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워지는 지구,
굶주리게 될 한반도

「식량위기 대한민국」을 통해 본
한반도 식량의 미래

개발협력부 손형동 과장

남재작 저 / 웨일북(2022)

I

지금 여기,
우리는 '이미 기'(旣)후위기

1.1. 변해버린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기후는 변했다." 기후가 점점 변해가고 있다거나, 기후가 변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이미 위기가 와 있다는 선언과 함께 저자는 책을 시작한다. 일상화된 위기를 단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이 위기가 돌이킬 수 없을 극적인 사건으로 표출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실체를 인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함께 말이다.

"기후변화는 전적으로 인간 활동에 의해 초래되었다."라는 단순명료한 이 한 문장이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88년 처음으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출범한 뒤 6차례의 기후변화 평가보고서가 발행된, 햇수로는 거의 3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후였기 때문이다.

최근 발행된 이 여섯 번째 보고서(2021년)에 따르면, 2040년까지는 지구의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시기인 1850~1900년 대비 1.5℃를 초과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그 이후 평균기온이 하락할 것이며, 현실적으로는 그때까지 평균기온 상승을 2℃ 이내로 억제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닐 것으로 전망한다.

1.2. 2℃가 뭐길래 :
수치로 살펴보는 평균기온 상승의 파급력

왜 ‘2℃’의 상승이 이토록 위기라고 할까? 산업화 시대 이전 대비 2001~2020년 기준 평균기온은 이미 1.1℃가 상승했다. 그 결과,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폭염, 집중호우, 가뭄·산불의 증가, 열대성 저기압의 강도·빈도 증가, 북극의 해빙·빙하·영구 동토층 감소 현상이 인간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곳부터 무너뜨리고 있음을 저자는 상기시켜 준다.

지구 평균기온의 1.5℃까지 상승하면 이러한 현상들은 더욱 심각해지고, 평균기온 상승이 2℃를 넘어가게 되면 그 영향이 가득찬 물이 흘러넘치듯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1.5℃를 기준으로 0.5℃가 더 상승할 때 초래될 것으로 예상되는 피해의 확산 정도는 아래 그림과 같다. 참고로, 지구 평균기온이 1.1℃ 상승할 때 이미 우리나라의 육지 기준 평균기온은 1.8℃나 올랐다.

II

기후변화는 식량위기의
얼굴로 등장한다

2.1. 기후변화가 식량에 미치는 영향

저자는 특히 식량위기를 통해 기후변화의 파괴력을 실감한다고 말한다. 농업과 식량은 기후변화의 피해를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분야 중 하나로, 지구 평균기온이 1℃ 상승할 경우, 통상 식량 생산량은 3~7% 감소한다고 한다.

2.2. 우리나라 농업 현실과 구조적 취약점

식량위기 앞에 우리는 얼마나 잘 준비되어 있을까. 저자는 우리의 식량 작물 농업 구조가 개발도상국 형태에 가깝고, ① 1ha(헥타르) 남짓의 좁은 평균 경지면적 규모 ② 연간 1,000만원 가량의 낮은 농업 소득 ③ 출생률 감소와 은퇴자 중심 귀농에 따른 농촌의 고령화·공동화 ④ 신규 투자 둔화와 같은 요인으로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평가한다.

일각에서는 신규 청년농업인들이 농촌으로 유입되면서 농가 발전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들은 농지나 시설 구매 융자를 갚기 위해 단위 면적당 소득이 높은 딸기, 토마토 등 하우스 중심 원예 농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식량 작물의 재배 면적을 줄여 식량자급률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또한 이러한 방식은 재배·저장 등을 위한 에너지 사용량을 증가시키므로 오히려 기후변화 대응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도 덧붙인다.

한편 우리는 식량자급률이 높은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먹는 주곡(主穀)을 기준으로 하는 식량자급률은 2019년도 기준 45% 정도였으며, 사료 용도까지 포함한 전체 곡물자급률로 보면 그 비율은 더욱 낮아져 대략 20% 수준에 머문다고 한다. 쌀은 거의 자급하고 있지만 가축 사육이나 식품 생산 등에 꼭 필요한 곡물인 옥수수는 3%, 콩은 25% 수준에 불과하다. 

