흉부 엑스선 검진 상 결핵의심자가 5.3%(5300명/10만명)에 달하였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결핵에 감염되어 있었다. 남한사회의 경제적 발전과 보건의료수준의 향상은 1990년대까지 결핵환자의 지속적인 감소로 이어졌고 2000년 이후부터 10여 년간 결핵 발생은 10년 정도 인구 10만 명당 100명 수준으로 정체되어 있다가 2010년 이후 정부의 적극적 정책노력을 통해 다시 감소하여 최근 인구 10만 명당 40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환자발생 감소는 성공적인 결핵 관리의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한국은 여전히 OECD국가 중 결핵 발생률 1위의 질병부담을 가지고 있다.

북한의 결핵관리체계와 문제점

한편, 북한은 분단 이후 1990년대까지는 국가보건의료체계 내에서 국가주도의 결핵관리사업을 통해 다른 개발도상국들에 비해 비교적 효과적으로 이 질병을 관리해왔으나, 1990년대 공산주의 붕괴와 함께 국가 공중보건체계 또한 붕괴되었고 이로 인해 결핵과 같은 감염병이 다시 확산하게 되었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결핵질병부담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WHO의 세계결핵보고서 자료를 통해 살펴보았을 때 2018년 보고서 기준, 인구 10만명당 발생 513명 사망은 63명으로 같은 기간 남한의 70명, 5명과 비교하여 발생과 사망이 각각 7배 이상, 12배 이상으로 높았고, 주변 동남아시아 지역에 비해서도 모두 2배 이상의 수준이었다. 공식적인 자료에서는 북한결핵 환자들이 적극적인 직접복약확인치료를 통해 85-90%로 높은 수준의 완치율을 보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나, 북한이탈주민의 결핵치료 경험에 대한 결핵연구원의 연구 인터뷰 자료를 살펴보면, 북한 주민들은 결핵을 진단받지 못하거나 결핵이 의심되는 경우에도 장마당에서 자의적으로 약을 사서 복용하거나 자의로 중단하는 등 적절한 관리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결핵 관리에 대한 WHO의 모니터링 보고서(2015)도 북한 국가결핵관리체계 전반적으로 진단, 치료, 약제내성결핵 관리, 감염관리, 인력 등 여러 부문에 있어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지적하였다.

특히 북한은 결핵관리 재원의 상당부분을 글로벌펀드나, 유니세프, 세계보건기구와 같은 국제사회의 지원에 의존해 왔고 교육기관인 스탠포드대학, 비정부기관인 유진벨재단(the Eugene Bell Foudation, EBF)이나 조선의 그리스도인 벗들(Christian Friends of Korea, CFK)와 같은 단체들도 북한 결핵사업을 지원에 참여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재원을 기반으로 국가주도로 이루어지는 북한의 결핵관리 사업은 핵실험과 같은 외교적 문제가 발생할 경우 국제 사회의 제재와 더불어 결핵 지원 중단으로 귀결되곤 했다. 결핵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 중단은 적어도 6개월 이상의 장기치료가 필수적인 결핵의 치료 단절을 가져오고, 이는 단순히 환자 개개인의 치료 중단이라는 문제를 넘어 북한 사회 내 다제내성결핵의 발생 증가와 확산이라는 부정적 영향을 야기해 왔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결핵, 하나의 공동체로서
해결해나가야 할 글로벌 안보 문제

2020년부터 지난 3년간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적으로 십수 년간 꾸준히 하강추세를 보이던 결핵 사망을 다시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대다수의 개발도상국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의료자원 부족은 결핵의 진단과 치료의 지연을 야기했고, 결국 사망 증가로 이어졌음이 밝혀지고 있다. 북한의 결핵상황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데이터로는 확인할 수 없으나 아마도 강력한 폐쇄정책, 국제사회의 지원 중단, 의료자원의 부족, 영양결핍의 증가 등은 북한사회 내 결핵을 더욱 악화시켰을 것이라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결핵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는 감염병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에 끼친 영향을 통해 우리는 감염병의 문제가 단순한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닌 주변국의 문제이며 나아가 전 세계 글로벌 안보의 문제임을 뼈아프게 깨닫게 되었다. 현재 남한의 결핵이 과거에 비해 극적으로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OECD 국가 중 발생률 1위인 상황에서 북한의 결핵 문제를 고민하고 이를 줄이기 위해 함께 노력하지 않는다면, 사람에서 사람으로, 호흡기를 통해 전파되는 결핵이 다시 확산되어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으리라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남북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인적 교류가 빈번해진다면 북한의 결핵 문제가 곧 남한의 결핵문제로 이어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결핵과 같은 감염병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절된 남과 북’이 아닌 ‘연결된 공동체’로서 문제를 바라보고 함께 풀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수십년간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결핵 환자를 줄이는데 성공한 남한사회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결핵 문제를 남북이 함께 풀어 나가고자 하는 노력과 지원이 교류와 통일 시대를 대비하는 이 시대에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