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국제기구 및
INGO 대상

판문점 특별견학

지난 8월, 우리 협회는 주한 국제기구와 INGO 고위 관계자들과 함께 판문점을 방문했습니다. 비무장지대 한가운데 위치한 판문점은 분단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대화와 협력의 가능성을 품은 공간이기도 합니다. 남북 간의 직접적인 대화가 멈춘 지금, 남북 간 사업을 매개하고 중재할 수 있는 국제기구 및 INGO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인도 협력과 재해·재난 대응의 연결 창구가 될 이들의 판문점 방문은 국제사회가 한반도 접경지역 협력에 주체적 파트너로서 참여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글. 김건주 대리

판문점 방문에 앞서 방문단은 대표적인 남북교류 현장인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를 둘러보며, 출입경을 체험했습니다.

통상 한국어로 국가 간 출입을 "출국", "입국"이라 칭하지만, 남북은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이기 때문에 "국경선이 아닌 경계선을 넘나든다"는 뜻으로 "출경", "입경"이라 칭한다는 설명을 듣는 등, 방문단은 남북 간 통행 절차를 직접 체험했습니다.

개성공단까지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모의 방문증명서에 출입경 심사 도장을 받으며, 방문단은 잠시나마 남북 교류의 관문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짧은 체험이었지만 이곳이 지닌 역사적 상징성과 아직 닫혀 있는 현실적 단절이 동시에 다가왔고, 언젠가 다시 열릴 교류의 길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출입경 체험을 마친 뒤, 방문단은 2층 회의실에 모여 간담회를 이어갔습니다.

남화순 (남북협회 부장)

오늘 행사를 주관한 남북협회 조사연구부 남화순 부장입니다. 이렇게나 다양한 주한 국제기구와 국제NGO단체 여러분들을 한 자리에 모시기가 참 쉽지 않은 만큼, 서로 인사하며, 각 기관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네트워킹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소개해주시면서 북한과의 협력 경험이나 앞으로의 방향성도 함께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Jasmin Walda
(Heinrich Böll 재단 매니저)

하인리히 뵐 재단은 독일 녹색당 정책 산하 재단으로 작년에 서울사무소를 개소했습니다. 국제사회와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을 지켜보며, 북한과의 협력 가능성을 꾸준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Fredric Sphor
(Friedrich Naumann 재단 대표)

독일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은 연 1-2회 수자원 관리와 폐기물 처리를 주제로 북한과 온라인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북한과의 협력에 대해서는 여러 국제적 요인과 상황을 고려하며, 더 많아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Sarah Fahrenkrug
(Komrad Adenuaer 재단 매니저)

콘래드 아데나워 재단은 독일 정치 재단 중 하나로 2018년부터 북한 당국과 직접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보건 분야, 특히 결핵 연구와 약물 연구 분야에 사업의 초점을 두며, 온라인 세미나를 개최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준모
(CONCERN Worldwide 한국지부 대표)

컨선월드와이드는 국제 인도주의 전문기관으로서 전세계의 기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간 영양 개선, 재난 위험경감, 재난 대응 분야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을 수행했습니다.

Christoph Heuser
(Friedrich Ebert 재단 대표)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1980년대 말부터 한국에 사무소를 두고 있습니다. 재난관리, 회복력 강화, 홍수관리 분야에서 북한과 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북한과의 협력은 여러 국제 정세를 지켜보며, 계속해서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Imesh Pokharel
(OHCHR Seoul 부대표)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서울사무소는 UNHRC(유엔인권이사회), UNGA(유엔총회)와 함께 긴밀히 소통하며, 여러 인권 의제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국제인권협약에 가입한 북한과도 소통의 기회를 확대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권광혁
(행정안전부 사무관)

행정안전부 국제협력담당관에서 주한 국제기구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협력하고 있습니다. ESCAP(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 UNDRR(유엔재난위험경감사무국) 등과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관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판문점 방문은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지라 매우 기대됩니다.

장유미
(UNFPA 글로벌사업담당관)

유엔인구기금(UNFPA)은 성 평등, 인구 이슈 등의 분야에서 사업하는 유엔기구로서 2019년에 서울사무소를 개소했습니다. 아프리카, 중동 지역 6개국의 분쟁·취약국 지원 프로그램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판문점은 남북한 사이의 '가장 평화로운 분쟁지역'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George Jennifer Jane
(EAAFP 대표)

Kia ora!(뉴질랜드 원주민 언어, '안녕하세요'라는 뜻)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은 철새와 철새 서식지 보호를 위해 22개국이 협력하는 국제기구로 사무국이 송도에 있습니다. 북한도 EAAFP의 파트너인데, 2018년에 18번째 파트너로 가입했습니다.

이현지
(WFP 한국사무소 소장)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은 1995년부터 북한에 식량을 지원해왔으며, 코로나시기 현지에서 마지막으로 철수했던 유엔기구입니다. 아동과 여성의 영양 개선, 재난위험 경감, 재난 대응을 주요 사업으로 하며, 한국사무소는 한국 정부를 다자협력 핵심 파트너로 여기고 있습니다.

각 기관의 협력 분야는 다르지만 최근 협력 여건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대면 협력이 중단되면서 온라인 세미나가 주요 채널이 되었고, 정치적·환경적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든 재개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공감했습니다.

