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생물을 품고 있는
DMZ

전 세계의 DMZ가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한반도 DMZ의 평화적 이용의 필요성에 대해 알아 본 DMZ 첫 번째 시리즈에 이어 이번에는 DMZ의 산림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한반도 DMZ의 다양한 식물과 생물들의 이야기를 허태임 박사님께 들어볼까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허태임 박사

DMZ의 의미와
DMZ 지역별(서부·중부·동부) 지형 특징

동부의 DMZ - 가칠봉에서 바라본
남방한계선(왼쪽)과 북방한계선(오른쪽)

우리가 휴전선이라고 부르는 군사분계선은 딱 그어진 선이 아니다. 임진강 강변부터 동해안까지 약 200m 간격으로 설치된 1,292개의 푯말을 이은 것을 말한다. 그 표식을 기준으로 2km 이북의 북방한계선과 2km 이남의 남방한계선을 사이에 둔 폭 4km의 공간이 DMZ(비무장지대)이며, 전체 길이는 155마일에 이른다. DMZ는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말 그대로 '비무장'구역이라서 군사 활동은 DMZ의 완충지대로 설정한 민통선 이북지역(넓게는 접경지역)에서 이루어진다. 남한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쪽으로 8km(넓게는 25km)까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최전방', '민북마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 민통선 : GPS 좌표로 따지면 북위 37°51' 10.66”∼ 38°36' 16.72", 동경 126°43' 37.08"∼ 128°21' 39.19"

GOP의 가을 풍경

비무장지대는 한반도의 동고서저(東高西低) 지형을 얇은 띠 모양으로 축소해놓은 것 같다. 최동단인 강원도 고성에서 출발한 산줄기가 점차 거칠어져 인제와 양구와 화천을 통과하며 해발고도 1,000m 이상의 높은 산들을 만들다가 철원과 연천을 지나 차츰 완만해지고 마침내 최서단인 파주 임진강에 닿기 때문이다.

중부 DMZ - 철원습지대

파주시와 김포시를 아우른 서부의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지역은 감악산(675m), 고령산(622m), 개명산(565m) 등을 비롯하여 해발 500m 이하의 봉천산(291m), 별립산(416m), 국수산(193m) 등의 구릉지와 한강 하구의 염습지가 발달했다. 중부지역은 북한의 평강군에서 발원한 역곡천이 DMZ를 관통하여 습지대를 일부 형성하고,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한탄강이 독특한 지형과 식생으로 비경을 만든다. 복주산(1,152m), 대성산(1,175m), 복계산(1,057m), 고대산(832m) 등이 철원평야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고 산림지대와 이어진 하천형 습지와 호소성 습지가 드넓게 펼쳐진다. 동부지역은 설악산(1,708m), 점봉산(1,424m), 화악산(1,468m) 등의 고산지대로 이루어진다. 강원도 양구와 인제에 걸쳐 있는 대암산(1,304m) 정상부에는 천연기념물이자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고층습지 '용늪'이 있다. 백두산에서 출발하여 한반도를 종축으로 잇는 백두대간이 횡축의 DMZ와 만나는 지점이 강원도 고성과 인제를 잇는 향로봉이다.

DMZ에서만 볼 수 있는 우리 식물
(개느삼, 금강초록꽃)

정전협정을 맺은 이래 70년이 흐른 지금까지 한반도 DMZ는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채 독특한 공간으로 거듭났다. 일찍이 '자연생태계의 보고'라는 별칭으로 국내외 큰 관심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 1966년 한국자연보존연구소와 미국 스미소니언연구소의 합동 조사를 시작으로 DMZ의 산림과 그 안에 사는 식물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었다. 지금까지 약 2,000여 종류의 식물이 기록되었다. 그중에는 전 세계에 어디에도 없고 한반도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우리 식물이 있다. 바로 개느삼과 금강초롱꽃이 그 주인공이다.

