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하구의 평화적 이용 방안

최근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한반도 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북한 체제 존중 △흡수통일 추구하지 않음 △적대행위 중단이라는 '3대 원칙'을 천명했습니다. 이는 대결이 아닌 공존과 상생의 관점에서 남북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에 맞춰 통일부도 조직개편으로 '접경협력과'를 부활시키며, 비무장지대(DMZ)와 한강하구 등 접경지역에서의 실질적인 협력 기반을 다시 모색하고 있습니다. 정치·군사적 제약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다양한 협력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정책적 흐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전협정에서 민간 선박의 자유로운 항행을 보장하고 있는 한강하구를 남북 상생의 공간으로 발전시킬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번 커버스토리에서는 이성우 한강해양수산개발원 연구위원이 제안하는 '물류적 관점에서 한강하구의 평화적 이용 방안'을 소개합니다. 정치·군사적 신뢰 조성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장기적으로 접경협력의 복원과 평화경제의 기반 마련을 위한 구체적 구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글. 이성우 한강해양수산개발원 연구위원

오두산통일전망대 한강하구 전시관

닫힌 물길에서 한반도 평화의 시작점으로

한강 하구는 과거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서해와 내륙을 잇는 중요한 물류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분단의 상징으로 굳어져 지난 70년간 민간 선박의 접근이 금지되었습니다. 1953년 정전협정 제1조 5항에 따라 한강 하구는 군사분계선이 없는 중립수역으로 민간 선박의 자유로운 항행이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65년간 뱃길이 막혀 있었습니다.

< 한강 하구의 시간들 >

1. 고려시대 벽란도

예성강 벽란도는 고려 최대의 국제 무역항이었습니다.

2. 조선시대 조강

조강은 한양(서울)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로, 수많은 배와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곳이었습니다.

3. 1860~70년대 열강의 침략

조강은 조선의 해문(海門)으로 서양배들이 드나드는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습니다.

4. 1951년 6.25 전쟁시기

연백군에서 남족 교동도로 배를 탄 피난민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습니다.

5. 1953년~2018년 막혀버린 한강하구

정전협정 이후 한강하구는 경계와 대립의 연장이었습니다. 철책을 넘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재두루미에 그리움만 실어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6. 2018년 한강하구 남북 공동수로조사

남과 북은 함께 70여 년 동안 막혀있던 수로를 여는 걸음을 시작하였습니다.

(출처 : 오두산통일전망대)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한강하구

수차례 바뀐 남북 관계의 변화는 이 닫힌 물길에 대해 여러 번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당시 2018년 9.19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합의서인 '판문점선언 이행 군사분야 합의서'를 통해 남북은 한강 하구를 공동이용수역으로 설정하고 민간 선박 이용에 대한 군사적 보장에 합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2018년 11월~12월 남북 공동 수로 조사가 성공적으로 실시되었고, 2019년 1월 선박의 안전 항해에 필수적인 해도(海圖)가 제작되어 북측에 전달되었습니다.

< 우리나라 제안 서해 공동어로 수역과
한강하구 중립수역 >

출처 : 이성우, 「한강하구의 평화적 이용을 통한 서울 신(新) 물류체계 구상」, 『KDI 북한경제리뷰』, 2019년 8월호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한강을 물류 관점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방안은 단순히 남북 교류를 넘어, 대한민국 수도권의 고질적인 물류·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남북 공동 번영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기반으로 부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남북간 관계 경색으로 다시 침묵의 시간이 지속되었으나 변하지 않은 한강은 여전히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만약 남북이 공동으로 한강하구를 평화적으로 이용한다면 적지 않은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 2018년 한강하구 남북공동수로조사 >

서주석(앞줄 오른쪽 셋째) 국방부 차관이 2018년 12월 9일 한강하구 공동수로조사 종료행사에 방문, 북한 측 대표 오명철(앞줄 왼쪽 둘째) 대좌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 국방부)

한강하구에서 남북 공동수로 조사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우리 측 조사선이 북한 측 수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사진 : 국방부)

첫째, 수도권 물류 문제 해결 및 친환경 물류 시스템 구축이 가능합니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는 수도권은 물류의 비효율성으로 인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물류 대부분이 경유 화물차에 의존하고 있어 수도권 미세먼지 배출원 1위를 차지하는 등 심각한 대기오염을 유발하고 있으며, 수많은 화물차가 도심을 오가며 만성적인 교통 체증과 교통사고 위험을 높이고 있습니다. 또한, 높은 지가와 주민들의 반대(님비 현상)로 인해 물류센터 등 기반 시설을 도심 인근에 확보하기 어려워 물류센터가 수도권 외곽으로 밀려나면서 불필요한 운송 거리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도권의 문제를 해결할 획기적인 대안은 육상 화물 운송을 수운(水運)으로 전환(Modal Shift)하는 것입니다. 유럽은 '마르코폴로 프로젝트'를 통해 트럭 운송을 철도와 수운으로 전환하여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경제적 효과를 거둔 바 있습니다.

