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가 김성희 대표

남북 간 교역이 어려운 지금, 북한상품으로 창업에 성공한 사람이 있어 웹진 '이음'에서 찾아가 보았다. 십여년전 함경북도에서 2 살배기 딸을 업고 대한민국으로 건너와 정착했다는 김성희 대표는 현재 유일하게 남한에서 북한의 전통주를 제조하는 기업인이다. 인위적이고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남한사람들에게 낯선 북한의 전통적 주류제조방식으로 어떻게 다가갈 수 있었는지, '이음' 독자들에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이음 독자들에게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하나도가'는 고향 친구와 2019년 충북 음성에서 창업한 작은 양조장이에요. 물과 농산물은 한국 것, 술 빚는 방법은 북한식이죠. 한 병의 술에 통일을 담는다는 의미로 하나도가라고 지었어요. 통일을 바라는 이름에 맞게 북한의 서민술인 농태기, 함경도 전통 가양주인 태좌주, 38도선에서 영감을 얻은 삼팔주를 생산·판매하고 있어요.

하나도가 입구에서
(왼쪽이 김성희 대표, 오른쪽이 박영금 이사)

북한이탈주민이라 남한에 연고가 없으실 텐데 충북 음성으로 오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술은 물맛이 가장 중요해요. 제가 전국 방방곡곡을 물 뜨러 다녀봤는데 이 곳 음성이 고향 땅 물맛과 가장 비슷해 여기에 터를 잡았어요. 다행히 같은 고향 동생이 먼저 음성에 내려와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죠. 지금은 동업자이자 친구이자 가족같은 소중한 존재에요.

북한 술로 창업을 하겠다고 결심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제가 함경도에서 태어났는데, 저희 외가가 경주 최씨 가문이에요. 저희 집안에 딸과 며느리에게만 전수되는 제삿술이 있는데 어려서부터 할머니가 남들 다 자는 새벽마다 깨워서 술을 만들라 시키니 마지못해 배웠죠. 고향에서도 우리집 술이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했어요.

사업을 하려면 남들과 다른 걸 찾아야 하는데 내가 뭘 할 수 있나 생각해보니 딱 이거더라구요. 남한의 재료를 가지고 북한식 제조비법으로 전통주를 만들어보자~. 그 때부터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자격증도 따고 창업을 준비했죠. 아마도 남한에서 북한술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사람은 저 밖에 없을 겁니다.

북한 상품을 모티브로 창업을 하신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창업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처음에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게 어려웠죠. 특히 지역사회에 발붙이고 들어가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동네 어르신들이 저에게 빨갱이가 왜 여기까지 왔냐고 술에 뭘 탔는지 어떻게 아냐며 따가운 시선을 보냈죠. 하지만 주말마다 찾아가 농사일손을 돕고 아르바이트를 5개 하면서도 봉사활동도 쉬지 않았어요.

그러기를 1년이 지나자 슬쩍 저에게 '고기 구워 먹을라는데 네가 빚은 술 한 병 가져 와봐라' 하시더라구요. 그 분들이 지금 하나도가의 술은 목 넘김이 부드럽고 숙취가 없이 깔끔하고 깨끗하다고 주변에 입소문을 도맡아 내시는 가장 든든한 고객들이시죠. 

하나도가에서 판매중인 삼팔주와 태좌주, 농태기

남한과 북한이 술 만드는 방식이나 문화가 차이가 많이 있나요?

남북한의 주류제조 방법과 원 부재료, 그리고 술을 대하는 관점에서 큰 차이가 있어요. 남한은 따뜻한 지방이여서 술의 종류는 주로 막걸리, 동동주, 약주, 과하주 등, 부드럽고 알콜 도수가 약한 술들이 많이 빚어지지만, 북한은 추운 지방이다 보니 알콜도수가 높고 증류주를 위주로 생산하며 고구려술의 제조비법이 전해져 내려와 발효과정에 엿기름을 꼭 추가하여 곡물을 발효시킵니다. 첨가물은 넣지도 않지요. 북한에서는 술을 약으로 보거든요. 약재 외에는 인위적인 무언가를 집어넣는 것을 싫어합니다. 북한 술의 가장 큰 특징은 원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오롯이 담아낸 술이라는 데 있습니다.
문화적으로도 북한은 술자리를 식당보다는 가정집에서 한 번에 끝내는 것이 기본입니다. 또한 북한이 가부장적인 음주문화가 만연해서 여성들은 술상 차리는 사람이지 같이 앉아 술 마시는 분위기가 아니거든요. 장단점이 있겠지만 건강을 생각한다면 느긋하게 앉아 천천히 마시고 그 자리에서 마무리하는 북한의 술문화도 괜찮은 것 같아요.

김성희 대표가 봉사활동을 하며 받은 상장들

북한상품 창업 시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향후 예비 창업가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먼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북한에서 온 이탈주민이라는 선입견, 북한술이라는 선입견을 깨는게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탈북민들이 세금으로 먹고 산다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받은 만큼 봉사로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해 열심히 사회봉사와 기부도 하고, 북한에도 전통적이고 가치있는 우리 문화가 있다고 숨기지 않고 꾸준히 알렸어요. 

앞으로 계획이나 꿈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북한에서 약초를 가져다 술 재료로 쓰고 싶어요. 저희 남편이 북에서 약초관리사였거든요. 앞으로 북한이 경쟁력이 있는 상품이 있다면 약초가 아닐까 싶어요. 백두산이나 개마고원에서 난 자연산 약초라 한다면 누구라도 솔깃하지 않겠어요? 지금 백초주라고 백가지 약초로 만든 술을 개발 중인데 여기에 북한의 청정명산들에서 채취한 약초가 들어간다면 금상첨화겠죠. 술이 약이 돼서 먹으면 오히려 건강해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만든 북한 전통주가 인정을 받아서 ‘아, 정말 술맛 좋다’라고 느끼게 하는 거고, 그래서 알아봤더니 북한에서 온 탈북여성이 남한에서 만든 술이라고 외국인들도 흥미를 갖게 하는 거에요. 그러다 정말 남북이 만난 자리에서 남한에서 난 재료를 가지고 북한의 제조방법으로 만든 술이 통일건배주가 된다고 상상하면, 이보다 훌륭한 술이 어디에 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