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일레븐, 남북교류
아이디어를 플레이하다
2024년 제2차 북한 바로알기
아카데미 수료식 현장스케치
안녕하세요!
이번 웹진 이음 1.2월호에 일일기자로 활동하게 된 동국대학교 북한학과에 재학 중인 오경진입니다. 북한 실태를 정확하게 알고 균형 잡힌 관점을 얻고자 개최된 2024년 제2차 ‘북한 바로알기 아카데미’의 마지막날을 특별히 참석해 보았는데요, 이번엔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으로 수강생들이 조별 PT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여러분께 그 생생한 현장을 공개합니다!
오경진 웹진 '이음' 일일기자
시선 하나.
청년이 직접 구상하는 '남북교류협력' 사업
11월 21일 목요일 저녁 시간, 대한상공회의소에 참가자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손엔 도시락, 다른 손엔 교재와 발표자료를 들고 자리에 앉은 참가자들의 얼굴에서 긴장과 비장함이 묻어났습니다. 각 조는 그동안 '제재 준수와 남북 공동 인프라 프로젝트: 이점과 도전과제'라는 공모 주제에 맞게 분야별 프로젝트를 준비했는데요, 11개 팀(총 수료자 37명)이 발표에 나섰습니다.
참가자들은 공공인프라, 보건의료, 기후위기, 인도지원, 그리고 기타 주제로 나뉘어 발표했습니다. 각 발표의 세부주제는 남북 공유 환경자원과 공중보건, 의료시스템에 기반한 아이디어를 제시한 팀이 많았는데요, 대북제재 준수 방안이 주요한 평가 요소인 점도 한몫했습니다. 저 역시도 전에 임진강 등 남북 접경지역의 수해와 수질 문제를 연구하며 그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어 비록 진부하다 할지라도 남북관계가 완화된다면 1순위로 진행될 협력사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강생들이 준비한 자료가 현재 주변국 정세와 남북관계, 북한 내부 사정(예컨대 북한이 인도적 지원보다는 개발협력사업을 원한다는 것 등)을 모두 고려했음에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복병은 '사업의 실현 가능성'이었는데요, 심사위원들의 지적이 집중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제재 면제 승인을 받은 의료품들이 북한의 국경봉쇄 등으로 장기간 방치되고 있다는 보도에 충격받은 적이 있는데, 현재의 남북관계에서는 더욱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시선 둘. 열정, 여기 다 모였다!
최우수상의 영예는 '한반도 콩 프로젝트_식량난 해결을 위한 공동 콩 재배 개발 방안'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공공인프라A팀(부진영, 이동현, 이채윤, 임다원)에게 돌아갔습니다. 평균 월동률이 94%에 달하고 북한과 같은 석회질성 토양과 척박한 환경에 강한 데다, 질소비료 역할까지 하는 풋거름작물 '헤어리베치'를 활용해 농업 교류를 활성화하고, 이를 간편식 제품으로 출시, 최전방 지역 특산물로 지정해 축제를 개최하는 마케팅 방안까지 제안했습니다. 사업을 통한 기대점으로 남한의 높은 콩 수요를 충족해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상호호혜적인 남북협력 프로젝트를 실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는데요. 발표자였던 이채윤 수강생은 시간상 설명하지 못 하는 부분을 얘기하고자 발표자료와 대본에 일부러 허점을 만들어, 예상했던 질문들이 나오도록 유도했다고 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입선을 수상한 보건의료B팀(이재영, 임세빈, 차영우)은 북한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화장실을 건설하고 위생교육을 실시한다는 '화장실 사업'을 제안했는데요, 주제 선정의 배경을 묻자 주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다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이 던진 질문이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임세빈 수강생은 오히려 "어려워서 좋았다"고 씩씩하게 답했습니다. 실현 가능성을 짚어주어 진지하게 임하게 되었고, 다른 팀의 질의응답도 보며 배운 게 많았다고 하였네요.
1차 아카데미부터 수강한 강현 학생은 "1차 때보다 실제 경험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면서 "(남북교류협력의) 불씨가 살아있어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심사위원과 열띤 논의를 벌인 안젤리카 수강생은 "폴란드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북한을 먼저 접했는데 한국어를 배우면서 연결되는 지점이 많았다", "훌륭한 강사들로부터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소회를 남겼습니다.
더불어 이재영 수강생은 "탈북민 대학생들과도 함께 하면 대박"일 것 같다고 말했는데요, 저 또한 남북청년이 함께하는 통일준비 대중교육 단체 '통일리더십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어 깊이 공감했습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북한 출신 청년들이 함께한다면 비교적 쉽게 실현 가능성을 가늠하고, 주민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업을 구상할 수 있고, 북한 청년들에게도 출신 지역에 맞는 개발협력 사업을 그려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이외에도 '대북제재뿐만 아니라 교류협력에 대한 강의를 듣고 직접 프로젝트를 할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다', '통일 후 북한의 비즈니스 가능성을 생각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참가자들의 후기가 있었습니다. 단순히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긍정적인 평가였기에 다음 아카데미는 저도 꼭 수강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선 셋. '페이커의 실패론'과 남북교류협력
"페이커가 개인적으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라 ‘성공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더라고요. 남북 관련 연구, 교류협력이 계속 실패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씀하신 것들도 그동안 여러 번 제안되었고, 실패한 것들이거든요. 그러나 오늘의 발표가 여러분 인생의 성공으로 가는 하나의 실패라고 생각하고, 매서운 질문에 마음 상한 친구들 있으면 풀었으면 좋겠고, 여러분의 아이디어를 저도 연구에 많이 써먹도록 하겠습니다!"
뜬금없이 프로게이머 '페이커'로 시작된 조성은 연구원의 심사 소감은 감동적으로 끝났습니다. 청문회 현장을 방불케 한 심사위원들의 날카로운 질문들은 숱한 실패를 겪어온 '선배'들이 건넨 응원의 쓴소리였음을 고백한 건데요, 심사위원들은 쉬는 시간에도 참가자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이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선후배들의 만남 같아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북한학 선배들에게 들은 자조 섞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혈기 넘치는 신입생 때는 분단과 통일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차가운 현실에 무력감만 커진다구요. 똑같이 무력감을 느꼈던 저지만 오늘 참가자들을 보면서 오랜만에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느꼈습니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라는 유행가의 한 구절처럼 북한이 국제사회와 한국에 손내밀고 나아오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