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편

혜산

북한에서 온 협회 경제전문가자문단 위원들의 고향 소개 릴레이... 이번 호는 산의 은혜를 입은 곳, 양강도 혜산입니다. 언론을 통해서만 듣던 무미건조한 지역소개와는 달리 희로애락이 묻어나는 정겨운 북한의 그 시절 기억들... 웹진 독자들의 호응도 뜨거운 가운데... 연재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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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수림과 자연이 주는 선물

 흔히 북한을 떠올리면 민둥산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내가 살았던 양강도는 천연수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지역들이 많다. 양강도 삼지연시에는 우리나라의 명산 백두산이 있다. 일제 강점기의 무차별한 도벌의 상처를 벗어버리고 40년 후반기부터 자연 수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백두산, 백두산의 곳곳에는 무릎까지 오는 이끼가 자연의 싱그러움을 더해준다. 나무들의 울창하여 한여름인 6월 중순에도 쌓아놓았던 눈이 채 녹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백두산림 속이다. 백두산은 한민족의 얼이 담긴 조종의 산으로 지금도 남북한 주민 모두 명산으로 꼽고 있는 산이다. 백두산 소백수는 7월의 삼복더위 때에도 손을 넣으면 시릴 정도로 차다. 백두산 천지에는 '천지산천어'가 있고 백두산 주변의 삼지연시와 보천보, 백암군 등지에는 찬물을 좋아하는 산천어가 살기에 적합한 지리적 환경을 가지고 있어 곳곳의 계곡에서 산천어를 만날 수 있다. 특히 백암군에서 나는 산천어는 길이가 보통 35cm정도로 명태 크기와 비슷해 밀수품으로도 손꼽힌다.

 혜산시의 명물 백두산 들쭉은 양강도의 대부분 지역에 자연으로 분포되어 자생하고 있다. 백두산 들쭉은 고산지대에만 있는 귀한 산열매로 1983년 3월 북한의 천연기념물 제461호로 지정되었다. 백두산 들쭉으로는 단묵(젤리), 술, 사탕과 과자, 음료수 등에 향료로 사용한다. 나는 양강도에서 40년 넘게 살면서 자연의 혜택을 참 많이 받았다는 생각을 이따금 한다. 고향을 떠난 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산에는 갖가지 산열매와 자연산 버섯 그리고 백 수십 가지의 약초들이 부지런한 이의 손길을 반길 것이다. 여름철 운이 좋으면 사슴의 흔적인 세가닥, 네가닥 뿔도 주울 수 있다. 혜산시 노중리는 북한에서 순도가 가장 높은 금광이 있는 곳이어서 일명 '노다지'를 노리는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백두대간의 덕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혜산시의 대부분 야산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버섯채취도 인기다. 하루 50kg 이상의 버섯채취는 말 그대로 돈벌이가 좋은 대상이다. 혜산(惠山)이라는 한자 지명처럼 산의 은혜가 있는 곳이라는 이름마저도 정겹다. 임산물들이 많은 고장에서 자란 덕분에 나는 5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산행과 암벽타기를 좋아하면서 자연과 어울리기를 즐긴다. 지금쯤 고향의 야산들에서 참나물 채취가 한창일텐데, 자연에서 자란 참나물로 담근 김치에 국수 한사리 말아 먹으면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을 고향 지인들의 얼굴을 생각하니 서울에 있는 나의 얼굴에도 미소가 핀다.

백두밀영 수림 속(2019.6.19.)
_바닥에 눈이 다 녹지 않은 모습이 보임)
[출처 : NK투자개발]

이명수 폭포(2019.6.4.)
_북한 양강도 삼지연시 이명수동에 있는 폭포,
북한천연기념물 제345호
[출처 : NK투자개발]

혜산 위연동 아파트(2022.9.) [출처 : NK투자개발]