2.3. 우리 밥상은 실제로 위협받고 있는가 :
두 가지 모습의 우리나라 식량위기 전망과 대응

그렇다면 곧 우리 식탁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도래하게 될까? 당분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는 식량위기는 크게 ① 국내 생산이 급감하거나 ② 해외 생산이 급감하는 경우 두 가지 모습으로 그려볼 수 있는데, 아직은 국내·외적인 식량위기 발생으로 인한 충격을 견딜 수 있는 내성을 갖추고 있어 식량 수급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국내와 글로벌 식량 공급망의 위기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면 우리에게 큰 식량위기가 찾아올 수 있음을 저자는 경고한다.

식량위기에 대한 대응 방안 역시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① 국내 식량 생산을 늘려 식량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즉, 국내에서 해법을 모색하는 방안이다. 저자는 이 주장에 대해 다수확이 가능한 벼를 심거나, 원예용 비닐하우스·과수나무를 제한하면 숫자로서의 식량자급률을 높일 수는 있지만 현재 상황에는 적용이 어렵다고 평가한다. 육류 소비량이 늘어나고 1인당 곡물 소비량은 줄어든 현실에서 곡물의 과잉 생산은 곧 국내 가격의 폭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밀과 콩·옥수수 등과 같은 쌀 외 곡물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해당 곡물에 대한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어 있어 글로벌 곡물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태다. 이러한 곡물들에 대한 국내 생산량을 늘리려면 농가 소득 보전을 위해 추가적인 지원을 할 수밖에 없는데, 해외의 밀⸱콩⸱옥수수 등의 가격 경쟁력을 상회하는 국내에서의 선호요인이 발생하지 않는 한 실질적인 국내 자급률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편, ② 외부로부터의 식량 공급망을 안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즉, 국외에서 해법을 찾는 방안이다. 우리나라가 외부로부터 식량을 조달하는 방식은 크게 첫째, 전 세계적으로 식량을 확보, 유통, 관리하는 주요 글로벌 곡물기업을 통해 수입하는 방법과, 둘째, 곡물을 생산국가로부터 직접 조달, 공급하는 방법으로 구분된다. 이에 현재 소수 글로벌 곡물기업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 해외 식량수입 의존도를 낮추면서 다양한 곡물기업과 거래하고(수입망 다변화), 국내 기업들이 현지 설비에 투자하거나 직접 생산하여 식량을 국내로 가져와야 한다는 것(공급망 다변화)이다.

그러나 저자는 국외 수입망 다변화 방안에 대해서 우리가 주요하게 수입하는 곡물의 대부분이 미국·브라질·우크라이나 등 국가들에서 집중적으로 생산되고 있는 상황을 주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입망을 다변화하려고 해도 곡물들의 생산 지역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기업이 해외 공급망 확대를 위해 기울이는 역할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토지를 기반으로 하는 식량의 특성상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현지 참여를 통해 우리가 직접 생산에 관여했다고 해도 일반적으로 식량 생산물은 생산 주체보다는 어느 땅에서 생산되었는지가 중요하게 인식된다. 즉, 해당 국가의 식량사정에 따라 우리가 생산한 농산물이라 해도 우리 것이라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2.4. 그렇다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우리 식량위기에 대한 두 가지 대응 방안을 평가하며, 저자는 보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식량위기를 바라보고 접근해야 한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표면상의 식량자급률 제고나 선택적인 수입·공급망 다변화보다는 ① 근본적인 우리 농업의 현실과 구조 개선 ② 해외 현지 사정에 정통한 우리 전문가 확보를 통한 상호 간 안전한 식량 공급망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지속적인 농업기술 및 장비 투자와 함께 이러한 투자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선진국형 대규모 농가 형성을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해외에서는 농업 ODA를 확대하되 수원국의 인적 네트워크 확보와 해당 국가의 농업 이해를 중점에 두고 국가별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저자는 "우리나라만 잘해서 식량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고 전 세계가 함께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우리의 삶이 전 세계에 걸쳐 거미줄처럼 서로 얽혀 있는 식량 공급망에 달려 있다"는 문장으로 우리나라가 식량위기 해소를 위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III

식량위기, 한반도공동대응 필요성은?