특히 현재 북한은 '인도주의'라는 용어 자체를 기피하고 있으며, 다자 협력 틀에는 상대적으로 개방적이지만 양자 협력에는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공유되었습니다. 또한 최근 북한이 인도적 지원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러시아·중국과의 협력을 우선시한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참석자들은 이러한 인식 속에서 향후 남북관계의 전개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고, 과거 교류 사례와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활발히 의견을 나누며 오늘의 만남에 큰 만족감을 표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자 파주 특산물인 장단콩으로 만든 두부김치 음식을 먹으며 함께 식사하고, 임진각 관광안내소로 이동했습니다. DMZ 풍경이 훤히 보이는 루프탑 카페에 앉아 티타임을 즐기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바쁜 일정상 UNDRR(유엔 재난위험경각사무국) 동북아지역사무소 소장님은 임진각 관광안내소에서 방문단 일행을 기다리고 계시다가 합류했습니다. 소장님을 루프탑 카페로 모시면서 판문점 방문이 처음이신지 여쭤보았습니다.

Sanjaya Bhatia
(UNDRR 동북아지역사무소 소장)

북한은 방문한 경험이 있지만, 판문점 방문은 처음이라 기대됩니다. 2019년 평양 방문이 마지막이라서요.

장예원
(남북협회 조사연구부 대리)

2019년 방문이라니, 꽤 최근 방문인데요! UNDRR 동북아지역사무소가 한국에 있다던데, 북한과도 협력 경험이 있으시군요!

Sanjaya Bhatia
(UNDRR 동북아지역사무소 소장)

유엔재난위험경각사무국(UNDRR) 동북아지역사무소는 인천 송도에 있습니다. 한국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고 있으며, 동북아 지역 재난 대응 및 협력 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과 재난 대응 프로그램 추진을 시도하기도 했었습니다. 지금은 국제정세를 보면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Sanjaya 소장님을 카페로 모시자, 저 멀리 보이는 새 한마리를 확대해서 촬영 중인 Jennifer EAAFP 대표님이 보였습니다.

장예원
(남북협회 조사연구부 대리)

대표님, 저 새는 무슨 새인가요?

George Jennifer Jane
(EAAFP 대표)

Egret(백로)이에요! 백로는 봄에 한국으로 날아오는 철새에요. 여름철에 알을 낳고 새끼를 길러서 가을이 되면 남쪽 나라로 이동하여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에 다시 돌아옵니다. DMZ는 사람의 접근이 제한되어 새들에게 최고로 안전한 번식지입니다. 이곳이 민통선 근처라 백로도 한 두 마리 보이는 것 같아요.

장예원
(남북협회 조사연구부 대리)

DMZ를 생태계의 보고라고 하는데, 얼마나 많은 새들이 있을지 상상하게 되네요.

여기서도 철새를 관찰하고 계신 대표님의 열정이 대단하세요. 

방문단은 판문점견학안내소로 이동해 견학에 관한 사전 교육을 들었습니다. 주의사항을 확인하고 판문점 조감도를 보며, 견학 코스를 점검했습니다.

JSA 안보견학관에서는 한국전쟁과 DMZ에 대한 전시를 보며, 해설을 들었습니다. 특별한 손님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이례적으로 유엔사 장교가 직접 영어로 해설해주었습니다.

고대하던 시간을 지나, 드디어 판문점으로 가는 버스 안에 탑승했습니다. 창밖으로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보였습니다. 휴전협정 조인 이후 포로 교환이 이루어지자 양측 포로들이 이 다리를 통해 남쪽과 북쪽으로 송환되었습니다. 송환되는 포로들은 일단 이 다리만 건너면 그 누구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고 해서 '돌아오지 않는 다리'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지나 남측의 최북단 시설인 '자유의 집' 앞에서 버스가 멈춰섰습니다. 내리자마자 공기부터 달라진 듯, 차원이 다른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자유의집'은 판문점 내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북측 '판문각'에 대응하는 남측의 시설로서 남북 적십자사 간 연락과 회담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곳입니다.

자유의 집 안에 들어와 장소에 관한 설명을 듣고, 옥외전망대로 이동했습니다. 전망대에 도착하자 북측 시설 '판문각'을 정면으로 마주했습니다. 과거에는 T1(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T2(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 T3(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 건물로의 이동과 건물 내 자유로운 사진 촬영이 가능했지만, 2023년 미군 병사(트레비스 킹)의 판문점 월북 사건 이후 안전통제가 강화되면서 옥외전망대의 지정 구역에서만 관람과 촬영이 허용되었습니다.

전망대에 설치된 망원경을 통해 북측 건물을 살피던 중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망원경을 들고 이쪽을 응시하는 북측 군인이 보였습니다. 망원경 너머로 서로의 시선이 겹쳐지는 순간, 분단 상황에 대한 긴장감과 아쉬움을 온몸으로 느끼며, 남북관계의 현실이 또렷하게 와닿았습니다. 동시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앞으로의 과제를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울림이 일었습니다.

남북 간 직접적인 대화가 멈춘 지금, 국제기구와 INGO가 다자협력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북한과의 소통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면한 기후변화 대응과 재해·재난, 인도 협력은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인류 공동의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날 판문점 특별 견학은 이러한 협력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방문단 역시 큰 만족을 표했습니다. 남북협회는 앞으로도 민관 협력 플랫폼으로서 국제사회와 함께 다자협력의 길을 열어가며,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협력의 새로운 장을 만들어가는 것을 지원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