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 정세 전망

주재우 (경희대)

내년도 2월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지 2년이 된다. 이 전쟁이 장기화되고 지구전이 될 것이라고 상상한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습하는 사태가 10월에 벌어졌다. 하마스의 공습이 테러 차원의 소행으로 간주되고 있어 러-우전쟁처럼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관건은 이란의 하마스 지원 가능성이다. 이란의 개입이 가능해지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도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과거 전쟁 경험에 비춰보면 역사는 단기전을 암묵적으로 예언한다. 내년에 러-우전쟁이 종결되지 않고 미국에 공화당 인사가 대통령으로 11월에 당선되면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하다. 대통령직을 다시 한 번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미 지원 중단을 노골적으로 선전하고 있어 미 대선 결과의 귀추가 주목된다. 트럼프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한 미 민주당의 복안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미국의 경제를 살리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오는 11월 샌프란시스코 APEC 정상회의에서 미·중 양국 정상의 회담 개최가 거의 확정적인 상황에서 미·중 양국의 경제적 포석은 내년도 국제정세에 영향을 가장 크게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1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지속

러-우전쟁은 내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전쟁이 중단에는 세 가지 방식밖에 없다. 하나는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중 한 나라가 항복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일시적인 전쟁 중단을 위해 휴전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두 나라 간에 평화조약 체결로 완전한 전쟁 중단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런데 휴전과 평화조약으로 전쟁이 중단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높지 않다. 양국은 휴전할 의사가 없어 보이고, 평화조약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조건에 합의할 의사 또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제시된 평화조약의 조건은 우크라이나에 러시아가 일부 요구하는 지역의 할양에 두 나라가 합의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그럴 의지가 없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역 외에 더 많은 지역을 원한다. 결국 휴전의 가능성이 세 가지 방식에서 높다고 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수용될 공산은 적다. 두 나라 아직 버틸 여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앞으로 더 많은 군수를 어떻게 조달하는 것이 관건이겠다. 현재 러시아가 이를 의존하는 나라들 중 중국이 소극적인 자세로 전환하면서 북한에 의존을 더 많이 하는 국면이 연출되고 있다. 북한의 포탄과 탄약의 지원 능력이 변수로 조심스레 떠오르고 있다.

결국 러-우전쟁이 종결되기 위해서는 중재안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중재에 나선 국가들이 제시한 중재안이 두 나라에 수용될만한 것은 없어 보인다. 중재안 조건에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일부를 러시아에 할양하는 것 외에도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가입마저도 불허하는 조건이 거론된다. 그러나 러시아의 침공을 이미 받아 본 우크라이나에게 이는 수용 불가능한 조건이 되어 버렸다. 전쟁이 종결되면 우크라이나는 나토에 가입하고 싶은 열망이 더욱 커질 것이 자명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중재 문제는 상당히 어려워졌다.

미국이 내년에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기 때문에 미국의 지원 지속성이 관건적인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세간의 추측이다. 그러나 미 대선이 11월이고, 바이든 행정부의 정권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선의 분위기 때문에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차질이 빚어질 공산은 크지 않다. 물론 지금보다 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어야 한다면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은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서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몇 가지 전략적 옵션이 있다. 하나는 국제사회의 더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동맹의 더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미국과 동맹이 더 파괴력 있는 무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파괴력 강한 무기를 직접, 더 많이 제공함으로써 러시아를 더 어렵게 만들어 중재안 타결을 이끌어 내는 전략이다. 어려운 중재안을 이끌어 내면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내년에도 바이든 행정부의 통치가 계속되기 때문에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지속될 것이다. 비록 미 의회에서 공화당의 반대와 비판이 거세져도 지금까지 미 의회 또한 우크라이나 지원을 승인해준 사실에 비추어 보면 바이든 정부 시기 동안 미국의 지원은 계속될 것이다. 혹시 트럼프가 당선되어 2025년에 집권해도 미국의 지원이 지속될 가능성은 있다. 트럼프가 지원 반대를 공식화했지만 그의 개인적인 입장으로 관철시킬 수 있는 게 아니다. '미국의 시스템(American system)'이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미국의 가치(인권, 주권, 자유 등), 제도(의회의 행정부 견제 제도)와 규범(폭력 약탈 금지, 투명성, 신뢰 등)을 모두 담은 미국의 시스템이 트럼프 개인의 입장을 지지할 수 없는 구조를 갖췄기 때문이다. 미 대선 국면과 상관 없이 내년에도 러-우전쟁이 지속되면서 장기전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2