개느삼

개느삼은 강원도 양구군에서 채집되어 1919년에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다 자란 키가 어른의 허벅지 정도로 아주 작은 나무다. 언뜻 보면 약초 ‘고삼’과 헷갈린다. 고삼을 민간에서는 '느삼'이라고 부르며 그 효능을 높이 평가한다. 느삼이 아니라는 뜻에서 접두어 '개'자를 붙인 이름이 ‘개느삼’이다. 부정적인 느낌의 '개'자를 이름 앞에 다는 걸 멀리하는 북한에서는 개느삼 대신에 '느삼나무'라고 부른다.

개느삼 노란 꽃이 필 무렵 DMZ의 봄도 절정에 이른다. 자그마한 몸집에 조롱조롱 노란 꽃을 매단 모습이 얼마나 어여쁜지 모른다. 정원 둘레와 공원의 한 모퉁이를 밝혀주는 조경 소재로 그리고 한 아름 꽃다발을 이루는 화훼소재로도 개느삼은 단연 돋보일 수 있는 식물이다. 개느삼 앞에서는 갈라진 남북의 마음도 하나가 되는 것인지, 남한과 북한 모두 희귀식물로 지정해서 극진히 보호하는 식물이기도 하다. 좀처럼 우리 앞에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개느삼이 비무장지대를 품고 있는 강원도 양구군에서 드넓게 산다.

금강초롱꽃, 출처 : 국립수목원

금강초롱꽃은 여름이 오면 강원도 비무장지대의 높은 산정에서 꽃을 피운다. 청사초롱을 쏙 빼닮은 자태로 옅은 분홍색에서부터 보라색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200여 년이 넘게 원예 분야의 주춧돌 역할을 해 온 영국왕립원예협회에서는 금강초롱꽃을 훌륭한 정원소재로 소개한다. 강원도 비무장지대에서 금강초롱꽃이 사는 자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 꽃길이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는 휴전선을 다 지울 수 있을 것만 같다.

DMZ를 세계적인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노력

비무장지대에는 희귀식물뿐만 아니라 귀화식물도 많다. 확인된 종류만 124분류군으로, 16종 당 1종이 귀화식물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군사용 물품과 군부대를 오가는 사람들의 자취를 따라 다양한 종류의 귀화식물이 비무장지대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귀화식물의 70%가 철책선 주변에 분포한다. 그 중에는 단풍잎돼지풀과 가시박처럼 우리 자생식물의 자리를 위협하는 식물도 있기에,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게 학계의 평가다. 어떻게 보면 비무장지대 일대는 야누스의 얼굴과도 같다. 일반인의 출입을 엄호하는 반면 군사 활동이 꾸준히 일어나고 있기에 온전히 보전되기도 했고 끊임없이 간섭받고 있기도 한 그런 곳이다. 그래서 비무장지대 일대를 서둘러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를 통해 '2030년까지 전 지구 육지와 해안, 해양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정한다.'는 이른바 '30×30 목표'가 발표되었다. 육지 및 해상의 국립공원, 습지보호구역, 해양보호구역 등을 늘려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자는 취지다. 이를 대비하는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에는 2030년까지 전 국토의 30%를 보호지역으로 확대하고, 훼손된 생태계의 30%를 복원하며, 외래종의 유입을 대폭 줄이는 방안이 담길 예정이라고 우리 정부는 발표했다. DMZ 일대에만 자라는 한반도의 식물 개느삼과 금강초롱꽃을 보전하기 위하여 산림청은 그들의 자생지를 세계적인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조선시대 이량연(李亮淵)이라는 사람이 썼다는 이 한시는 1948년 김구 선생이 3․8선을 넘을 때 읊조렸다고 전해진다. 과거에 선배들이 우리 땅을 지키기 위해 고투했던 흔적을 지금 우리가 곳곳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이제는 우리 자연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다음 세대에게 전해져야 할 때다. 다양한 생물을 품고 있는 DMZ의 산림을 잘 돌보는 일이야말로 뒤에 오는 이에게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허태임

식물분류학자. 〈한반도 팽나무속의 계통분류학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DMZ자생식물원을 거쳐 현재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보전복원실에서 우리 땅에서 사라져가는 식물을 지키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나의 초록목록』(김영사, 2021), 『DMZ생태문화지도』(국립수목원, 201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