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숙한 틀을 벗어나야
새로운 협력이 보입니다"
익숙한 틀을 벗어나야
새로운 협력이 보입니다
최근 남북관계의 대화와 협력이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선언하며 공식 접촉이 중단된 가운데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 그리고 민간 차원의 접점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는 그동안 정부와 민간 사이의 가교로서 다양한 교류협력 사업을 지원해 왔습니다. 정낙근 협회장은 "지금은 남북관계의 적대성을 완화하고, 상호 존중과 신뢰를 회복할 때"라고 강조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정 회장에게 남북관계의 현주소와 교류협력의 방향, 그리고 협회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인터뷰.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정낙근 협회장

지금은 '두 국가 논쟁'보다
적대성 완화가 더 중요합니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선언한 상황에서 남북 간 대화의 실마리를 푸는 것이 중요한데,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북한이 계속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강조하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건 '두 국가냐 아니냐'를 따지는 게 아니에요. 핵심은 '적대적'이라는 표현을 어떻게 평화적이고 정상적인 관계로 바꿔나가느냐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느냐, 통일을 포기한 것이냐'와 같은 논쟁이 많지만, 그런 논의는 정치적 차원의 문제일 뿐입니다. 지금 필요한 건 현실 속에서 적대성을 완화하고 관계를 정상화할 방법을 찾는 것이에요.
국가 관계는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것이고, 고정된 게 아닙니다. 그래서 논쟁보다 더 중요한 건 국민의 인식 변화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남북이 평화적이고 실질적인 협력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지, 그 방향에 공감대가 형성돼야 합니다.
상호 존중과 신뢰가 회복돼야
지속 가능한 교류가 가능해요.
현재 남북관계가 여러 제약 속에 놓여 있지만, 교류협력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시나요?
교류협력의 시작은 결국 상호 존중입니다. 인간관계도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대화가 이어지기 어렵잖아요. 지금까지 남과 북 모두 상대를 존중하기보다, 자기 입장에서만 해석하고 규정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이런 태도는 결국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앞으로는 과거의 틀을 반복하기보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약속을 지키며 신뢰를 쌓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래야 대화와 교류협력이 지속되고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교류협력이 정치적 이벤트로 다뤄진 점을 부정할 수 없는데, 이제는 남과 북이 함께 사는 '삶의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 교류협력은 정치가 아니라, 공존과 공영을 위한 공동체적 노력이어야 한다고 봐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기후·보건·인구·기술, 새로운 협력의
아젠다가 필요합니다.
미래의 교류협력을 준비하며,
협회가 앞으로 특히 주목해야 할 교류협력 아젠다나 분야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교류협력의 범위를 더 넓혀야 합니다. 과거에는 경제협력이나 사회·문화 교류, 인도적 협력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어요. 남북은 하나의 생태공동체입니다. 기후위기나 재난, 감염병 같은 문제는 휴전선과 상관없이 한반도 전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문제는 남북한 뿐만이 아니라, 유관 인접 국가들과의 공동 대응이 필요한 영역이에요.
또 하나는 인구문제입니다. 남과 북 모두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구조적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건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앞으로 20년 이상 함께 대비해야 할 과제입니다.
더불어, 최근에는 기술이 국제정치의 핵심이 됐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기술 냉전’을 만들고 있는데, 남북이 각기 다른 기술 표준을 따르게 된다면 생활양식과 사고방식 자체가 달라질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통일은 점점 멀어질 겁니다.
그래서 저는 '남북 기술 협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말 사전을 함께 만들려고 해왔듯이, 이제는 '기술 용어 사전'을 함께 만들어야 할 것이에요. 기술 표준과 협력을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게 필요합니다.
'민민관관(民民官官)', 민과 관이
각자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남북 간 호혜적 협력 관계 구축을 위해 교류 협력 사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협회가
민간 거버넌스 역할 수행 중 어떤 부분에서 더욱 노력해야 할까요?
협회는 공공기관이지만 '반관반민(半官半民)'의 성격을 가진 조직입니다. 정부가 직접 하기 어려운 일을 민간이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에요.
교류협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안전입니다. 아무리 좋은 사업이라도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습니다. 더구나 공공기관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 달리 민간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호막이 되어줘야 합니다. 저는 ‘민민관관(民民官官)’이라는 말을 자주 써요. 민은 민답게, 관은 관답게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민은 법과 공동체의 규범을 지키면서 지속적으로 교류에 나설 수 있어야 하고, 관은 민이 그런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협회는 그 중간에서 양쪽이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의 위기를 함께 이겨낸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에요.
협회장으로 재임하신 지난 기간 동안 가장 인상 깊거나 보람 있던 순간은 무엇이었는지요?
제가 2023년 1월에 취임했을 때 그 전 부터 남북관계가 냉각돼 있었고, 협회에 대한 시선도 좋지 않았습니다. 한때는 협회의 이름을 바꾸자는 얘기까지 나오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역할이 확대되고, 직원들의 전문성이 강화됐습니다. 구성원들이 '남북교류협력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것이 가장 보람 있었어요.
물론 남북관계를 직접 돌파해보고 싶었던 제 개인적인 바람은 이루지 못해 아쉬움이 남지만, 그만큼 제 역량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옵니다.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야 해요.
시기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요. 앞서 말씀하신 아쉬움과 연결해서,
협회 직원분들과 앞으로 이 길을 이어갈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요?
앞에서도 조금씩 말씀드렸지만,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젊어요. 젊다는 건 앞으로 발전하고 변화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기회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기회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에요.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으려면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력과 역량을 키우는 일입니다. 저 역시 늘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준비되지 않으면 기회는 그냥 지나간다'는 겁니다.
지금 협회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그걸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였으면 해요. '이 일을 얼마나 의지를 갖고, 또 남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노력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저는 늘 "창의력을 발휘하라"고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저보다 훨씬 유연하고, 많은 걸 받아들일 수 있는 세대입니다. 앞으로의 세상은 과거와 전혀 다를 겁니다. 익숙했던 방식으로는 성공하기 어려워요.
과거의 성과나 경험은 참고 자료일 뿐, 그게 미래의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길을 가야 하고, 그 길에서 창의력과 도전 정신이 필요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새로운 시도를 하고, 함께 토론하고, 그걸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저는 그래서 회의 때마다 "창의력"을 강조했어요. 앞으로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우물 안 개구리' 식의
한반도 중심 시각으로 남북관계를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남북 교류협력에 관심이 많은 '이음' 독자 분들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요?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도 우리 협회 웹진 「이음」에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부족한 점도 많지만, 그만큼 보완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직원뿐 아니라 국민 여러분 모두에게 드리고 싶어요.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이 없었는데, 지금은 스마트폰이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잖아요. 앞으로 10년 안에는 아이들이 "스마트폰이 뭐예요?"라고 물을지도 몰라요. 그만큼 기술과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말하며 연일 우리에게 말폭탄을 쏟아 붓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될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거라고 상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 세계 패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잖아요. 이처럼 세상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바뀌고 있습니다. 남북관계 역시 앞으로 전혀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길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현재의 상황만 보고 단정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미래를 오늘의 시점에서 계산하지 말고,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세요. 앞으로의 한반도는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습니다. 특히 남북관계를 '우물 안 개구리' 식의 한반도 중심 시각으로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남북관계를 바라보기를 바랍니다.