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북한 내부
정세 평가와
2024년 전망(정치 안보)
- 내부 결속 강화하며
중·러 밀착을 통한 국면 전환 모색-
김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출발은 경제와 핵,
남은 것은 핵·미사일 고도화
북한은 2023년 경제발전과 핵·미사일 고도화의 두 가지 목표를 향해 매진하였다. 경제발전과 핵·미사일 고도화를 통해 체제안정과 군사력을 과시함으로써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을 무력화시키고 대북정책 전환을 유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대북 제재와 코로나19라는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체제생존과 정권 안정화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체제 위기의 안전판으로 핵·미사일 고도화를 선택하였으며, 그 결과 경제는 사라지고 핵·미사일 고도화만 남게 되었다.
북한은 핵·미사일 고도화를 위해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각종 단·중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지속하였으며, 2차례에 걸친 군사정찰위성 발사도 시도하였다. 그리고 전술 핵탄두 '화산-31', 핵 무인 공격정 '해일-2형', 고체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8형' 등 신무기까지 선보이면서 핵·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를 과시하였다.
북한은 핵·미사일 고도화와 함께 조선인민군 창건 75년(2.8), 정전협정 70년(7.27), 북한 정권 수립 75년(9.9)을 기념하기 위한 대규모 열병식을 무려 세 차례나 개최하였다. 열병식과 함께 기념식, 불꽃놀이, 야회 등의 축제 행사들이 함께 진행되었으며, 이를 통해 대북 제재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체제와 정권의 건재함을 대내외에 과시하였다. 그러나 화려한 축제의 뒤에는 식량난과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남북·미북 관계 경색과
중·러와의 밀착
북한은 미국과 대립 중인 중·러에 대한 적극적 지지를 통해 중북·러북 관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를 체제안전판으로 활용하고 있다. 북한은 우리와 미국에 대해서는 '강 대 강, 정면승부' 기조를 지속하였으며,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는 관계 증진의 밀착 행보를 통해 '한미일 vs 중러북' 신냉전 대결 구도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올해 러시아와의 관계 증진에 중점을 두었다. 북한은 9월 개최된 러·북 정상회담과 10월 외무장관 회담을 통해 무기 및 군사기술 지원의 군사협력, 경제·과학 기술·문화 등 경제협력, 국제무대에서의 상호 지지와 반미연대의 외교 협력 등에 합의하였다. 러시아와 북한은 대미 대결이라는 반미연대를 기반으로 서로에게 긴급한 재래식 무기와 위성기술 및 식량·에너지 등의 교환에 합의함으로써 강한 밀착 관계를 보여주었다. 중국과의 관계는 미·중 대결 국면을 고려하여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등 중·북 간 친선을 과시하였으며, 정전협정체결일 70년 계기 중국의 당·정 대표단 방북 등 고위급 교류를 재개하였다. 그리고 북한은 제한적 국경개방을 통한 중·북 교역 확대를 통해 관계 증진에 노력하였다.
간부 기강 잡기와
주민 통제를 통한 내부 결속 강화
경제난과 식량난 이는 주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식량부족과 생필품 부족에서 오는 고통은 북한 사회 내부로부터 불만이 터져 나오게 만들고 있다. 북한 역시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에 대한 대응은 간부들의 문책과 처벌 등 기강 잡기와 주민들을 향한 사회통제 강화로 나타났다.
북한은 당·정·군 회의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실적 부진과 태만을 이유로 간부들을 다그치면서, 경제실적 목표 달성을 관철하기 위한 '무조건' 이행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간부들의 사상 무장과 기강 확립을 주문하였다. 간부 기강 잡기의 백미 (白眉)는 지난 8월 평안남도 수해 현장 방문 시 김정은이 경제사령탑인 김덕훈 내각 총리를 비롯한 경제관료들을 향해 "건달뱅이들이 무책임한 일본새로 국가경제사업을 다 말아먹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한 것에서 나타났다. 주민들에 대한 사회통제 강화는 대규모 주민 동원행사와 사회통제기구들을 통한 감시·통제 강화로 나타났다. 그리고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 사상투쟁의 강조속에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청년교양보장법」 등을 중심으로 부정부패와 사상단속을 강화하였다.
