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환 통일교육원장 초청 전문가 대담

전 북한외교관이자
현 통일부 고위관료
에게 듣는

남북관계 방향

진행 : 전영선 이음 편집기획위원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정리 : 종합지원센터 고준 대리 /
사진 : 양효원 과장

안녕하세요. 원장님.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에서 온라인으로 '이음'이라는 뉴스레터를 발간하는데요. 이번 커버스토리로 특별히 원장님과의 대담을 기획해 보았습니다. 먼저 '이음' 독자분들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특히 북한에서 외교관 출신이셨으니까 외교관 생활하시면서 느꼈던 점이나 경험들도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관 중 제일 먼저 탈출한 '1호 외교관'이라는 말이 항상 저한테 붙어 다닙니다. 사실 외교관 생활 초기에는 세상의 별을 딴 느낌을 받았었어요. 제가 김일성 주석의 프랑스어 통역을 할 때 김일성에게 "너 국산인데 꽤 잘하네(국내에서 공부했음에도 외국어를 잘하네)."라는 칭찬과 홍삼 10뿌리를 선물 받기도 했어요. 그리고 제 인사 자료에 '김일성 동지께서 고영환 동무에게 주신 교시'라는 것도 작성되어 있었죠. 그 때 외무성 당비서가 "이제부터 당신에게는 모든 길이 열렸다."라고 제게 말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외국을 다니면서 내가 알고 있던 게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실망을 했어요. 그리고 고르바초프 개혁·개방 정책, 소련의 붕괴, 동·서독 통일 등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사회주의의 암울한 현실에 의구심을 가지게 됐어요.

아~ 정말 충격이 크셨겠네요.

충격이 어마어마했죠. 그렇다고 탈출할 마음까지는 없었어요. 그러다가 1989년 말에 차우셰스쿠(루마니아 독재자) 대통령이 총살되는 거 보면서 "우리나라에는 저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는데"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걸 보위부 파견관 직원이 '위대한 수령님도 차우셰스쿠 대통령처럼 총살될 수 있다고 발언함'이라고 꼬아서 평양에 보고했어요. 이 때문에 저를 잡으러 온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고민 끝에 탈출을 결심하게 됐죠.

그렇게 어렵게 오셨는데 와서 남한에 사신 지도 이제 오래 되셨잖아요. 어떠셨어요? 어려운 부분도 꽤 있었을 것 같은데요.

한국에 와서 2000년대 들어서기까지 가족들에 대한 죄스러움에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죠. 그래도 조금씩 마음을 안정시키면서 정착했고, '내가 여기서 역할이 있겠구나. 그래 기왕 일이 이렇게 된 거 열심히 살아야 되겠다.' 생각했죠. 제 주위에 많은 (탈북 외교관) 후배들이 왔어요. 서울에만 10여명 있는데요. "고선생님은 북한 외교관들의 레전드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

그러시군요. 개인적인 것도 있겠지만 남북한 간 문화 차이가 있잖아요. 어떤 차이를 느끼셨나요?

위생실을 화장실이라고 하는 등 언어의 차이가 제일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갈매기살이란 말을 들었을 때는 '아니 얼마나 먹을 게 없으면 갈매기까지 잡아먹을까?'라고 오해도 했었죠. 이런 것들을 극복하는데 한 15년 이상은 걸린 것 같아요. 한번은 직장에서 제 월급이 100만 원일 때 회사에서 20만 원짜리 삐삐를 주는 거에요. '이런 것도 공짜로 주네?' 생각했는데, 그게 공짜가 아니고 시시때때로 부르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자유를 찾아 왔는데 자유가 없네.'라는 생각을 했었죠. 이 얘길 동료한테 말했더니 "주말에는 삐삐 끄세요. 전화기도 시끄러우면 코드 뽑고 안 받아도 뭐라 못해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설마 하고 그렇게 해봤는데 진짜 아무도 뭐라 안하더라고요. 그런 걸 모르고 살았었으니까 이게 너무나 신기하고 이런 게 자유라는 건가 싶으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재밌는 에피소드네요. 아무래도 외교관이셨으니까 남북한 정세 관련 질문 좀 드리겠습니다. 최근에 변화들이 좀 많이 있잖아요. 북한이 '우리국가제일주의'를 선언하고 올해 '적대적 두 국가 관계' 등 공세적으로 가고 있는데, 이런 게 준비된 행보로 보시는지, 아니면 일시적 방편인지, 어떻게 보세요?

