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에도 마케팅이 있을까?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최지영
마케팅(marketing)이란 말 그대로 시장(market)을 관리하는 과정을 말한다. 시장에 대한 관리가 왜 필요할까? 시장 경제에서는 일반적으로 교환을 통해 이윤이 창출되는데, 이를 확대하기 위해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이와 같이, 마케팅에서 중요한 개념은 교환(exchange)과 시장(market)이라 할 수 있으며, 그 교환은 주로 소비자와 공급자 간 이루어진다. 소비자와 공급자 간 재화의 '교환'이 시장이 아닌 계획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마케팅에 대한 동기가 당연히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 경제에서도 경제개혁과 함께 재화와 서비스의 판매를 확대하려는 노력이 증가한 바 있으며, 이는 대표적인 마케팅 수단인 '상품광고'의 변화를 통해 드러났다. 그렇다면, 1990년대 중반 이후 '아래로부터 시장'이 확산된 북한은 어떨까? 북한의 마케팅 활동을 계획이 지배적인 공식 부문과 시장이 지배적인 비공식 부문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자.
북한의 공식 부문 마케팅 수준은 북한당국의 검열·관리를 거쳐 이루어지는 '광고물(advertisements)'들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광고(advertising)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상품 정보를 제공하고, 판매를 설득하는 메시지를 대중매체를 통해 '비대인적(non-personal)'인 형태로 내보내는 활동이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광고는 마케팅의 일환으로 계획 경제의 기본적인 작동원리와는 잘 부합하지 않는다. 계획 경제는 기본적으로 상품에 대한 수요량을 사전적으로 계산하고, 이를 충족하기 위해 원자재, 자본재를 투입하여 적정 수준의 공급량을 생산한다. 만약, 특정 상품에 대한 마케팅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서, 그 상품에 대한 수요량이 계획한 수준을 넘게 되면, 경제 전체의 부족이 확대된다. 이에 따라, 현실 사회주의 경제에서 광고되는 상품들은 수요 대비 공급이 비교적 충분한 것들이었다. 때로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목적에서 광고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1970년대 소련에서는 축산물 공급이 수요에 따라가지 못하면서, 수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이 시행되었고 원양어업이 발전하면서 태평양 어획량이 크게 증가하였다. 그러나, 소련의 소비자들이 냉동상태로 공급되거나 생소한 수산물들을 별로 선호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수요에 비해 '충분한' 상품들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종의 수산물 마케팅이 이루어졌는데, 목요일을 '물고기의 날'로 지정하거나, 수산물의 영양가치를 홍보하는 광고를 확대하는 방식이 이용되었다.
그러나, 광고 제작 비용이 상품 가격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상품광고가 확대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구매력 개선이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도 상품광고에 대한 담론과 형식, 관행이 변화하게 된 것은 실질소득의 성장이었다.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소비재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가전제품과 같이 비교적 고가의 소비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현실 사회주의 상품광고도 점진적인 변화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상 당국의 검열·관리에서 자유로운 상품 광고가 제작, 전파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이루어진 상품 광고들은 당의 '이데올로기적 지도(guidance)'를 충실히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상품광고는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이루어졌다. 텔레비전, 냉장고와 같이 비교적 고가의 내구재에 대한 광고 비중이 높았던 것은 소득수준이 향상된 영향도 있었지만, 해당 국가의 경제적 발전과 성취를 선전하기 위한 당국의 정책적 의도도 동반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대중매체를 이용한 상품광고에서 당국의 정책적 의도가 두드러지는 것은 북한의 상품광고에서도 관찰된다. 북한사전은 자본주의 상품광고는 "근로대중의 생활과 관계없는 돈벌이 수단"이라고 평가절하한 반면, 사회주의 상품광고에 대해서는 "새로 나온 상품들을 주민들과 기관, 기업소들에게 빨리 사용할 수 있도록 제 때에 알려주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해설하고 있다.1) 북한의 사전적 기준에서 조선중앙TV의 프로그램 일종인 '소개편집물'과 '과학영화'는 '방송광고'에 해당하며, 여기에는 북한당국의 정책적 관심사가 높은 상품들이 자주 노출된다.
