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0' 시대의
남북관계 전망
아산정책연구원 차두현 수석연구위원
2025년 1월 20일(미국 현지시각)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이 예고됨에 따라 남북관계와 미북관계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관계는 한 마디로 '흐림'이며, 미북관계의 경우 구름이 낀 가운데 '매우 흐림'과 '맑음'의 두 가지 가능성이 모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북정책 전망 때문이다.
트럼프 2기 대북정책 :
대화와 갈등 증폭 가능성의 혼재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12월 12일자 『Time』지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과 관련된 질문을 받자 북한의 개입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관건의 하나라는 취지로 "...난 김정은을 안다. 난 김정은과 매우 잘 지낸다. 난 아마 그가 제대로 상대해본 유일한 사람이다."고 말했는데, 이는 그의 기존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7월의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직 수락 연설에서 “핵을 많이 가진 상대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고 언급했고, 선거 유세 중에는 "김정은은 매우 강인하고 영리하다. 그러나 그는 나를 좋아했고, 나는 그와 매우 잘 지냈으며, 우리는 안전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북한을 미국에 대한 핵위협을 제거할 상대로서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에서도 활용 가능한 변수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북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은 충분하고 이미 물밑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대화나 접촉이 어떠한 타결로 연결되기에는, 특히 조기에 또 한 번의 미북 정상회담이 되기에는 여전히 많은 제한요인이 존재한다. 가장 큰 장애는 트럼프 당선인 자체도 가지고 있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하 김정은)에 대한 불신이다. 외형적으로는 김정은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지만, 대부분 이러한 사례는 언론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바이든 행정부 대북정책의 실패를 부각하기 위한 경우가 많았다. 트럼프 당선인은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에서의 ‘노딜’이 있었을 당시부터 김정은이 충분히 신뢰하기는 힘든 인물이라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국내적으로 인기가 없는 ‘배드 딜(bad deal)’을 선택하기에는 어렵다. 더욱이 『거래의 기술(Art of the Deal)』 등 그의 기존의 저서에서 나타난 그의 협상 기술은 상대방의 우위를 허용하지 않는 데에 있다. 반면, 김정은은 "미국과 함께 협상주로의 갈 수 있는 곳까지 다 가보았으며..."란 표현을 통해 미북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북한의 몸값은 과거보다 훨씬 높을 것임을 암시했다. 이런 거래 조건에 트럼프 당선인이 선뜻 동의하리라고 보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정리 등에 비해 미국에게는 북한 문제의 우선순위가 여전히 낮다는 것 역시 미북 직거래의 장애요인이다.
오히려 트럼프 당선인-김정은 간 ‘브로맨스’의 재현 못지않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2017년에 발생했던 '화염과 분노(Fire & Fury)' 국면의 도래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중 전략경쟁의 관점에서 북한을 바라보고 있고, 만일 북한이 계속 핵능력을 레버리지로 활용하려 할 경우 바이든 행정부보다 훨씬 과감한 압박 전략을 펼칠 수도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하에서의 미북 관계가 ‘매우 흐림’의 가능성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남북관계 :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
규정 하의 단절 심화
이에 비해 남북관계는 2025년에도 2024년과 같은 대립과 단절이 지속되거나 오히려 더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2023년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8기 9차 전원회의를 통해 남북관계가 더는 통일을 지향하는 동족간 관계가 아니라 '적대적 두 국가관계', '전쟁 중의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했고, 2024년에 들어서도 '유사시 한국 영토의 점령·평정·수복'방침(1월), 남북 '해상국경선'수호 발언(2월) 등을 쏟아내었고, 10월에는 경의선/동해선 도로·철도 연결구간을 폭파하는 등 물리적·심리적 단절을 가속화했다. 더욱이,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관계'의 규정 배경 중의 하나로 한국 내에서 민주세력(진보)이든 보수든 모두 북한을 흡수하려 했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대남 적대감이 우리 정부의 변화에 따라 바뀔 것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오히려 '적대적 두 국가관계'규정은 남북관계의 구조를 반영한 김정은 나름의 고민의 산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에 대한 국력 우위의 자신감이 있었고, 이는 북한의 공세적 통일정책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남북 국력상의 역전이 이루어진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 이후에도 북한은 명목상 통일 구호를 유지했지만, 자신들의 정권 및 체제 보전에 중점을 둔 정책으로 선회했고('고려민주연방제' 통일 방안,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 안 등), 북한은 우리와의 압도적 국력 격차와 한국의 구심력을 항상 우려해왔다. 더욱이 우리의 대북 '관여정책(engagement policy)'이 결국 북한 정권 및 체제의 변화를 유도하는 침투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역시 북한이 경계해온 사항이다. 김정은은 철저한 정보통제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문화와 자유 민주주의적 사조가 북한 사회 내에 흘러들어오는 것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했고, 이를 방지할 근본적 방안은 '적대적 두 국가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주민들에 대한 강제적 사상통제와 남북 간의 단절 밖에는 없다고 계산했을 가능성이 크다.