북한은 이미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에 정책 방향을 바꾼 것이라 생각해요. 그 이유는 한국의 영향력을 차단하자는 게 크다고 봐요. 한국은 경제가 발전하고 한류 문화는 계속 북한 주민들의 의식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쳐 한국의 영향을 막지 않으면 본인들의 체제가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저도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요.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났다는 거는 김정은의 정책이 사실 실패했다는 거고, 대외 전략을 전면적으로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보고 있는데요. 최근 북한의 외교 전략은 어떻게 보세요?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북한 대표단이 중국도 가고 베트남도 가는데 다시 사회주의 연대를 강화하려는 의도일까요?

기본적으로 북한은 미·중, 미·러 갈등 속에서 자기 위치가 커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북한한테 중요한 나라가 러시아와 중국인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하고 전쟁 중이고, 미국은 중국과 무역·기술 이런데서 충돌하고 있으니 이 가운데 자기들의 외교적 공간이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인거죠. 반미연대를 중심으로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전에 할아버지 때 외교처럼 중국하고 관계가 나쁘면 러시아하고 딱 붙었다가 러시아와 관계가 나빠지면 다시 중국에 붙는 이런 외교의 답습 같아요.

지금은 중국과의 관계를 희생하면서까지 러시아에 올인을 하고 있어요. 한동안 북한이 제3세계에 대한 무기 수출이 대폭 감소한 상황이었는데 러·우 전쟁이 터지면서 북한으로서는 노다지 같은 광맥이 터진 거죠. 여유분의 무기로 유류, 가스 등을 받아들이는 게 굉장히 유리해진 거죠.

네. 상황이 참 쉽지 않네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서, 저도 북한·통일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 국민들이 통일에 대한 관심이 많이 낮잖아요. 이게 참 쉽지는 않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북한이 평화·통일 이런 것도 지우고 애국가 가사도 바꾸는 것으로 봐서는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거든요. 게다가 자꾸 포랑 미사일을 쏘고 오물까지 날려 보내니까 우리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정서는 좋지 못하죠.

그럼에도 북한이 저렇게 나올수록 우리는 통일·평화·동족 구호를 높이 들고 나가야 한다는 게 제 지론이에요. 통일 구호를 내걸고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는 것을 계속 북한 사람들한테 알려서 희망을 준다는 측면에서도 강화해야 해요.

우리 국민의 인식 개선을 위해서는 커다란 담론보다 통일이 되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구체적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예를 들어 요즘 MZ세대의 가장 큰 고민은 취업인데 통일이 되면 철도·항구·고속도로 등 엄청난 건설 붐이 일어나고, 풍부한 지하자원의 개발 등 수많은 일자리가 생겨나는 거죠. 또 군대도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바꾸면 군대 스트레스도 해결되고요. 이런 구체적인 안을 가지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데 반응이 좋아요.

그 밖에 통일 관련 전시회, 북한 알리기, 통일 편익 대조, 한반도통일미래센터를 활용한 통일 가상현실(VR) 체험, 탈북민들과의 대화 및 운동회 등 일반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서 교육을 해야 해요. 일반 시민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게 북한 주민들이 뭘 생각하고 뭘 먹고 뭘 하면서 사는 지 같은 일상이거든요.

외교관 출신이셔서 굉장히 큰 주제를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들을 알려준다는 게 참 괜찮은 아이디어인 것 같습니다. 그럼 향후 남북 관계를 전망하신다면, 당장 2~3년 내에 남북 관계가 과연 변화될 수 있을까요?

우선 러·우 전쟁을 고려해야 하고, 다음으로는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리의 대응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건 등을 봐야 해요.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느 시점에는 북한도 부담이 되니까 '이제 중단하자.' 할 때가 온다고 봐요. 그러면 다시 돌아설 가능성도 있고요. 그리고 국제 정세와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서 만약 어떠한 계기가 없다면 그냥 지금처럼 갈 것 같아요.

그리고 언론보도에 나온 것처럼 북한이 일본과 접촉하는 이유는 러·우 전쟁이 갑자기 끝나면 북한은 무기 수출이 막히잖아요. 그럼 출구를 찾아야 되니까 일본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해보려는 외교 전략이 숨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일본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항상 거론하거든요. 이 때문에 쉽게 풀리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죠. 외교라는 게 그런 걸 풀어내는 기술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북한의 입장에서는 그게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만 활용할 수 있는 카드가 될 수도 있겠네요. 이제 마무리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독자들에게 개인적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시거나, 통일과 관련해서 당부 말씀 있으실까요?

개인적으로는 저의 마지막 공직이라고 생각하고 정말 할 수 있는 것을 다하고 마지막을 멋있게 장식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고요. 국민들께는 통일은 갑자기 찾아올 수 있으니까 우리가 차근차근 준비해서 대처를 잘 해야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자기가 맡은 부분에서 통일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각자 생각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네. 좋은 말씀 해주시고 귀중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통일교육원장님의 다양한 활동들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