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통일 독트린의
특징과 전망
통일연구원 정유석 부연구위원
배경 :
변화된 통일 환경에
조응하는
현실적인
통일 미래 비전
대한민국 헌법 제4조에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처럼 통일은 헌법적 책무이자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이다.
우리 정부의 공식적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발표된 지 30년이 경과하면서, 그간의 변화된 국제정세와 통일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특히 발표되었던 1994년은 냉전이 종식된 직후이자, 북한의 핵문제와 인권 문제가 크게 대두되지 않았던 시기이다. 이에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고 통일 인식의 변화 등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한 새로운 통일 담론과 비전 제시가 필요한 시점이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 94번 '국민과 국제사회가 함께하는 통일준비 추진'의 실천과제로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발전적 보완'을 추진하였다. 이번 통일 독트린은 이에 대한 결과물로 기존 통일방안의 대체라기 보단, 미래지향적으로 재해석하고 의미를 확장한 결과물이라고 하겠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는 담겨있지 않았던 통일의 구체적 추진 전략을 제시하여, 통일의 지향점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명확히 하였다는 데 특징이 있다.
한편 최근 심화된 국제정세의 복합위기 속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의 반통일노선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이자, '자유통일 대한민국'이라는 통일 비전을 우리 국민은 물론이고 북한 주민과 국제사회에 천명하였다는 의미를 가진다.
내용 :
다층적인 비전과 전략,
현실적인 실행방안 제시
「8·15 통일 독트린」은 3-3-7의 구조로 발표되었다. 3대 비전으로는 ①국민의 자유와 안전이 보장되는 행복한 나라, ②창의와 혁신으로 도약하는 강하고 풍요로운 나라, ③국제사회의 화합과 발전을 선도하며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나라가 제시되었다. 이를 위한 추진전략 세 가지는 ①자유통일을 추진할 자유의 가치관과 역량 배양, ②북한 주민들의 자유 통일에 대한 열망을 촉진, ③자유 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국제적 지지 확보이다. 비전은 '개인-국가-국제'로, 전략은 '대내-대북-대외'로 구분하여 입체적으로 통일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한편 통일 독트린에는 7개의 구체적인 추진방안(action plan)이 제시되었다. ①통일 프로그램 활성화, ②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다차원적 노력 전개, ③북한 주민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인도적 지원 추진, ④북한 주민의 '정보접근권' 확대, ⑤북한이탈주민의 역할을 통일역량에 반영, ⑥남북 당국 간 '대화협의체' 설치 제안, ⑦국제사회의 자유 통일 지지 견인이다.
의미와 특징 :
자유와 인권의 보편가치의 확장으로
조망한 통일
「8.15 통일 독트린」의 키워드는 '자유'이다.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자유'는 총 50번이나 언급되었다. 북녘 동포에게 '자유'가 도달할 때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완성된다면서, 국민이 주인인 자유 민주 통일 국가의 완성이 곧 '완전한 광복'의 실현임을 강조하였다. 자유의 가치로 통일을 조망하여, 북한 주민의 자유와 인권 확장이 통일 대한민국의 지향점임을 천명하였다.
먼저 실행 방안의 면면을 살펴보면,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한 향후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예상된다. 무작정 북한이 변화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에서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결국 통일 독트린은 통일과 안보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번 경축사에서는 북한을 '자유가 박탈된 동토의 왕국', '빈곤과 기아로 고통받는 북녘땅'이라고 지칭하면서 북한 정권을 규탄하고 북한 주민에 대한 애환이 표현되었다.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더 이상은 북한 주민의 고통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며, 인권 개선을 위하여 '정보 접근권' 확대 등의 다차원적인 노력을 경주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주민에게 왜곡된 정보가 아닌 진정한 자유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통일 대한민국이 북한 주민들을 포용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북한 미래 세대가 국제사회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나아가 새로운 통일 조건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통일 대한민국을 위한 국제적 연대와 협력이 더욱 강조되었다는 점이다. 통일은 자유와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확장하는 과업이자, 세계평화와 인류의 번영에 직결되는 사안으로 국제적 연대와 협력의 중요성이 재확인되었다. 높아진 우리의 국력과 국격을 토대로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기여를 통해 통일 대한민국의 지지를 공고히 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동맹 및 우방국들과의 자유 연대를 공고히 하면서, 통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전망 :
통일 대한민국의 미래비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발표된 이후 역대 모든 정부는 이를 계승하면서 각 정부의 국정과제가 담긴 통일 정책을 제시하였다. 남북 관계와 정부 정책에 맞춰 대북 포용과 압박이 반복되었지만, 북한의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목표 달성에는 모두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의 통일 인식이 저하되고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분단은 대한민국의 발전과 도약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통일 문제는 우리 사회에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가 되고 말았다.
물론 가장 큰 일차적 책임은 북한 정권의 무모한 도발로 인한 국제사회와의 대립에 있겠지만, 우리의 통일 담론과 비전에 대한 현실성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고민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8.15 통일 독트린」은 기존의 '민족공통체통일방안'의 근간을 유지하면서도 변화된 대내외적 통일 환경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또한 통일이라는 목표와 지향점을 확실히하고 이를 위한 현실적인 추진방안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도 기존의 통일 논의와 차별성을 가진다. 무엇보다도 남북의 미래 세대들에게 통일의 미래를 함께 논의할 역할과 공간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향후 통일 대한민국의 청사진으로 충분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8·15 독트린' 체계도 ⓒ통일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
선포와 헌법 개정 논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성기영 수석연구위원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기존의 '통일 지향 특수관계'가 아닌 '2개의 국가'라고 선언한 지 1년이 가까워오면서 북한의 구체적 행동이 속속 가시화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10월 15일,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교류의 통로이자 남북 화해협력의 상징으로 자리잡아왔던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 일부 구간을 폭파했다. 김정은의 '2개 국가' 선언 이후 지난 6개월여 동안 북한은 남북 간 육로 단절을 위해 장벽 설치, 지뢰 매설, 철로 및 가로등 제거 작업 등을 진행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기능을 상실한 남북한 연결 도로를 폭파 방식으로 철거함으로써 북한은 자신들이 주장해온 '적대적 교전국 관계'를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대내외에 알리고자 하는 노림수를 드러내 보인 것이다.
