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癸卯年)이 저물고
갑진년(甲辰年) 靑龍의 해를 맞이합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 연말이면 으레 떠오르는 단어입니다. 인생사가 다사다난 속에서 치이기도 하고 극복하기도 하면서 꾸려집니다. 그런데 이 成語에서 '多難'은 남북관계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분들께 유독 더 깊게 와닿을 것 같습니다.
계묘년 한해, 정말 다사다난 했습니다.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을 두고 미·중 간 패권경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짧은 시간 안에 끝날 것 같진 않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수렁에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다음 戰場은 중국의 대만 침공 및 남중국해가 될 것이라고 마치 상식처럼 언급되고 있습니다. 또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를 ‘핵보유국’이라고 노골적으로 천명하며 탄도미사일 도발을 마다하지 않는 북한發 안보위협은, 안타깝게도 거의 일상화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관계 경색과 남·북 교류협력 환경의 악화는 불가피해 보이기도 합니다.
남북관계를 민족 내부 특수관계로 규정한 <남북기본합의서>(1991)가 체결된 지도 어언 32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남북관계는 국내외 정세의 영향 아래 냉탕과 온탕을 오갔습니다. 북한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 수령절대주의 체제는 여전히 강고합니다. 경제난은 고질병이 됐을 뿐 아니라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더욱 강화됐습니다. 그런데 북한을 마주 대하고 있는 우리는 오히려 대북정책을 두고 갈팡질팡해 왔습니다. 북한은 우리사회 보수·진보의 대북정책을 모두 경험하게 됨에 따라 급기야 우리의 대북정책을 자기들 입맛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갖는 것 같습니다.
이제, 남북관계를 바로세워야 할 때입니다. 새삼스러울 일도 아닌데 많이 늦었습니다. 학습비용도 너무 낭비됐습니다.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이 통용되고 상호성과 지속성이 보장된 ‘정상적인’ 남북관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법과 원칙에 바탕을 둔 교류질서 확립이 중요합니다. 동포애나 평화를 명분으로 한 무조건적이고 감성적인 대북 접근은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북한이 ‘긍정적’ 변화에 나서도록 견인하고, 또 북한 스스로 그럴 수 있을 때 우리도 국제사회도 북한을 더욱 지원하고 협력할 수 있습니다.
이런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 기여하는 조직이 바로 우리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입니다. 협회는 그동안 많은 일을 해왔지만, 대내외 정세 변동에 따라 많은 부침을 겪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본에 충실하고 기본부터 다지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 방향은 남북교류협력의 정상성을 확립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대내외 정세 변동에도 흔들림없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란 말이 있습니다. 남북교류협력은 우리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남·북 간 상호 적대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또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안보환경의 격변과 남북관계의 경색에도 대화와 교류협력을 포기해선 안됩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그에 맞는 교류협력 방법과 사업을 개발하게 된다면 그 지속 가능성은 높아질 것입니다. 이를 위해 새로운 길을 찾는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모험적이 아니라 법·제도를 준수하고 현실에 바탕을 둔 방법도 찾아야 합니다. 이런 견지에서 지금은 남·북 직접교류에만 얽매일 것이 아니라 남과 북, 국제사회의 다자(국제화) 틀을 활용한 교류를 모색하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甲辰年, 龍은 예로부터 힘과 용맹, 지혜를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져 왔습니다. 이무기가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용이 되어 승천한다는 우리네 전설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에게 큰 영감을 줍니다. 미래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다가오는 게 아닙니다. 의지와 역량을 갖고 만드는 것입니다.
웹진 『이음』 독자님, 그리고 협회 직원 여러분. 지난 한해 정말 수고 많았다는, 그리고 정말 고마웠다는 인사, 말만으로는 부족하지만 진심을 다해 전합니다. 새해에는 청룡의 기운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시고 특히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