3.1. 변해갈 우리의 식탁 앞에서

"식량 공급의 안정성은 농업 생물다양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저자는 이같이 말하며 기후변화에 따라 결국 농업은 생산위기에 직면할 것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농산물의 품종도 빠르게 변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례로 기후가 달라지면서 사과의 주산지가 대구에서 청송으로, 그리고 이미 강원도까지 북상했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앞으로 북한이 사과의 주산지가 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을 나타내기도 한다. 단순한 가정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이야기이다. 머지않아 명절 차례상에 올릴 사과나, 겨울철 김장을 위한 배추와 무를 수입산에만 의존해야 할 날이 올지 모른다.

기후는 이미 변했다. 우리나라에서 재배·생산되는 식량 품종도 그에 맞춰 변해갈 것이다. 식량위기 앞에서 우리는 새로운 품종을 찾겠지만, 그것에 얼마나 ‘잘’ 적응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음식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먹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오랜 시간을 걸쳐 역사, 지리적 환경, 경제적 상황 등을 통해 만들어진 식(食)문화기 때문이다. 먹는 것을 통해 우리는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체성을 형성하고 전달하기도 한다. 결국 익숙해진 우리 전통의 식재료와 결별하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은 문제가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오랜 시간 이어져온 소위 ‘한국인의 밥상’ 차림이 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우리에게는 없는 식재료를 찾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와 비용을 쏟는 날을 맞게 되지는 않을까. 그중 많은 식재료들이 같은 한반도의 조금 더 위쪽 지역에서는 풍부하게 자라는 것을 보며 그때 우리는 어떤 생각과 선택을 하게 될까.

3.2. 식량위기 속 우리의 먹거리를 건져낼
미래 그물망의 모습

저자가 주장한 대로 식량위기에 잘 대응하려면 단순히 국내 자체 자급률을 높이거나 해외 식량 공급망을 다양화하기보다는, 많은 국가들과의 협력을 확대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인 방법이다. 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려면 우리가 단순히 협력관계의 일원이 되는데 그치지 않고 여러 국가들과의 식량 협력을 주도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식량 공급망 이니셔티브를 가진 국가로서 역할하려면, 국제사회의 보편적 원칙에 맞게 행동해 나가야 한다. 기후변화로 초래된 식량위기로 고통 받는 국제사회의 일원을 인도주의에 입각해 지원하는 것이 그 출발이다.

저자는 기후변화가 "가장 취약한 국가의 가장 가난한 사람부터 공격한다"고 강조한다. 식량문제에 있어 같은 한반도에는 매년 만성적인 식량난과 재해·재난에 의한 피해로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 있다. 작년에는 특히 그 정도가 더 심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식량문제를 겪는 다른 국가도 많은데 굳이 왜 북한이어야 하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그러나 과연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역사를 공유하는 지역의 어려움조차도 외면하는 우리나라가 다른 해외 국가의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고 이를 주도하겠다고 할 때 국제사회에서 이를 얼마나 진정성 있게 받아들일까? 전례 없는 기후재앙과 그로 인한 식량위기 앞에서 여러 국가를 우리 주도의 그물망 안으로 참여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보편적이고도 일관된 원칙을 두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전 세계를 무대로 만들어 나가야 할 우리의 식량 그물망은 촘촘해야 한다. 구멍이 나 있다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양식을 제대로 건져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속적인 투자로 고도화 된 우리의 농업기술이 다른 나라 또는 지역에 적용되어 그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원동력이 되고, 동시에 그 지역의 식량문제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국내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위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우리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