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심은
희망 한 그루

2025 청년 통일 공감 아카데미
현장 견학(7.3.~4.) 후기

무더운 여름 햇살 아래, 한반도의 미래를 향한 뜨거운 마음을 간직한 대학생들이 경기도 파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남한의 최북단, 남과 북이 맞닿아 있는 긴장 속에서도 저희는 여전히 살아 숨 쉬는 평화의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특별했던 순간의 기록을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글. 중앙대학교 한반도연구회 학술부장 강윤지

가장 먼저 방문하였던 곳은 남북출입사무소였습니다. 남북출입사무소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보자면, 남한과 북한 사이의 인적·물적 교류에 관한 출입 업무를 위해 2003년 11월 신설된 통일부 소속 기관입니다. 남한에서 북한으로, 북한에서 남한으로 이동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입니다.

남북출입사무소를 둘러보며, 처음에는 마치 다른 나라로 출국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해외를 오갈 때와 마찬가지로 몇몇 물품의 반입이 제한되고, 농·축산 관련 방문자의 경우 반드시 검역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남북출입사무소가 마치 출입국을 관리하는 공항과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해외 출국과는 다른 점이 점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공항을 통해 타국으로 나갈 때 '출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날 출에 국가 국, 즉 '국가를 떠나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겠죠? 그러나 남북출입사무소에서는 '출경'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경계를 넘는다.'라는 뜻이지요. 남한과 북한은 본래 한 국가였기에, 여전히 완전한 타국은 아니기에, 미래에 다시 한 국가가 될 수 있기에, 출입‘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고 조심스레 생각해 봤습니다.

다음으로는 출입사무소 인근에 있는 도라산역을 살펴봤습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경의선 복원 사업에 의해 지어진 도라산역은 남한의 서울과 북한의 신의주를 잇는 유일무이한 철도역입니다. 역 안쪽으로 들어가 철로를 바라보면, 한쪽은 남한을, 한쪽은 북한을 향해 있습니다.

저에게 도라산역은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지하철 역사들은 언제나 사람이 가득하고 시끌벅적한 곳이었습니다. 지하철이 쉬지 않고 굴러가고 수많은 행인이 서로를 활기차게 스쳐 가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도라산역은 그와 달랐습니다. 기차도, 사람도, 소음도 없는 도라산역은 마치 매우 조용한 박물관 같았습니다. 실제로 거의 운용되지 않는 역사이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도라산역의 적막이 남북 관계의 종착지가 아니라 시작점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이라는 도라산역의 표어처럼, 지금은 멈춰 선 공간일지라도 언젠가 남과 북을 잇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그날이 머지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한반도통일미래센터였습니다. 센터의 통일미래체험관에서는 가장 먼저 VR을 통해 통일 미래에 개통된 KTX-통일호를 탑승해 보았습니다. 통일누리역에서 백마고지역까지 KTX-통일호로 이동하며, 창문 너머로 통일 이후의 미래 한반도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VR 체험 이후에는 전시 공간으로 이동하여, 문화·관광·물류·자원 영역별 통일 미래의 희망찬 모습을 체험해 보았습니다.

한반도통일미래센터는 체험형 프로그램이 많아서 즐거웠습니다. 특히 '육로의 연결'이 주는 통일 한반도의 장점을 직접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육로가 열린다면, 관광뿐 아니라 물류에서도 큰 발전을 이룰 수 있고, 북한의 자원과 지정학적 가치를 십분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한반도통일미래센터에서는 통일 미래의 평화와 번영을 생생하게 그려보며 그 비전에 대한 확신을 더욱 굳힐 수 있었습니다.

첫날의 마지막 일정은 전문가 토크쇼와 특강이었습니다. 사전 질문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던 토크쇼에서 남북교류협력의 현장에서 활동하시던 실무진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남화순 조사연구부장님한명기 종합지원센터장님 모두 개성공단 사업에 참여하셨던 분들이라, 직접 촬영하신 사진과 함께 그곳에서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명기 센터장님께서는 개성공단 사업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북한 주민들에 대해 '우리와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들일 것이다.'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성에서 처음으로 북한 주민들을 마주쳤을 때, 경계의 태도로 그들을 대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근무하고, 서로 모르는 부분을 알려주기도 하고, 생일을 함께 축하하기도 하며 많은 시일 동안 같이 일상을 보내다 보니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처럼 잘하는 부분도 있고 부족한 부분도 있는 사람들이고,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있는 공감의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몸소 느끼셨다고 전해주셨습니다.