1) 천리마사, 『조선학술용어대사전: 거울 2.0』(평양: 국가국어사정위원회, 2023)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매체에서 자주 등장했던 '은하수'와 '봄향기' 화장품은 북한 소비자의 선호 다양화, 구매력 증가도 설명하지만, 외국 제품과 견줄 수 있는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체제 선전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 당의 교육정책, 보건정책을 선전, 교양하는 목적일 경우, 상품 노출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보도, 드라마, 버스정류장 광고판에서 자주 노출되는 '소나무 가방'은 당과 최고지도자의 애민정책, 교육정책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며, 의약품·건강보조식품에 대한 프로그램은 감염 예방이나 건강 증진을 위한 교양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유의할 것은 북한의 사전적 기준에서는 '소개편집물'이나 '과학영화'와 같은 프로그램들이 '방송광고'로 분류되지만, 이것은 상업광고의 형식으로 보기는 어렵다. 상업광고와 달리 북한의 방송광고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10~15분 정도 길게 제작되며, 상품에 대한 정보 전달 이외에 생산자에 대한 소개나 당, 최고지도자에 대한 정치적 선전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식 부문의 북한의 상품광고가 우리의 상업광고와 크게 다른 것은 북한당국의 검열과 관리를 거치기 때문이다. 비공식 부문, 시장에서도 간판, 팻말, 포스터와 같은 형식의 비대면(non-personal) 광고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화가 진전되면서 상품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생산자, 판매자의 노력은 증진되고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관찰되는 식료가공품 포장지의 개선은 생산자의 마케팅 노력 일환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하는 것은 생산자의 자율성을 부분적으로 확대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도입과 같은 제도 개혁이다. 또한, 북한이탈주민들의 경험에 따르면, 비교적 고가의 소비재인 휴대전화, 노트북, 텔레비전 등에 대해서는 상점 내에서 '동영상 광고'도 이루어지는 것으로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시장에는 아직 '데꼬', '얼도'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중개자를 활용한 마케팅, 즉 인적판매가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다. 시장활동은 그 특성상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판매상품의 종류와 가격에 대한 정보를 공공연하게 노출하기 어렵다. 또한, 구매자와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상품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노출할 동기가 적기도 하다.
문화대혁명 당시 광고를 '자본주의 독약'이라고 비난했던 중국은 개혁·개방과 함께 광고를 허용하였고, 세계시장으로의 편입은 다시 소득의 향상과 광고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총인구가 2,500만 명 남짓으로 자국 소비시장의 규모가 적은 북한에 있어, 세계시장을 향한 마케팅 수단으로서 광고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 집권 초기 식료가공품 분야에서 '포장' 개선이 관찰되고, 제품의 전국적 유통망이 일부 형성되었던 변화는 광고가 생산, 판매를 촉진한 바람직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긍정적 변화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라는 제도 개혁의 결과로 해석되는바, 이는 앞으로 북한 내 마케팅 발전과 경제성장에 유의미한 시사점을 준다.
북한의 상품광고를 엿보다
동아대학교 교수 강동완
광고는 '자본주의의 꽃'이다. 어쩌면 모든 상품은 광고로부터 시작해 광고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비자의 취향과 사회적 정서를 반영한 광고는 우리 일상생활 어디서나 접할 수 있다. 인쇄광고, TV광고, 전광판은 물론 온라인광고까지 다양한 방식과 매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특히, 상품광고는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요인이다. 그럼 북한에서도 과연 상품광고를 할까?
사회주의국가의 광고는 주로 당,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지도에 초점을 두고 정치선전에 치중한다.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조선중앙TV를 통해 일용품생산 공장에 대한 선전과 상품의 우수성을 강조하지만, 최고지도자의 현지지도 내용을 우선적으로 다루는 정치선전에 가깝다. 그런데 최근 북한에서 장마당을 통한 상품 유통과 소비가 확산하고, 기관 및 기업소의 자체 상품생산이 이루어지면서 초보적 수준의 상품광고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상품 포장지의 인쇄광고가 눈에 띈다.