< 서울시 물류체계의 현재와 개선안 >

출처 : 이성우, 「한강하구의 평화적 이용을 통한 서울 신(新) 물류체계 구상」, 『KDI 북한경제리뷰』, 2019년 8월호

< 한강 활용 서울의 물류체계 개선안 제안 >

출처 : 이성우, 「한강하구의 평화적 이용을 통한 서울 신(新) 물류체계 구상」, 『KDI 북한경제리뷰』, 2019년 8월호

한강 하구의 물길이 열리면 이러한 친환경 물류 시스템을 수도권에 구축할 수 있습니다. 부산항 등에서 수도권으로 들어오는 수출입 물동량을 연안 해운을 통해 한강까지 운송하고, 한강 둔치에 물류 거점을 조성하여 대량 화물을 처리합니다. 여기서 소량 화물은 기존 육상 물류망을 통해 각지로 분산시키는 해륙(海陸) 복합물류 체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한강을 운항하는 선박을 전기나 LNG 추진선 등 친환경 선박으로 한정하고, 물류 거점 역시 에너지 자급자족이 가능한 친환경 에너지 생태계로 구축하여 환경오염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이 방안은 수도권의 대기오염 개선, 교통 체증 완화, 물류 용지 부족 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할 것이며, 현재 기능이 미미한 경인아라뱃길의 활용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둘째, 한강 하구를 활용한 물류 시스템은 한반도 전체의 평화 경제를 실현하고 동북아 물류 허브로의 도약을 견인할 수 있습니다. 한강 하구 연안해운 시스템은 북한의 해주항, 예성강 하류와 연결되어 개성공단과 여러번 구상되었던 '서해 남북공동경제특구'의 물류 동맥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현재 육상 교통 인프라가 매우 열악한 북한에게 새로운 물류 루트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특히 현재 북한의 물류가 도로와 철도를 통해 중국에 종속된 구조에서 벗어나, 바닷길을 통해 교역을 다변화하고 경제적 자립도를 높이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구상은 북한이 초기 경제 개발 단계에서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저부가가치 산업에 의존하지 않고, 처음부터 친환경 물류 시스템을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이는 남북이 함께 성장하는 통합 경제권의 비전으로 이어집니다. 남한 수도권의 경제, 환경, 기술적 효과가 인접한 북한 지역으로 확산(Spill-over)되면서 남과 북이 공동으로 성장하는 '한반도 메가리전(Mega-region)' 형성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인천항과 북한의 해주항을 묶어 덴마크 코펜하겐과 스웨덴 말뫼의 사례처럼 '남북공동항만공사'를 설립하여 공동으로 항만을 관리하는 모델도 모색해 볼 수 있습니다.

평화와 번영을 위한 실천적 과제

물류 관점에서 한강 하구의 남북 공동 이용은 단순히 단절된 철도를 잇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우리나라는 수도권 문제를 해결하는 실용적 해법이자, 북한에 수출 지향적 경제 성장의 길을 열어주는 전략적 선택입니다. 해운·항만을 통한 바닷길 회복은 북한의 수출지향 산업화에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서울시가 추진했던 한강택시 운행이 언론에 조명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이용하는 교통은 단순한 교통수단을 연결한다고 활성화가 되지 않고 도시 전체의 교통망과 연동시켜서 추진되어야 합니다. 또한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기상변화 등 제어 불가능한 상황을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반면 화물을 운송하는 물류는 상대적으로 이러한 위험요인이 적습니다. 그리고 이미 구축된 한강변 고수부지와 연결도로 정비를 통해 손쉽게 한강을 물류망으로 고수부지를 물류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실현의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남북 관계를 바탕으로 한 군사적 보장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선박 통행을 위해 신곡수중보 등 일부 구간의 시설 개선이 필요하며, 한강 연안에 물류 거점과 배후 단지를 조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계획과 투자가 뒤따라야 합니다.

비록 현재 남북 관계가 경색 국면에 있지만, 한강 하구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신(新) 공급망 체계를 구축하는 핵심 전략으로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 번영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한강의 물류 동맥화를 위한 체계적인 연구와 준비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한강 하구의 뱃길을 여는 것은 70년 분단 체제의 종식을 알리고 한반도 평화 번영의 시대를 여는 실천적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