사람들의 인식과 관련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남북교류협력에 대해 상대적으로 부유한 남한이 북한을 지원해 주는 형태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국내에서 많은 반발의 목소리가 있지만, 실상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합니다.

센터장님께서는 남한이 경공업 원자재를 지원해 주는 대가로 북한이 광물을 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남북교류협력은 양측에 모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이 밖에도 대북 인도적 지원을 위해 UN에 대북 제재 면제 요청서를 남화순 부장님께서 직접 작성하셨던 이야기, 북한에 백신을 지원하기 위해 팀원들이 각각 보건복지부, 통일부, 관련 해외 기관으로 흩어져 승인과 실행을 준비했던 이야기 등 현장에서 직접 뛰셨던 분들만 알 수 있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생동감 있게 전해주셨습니다.

다음 순서로 이어진 김동진 박사님의 [남북교류협력과 사회적 역량: 평화학적 관점] 강연은 평화학에 대한 소개로 시작했습니다. 평화학이란 다양한 학제들 사이에서 평화라는 가치가 무엇인지 탐구하고, 더 나아가 그 가치를 직접 실천하는 학문이라고 합니다. 평화학에서는 갈등을 '양립할 수 없는 목표'라고 정의한다고 합니다. 남과 북이 각각 생각하는 통일 방식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갈등 상대를 자신의 정체성 밖으로 몰아내어 지나치게 타자화한다면, 그것은 곧 폭력으로 이어집니다.

김 박사님께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갈등 상대가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갈등 상대라고 하여 그들을 악마화하며 그들의 모든 공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다양한 정체성 중 '일부'만이 우리와 양립할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 평화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합니다. 결국 평화는 서로 다른 존재가 함께 숨 쉴 수 있는 여백을 지켜낼 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튿날의 첫 일정으로 남북산림협력센터를 방문했습니다. 가장 먼저 센터장님께서 센터에 대한 가벼운 소개와 남북산림협력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남북산림협력센터는 '숲으로 남북을 잇다'는 슬로건 아래 설립된 최초의 산림 협력사업 전진기지라고 합니다. 파주에 있는 이 센터에서는 특히 북한의 산림 황폐화 복구를 위한 적절한 수종을 선발하여 양묘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후 전시관 관람을 통해 북한의 산림 황폐화의 원인과 역사, 그리고 남북산림협력의 사례를 간략하게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방문한 스마트 양묘장에서는 센터에서 어떻게 묘목을 양생하고 있는지 직접 살펴보았습니다. '스마트' 양묘장인 만큼 이곳에는 온도와 습도를 자동으로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센터 구경을 끝마친 후, 소나무 묘목 심기 체험을 했습니다.

센터에서 양생한 3년생 소나무를 화분에 직접 옮겨 심는 활동이었습니다. 센터장님께서는 남북산림협력센터를 방문한 우리에게 주시는 자그마한 선물이라고 하시며, 소나무 묘목을 우리 모두에게 건네주셨습니다. 품에 담긴 소나무 묘목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남북의 통일은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심은 이 작은 생명처럼 조용히, 묵묵히 자라나는 것 아닐까? 비록 지금은 작은 화분 속의 조그만 묘목일지라도 매일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물을 받으며 조용히 자라듯, 남과 북의 관계도 그렇게 묵묵히, 그러나 분명히 성장해 나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시간이 지나 묘목이 푸르게 자라나듯이, 남북 관계도 언젠가는 푸른 숲처럼 평화롭게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마지막 일정인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그동안의 일정을 회고해 보았습니다. 통일전망대에서 손만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거리지만 절대 닿을 수 없는 지평을 눈에 담으며, 평화라는 것은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땅과 땅, 그리고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과정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현장견학은 단순한 방문을 넘어 우리 안에 평화의 씨앗을 심어 준 시간이었습니다. 그 씨앗이 당장 큰 변화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겠지만, 우리가 현장에서 본 풍경과 들은 이야기, 그리고 함께 나눈 마음들이 양분이 되어 천천히 뿌리내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언젠가 그 뿌리가 깊게 내려, 같은 하늘 아래 남북이 함께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이번 여정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의 소중한 마음을 담아 기원합니다. 그 날이 올 때, 우리는 오늘의 발걸음을 행복하게 추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