북부의 관문
혜산시의 변화와 마주하다

혜산시는 중국의 장백현과 마주하고 있는 국경도시이다. 지리적 특성으로 혜산 사람들은 외부 문물을 비교적 빠르게 습득해왔다. 국경이라는 조건으로 물 건너 중국의 문화와 물품들을 일찍이 접했으며 생활의 곳곳에 중국상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으로 혜산시 주민들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굶주림에 덜 시달렸고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혜산시는 연 평균 온도는 2.7도로 비교적 낮은 온도이며 연중 눈이 내리는 날은 보통 200여 일로 9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 눈이 내린다.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겨울 날씨로 압록강은 단단하게 얼어붙는데, 이러한 자연환경으로 북·중 국경을 통한 밀무역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 혜산시 주민들의 평균 경제력은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함경남도 함흥 이북의 대부분 도시에서는 중국산 상품의 도매를 위해 혜산시 농민시장으로 밀려든다.  혜산시에는 '양순백화점'이라는 중국인 운영의 백화점도 있어 다양한 품종의 수입 상품을 도매하기에 적합한 지역이라는 점에서 함흥시와 김책시, 단천시, 길주군 등 함경남도의 대부분 도시의 시장과 도매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지리적 환경으로 혜산시 주민들의 경제활동은 늘 플러스 행진을 기록한다. 나는 한국에 정착한 후부터 14년째 북한 시장 등 경제 관련 연구를 해오고 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고향의 변화는 내가 살았던 시기에 비하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 택시를 운영하고 방앗간을 가동하고 있고 자신이 개발한 제품에 대해 특허를 당당히 받는다는 사실들은 얼핏 듣기에는 부풀려서 말하는 것 같지만, 지금껏 내부 경제 동향을 전해오는 숙련된 조사원들이 실없이 해보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다른 지역의 조사원들을 통해서 확인하면서 또 한 번 놀란다. 또 이전에는 조선중앙텔레비전 한 채널만 시청하던 주민들이 개성채널과 만수대채널을 구매설치하여 자유롭게 볼 수 있다는 이야기, 스마트폰 두 개를 사용하는 주민들을 이따금 본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이 변했다"라고 하는 그들의 표현을 이해하게 된다.

혜산시내의 개인 상점들(2022.9.) [출처 : NK투자개발]

혜산시 가게의 경제상황

 10년 가까이 혜산시 내에 있는 시장의 십 수개의 매대를 정기적으로 조사해오면서 느끼는 것은 혜산시 주민들의 경제력이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점이다. 한 가게에서 월에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해당 가게가 먹고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을 뿐 아니라 인터뷰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저금'이라는 단어이다. 2010년대 초반에만 해도 하루에 번 돈을 그날로 소비하는 게 일반적이었던 것에 비하면, 이 상황도 '변화'라고 봐야 할 것이다. 양강도 주민들이 "코로나 시절 꼬꾸라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도 2010년대 중반부터 저금했던 돈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에 나도 공감한다. 고향에 있는 나의 친인척도 그렇게 버텼기 때문이고 다수의 조사원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북한에는 이런 말이 있다. "북쪽(양강도 함경북도를 의미함) 사람들의 생활력은 알아줘야 한다." 이 말처럼 혜산시 사람들의 생활력은 강인하다. 추운 지역에서 살아온 오랜 생활의 지혜로 모든 걸 꼼꼼하게 미리 준비하는 게 몸에 배어있어 양강도 사람들은 '부지런함' 그 자체이다. 혜산시 주민들의 경제력이 다른 지역보다 나은 또 다른 조건은 '국경'과 '백두산'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이다. 이런 여러 요인으로 혜산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비교적 안정적이고 높다고 평가된다.

  언제인가 북한 주민이 설명절에 가족들이 먹는 명절음식을 그대로 사진으로 받았던 적이 있다. 밥상 위에는 찰떡과 불고기 떡국을 비롯하여 다양한 명절 음식들이 있었고 바나나와 귤, 사과도 후식으로 한옆에 놓여 있어서 우리와 비슷한 명절 음식을 먹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드라마를 보면서 남방과일을 먹는 남조선사람들이 마냥 부러웠던 시기는 지났다"면서 "2000년대 남조선 샴푸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 물에 타서 사용했던 그때의 실수는 이젠 되풀이 하지 않을 정도로 상표가 사라진 한국상품을 사용하는 주민들도 많다"고 하는 말에 실려오는 행복감을 그 너머로도 느낄 수 있었고 고향 혜산시의 변화가 마냥 반갑기만 하다. 나의 고향 혜산시는 앞으로 얼마나 변할까? 또 어떻게 달라질까? 하는 궁금증으로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