중·러와의 관계를 통한
위기 탈출 시도,
그러나
'그럭저럭 버티기'에 만족
북한은 2024년 본격적인 국경개방과 함께 위기 탈출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북 제재 하에서 자력갱생의 기조는 지속하겠지만, 한층 가까워진 러·북 관계 및 중국과의 국경개방을 활용하여 경제의 숨통을 틔우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와의 제한된 교역과 지원을 통해 연명할 수는 있지만, 북한의 위기 탈출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북 제재의 지속과 코로나19 종식의 불확실 그리고 미·중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 지원이 북한의 기대를 충족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2024년 북한은 위기 탈출의 시도를 하겠지만, 내부 상황은 '그럭저럭 버티기'를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 북한은 식량난과 경제난의 어려움에서도 표면적으로는 체제와 정권의 안정적 모습을 보여주겠지만, 내부적으로는 간부·주민들의 불만이 증가하면서 체제 불안정 요소가 증가하는 딜레마가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내부의 어려움이 증가하는 경우 위기 탈출을 위해 대남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우리는 강력한 대응을 통한 응징을 추진해야 한다.
핵·미사일 고도화와
남북·미북 교착 국면의 지속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는 내년에도 지속될 것이다. 북한이 공표한 '전략무기 분야 5대 과업'인 ① 초대형 핵탄두 생산 ② 1만 5천km 사정권 명중률 제고 ③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④ 수중 및 고체 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⑤ 핵잠수함과 수중 발사 핵 전략무기 보유를 향한 움직임을 지속할 것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비롯한 다양한 전략무기들의 시험발사가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준비를 마친 것으로 알려진 7차 핵 실험의 가능성이 높다. 남아있는 초대형 핵탄두 개발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핵 실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5대 과업’ 중 초대형 핵탄두를 제외한 다른 분야는 이미 완료했거나 시험발사를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에 따라 남북·미북 관계는 교착 국면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북한이 7차 핵 실험을 단행한다면 한반도의 안보 환경은 상당한 위협에 놓이게 될 것이다. 북한이 내년에도 대남 관계를 ‘대적 관계’로 규정한 채 비타협적 태도와 도발로 대응한다면, 우리 정부가 실용적이고 유연한 대북정책을 추진할 최소한의 공간마저도 가로막히게 될 것이다. 미국 역시도 2024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북한의 비핵화 없는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희박하다. 아마도 북한은 더욱 밀접해진 중북·러북 관계를 배경으로 대남·대결 정책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국경개방의 여파로 인한
사회 불안 증가와 통제 강화
북한은 내년에 올해보다 더 강화된 사회통제를 추진할 것이다. 국경개방에 따른 외부 정보 유입과 탈북자 증가는 사회 불안을 촉진할 수밖에 없다. 외부 지원의 한계 속에 내부 자원과 인력의 총동원으로 운영되는 경제 역시 내부의 불만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북한은 국가보위성과 사회안전성 등 사회통제기구의 역할을 확대하면서 국경 지역에 대한 감시와 함께 외부 정보 유입·확산을 강력하게 통제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주민들의 사상과 생활을 통제하기 위한 선전·선동과 감시·처벌을 강화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간부들에 대한 기강 잡기 역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2021~2025)'의 4년 차를 맞이하여 그동안 미진한 성과 달성을 촉구하면서 간부들의 분발을 촉구할 것이다. 간부들에 사상 무장과 과업 완수를 강조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당·정·군 회의를 지속적으로 개최하여 성과 달성 점검과 함께 문책과 처벌을 시행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간부들의 면종복배와 허위·과장 보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