'적대적 두 국가관계'규정은 김정은으로서는 선대(先代)로부터 지속되어 온 민족해방·계급해방(통일) 그리고 '민족공조'론을 부정하는 자기모순이고, 혈연에 의해 계승된 '수령'의 존재 의미 자체를 상실케 할 수 있는 조치이다. 그럼에도 김정은이 이러한 모험을 할 수밖에 없는 선택의 저변에는 남북관계에서 교류와 협력이 강조되면 될수록 북한 정권/체제의 존립이 흔들린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통미봉남
(通美封南)하
대미 관계개선
시도 :
한반도 안보환경의
불투명성
남북한 관계에서의 국력 격차를 극복하고 '수령'제를 중심으로 한 정권 및 체제의 존립을 보장하기 위해서 김정은은, (1)핵무기를 바탕으로 남북한 관계에서 전략적 우위를 유지하고, (2)대미 직거래를 통해 자신들의 독자 생존기반을 마련하려 부심해왔다. 북한이 남북 교류협력이 아닌, 독자 생존기반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세계 무역체제와 금융시장에의 접근이 필수적이고, 미국은 바로 그 정문(gate) 열쇠를 쥐고 있는 존재이다. 김정은이 현재의 국제정세를 ‘新냉전’으로 간주하면서도 미국과의 직거래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고, 북러 밀착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러시아와 전통적 우방인 중국마저도 미국의 대체재가 되기는 어렵다. 김정은은 '적대적 두 국가관계'규정과 트럼프 2기 정부의 출범이 일종의 친화력을 지닐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이를 고려할 때, 2025년 중 남북한 관계의 기류는 여전히 냉랭하지만, 미북 관계 측면에서는 부분적 훈풍이 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반대의 경우 한반도의 정세는 남북한과 미북이 모두 꽁꽁 얼어붙고 긴장은 더욱 고조되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2025년, 북한의 선택지와
향후 시나리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최용환 책임연구위원
대외 부문 :
신냉전 구조 활용 전략
대외 부문 :
신냉전 구조 활용 전략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은 이른바 '신냉전 구조 활용 전략'에 집중해왔다. '신냉전 구조 활용 전략'은 미중 전략경쟁과 러우전쟁으로 미중‧미러 관계가 악화되는 상황을 활용하여 중북‧러북 관계를 강화하여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력을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ICBM 시험발사 등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의 명백한 위반임에도,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추가 제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러우 전쟁 이후 러시아와 북한은 급속도로 관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2024년 10월에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까지 이루어졌다.