경제! 경제! 경제가
미중 끌어 안기 추동 요인

11월 14일에 개최되는 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참석이 거의 확정적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도 예견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이처럼 관계 개선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경제가 그 이유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으로 주도한 이른바 '디커플링(de-coupling)' 전략이 어느 정도 유효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 결과 중국 경제가 장기적인 불황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상황도 있었지만 지난 3월 ‘리오프닝(re-opening, 경제활동재개)’을 선언한 후 중국 경제 회복의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전략이 중국 경제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 결과는 중국의 장기적인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의 장기적인 경기 불황이 미국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데 있다. 미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중국에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나라다. 중국 역시 미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세계에서 제일 높다. 이는 두 나라의 무역규모에서 뿐 아니라 투자 외에도 기술이전에서도 드러나는 사실이다. 고도의 상호의존 구조를 가진 두 나라의 경제는 어느 한나라가 일방적으로 견제하고 차단할 경우 그 여파는 자연스럽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것이 두 나라 사이에서 벌어지는 현재의 상황이고, 그 결과가 두 나라의 장기 불황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2023년 경제성장률은 2% 전후를 기록 중이다. 1분기에 1.1%, 2분기에 2.7%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3분기에는 소비의 급증으로 4.9% 성장률을 보였다. 반면 중국은 1분기 4.5%, 2분기 6.3%, 3분기 4.9%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올해 전망한 5% 내외의 기록에 못 미칠 것으로 하향조정 되고 있다. 미국의 성장률이 오름세를 보이지만 미국 경제의 악재 해소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미국 국가부채의 증가세를 전환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7조 달러(약 한화 4경원)를 넘어 지난 5월에는 국가 채무불이행(일명 ‘디폴트’) 상태가 선언될 뻔한 고비를 넘긴 적도 있다.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지난 3월 20%에 육박(19.6%)하면서 사실상 46% 이상일 것이라고 추정되었다. 이후 중국 정부는 7월에 들어와 급기야 이를 발표하는 것을 중단하였다. 심각한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는 의미다.

미·중 양국이 장기적인 경기불황과 경제침체에 빠진 것은 반도체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데 있다. 두 나라 모두 4차산업의 시기에 진입했다. 세계가 그렇다. 4차산업의 핵심은 반도체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다. 세계 수요의 60% 이상을 한국 기업이 공급한다.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에 공급하는 60% 중 40% 이상이 중국에서 생산되었다. 그러나 미·중 양국이 경쟁하면서 결국 중국에 있는 우리 반도체 기업과 생산 공장으로까지 '생산 중단'이라는 불똥이 튀었다. 미국이 반도체 과학법(Semiconductor and Science Act)을 작년 10월에 통과시키면서 중국산 반도체의 미국 시장 반입부터 중국 생산 공장에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까지 많은 제약을 동시에 걸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의 중국 반도체 생산 공장은 실제로 개점휴업 상태였다.

그러나 이 법이 통과된 지 1년 만에 미국의 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 규제가 해제되었다. 미국이 불황 극복과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4차산업이 활발하게, 왕성하게 발달해야 한다. 그런데 이 반도체 수급에 병목현상이 벌어지면서 타격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중국도 4차산업 시기로 접어든지 오래인데 반도체 수급에 큰 차질을 빚고 있어 경제 침체와 경기 불황으로부터 회복하는 데 상당한 고충을 겪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은 관계 개선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올해 2월부터 양국 간 고위급회담이 거의 매달 한 번씩 개최된 이유다.

이제 미·중 양국이 APEC에서 경제관계의 개선 결실을 맺게 되면 세계 경제에 큰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이다. 중국이 2021년 '제로 코로나'를 선언했을 때 중국 경제가 8.1% 성장률을 보이면서 세계도 5% 이상, 미국이 5.7%, 우리나라가 4.9% 경제 성장률을 기록한 것과 같이 유사한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8% 성장률은 2008년 이후, 미국의 5.7%는 1984년 이후 처음 기록된 수치였다.

3

결언

올 초, 연말이 되면 중국이 미국에 '무릎 꿇을 것'이라는 전망을 했을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나 이는 현실이 되었다. 여기에서 틀린 게 있다면 미국도 중국에 손을 내민 것이다. 미·중 양국의 경제 상황이 극도로 안 좋아지면서 만들어진 결과다. 이는 자명했다. 미국의 중국 견제 관련 법안들이 국내 정치적인 이유로 졸속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지난 3월부터 이런 법안에 부칙 만들기에 급급했다.

경제 분야에서 양국의 협력은 내년에도 지속될 것이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서는 내년 1, 2분기 경제지표가 호전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비(非) 경제 영역인 외교, 군사, 안보 분야에서 양국의 경쟁은 지속될 것이다. 산적한 이슈들이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정세 흐름을 직시하고 현실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경제 분야에서 한·중 협력은 재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비경제 분야에서는 한·미, 한·미·일 협력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두 가지 방책을 세워야 한다. 하나는, 경제 분야에서 우리의 반도체 레버리지를 활용해 최대 공급자의 입장에서 우리만의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 비경제 분야에서는 한·미, 한·미·일이 합의한 사항이 미국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도 흔들리지 않게 기제화, 제도화하는 노력을 남은 1년 동안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