북한 상품포장재 쓰레기를
통해서 본 광고
남북교역과 인적 왕래가 중단된 현 상황에서 북한상품을 직접 입수해 살펴보는 건 한계가 있다. 완제품의 품질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만, 포장재를 통해 제품의 특성과 광고적 요인을 살펴볼 수 있다. 필자는 서해안과 동해안 접경지역 해안가에서 북한 쓰레기를 수거해 북한연구에 활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거한 포장재는 약 5,000여 점으로 북한에서 생산하는 거의 모든 제품의 포장재를 확보했다. 북한상품 포장재에는 공장, 주원료, 생산날짜가 의무적으로 표기되는데 주목할 점은 자본주의 상품과 똑같이 제품의 효능과 특성을 강조하는 인쇄광고가 포함된다는 점이다.
북한은 김정은 시대에 들어 '인민생활향상'을 정치적 구호로 제시하며, 경공업 중심의 생필품 생산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상품포장재에 산업미술을 적용한 디자인과 광고문구가 눈에 띄게 늘었다. 김정은이 상표 자체를 "매우 세련된 기교를 가진 말없는 판매원"이라 언급할 만큼 상표와 브랜드, 디자인은 중요해졌다.
식료품 상품의 인쇄광고:
특정 기능과 효능을 강조
북한 식음료 포장재에는 주로 해당 상품의 맛과 주원료 그리고 효능을 선전하는 광고문구가 들어간다. 무엇보다 식료품의 특성상 몸에 이로운 주원료를 사용하거나, 방부제 등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송도원종합식료공장>의 '옥쌀기름튀기강정' 제품에는 '무방부제, 무색소, 무감미제'를 표기하며 몸에 해로운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또한 <련덕식료가공소>에서 생산한 '매운국수맛 즉석국수' 제품에는 '쫄깃쫄깃한 느낌과 얼벌벌한 맛이 있습니다'라는 문구는 물론 '맛있게, 편리하게, 빠르게'라는 제품의 특성을 선전하는 내용도 있다. 이는 한국의 라면이 즉석식품의 빠르고 간편하게 조리한다는 점과 동일한 내용이다. 다만, '얼벌벌한 맛'이라는 남북한 언어의 차이는 존재한다.
효능을 검증할 수 없는
허위, 과장광고
"컴퓨터를 사용한 후 요구르트
마시면 방사선 차단효과?"
북한 식료품류 일부 제품 포장지에는 효능을 강조하는 문구가 표기된다. 특히, <오일건강음료종합공장>, <락연식료가공공장>,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 등 평양에 소재한 북한의 대표공장 제품에는 <식품안전관리체계인증을 받았습니다>라는 표기와 함께 '국규 22000(ISO22000)'라는 공식 인증을 강조한다. 이는 식료품이라는 제품의 특성상 위생과 안전성을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공식적인 인증 조건과 기준을 파악하기 어렵기에 이러한 인증이 어느 정도의 제품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북한 식료품 포장재에 표기된 일부 제품의 경우 허위, 과장광고로 볼 수 있는 부분들도 있다.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2000)에서는 "사회주의 상업의 상품광고에서는 자본주의 상업에서와 같은 허위와 날조 등이 있을 수 없다"고 표현되어 있다. 분명 허위와 날조가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분명 허위광고에 해당하는 부분이 눈에 띈다. 허위과장광고는 허위의 내용 또는 과장된 내용으로 소비자를 오인시키는 것이다. 북한 상품 포장재를 살펴보면, 검증되지 않는 효능을 강조하는데 이를 허위, 과장광고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삼건무역회사>의 딸기우유와 사과향 요구르트 제품에는 '어린이 키크기, 성장발육'이라는 문구는 물론 '특히 콤퓨터를 사용한 후 요구르트를 마시면 방사선차단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항암작용, 로화방지, 어린이성장발육' 등 효능이 검증되지 않은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다.
브랜드와 프로파간다
(정치선전)의 변주곡
이처럼 북한에서는 주민들을 소비자로 인지하고 다양한 상품광고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자율적인 책임과 소비자의 욕구와 취향을 중요시하는 자본주의와 달리 아직까지 북한에서의 광고와 상표는 소비자의 일차적 욕구보다는 당이 주입하고자 하는 사상성이 내포될 수밖에 없다. 결국 브랜드와 프로파간다(정치선전)의 변주곡이 어떻게 북한 사회에 반영될지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