북한의 '2개 국가'
선언 배경은
북한이 기존의 남북관계를 전면 부인하고 '교전중인 적대국 관계'를 내세움으로써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외적 의도와 대내적 계산법을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외전략 분야에서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진영과 러시아의 대치가 지속되는 국면을 활용해 대러 무기 제공, 고위급 교류를 거쳐 동맹에 준하는 '신조약'을 체결했다. 코로나 국경봉쇄 해제 이후에는 중국과의 경제교류를 재개하고 대만 문제 등 미중관계 현안에서 중국 측 입장을 공개 지지함으로써 자신들이 주장해온 '신냉전' 구도에 적극적으로 편승했다. 한편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중동지역 분쟁 지속 등이 미국의 리더십 약화에 따른 것으로 보고 대외전략의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의 군사적 보장과 중국의 경제지원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위상 확보가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판단 아래 김정일 시대처럼 더 이상 남북관계에 의존하는 대남전략을 구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것이다. 여기에는 김일성 시대부터 유지해온 '우리민족끼리' 이데올로기를 포기하더라도 자립적 경제 운용을 강조하는 것이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에 유리하다는 대내적 계산도 깔려있다. 특히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여 남한으로부터 유입되는 드라마, 음악 등 한류 컨텐츠를 단속, 처벌해야할 정도로 북한 주민들의 남한에 대한 동경이 위험수위에 육박하고 있다는 현실적 판단도 '2개 국가론' 주장의 근거를 형성하고 있다. '하나의 민족'이라는 선대의 통일노선을 유지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정치적 효과는 추상적인 데 비해, 대남노선에서 '민족' 개념을 제거하고 '적대성'을 강조함으로써 노릴 수 있는 체제 단속 효과는 구체적이라는 점이다. 김정은에게 대외전략과 대남전략의 최종 목적은 두말할 필요 없이 장기적이고 안정적 집권을 위한 체제의 내구성을 강화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헌법 개정 보도 없이
접경지역 '폭파쇼'
올해 초 북한이 선언한 '2개 국가론'은 지난 10월 7~8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 개정을 통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되었었다. 김정은이 지난 1월 최고인민회의 연설을 통해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북반부',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 등 표현을 '다음번' 최고인민회의에서 심의해 삭제해야 한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북한 선전매체들은 최고인민회의 결과를 보도하면서 '통일' 표현 삭제나 영토 조항 신설 등을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김정은도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하는 대신 김정은국방종합대학 창립 60주년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면서 대남 비난 메시지를 내는 데 그쳤다.
오히려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개최 이후 돌연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한국이 평양 상공에 무인기를 침투시켰다고 주장하며 군사적 긴장을 끌어올렸다. 김여정 담화를 통해 '재발시 선전포고 간주'를 위협했고, 국경선 포병연대에는 작전예비지시를 하달하는 등 일련의 긴장 고조 시도 후에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 폭파작업에 나선 것이다. 최고인민회의에서 이뤄졌을 헌법 내 영토 조항 신설 등 제도적 조치를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방식이 아닌 남북한 접경지역의 군사적 충돌 위험을 과시해 '교전중인 적대국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실력행사 방식을 택한 것이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협상과 미국 대통령 선거 등 자신들의 대외전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들을 고려하면서 적당한 시기에 헌법 개정 내용을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노동당 규약 전문의 조국통일 언급과 제4조 당원의 조국통일 투쟁 의무 등 '2개 국가' 주장에 부합하지 않는 대목들도 손보고자 할 것이다. 한편, 경의선과 동해선 등 육상 연결도로 폭파에 이어 서해상에서 새로운 국경선을 주장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특히 남북 간 실질적 해상 경계선 역할을 해온 북방한계선(NLL)을 무시한 채 자신들이 주장하는 '해상국경선'을 들고나오게 되면 서해상 무력 충돌 가능성도 고조될 것이다. 김정은은 이미 지난 2월 NLL을 '유령선'이라고 주장하며 서해 연평도와 백령도 북쪽에 별도의 '해상국경선'을 언급한 바 있다.
통일 준비 노력 지속해야
남북관계의 본질을 훼손하고 민족사적 염원인 통일을 외면하는 북한의 행태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 내부에 존재하는 함정도 무시할 수는 없다. 북한의 '2개 국가' 주장과 통일 지우기가 김일성 시대 이래 유지되어 온 '우리민족끼리' 논리와 '조선은 하나다'라는 이데올로기를 전면 부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주변에 포진한 지배 엘리트들은 의구심을 품을 것이고 민심은 동요할 것이다. 북한이 남북 간 적대관계를 헌법 조항이 아니라 '폭파쇼'로 보여주려고 하는 것 또한 급작스런 통일노선 전환에 따른 내부의 의구심을 의식한 충격요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의 반통일 질주가 계속될수록 분단 이후 두 세대가 넘도록 유지되어 온 민족 동질성을 재확인하고 언젠가 다가올 통일을 준비하는 노력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통일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남북 간 평화공존을 성취할 수 있다는 단순화된 정치논리에 휩싸이지 않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