탈냉전기 북한은 국제질서가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라고 인식하고, 대미관계를 대외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었다. 따라서 북한은 정치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더라도 자신들의 협상력이 높아졌다고 판단되면, 협상국면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곤 하였다. 하지만 최근 북한은 현 국제정세를 '신냉전' 혹은 '다극체제'라고 인식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북한은 냉전적 갈등구조가 자신들에게 불리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의 협상을 서두르기보다는 현 정세에서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을 최대화하는데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 북한 외교의 초점이 중국, 러시아 등으로 분산된 것이다. 현재 북한 대외전략의 핵심은 '안보는 러시아,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이른바 '안러경중'이라고 할 수 있다.
2025년에도 이와 같은 북한의 대외전략 기조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2기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북한과 미국 간 협상 재개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이 현 대외전략 기조를 수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2기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미중 전략경쟁은 지속될 것이며, 러우 전쟁이 종료된다고 하더라도 러시아와 서방 간 관계가 바로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전쟁이 진행중인 시기와 전쟁 이후 시기의 러북관계가 똑같을 수는 없기 때문에 러우전쟁 종결 이후 러북관계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북협상은 러우 전쟁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계될 수밖에 없으며, 2018-19년 국면보다 훨씬 어려운 협상이 될 것이다.
대남 부문 :
적대적 두 국가 기조 유지
남북관계에 있어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 규정의 틀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헌법 개정을 비롯한 대남정책 변화를 지시하였기 때문에 이 기조를 바꾸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북한의 대남 정책 기조를 고려한다면 2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북대화가 추진될 경우 한국을 배제한 양국 간 직접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을 배제한 미북협상 그 자체가 한국 정부에게는 정치적 타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북한은 '신냉전 구조 활용 전략'과 '적대적 두 국가' 정책이 겹쳐지면 한반도가 냉전적 갈등의 최전선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와 그 주변에 한미일 대 중러북의 냉전적 갈등구조가 고착화된다면 북한문제의 해결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한이 이러한 갈등구조를 적극 활용하려는 전략을 고수한다면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긴장 국면 역시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 냉전적 갈등 구조가 고착화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수 있는지 여부가 한국 정부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한반도 위기관리가 중요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북한의 대외‧대남 전략을 극복할 수 있는 대응전략 마련이 긴요해 보인다.
대내 부문 :
정비‧보강 전략
2025년 북한은 대내적으로 경제부문의 성과가 제한적인 가운데 이른바 정비‧보강 전략에 치중하면서, 김정일 유일영도체계 강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2025년 북한 대내 부문에서 가장 큰 과제는 2026년 개최 예정인 9차 당대회 준비가 될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제시했던 각종 계획들의 성과 도출이 2025년의 핵심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8차 당대회에서 제시했던 과제들 가운데 북한 지도부가 가시적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군사영역에 집중되어 있다. 즉, 2025년 북한은 8차 당대회 이후 제시했던 군사 목표 완성을 위한 막바지 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측면에서 북한은 지방경제 발전과 기계‧화학‧금속 등 전쟁 특수를 기대할 수 있는 부문 및 건설산업 등을 중심으로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성과 창출에 주력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및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경제충격을 고려할 때, 북한 경제가 자생적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워 보인다. 대외경제 측면에서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돌파구 모색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결된다면 전후 복구에 적극 참여할 것이며, 식량‧에너지 등을 중심으로 하는 러북협력도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2024년 시작된 대외 관광부문에서도 러시아와 협력이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북한과 러시아 간 경제적 상호의존도, 관광 등 영역에서 러시아의 잠재력 등을 고려할 때, 북한 대외경제에서 러시아가 중국을 대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경제 성장의 획기적 반전 계기를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은 중러가 주도하는 국제레짐 참여 등을 통한 돌파구 모색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코로나19 봉쇄 해제 이후 동서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글로벌 사우스에 대해 북한이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요약하면 2025년 북한의 대내외 정책은 기존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가운데, 2기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에 따른 국제정세 변화를 고려하여 미북협상 추진 등을 타진하는 정중동(靜中動)의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